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은 외롭다. 그리고 무덤덤하다.

춥고 어둡고 무거워서 도저히 감당이 안될 것 같던 겨울도 하루세끼 챙겨 먹다 보면 어느새 지나고, 갑자기 출장이 잡혀도 조바심을 내는 대신 약간의 망연자실 후 덤덤하게 거절하거나 덤덤하게 아이 맡길 곳을 알아본다.

예전에 문제로 보이던 것이 점차 처리해야 할 일이나 갖추어야 할 기능으로 보이고, 마음에 파도가 일어도 내 에고가 작동하여 부정적인 에너지를 키우고 있는 중이며 잘 먹고 잘 자고 운동하면 가라앉을 것임을 안다.  

사소한 일상을 쏙닥이던 동료가 떠나면서 남겨진 빈자리가 채워지지 않았으나 예전처럼 허전하지는 않고, 불경기에 직장생활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걱정은 되나 아등바등 매달리거나 허둥지둥 살길을 찾고 싶지 않다. 

내가 원한다고 해서 성사되는게 아니고, 가족이라고 해서 반드시 늘 같이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말이 달콤하지만 행동은 랭혹할 수 있고, 철이 없는 듯 보이지만 속이 깊은 사람일 수도 있음을 안다.

은근히 기대하다가 실망하고 속상하기보다 희망을 접어두는게 낫고, 투덜투덜 불만하기보다 해결방법을 먼저 찾게 되고, 악담이나 뒤담을 하기보다 사뿐히 즈려밟고 지나가면 에너지도 덜 소모된다. 

***

중년으로서 필요한 갑옷을 버젓이 갖추고 나름 요령껏 균형 잡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른이라는 껍데기속에 여전히 몽골몽골 여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거의 잊고 산, 젊은 시절 많이 좋아한 선생님의 말씀에 톡 터져 울먹였다. 

사실 나는 여전히 겨울나기가 힘들고 출장이 잡히면 초조하며 동료가 그립고 내가 원하는대로 가족이 같이 살면 좋겠고 불만을 토로하고 흉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선생님은, 졸업 후 너희들이 한생에 거쳐 학교에서 무엇을 가르쳤는지 보여줄 것이라 하셨다. (우리가 잘 가르쳤으니 너희들도 졸업하고 잘 해야 돼 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일하기 위해 읽는 글도 있지만 자신의 내면 성장을 위해 읽는 글도 있으므로 '마음의 생태계'를 념두에 두고 글을 읽고 글을 쓰고 친구를 만들라고 하셨다. (훌륭한 인재로 되여 모교를 위해 영광을 떨치라고 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마음을 돌보고, 진, 선, 미를 알고 우주의 보편된 법칙이나 도를 깨우치라고 했다. 우리가 읽고 쓰고 생각하고 그리워하고 기대하는 작은 조각들이 해빛이나 비물처럼 조금씩 천천히 마음의 생태를 자양할 것이라 하셨다. (일터에서 일군답게, 가정에서 가장답게, 사회에서 어른답게 의젓해야 한다고 하시지 않았다.)

***

따스한 빛이 가슴에 들어와 '너의 수요와 너의 느낌을 보았어' 라고 속삭이는 듯 했다. 아무에게도 솔직하지 못한, 솔직할 수 없는 나의 허무함과 무력함과 외로움이 그대로 받아들여진 것 같았다. 

나는 겨울이면 따뜻이 손 잡아줬으면 좋겠고, 출장이 잡히면 걱정말고 다녀오라 했으면 좋겠고, 거리낌 없이 속 터 놓을 수 있는 동료가 있으면 좋겠고, 가족들이 살을 부비고 살면 좋겠고, 손발을 허우적대고 침방울 튕기며 왜 싫은지 실컷 얘기하고 싶다.

'너 힘들구나', '너 많이 참았구나', '너 위로가 필요하구나', '너 생각보다 많이 여리구나', 나도 몰랐던 내 목소리가 들렸다.

***

여전히 마구 기댈 수 있는데는 없다. 내 삶은, 내 중년은 온전히 내 몫이고 내가 감당해야 한다. 그래도 누군가가 알아준다는 것은, 그래서 뭉클, 여린 부분을 드러내고 잠시 쉰다는 것은 보들보들, 뽀송뽀송한 일이다. 

내 시야는 레이저처럼 코앞에만 집중되여 있다. 내 코만 닦는 것도 이럴지언대, 팀을 이끌고 대가정을 짊어진 대선배님들은 얼마나 힘드셨을지.

지금은 생활이 많이 편리하다. 그럼에도 밥 해먹고 바닥 닦는게 귀찮을 때가 있는데, 아궁이에 불 지펴 가마솥에 밥을 짓던 우리 어머니, 할머니들은 얼마나 고생했을가.

남녀 평등이라고 하지만, 그나마 아줌마들은 일을 하지 않거나 가벼운 일을 해도 눈치를 크게 보지 않는다. 아저씨들은 어떠한가, 일자리를 지키기에는 힘이 부치고, 포기하기에는 상실감이 너무 크다. 

26년간 련재한 대하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는 탈고 후 30년이 지난 토지문학제 행사에서 비로소 <토지>를 쓴 연유를 알겠고 토지를 실감했단다. 서러움, 세상에 태여나 삶을 잇는 서러움, 이라 했다. 

삶을 잇는 서러움을 잠시 내려놓고, 쉬고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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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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