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산의 우정이여! 문학이여!
—박진화와 모동필의 이야기
몽실이
얼마 전에 후배 박진화가 <선산을 지키는 못난 나무 한 그루>라는 글을 쓴 것을 보았다. 그녀의 동창이고 친한 친구인 모동필 군에 대한 글이었다.
“나이가 들어 내게도 언젠가 문단유사 같은 것을 쓸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모동필의 얘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다.”라는 구절로 글은 시작되고 있었다.
문단유사라, 정말 우리가 나이가 들어 문단유사를 쓸 자격 같은 것이 생길 때가 된다면, 그때도 조선족문단이 건재해 있을지가 의문이고 걱정이다. 인류를 구원하고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 믿던 멋진 문학은 윗세대들이 다 하고 우리에게 남은 건 언제 사라질지 모를 풍전등화 같은, 주변부로 밀린 문학 뿐이다. 얼마 전 阎连科의 글을 읽었다. “문학은 그저 이 시대의 주변화한 조연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는 말하고 있었다.
서글프긴 하지만 어찌 늘 주연이기만을 바라겠는가? 조연 없이 주연이 존재할 수 있는가 말이다. 맡겨진 역할에 충실하는 것만이 우리가 할 일이다.
서두가 길었다. 문단유사를 쓸 수 있는 기회가 영 오지 않을 것 같아서 나는 미리 내가 아는 두 사람을 글에 적으려 한다. 바로 박진화와 모동필의 이야기다.
박진화가 모동필에 대한 글을 쓰니 문득 그들의 선배이자 동문인 내가 에헴 건가래 떼며 “그들 이야기라면 내가 할 말이 많지요.”라고 하면서 나서보고 싶은 것이다.
‘홍안지기’, ‘남안지기’ 그런 명사의 뜻을 잘은 모르겠지만 저 둘을 보면 그 단어들이 떠오른다.
둘은 같은 반급에서 7년을 공부했고 같은 문학사 동아리에서 활동했으며 같은 교수님의 문하에서 공부했다. 우리 셋은 동갑이었고 같은 동아리였고 같은 교수님 문하에서 공부를 했던 것이다. 나는 그들보다 한 학년이 높다는 이유로 선배 소리를 들으며 17년째 제법 무게를 잡고 있는 중이다.
교수님 사무실에서 내가 조교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모동필은 연구생 시험을 거쳐 교수님 문하에서 석사공부를 하기로 이미 정해졌고 박진화는 지도교수를 맡기로 했던 교수님이 갑자기 한국으로 가게 되어 지도교수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 무렵 모동필 군은 자주 교수님의 연구소 사무실로 찾아왔다. 말수 적은 모동필 군은 쭈뼛쭈뼛하며 이 얘기 저 얘기 하다가는 갑자기 머리를 들어 교수님을 똑바로 응시하며 박진화를 추천했다. 앞서 궁시렁거리며 했던 말은 오로지 이 말을 하기 위한 멍석이었던 듯 눈에는 결연함까지 띠고 갑자기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박진화를 추천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교수님으로선 난감한 일이었다. 이미 초보적으로 결정이 난 사안인데 이렇게 학생 하나를 더 받는 것은 애초 계획과도 어긋나기 때문이었다.
교수님이 선뜻 결정을 못하시자 그런 대로 고개를 떨구고 나갔던 모동필 군은 2, 3일 지난 후 또 찾아와서 ‘읍소’를 했다. 박진화가 공부도 착실히 잘하고 글도 잘 쓰는 얼마나 괜찮은 학생인지에 대해 그 말수 적은 동필 군이 구구절절 말하고 있었다. 그러다가는 눈빛으로 나에게 구조요청을 보내기도 했다. 나도 덩달아 박진화가 참 괜찮은 학생임을 몇 마디 첨언하며 교수님 눈치를 살폈다.
모동필 군의 지꿎은(?) 읍소 덕분에, 교수님도 워낙 착실하고 성실한 박진화 양의 성품을 보아내시고 박진화 양을 문하에 지도 학생으로 받아들였다.
어떤 의리면 저게 가능할까? 하고 그때의 나는 생각했다. 동급생이면 경쟁자이기도 하겠고 또 교수님의 총애를 더 받고 싶은 욕심 같은 것도 있을 법한데 저렇게 진심으로 추천할 수 있을까 그때 나는 모동필 군의 진실됨을 엿보았다.
둘은 그렇게 꾸준히 투닥거리면서 학업을 마치고 각자 연변에서 취직하여 어엿한 문단의 문예일꾼들이 되었다.
한동안 우리는 가끔 안부를 주고 받을 뿐, 학생 시절의 결기로 ‘민족’, ‘문학’ 같은 떠올리며 이야기를 할 때가 점점 적어졌다. 각자 가정을 이뤘고 사느라 바빴다.
서로를 문학적 동지 쯤으로 여기는 마음이야 한결같아서 가끔 문학에 대해, 이른바 글쓰기에 대해 의견 정도를 나눌 뿐이었다.
외진 데서 가끔 나부끼는 문단의 소문들을 접할 때가 있었다. 진위여부를 알 길 없는 소문들이 흘러흘러 나에게까지 왔고 그럴 때면 나는 그 소문의 진원지에 있는 그들을 소환하기도 했다.
어느 한번은 모동필 군의 불미스러운 소문을 접하게 되었다. 진위 여부가 궁금했지만 직접 묻기에는 껄끄러웠고 또 모동필 군이 걱정되어 바로 박진화에게 문자를 보냈다.
“진짜니?”
“언니, 나는 직접 본 적이 없슴다. 언니와 마찬가지로 나도 들었을 뿐임다. 그러므로 난 여기에 대해 아무 할 말이 없슴다. 그러나 난 모동필을 믿슴다.”
그녀는 단호했다. 우리가 남이가? 그동안 내가 사준 술이 얼만데? 내게 그리 단호할 것까지야? 야속한 생각도 잠깐, 난 그녀의 단호함 앞에 두손을 들었다. 속으로부터 우러나는 어떤 존경의 감정이었다.
저런 친구 하나를 가졌다면 인생 헛산 건 아니리라.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나와 박진화는 가끔 악의없는 모동필 군의 험담을 하기도 한다. 모동필 군이 좀더 세속과 타협해서 ‘제 앞에 노릇’을 잘했으면, 좀더 악착스런 생활인이 되었으면…
둘은 퍽이나 성숙된 듯 모동필 군을 철없다며 질책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화 말미에는 언제나 그렇듯 그 ‘철없이’ 문학이라는 것에 심취되어 있는 모동필 군에 대한 은근한 부러움을 내비치곤 한다. 그리고는 일상의 잡다함에 빠져 허우적대는 우리를 자책한다.
‘민족’이니 ‘문학’이니 하는 것에 심취되어 있는 모동필 군의 뜨거움에 우린 살짝 움츠러들었다가 다시 또 그 뜨거움에 고무되어 같이 너울너울 춤을 추기도 한다.
그리고는 다시 또 학생시절로 돌아가서 문학이니, 순문학이니 하는 얘기들을 결기에 넘쳐서 쏟아내고는 한다.
같이, 그들과 더불어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들 둘의 우정에 낄 만한 자격을 가졌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난 그저 울타리 밖에서 박수를 칠 뿐이다. 그들 둘의 끈끈한 우정에 내가 낄 자리는 없어 보인다.
삼국연의의 장수들의 피를 나눈 의리만이 어찌 의리겠는가? 서로의 재능을 흠상하며 그저 잘되기만을 바라는 그 순수한 마음도 끈끈한 의리이다. 둘은 여전히 투닥거리며 말싸움을 쉬지 않지만 ‘문학’에 대해서만은 진지하게 견해를 같이한다. 진심으로 문학을 사랑하고 민족공동체를 걱정하며 똑같이 주변부로 밀린 민족공동체와 ‘문학’의 위치에 대해 진심으로 고민하고 아파한다.
조연으로 밀린 문학을 껴안고 그 안에서 각자의 역할을 찾아 보며 여전히 끈끈하게 문학을 사랑하고 ‘동지’들을 사랑한다.
선산을 지키고 선 나무들, 그들의 우정을 위해서 건배! 우리의 우정을 위해서 건배! 그리고 우리 ‘문학’을 위해서 건배다.
오늘은 영상 통화를 걸어 먼 곳에 있는 그들 둘과 술이라도 한잔 나누어야겠다.
<시선> 2020-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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