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사람들은 누군가를 안다는 것이 과연 가능하냐고 말한다.  당연히 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아무도 또 아무의 아무것도 다 모른다고 생각하면 너무나 섬찍하고 좀은 절망적이기까지 하다. 

         예로부터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른다.”는 말처럼 누군가를 똑똑히 다 안다는것은 불가능하다. 사람은 그만큼 우리의 상상을 훨씬 초월해서 복잡하고 난해하다.  게다가 사람의 속성이 또한 변하는 것임에야 더욱이 그러하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그렇게 알지 않았는데 하면서 놀라고 속히운듯 분해지고 허무해지고 상처를 받고 미워하고 그런다. 

        누군가의 마음을 적라라하게 다 알 수 있을가? 자신의 속을  들여다보다가도 전혀 예상치 못한 생각들을 만나거나 가끔 생소한 모습들이 불쑥불쑥 튕겨나와서 깜작깜짝 놀라기도 하는데 하물며 다른 사람이야 더욱이 그러할 것이다.  때로는 자신에게 한순간에조차 어떻게 고운 것들과추악한 것들이, 거짓들과 진실들이 공존하는지 모르겠다. 다만 그것들이 서로 많거나 적게 어우러져 분해가 가능하지 않은 상황도 있음을 알뿐이고 그런 자신에게 때로는 화가 나고 미움이  생기거나 할뿐이다. 다른 이도 이러할 것이다. 

        우리는 가끔 서로 마주보고 술잔을 기울이거 나밥을 먹으며 함께 웃고 이야기를 나눈다.  그때마다 상대를 향해서 무슨 생각을 하지? 금방 침묵한 것은 무슨 의미이지? 왜 눈길을 돌렸지?  어디를 본 것이지? “좋아”하는 저 단어는 진실로 좋다는 뜻인가?  아니면 아무래도 괜찮다는 뜻인가? 하고 자꾸 따져간다면 어느덧 상대와 함께 하는 즐거움은 사라질 것이다.  왜 따져야 하지?  우선 이런 물음을 자신에게 던져보자.  따진다고해서 그가 한 말중 어느것은 치밀하게 계산된 것이였는지 어느 웃음은 순간적으로 꾸며낸 것인지 알 수 있는가?  없다. 우리는 흔히 그를 안다고 여기는만큼 믿을뿐이고 믿는만큼을 볼 수 있을뿐이다. 

       굳이 보여주지 않는 그리고 보여지지 않는 것들을 보려고 신경을 도사리느라 피곤해지고 괜히 오해하며 실망할 필요가 있는가.  보여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가 감추고 싶은 것이리라.  감추고 싶은 것이라면 그다지 아름다운 것이 아니리라.  그렇게 아름답지 못해서 부끄러워져한다면 그것만으로도 그는 이미 나에게는 참다운 사람이 되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가.  그리고보이지 않는다면 어쩌면 아직 때가 아니라서일 것이다. 그러면 기어이 보려고 애쓸 필요없이 그때가 오기까지 함께하면 되는 일이다. 보여질 것이라면 그가 어떠한 가면을 사용한대도 무의식적으로 보여질 것이다.  굳이 보여지지 않는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신뢰하며 존중해주면 그만이다. 결국 안다고 여기는 것과 모른다고 여기는 것 역시나 나의 생각탓일뿐이다.  그사람은 그자리에서 자신을 보여주었을 뿐이다. 

        내 이름을 알고 가끔 나를 불러주고 마주하고 웃어주고 껴안아주고… 고맙게도 그러는 이들이더러 있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나름대로  서로 다른 의미지의 주향숙으로 다가가 있음을 안다. 서로 다른 의미지로 기억된다는 것은 그 어느 누구에게도 나는 온전히 알려지지 않았음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면 또 나의 미운 것을 적당히 몰라주며 아는 것을 고와해주고있는 그들의 덕분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 또한 한 사람이지만 여러 모습으로 보여졌다.  나의 요사함과 변덕 때문일 수도 있고 나를 보아주 는상대의 마음 탓일 수도 있다. 

        잘  모른다는 리유로 내 곁의 사람들을 하나씩 버려간다면 과연 내 생에 누가 남아있을지 궁금하다. 그러하지 않더라도 언제 누가 내 곁을 이런저런 리유로 떠나갈지도 모른다.  함께하는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할 일이다.  우리는 그 누구의 관심도 필요없는 오로지 자연이나 아니면 신과의대화만으로 충분히 잘 살아낼 수 있 는인간은 아니다. 우리는 자신과 같은 인간적인 서로가 필요한 존재이다. 

     가끔 길을 걷다가 놀랄 때가있다. 거리에서 흐르는 저 많은 사람들속에 내가 얼굴을 아는 이도또 내 얼굴을 알아주는 이도 없을 때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로 얼굴을 알고 이름을 알고 지낸다는것은 얼마나 어려운 확률이며 소중한 일인가.

       일상속에서 서로 마주하던 이들이 문득 떠나간다고 생각해보자.  어쩌면 어느길가에서 우연하게 닮은 사람을 만나면 그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소홀히 떠나보낸 인연에 후회할지도 모른다.  더욱이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면 어쩌면 하얗게 밤을 새워 그의 얼굴과 체취와 목소리들을 떠올리고 함께했던 시간대에 그 장소를 찾아 혼자 서줄줄 울며 오래오래 그리워할지도 모른다. 

      기실 따지고보면 한 사람에 대해서라도 아는 것도 많지 않은가.  그 사람의 이름과 이름에 어울리는듯한 얼굴과 웃을 때면 주름이 지던 코등이거나 머리결에 섞여있는 흰머리카락이나 따슨 숨결이 묻어있던 목소리거나 아니면 어느날 문득 나에게 보내왔던 문안메시지와 그 끝에 찍혀져있던 앙징스러운 이모티콘과 그 이모티콘 하나도 정성스레 골랐을 마음과… 그거로써 이미 충분하지 않은가 기어이 무얼 더 알려고 하는가.

        우리는 함께 살아가면서 분명 미움이나 배반이나 의심이나 같은 것을 경험한다.  그경험의 힘이 어느만큼 강하더라도 자신을 타협시켜서는 안된다.  어쩌면 그럴수도 있었겠지.  나랑 함께하던  순간에는 아니였어.  어떤 상황이 그렇게 그를 몰아갔을지도 몰라하고 리해해주는 게 마땅하지 않을가 여긴다. 이는 내가 뭐 성자같은 사람이거나 아니면 바다처럼 넓은 흉금을 지닌 사람이여서가 아니다.  단순히 나도 충분히 그럴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사람은 요사하기 그지없으니까.

       그리고 그가 어찌 내 모두를 알아서 다 내요구대로 해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가 나의 그리움이나 기다림을 알아서 내앞에 짠하고 나타나주고 내 외로움을 만져주고 내 두려움을 알아서용기를 주고 내 슬픔을 알아서 눈물을 닦아주고… 그처럼 나 역시 그를 모르는 것이다.  그의 하나의 표정이나 행동이 내게 주고저 하는 의미나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그 사랑이나 관심을 나 또한몰라줄지도 모른다. 어떤 말이나 행동이든 그 자신을 다 말해줄 수는 없다. 우리는 또 그 가슴깊은곳의 진실한 떨림을 다 리해할 수도 없다. 우리는 그렇게서 로 잘 모를 수도 있다.  다만 그냥 진심으로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감사해한다면 좋을 것이다. 사랑이라는 것은 내가 그를 다 알아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냥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그 리고 그때에 우리는 아름다운 설레임이나 감동으로 행복해 질것이다.

      다만 지금 이 순간 내가 누군가의 이름을  알고 잇다는 것, 그것이 너무 좋다. 적어도 나는 지금누군가의 이름을 부를 수 있으니까.  그리고 혹 어느날 내가 알고 있는 누군가의 부름에 내가 답할것을 기다릴 수 있다는 것 그것으로서 이 추운 날들 너무나 따뜻하지 않은가. 

     두려워할 것도 주저할 것도 없다. 나는 아직 내가 다는 모르는 너를 부른다. 내 생에 너를 알게되여서 고맙다. 나는 너를 즐겁게 용기내여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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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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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좋아한다는건 알려고 함과 연결되지만, 잘 몰라도 좋아할수 있다에 공감합니다. 알고 있는 그 조각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좋아서요. 오해는 미움을 낳는다지만 착각은 사랑을 보존시키기도 하지 않나요? 내가 사랑하는 나의 친구들, 부모, 배우자, 형제 그 누구도 나를 다 알지 못하죠. 그래도 서운하지 않습니다. 나 또한 그들을 잘 모르니까요. / 이 글 또한 제가 다 이해하지 못해도, 저의 어느 심경과 유사하여 제 기분에 취해 좋아한다고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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