엄마는 옥수수국수를 안드셨다.

어릴때 쌀이 귀했던 시기에 옥수수 가루로 각종 음식을 만들어  흰쌀밥 대신으로 드셨기에

옥수수 국수만 봐도 질린다고 하셨다.

하지만, 아빠는 위가 안좋으셔서 늘 옥수수 국수를 드셔야 속이 시원하다고 하셨다.

그래서 난 어릴때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늘 옥수수 국수를 먹어야만 했다. 그래서인지, 옥수수국수를 나도 싫어하게 되었다. 일단, 칼라부터 맘에 안들었다. 노란색으로 된 국수… 그리고 넘길때면 가루를 씹는 느낌이여서 또한 싫어했다.  

다들 양꼬치집에서 먹는 온면도 난 안 먹었다. 대신 가지밥을 먹었다.

그렇게 난 십대를 연변에서 보냈고, 20대, 30대를 북경에서 지냈고, 30대 막바지에 캐나다로 오게 되었다. 옥수수국수는 거의 잊고 살았고, 가끔 북경에서 집에서 해먹을때도 있었다. 

잠깐 캐나다에 머무르실 계획으로 아빠가 오셨는데 코로나땜에 아예 2년을 캐나다에서 지내시게 되었다. 여름에는 그나마 백야드에서 농사를 하면서 시간을 보낼수 있었지만, 겨울에는 눈이 많이 오는 캐나다 또한 운전 못하면 다리가 없는 상태나 마찬가지인 곳에서 거의 동면을 하시다 싶이 집에서 한국드라마로 친구 하면서 지내셨다.

영어를 못하셨기에 마트에 가서도 거의 손짓몸짓으로  "어어어 땡큐 땡큐" 하시면서 친구도 없이 거의 2년을 보내셨다.  너무 안쓰러워서 중국에 보내드릴려고 했으나, 격리도 너무 힘들고 더우기 12시간 비행기를 타는 내내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는 사실이 두려워서 감히 아빠를 혼자 중국으로 보내시지 못했다.

아빠가 하루는 이렇게 말하셨다. "이제 중국가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이 개고기보신탕을 먹는 일이야."  개고기 보신탕, 여기는 개고기를 먹는다는 말조차 입밖에 낼수없는 나라인지라, 개고기는  연변에 가야 먹을수 있는 음식인거로.

또 하루는 아빠가 " 옥수수국수를 먹었으면 소화가 잘 될것 같구나."

내가 사는 위니펙이라는 작은 도시는 미국 엘에이나 캐나다 밴쿠버처럼 연변음식을 마음대로 찾아 먹을수 있는 동네가 아니다. 중국음식은 대부분 찾을수 있는데 연변음식은 참 어려운 과제였다. 중국인 마트, 한인 마트, 베트남 마트 모두 돌아 다녀도 옥수수국수라는 물건이 안보였다.  그제서야 해외에서 연변음식을 먹고 싶은 간절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거의 한달가량 돌아다녀도 보고 주변에 물어보고 했지만 살수가 없었다.  할수없이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항공편으로 부치기로 했다.

옥수수국수는 워낙 비싸지 않은 음식이라 25원이니 엄청 많은 양을 살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250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비행기를 태워 캐나다에 운송을 해왔다.

보름을 기다려서  받은 옥수수 국수가 그렇게 친근할수가 없었다.

옛날에는 거들떠 보지도 않던 옥수수국수가 이렇게 소중해 보이기는 처음이였다.

아빠한테는 항공편으로 부쳤다는 말을 하지 않고 어디서 구했다고 둘러대고(아니면 비싸다고 나무랄것 같애서) 정성들여 삶아서 옥수수국수 온면을 해드렸다.

아빠가 너무 좋아 하시면서 "이제야 속이 풀리는것 같다." 고 하신다.

애들도 맛있다고 한사발 뚝딱 먹어치웠다. 역시 조선족 입맛은 대대로 유전이 되나보다.

친구가 내가 옥수수국수를 하도 찾으니, 사진 한장을 보내왔다. 100% 옥수수 파스타.

100% 콘이니 옥수수국수나 다름이 없을꺼라고 한다. 다음에는 100% 옥수수 파스타로 옥수수 국수를 대신해서 해봐야겠다.

맛은 어떨지 참 궁금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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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도 어릴때는 온면을 잘 안먹었는데 크면서 더 김치 온면 이런 우리음식을 찾는것 같습니다. 음식은 맛도 중요하지만 어떨때는 추억이기도하니깐 찾아 먹게되죠. 캐나다에서 온면이라 고향에대한 그리움도 함께 있으니 더 맛있을듯 합니다. ㅋ ㅋ ㅋ 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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