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미술 전공자인가? 미술 관련 산업에 몸담고 있는가?
아니, 아니다.
난 우연히 길가다가 재미있는 그래피티 아트를 만나게 되면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어쩌다 그 주인의 감성이 묻어나는 카페에 들어갔다가 분위기의 한 몫을 담당하는 미술 작품을 만나게 되면 커피맛도 한결 더 좋아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인터넷을 서핑하다가 눈길을 끄는 사진 작품을 만나면 조금더 오래 보면서 그 순간을 잡아낸 작가분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다.
이와 같은 우연들과는 달리 굳이 전시 정보를 검색해보고 여행한 도시의 미술관에 찾아가는 나의 행위에 대해 조금더 깊이 생각해 보았다.
미술과 나의 제일 첫 인연은 화판(지금도 이렇게 부르는지 모르겠지만,,, 녹색으로 된 두터운 종이판을 앞뒷 면으로 그 사이에 스케치 종이를 넣어둘 수 있고 긴 끈이 달려있어 메고 다닐 수 있는 그런 미술 도구 중 하나로 기억된다)을 들고 다니면서 소학교 시절 몇개월 다녔던 기본기 스케치 수업이 전부다.
아, 그리고 지금 막 떠오른 것 하나 더!
색분필로 예쁘게 장식하면서 꾸몄던 흑판보.(黑板报)
소학교 시절에 각 반마다 선생님들께서 교학하실 때 사용하는 흑판과 마주한 교실 뒷편에는 또 하나의 똑같은 크기의 흑판이 있었다. 이 뒷면 흑판은 우리 학생들이 몇개 조로 나뉘어 번갈아 가면서 스스로 꾸몄었다. 매달 주제(?)는 학교에서 지정해 줬지만 그 외 나머지는 “너희들끼리 알아서 하면 된다”는 공간이었다.
공부의 중요성을 다루는 명언과 명인의 업적이 항상 한 쪽 모퉁이를 차지했던 흑판보의 대부분 지면은 글자로 채워졌지만 그 와중에도 우리는 예쁘게 꾸며보려고 애썼었다. 맨 윗쪽 이번달의 주제는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게 밝은 색상으로 예쁜 서체로 큼직하게 써놓았고, 좌 우 양켠에는 대체로 화초 식물 무늬를 그려놓았던 것 같다.
너무너무 오래 전의 일이라 그동안 까먹고 있었는데 지금 다시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부터 벽에 뭔가를 그리는 것을 즐거운 행위로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진짜 오랜 시간 공부에만 몰입했다. 중학교, 고중 6년 동안 진학을 위한 시험 공부를 제외하고 내가 접했던 미술 작품은 가끔 나에 대한 포상으로 빌려 봤었던 만화가 전부였다. 만화에 대한 인식이 오늘날에는 조금 개선이 되었지만 내가 고중을 다니던 그 시절에는 만화 보는 행위 자체는 “시간 낭비”로만 취급되었고 몰래 봐야하는 정도였었다.
이때 봤던 공포 만화가 나에게 진짜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다. 흉칙스러운 만화 속 형상이 그것을 보는 사람에게 두려움을 줄 수 있고 공포의 잔상을 남겨줄 수 있음을 경험했다.
북경에 있는 대학교에 진학하고 나서야 비로소 제대로 정비된 미술관을 가보게 되었다. 처음으로 미술 작품 전시장에서 기존에 알고 있던 그림, 조각, 서예를 제외 한 기타 다양한 시각적인 작품들을 접했을 때 그 느낌이 미묘微妙했다. 언어로 즉각적으로 말해낼 수 없는 마음 속에서 일어난 멋짐에 대한 감탄이었다.
“와!!! 미술은 이렇게 다양하구나~”
그리고 이해 할수 있던 없던을 떠나 미술관, 미술 전시장에서 거닐면서 보고 느끼는 그 기분이 좋아서 계속 찾아다녔다. 북경의 농업전시관에서 열리는 다양한 전시를 보러 갔었다. 10호선 지하철이 없던 그 시절 3환선을 따라 달리는 300번 버스를 타고 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서3환 만수사역까지 걸어가 버스를 타고 동쪽 량마교역에서 내려 다시 농업전시관에 가는 그 과정이 힘들만도 한데 그때는 마냥 좋았던 것 같다. 작은 디카를 들고 사진을 찍다보면 나의 행위 자체도 미술관 속 일부분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후 북경에 있으면서 중앙미술대학교 미술관, 중국미술관, 798의 갤러리들 그 중에도 UCCA, 한국 예술의 전당, 광주디자인비엣날레 등등 일반인이 찾아가 볼수 있는 수준에서 여유가 될 때면 찾아가 봤다. 지금까지도 미술관을 찾아 다니고 있다.
난 미술 산업 쪽으로 전향하려고 한 것도 아니다, 미술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고 한 것도 아니다. 미술을 전공하는 친구들이 많은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난 무엇에 끌려 한번 또 한번 미술관에 찾아가게 되는 걸가?
나 자신은 감정을 잘 표현해내지 못하는 사람인것 같다. 그래서 미술 작품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 같다. 다양한 감정을 다양한 시각적 형상으로 창작된 작품들을 통해 느끼는 것 같다. 소위의 “표현의 자유”에서 오는 쾌감을 가끔 느끼기도 한다.
나는 응시교육을 통해 성장한 모범생이다. 다시 말하면 강박 관념을 잔뜩 짊어지고 있는 사람이다. 이런 나에게 “몰라도 괜찮아”라는 숨통을 틔여준 것이 미술 작품인 것 같다. 반드시 명확하게 그 의미와 그 해석을 알아야 한다는 강박감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이렇게 글을 써내려 오면서 나와 미술의 관계를 하나씩 짚어보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 이 글의 제목 “나는 왜 미술관을 찾아가게 되는 걸가?”에 대한 답을 조금은 찾은 것 같기도 하다.
지속적으로 미술 작품을 느끼러 다닌 것은 내에게 있어 유일하게 “목적성”이 없는 비생산적인 행위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래서 별로 아는 것은 없지만 난 미술 작품을 통해 자유로운 감정 표현과 즐거움을 만끽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난 미술이 마냥 좋다.
첨부 사진:
11월에 홀로 다녀온 역사적 건축물을 차지한 청도시립미술관.

무게감이 있는 겉모습과 달리 내부 홀의 유리창 돔 천장과 흑백의 바닥 타일이 인상적이다.

2층 전시: RUNNING. (회자형으로 되어 있는 전시관)

오래된 건물만이 갖고 있는 특유의 연대감, 그 안에 품은 “신당대 예술들”.

마음에 와닿는 일본 작가의 조소작품이다. 반듯하게 다듬어진 단발머리에 야무진 코와 잎 그리고 목도리로 감싼듯한 목, 여기에 펑하니 뚤려있는 두 눈을 보니 허탈감과 해탈감을 동시에 느껴지게 되는듯 하다.


“몰라도 괜찮아” , 정해진 답이 없는 각자 생각하기 나름인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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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만약 옛날에도 지금처럼 폰에 달린 카메라로 마음껏 쉽게 사진을 찍을수 있었다면, 그때 그 시절의 흑판보를
포함한 다른 추억들도 많이 소장할수 있었겠는데 하는 생각도 드네요 ㅋㅋ
그렇죠, 시공간의 한 순간을 사진으로 담으면 그 순간이 박제된 듯한 느낌이 들어요.
사진은 옛날 추억으로 들어가는 문을 제공해 준다고 생각해요~
오늘도 글쓰는 범이님의 댓글에 기분 좋음이 10도 이상 상승했어요 ㅎㅎ
2022년 범이님의 새로운 도전과 좋은 글 기대하겠습니다.
新年快乐啊~
흑판보 오랜만에 듣는 추억의 단어입니다. 이번주는 어떻게 흑판보를 꾸며야 학년에서 일등하지 하는 고민을 많이 했던거 같습니다 ㅋㅋㅋ
ㅋㅋㅋㅋ 완전 공감 됩니다. 저 역시 어린 시절 유쾌한 경쟁을 느껴본 경험이기도 합니다~ ㅎㅎ
엄청 공감되네요, 저도 미술 전공자는 아니지만 그쪽으로 관심 많고 북경에서 처음 제대로 된 전시를 만나본 것도 국화님이랑 같습니다. 미술의 세상은 끌어당김이 있고 글과 다른 표현의 매력이 있는 거 같습니다.
공감을 해주시고 같은 경험도 했다는 댓글 보면서 기분이 완전 좋아집니다~ ^^
논색 화판 ㅎㅎㅎ 다 잊고 있었는데 설명을 들으니 기억이 새록 새록하네요! 그리고 말씀하신것 처럼 미술이 목적성이 없고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일상의 패턴과 속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아요! 저는 미술이 일상이 되어버리니 오히려 가끔 목표 달성할때나 효율적인 활동에서 신선함과 재미를 느끼게 되어요!^^
작가님들의 작품을 보면서 창작자의 기분과 의도를 생각해 보기도 하고 또 나름대로 이런저런 상상을 해볼수 있어서 참 좋아요~ 미술이 일상이 되어버렸다는 말씀이 참 부러워요~
서로 부럽죠 ㅎㅎ 그래서 밸런스가 중요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