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전에 연말을 맞으며 든 생각을 글로 적어보았었는데, 요즘 우리나무에 글 올리는 재미에 다시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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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살면서 나이를 먹는 것이 두려웠던 적은 단언컨대 한번도 없었다.  

십대에는 20대의 자유를 동경했었고, 20대에는 “서른즈음에”를 부를 자격이 있을 30대를 주저없이 맞이할꺼라고 생각했다. 세월이 나를 데려다놓는 순간들에서 나는 나이따위 두려워하지 않는 의연한 어른으로 살아갈줄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 어리지 않아서인지, 아직 어른이 안돼서인지, 그런 용기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 같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아재”라는 단어까지 보편화됐다. 무섭다.

2  

늘 나와 함께였던 이 단어가 왜 이렇게 무서워졌는가. 다 알아서 말할 것도 없는, 또는 될수록 피해가고 싶은 이 단어를 아래에 한번 직시해보자. 

중국 타지의 조선족사회에서는 잘 모르겠는데, 내가 나서 자란 연변에서 “아재”는 부모의 여동생 또는 부모보다 나이가 적은 여성을 뜻한다. 한국말에 “고모와 이모 그리고 아는 이모”가 있다면 연변에는 “(친)아재, (외)아재 그리고 (아는) 아재”가 있다. 부를때는 한국에선 고모이모 구별하는데 반해, 우린 무조건 아재다. 물론 한국에서 고모와 이모가 친가와 외가의 구분만 있고 손위, 손아래 구분은 없는데 반해, 연변에는 그 구분이 있다. 아재호칭이 무서운가? 더 무서운 “마다매”도 있다. 나의 부모보다 나이가 많은 여성에 대한 호칭이다. 

마다매까지 나오다니. 너무 멀리 갔다. 순간 내가 “연변지역내 여성형제의 호칭에 관한 조사”라는 논문을 쓰는줄로 착각한듯 하다.

3  

다시 “아재”로 돌아오자. 

고향을 떠나서든 다시 돌아온 고향에서든, 한동안 “아재”를 들을 기회가 적었다. 요즘은 다들 이모라고 부른다. 그런데 지난해부터인가, 예능에서 심심찮게 “아재”라는 단어가 들리기 시작했다. 한국 국내의 현상이긴 하지만, 한국의 대중문화는 늘 우리의 가까이에 있다보니, 이내 우리도 “아재”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연변의 “아재”와는 다른 의미로.

네이버에서 검색해보면 한국에서의 “아재”는 “아저씨를 낮추어 부르는 말”이며 강원도 일부지역에서는 “아직 결혼 안한 남자를 부르는” 호칭이다. 또한 경상도 사람이 자신의 친척 남성을 “아재”라고 부르는 것을 들었다. 한국에서는 주로 남자인가 보다. 

그러나 요즘 우리가 말하는 “아재”는 사전상 의미로 아직 굳어지지는 않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다. “아재개그”, “아재스타일” 등 단어에서 알수 있다시피 아재는 말하자면 “어딘가 촌스럽고, 세련되지 못하고, 시대를 거스르는 것 같은” 말투, 행동거지나 사고방식을 말하는 것 같다. 

“아재테스트”라는 것도 있다. “붉은 노을”은 누구의 음악이냐고 물었을때, 답이 “빅뱅”이면 아재아니고, “이문세”면 아재란다. 병주고 약주기라도 하듯이 “아재파탈”이라는 단어도 있다. “옴므파탈”에서 따온 단어란다. “나이는 아재지만 아재같지 않다”는 뜻으로. 

나만의 정의를 내려보자면, “청년과 중년사이의 경계를 넘어버리는 것”이 아재일듯 싶다.

 4  

중국에도 요즘 유사한 단어가 등장하였다. 한동안 위챗모멘트와 공중계정을 휩쓸던  “油腻的中年男”에 관한 수많은 글들이 바로 중국판 아재가 아닌가? 내복을 입어도, 구기자를 불린 차를 마셔도, 술을 마시다가 시를 읊으면서 울어도, 특정 복장을 하여도, 아재, 아재, 아재였다. 내가 여자라서 그런지 웃으면서 읽었다. 너무 일찍 웃었나 보다. 곧이어  “油腻的中年妇女”도 나왔다. “여자의 편은 여자”니까 약간의 사심으로 구체적 내용들은 생략하겠다. 해당사항이 나에게 전혀 없는건 아니었다. 

최근에 나는 남편이 무슨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하면 마치 머릿속에 “아재체크리스트”라도 들어있듯이 “그러면 아재라니까”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다. 그리고 내가 무슨 말을 하기전에 “아차, 이런 아재발언 자제해야지”라고 생각한적도 많았다. 

5  

이것도 소위 말하는 중년위기인가? 중년위기치고는 너무 애매모호하고 철없고 배부른 투정인가. 직장에서 부대끼고 부모를 봉양하고 아이를 양육하면서 느끼는 중년위기가 사실주의라면, 아직은 마음이 젊은 우리의 영혼 저변에는 모두 이런 낭만주의적인 고민이 있지 않을까.

사무치게 청년에 머무르고 싶다. 겉모습보다는 정서가, 정서보다는 정신이. 그리하여 주름진 눈꺼풀안에 흐릿하지 않은 반짝이는 눈동자를 빛내면서 살아가고 싶다.

내가 기억하는 꽤 초기의 아재개그는 오래전 한국의 싱어송라이터인 루시드폴의 입에서 나왔다. 그때 “유희열의 스케치북”에는 고등학생인 아이유와 루시드폴이 사연을 통해 받은 노래를 들려주는 코너가 있었는데, 그날 신청곡이 “루시드폴”의 노래인 “고등어”였다. 그 근사한 노랫말을 써낸 음유시인의 입에서 아래와 같은 개그가 나왔다. 

“그럼 오늘은, 고등학생(아이유)도 있으니 “고등어”를 부르겠습니다.” 

순간 티비 밖에서는 내가 “아 제발”하는 작은 탄식을 했고 티비안에서는 아이유가 팔을 감싸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관중석에서는 “아~~~”하고 일심동체가 되는 현상이 발생했고 MC인 유희열은 농담삼아 루시드폴에게 핀잔을 주었다.  그때 이런 개그는 “썰렁유머”라고 불렸던 것 같다.

6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내가 보는 루시드폴은 전혀 아재가 아니다. 근거는 일단은 그의 음악이다. 

안녕,

                                 -루시드 폴

안녕 그동안 잘 지냈나요 나는 잘 지내고 있어요
다시 이렇게 노래를 부르러 그대 앞에 왔죠
지난 두 해 사이 참 많은 일들을 우린 겪어온 것 같아요
누구라도 다 그랬을 것 같기는 하지만

나는 얼굴이 조금 더 탔어요 

거울 속 모습이 낯설 때가 있어요
나는 침묵이 더 편해졌어요 

나무들과도 벌레들과도 더 친해진 것 같아

그렇게 살아온 2년의 시간에 키우고 가꾼 노래를 거두어
이렇게 우리 다시 만난 오늘
세상이 달리는 속도보다는 더 느리게 자랐겠지만
나의 이 노래를 당신에게
당신에게

정말 고마운 친구들과 지었던 작은 이 오두막에 앉아
지금 그대에게 노래를 보내고 있어요

올해 마흔셋인 그는 여전히 곡을 쓰고 그 곡에 시같은 노랫말을 붙이고, 그의 노래는 마치 비오는 날 창문을 두드렸다가 흘러내리는 빗방울처럼 나의 마음을 두드렸다가 흘러내린다. 그는 아마 앞으로도 청년으로 머무를것 같다. 그의 정신이 청년이니까. 

7  

이쯤하여 수업에서도 종종 써먹던 글귀, 내가 좋아하고 다들 잘 아는 사무엘 울만의 “청춘”의 한 구절을 또 인용하고 싶다.

Youth is not a time of life. 

It is a state of mind.

청춘은 인생의 어떤 시기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이다. 

늘 배우려는 마음, 유연한 사고, 남의 말을 경청하는 태도, 나보다 어린 사람에게서 배우는 것, 한번씩 자신을 의심해보는 것 등 이런 품성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가 비록 아재개그를 할지라도, 외모가 촌스러울지라도, 그의 안에는 청년이 살아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일들이 쉽다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이젠 나이탓은 안해도 될것 같다는 말이다.

비로소 엿새후에 맘놓고 한살을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20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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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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