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덥히며

화분통에 봉선화씨 한알을 심어 사무실의 창턱에 올려놓았다. 며칠 동안 물을 주며 살폈다. 어느 날 파란 싹이 살며시 흙을 뚫고 올라왔다. 기다리는 봉선화는 아니였다. 다만 이름을 알 수 없는 한포기 풀이였다. 뽑을가 말가 하다가 이파리가 이쁘고 귀여워서 우선 그대로 두었다. 그리고 며칠 더 물을 주며 살폈다. 여전히 봉선화는 싹이 트지 않았고 며칠이 더 지나고 나는 더는 기대를 하지 않게 되였다. 그 때 쯤 풀은 더 싱싱하게 자라나 뽑아버리기에는 어딘가 마음의 한구석이 조금 아렸고 또 빈 화분통을 두기보다는 생신한 연록색의 풀잎들이 밝아보여서 그대로 두기로 했다. 

며칠이 더 흐르고 어느 날 아침이였다. 사무실에 들어서는데 이쁜 꽃 두송이가 나란히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새끼손가락의 손톱보다도 더 작은 앙증스러운 꽃이였다. 다가가보니 다섯개의 꽃잎이 뒤로 약간 휘여든 채 활짝 피여있었다. 기대도 하지 않았던 꽃이다. 뜻밖의 꽃송이에 기쁨이 일었고 그 꽃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함께 마주보며 웃었다. 그리고 며칠 뒤 그 자잘한 꽃들이 일여덟개 더 피여났다. 작고 이쁘고 맑은 빛갈의 꽃들은 내 가슴에 고요하게 일렁이는 감동을 선물했다.  

이름 모를 풀꽃은 그렇게 봉선화 대신 나를 향해 다가왔다. 이름을 굳이 묻지 않았다. 그냥 나에게로 다가오고 내 가슴에 고운 웃음으로 머무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꽃도 어쩌면 그런 내 맘을 느꼈을지 모른다. 그래서 이렇게 이쁜 미소로 맞아주는 것이리라. 얼마든지 스쳐지날 수 있는 우리들의 만남이였다. 지금까지 한번도 본 적 없는 꽃이였다. 정말 어느 날 갑자기의 만남이였다. 꽃을 흐르는 시간과 나를 흐르는 시간이 어쩌다 일치하게 겹쳐져서 우리는 하나의 시공 속에서 서로 만난 것이다. 참 아름다운 우연이였고 인연이였다. 날마다 꽃과 마주하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났다. 요란하지 않은 소박한 빛갈의 꽃들은 그 작은 꽃잎으로 나의 하루를 고요한 설레임으로 채워주군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꽃잎이 안으로 바싹 움츠러든 채 꽁꽁 닫힌 것을 보았다. 왜서이지? 져버린 걸가? 아니면 물을 제대로 주지 못한 탓으로 말라버린 걸가? 그 날 나는 조금 안타까웠고 우울했다. 다시 꽃에 물을 주었다. 이튿날 나는 또다시 활짝 웃는 꽃송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창으로 비쳐드는 쨍한 해살에 눈부셔하며 순간적으로 깨달았다. 풀꽃이 따스한 해살 아래서 활짝 피는 반면 흐린 하늘 아래서는 꽃잎을 꽁꽁 닫는다는 것을. 

사랑은 가슴을 열게 하고 가슴은 사랑을 향해 열리는 것이였다. 나즈막했지만 그 깨달음은 울림이 육중했다. 사랑은 그렇게 가볍게 나는 것이기보다는 기실 가슴 깊숙이로 무겁게 가라앉는 것이구나 하고 느꼈다. 사랑을 향해 가슴을 여는 일도 또 누군가를 향해 사랑을 주는 일도 그것이 서로 빗나가지 않고 고스란히 전해져서 온전히 나누는 일은 쉽지만은 않다. 그러나 어찌 보면 그들처럼 이렇게 쉬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서로 성실하게 주고받아들이면 되는 일이니까. 함께 따뜻한 사랑을 나누는 아름다운 사실에 감동했다. 

가슴을 활짝 여는 꽃을 이윽토록 마주보며 사람은 사랑이 어느 정도의 온도로 상승해야 가슴을 열고 랭기를 녹일 수 있을가 생각했다. 따스한 사랑을 향해 가슴을 열 준비는 되여있는지, 괜히 빗장을 지르며 살아가지는 않는지도 생각했다. 우리는 늘 상대를 향해 가슴을 열려고 하지 않는다. 다가서는 누군가를 노려보고 이것저것 따져보고 심각하게 사고한다. 그리고 어떤 선입견을 내세우며 딱딱한 벽 뒤로 몸을 피하거나 멀찌감치 도망을 간다. 가끔은 망설이느라 시간을 허비하기도 하고 의심하고 배척하기도 한다. 사랑을 받아들일 줄 모르며 그런 준비가 되여있지 않다. 불의와 불신임의 세상이 그렇게 만들어주었다고 한다면 과연 잘못이 없을가? 그 세상은 누구에 의해 그렇게 만들어졌을가를 되돌아본다면 부끄러워질 뿐이다. 사랑을 향해 가슴을 열 줄 알고 고맙게 받아주고 사랑받는다는 행복에 몰입할 줄 아는 령혼을 가진 풀꽃이 너무 사랑스럽다. 자신을 사랑하고 삶을 사랑하는 참된 지혜가 느껴진다.

또 우리는 어느 만큼 따스한 사랑을 한다면 가슴 하나를 온전히 열 수 있을가? 우리 주위의 사랑을 둘러본다. 련인의 집착이나 부모의 과잉사랑이나 부부의 의심이나 친구 사이의 거짓된 사랑 모두가 사랑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기애일 뿐이다. 사랑으로 상대의 가슴을 열 수 없었다면 그것은 어쩌면 사랑이 아닌 경우일 것이다. 아니면 상대가 원하는 사랑이 아닌 것이다. 게다가 요즘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많은 위선들이 범람하고 있다. 가장 훌륭하고 멋지고 고상하고 부드러워보이는 사랑을 만들어내려고 전력한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아무리 잘 포장되여나온 사랑일지라도 차거운 마음에서 비롯되면 랭기를 지니기 마련이다. 아무리 온기를 불어넣으려고 해도 부질없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사랑이 받아들여지지 못하면 상대를 폄하하고 조롱하고 함부로 독설을 퍼붓는다. 진실된 사랑은 말을 하지 않아도 전달된다. 그것은 서두르지도 않고 천천히 상대에게 전달되여 가슴을 열게 만든다. 상대를 탓하고 미워하기 전에 우선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것 같다. 날카롭지 않고 부드러웠는지 불편하지 않고 편안하였는지 차겁지 않고 따뜻하였는지 불안하지 않고 확고하였는지 거짓되지 않고 진실되였는지… 아마도 그랬다면 상대는 깊은 감사와 순전한 기쁨으로 가슴을 활짝 열었을 것임을 믿어의심치 않는다. 내가 누군가의 가슴을 열지 못했다면 나 또한 사랑이 모자란 탓일 뿐임을 알겠다. 내 가슴조차 뜨겁지 못했다면 내게서 배여나간 사랑이 어찌 상대를 감동시킬 수 있었겠는가. 

늘 그 자리에서 온힘을 다해 따뜻한 사랑으로 다가서는 태양을 본다. 그리고 믿음 하나로 가슴을 열고 받아들이며 자신의 빛갈과 향기로 화답하는 꽃을 본다. 시공을 초월해서 서로의 생에 함께 해준 것에 고마워할 줄 아는 그들의 사랑을 본다. 귀에 들리지 않았다. 눈에 보이지 않았다. 손에 만져지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사랑의 빛이였다. 그 빛은 어떤 고요한 어둠 속에서 최초로 탄생된 신성한 그 무엇과 흡사할지도 모른다. 그에 의해 그들은 서로 생명을 나누며 령혼을 나누어왔다. 

사랑, 참 아름다운 언어라는 생각이 든다. 입속으로 조용히 되뇌이다 보면 누군가의 가슴에서 비롯된 사랑이 내 가슴으로 흘러들어옴을 느낀다. 그 눈물빛의 사랑이 부드럽게 소용돌이를 만들며 더 깊어지고 넓어지고 따뜻해진다. 그렇게 더 넓어지고 더 깊어지면 넘쳐나 어딘가로 흐르려고 할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산다는 것”이라 읊은 시구가 떠오른다. 사랑은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으며 결국 살아가는 일 자체여야 했다. 

사랑으로 가슴을 열고 사랑을 향해 가슴을 열어야겠다. 누군가와 더불어 나의 매 하루를 환히 열어가고 따뜻이 덥히고 싶다. 사람은 사랑받는 존재이다. 사람은 따스한 존재이다. 그 존재와 섞여들고 천천히 녹아드는 것은 눈물겹게 아름다운 일임을 믿는다.

누군가를 헛되이 보내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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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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