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주문이 많이 들어오니까 돌봐주지 못해. 그러니까 클레임 안 생기도록 정신 똑바로 차려.”

매니저가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귀띔해 주었다.

“네!” 바로 힘차게 대답했지만 사실은 속으로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아르바이트로 취직한지 며칠 안 된데다가 혼자서 배달을 한 적이라고 단 한번 밖에 없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늘밤은 일본과 남아프리카의 미식축구 월드컵 준결승전이 있는 날, 게다가 일요일 저녁이다. 그러면 집에서 혼자든지 친구끼리든지 가족이 모여서든지 TV 틀고 시청하다가 당연히 생각나는 것이 피자 아니겠는가?

벌써 가게의 커다란 배달지도에는 주문서가 빼곡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에휴~

“한군, 스이도 배달 부탁해.”

“네?!” 갑자기 들려온 오더에 흠칫했다. 

“한군, 스이도!” 매니저가 다시 말하자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부랴부랴 피자를 배달주머니에 집어넣고 자전거에 올라탔다. 스이도는 가게에서 1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다. 하지만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곳을 찾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전날에 선배랑 같이 배달을 뛰어봤지만 막상 골목에 들어서면 헤매기 마련이다.

다행히 이번 주문은 큰길 옆 건물이라서 무사히 배달을 마치고 가게로 돌아왔다. 그 뒤로 연속 서너 번 배달을 달리고 나니 조금은 골목들이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많이 걱정했는데 순조롭게 일이 풀려서 자전거 페달을 밟는 다리가 훨씬 가벼워 진 것 같았다. 

“한군, 야마부키… 조금 먼 것 같은데 괜찮겠어?”

“네, 괜찮습니다!”

야마부키방면으로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지만 나는 일단 자신 있게 대답했다. 피자 배달주머니를 자전거바구니에 넣고 힘차게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신감을 가로 막는 것은 다름 아닌 오르막길이었다. 오르막이 너무 가파로워서 올라갈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핸드폰으로 길을 검색해 보니 다른 길로 가려면 적어도 5분 이상 더 걸린다. 배달에 있어서 속도가 생명인 만큼 시간 내에 배달을 못하면 고객이 불쾌해 할 수도 있으니 되도록이면 빨리 가야 한다. 할 수 없이 다시 자전거에 올라 젖 먹던 힘까지 내어 페달을 밟았다. 

저녁이라 바람은 쌀쌀한데 쉬지 않고 페달을 밟았더니 금방 땀이 쭉 났다. 

이리저리 헤매다가 지나갔던 골목으로 다시 돌아왔다. 어두운 골목길에 환하게 켜져 있는 자판기가 휙 스쳐 지나갔다.

‘아, 목말라. 이번 배달만 끝내고 시원한 음료수 한 병 사 마셔야지~’

이렇게 생각하면서 골목 안으로 자전거 방향을 틀었다.

“목적지는 좌측에 있습니다.”

핸드폰의 안내음성에 브레이크를 꾹 밟았다. 하지만 좌측에는 단독주택이 한 줄로 쫙 늘어져 있었다. 주머니에서 주문서를 꺼내 가로등 빛에 비춰봤다.

“25-19… 이런, 지도에는 25밖에 안 나와 있잖아…”

자전거를 길가에 세워놓고 피자 주머니를 팔에 걸치고 주택 쪽으로 다가갔다.

“아…도대체 어느 집 인거야?…”

일본에서는 일반적으로 성씨를 문패에 써놓은 집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집도 꽤 있다. 가까이 다가가서 문을 두드리고 확인하려고 하다가 밤중에 괜히 폐를 끼칠 것 같아서 섣불리 그러지도 못했다. 지도가 잘못 된 것인가 싶어서 반대방향으로 뛰어갔더니 반대방향에는 골목이 막혀있었다. 시간을 보니 벌써 10분이나 지나가 있었다. 부랴부랴 다시 자전거를 세워둔 곳으로 뛰어왔다.

“분명 이 근처인데…”

피자 배달주머니를 건 팔이 너무 아파서 자전거바구니에 올려놓고 다시 주택 쪽으로 뛰어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조바심이 나서 골목 안을 왔다 갔다 했다. 

“오가씨! 오가씨! 계십니까?!”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서 뛰어가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골목 안은 으스스 할 정도로 조용했다. 

땀이 줄줄 흐르는데 찬바람을 맞으니 몸이 그렇게 차가울 수가 없었다. 

철컥!

바로 이때 뒤에서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가씨 맞으시죠?”

반갑게 다가갔지만 그제야 손에 피자가 없다는 걸 알아챘고 다시 자전거에 돌아가서 피자를 들고 뛰어왔다. 피자를 다시 팔에 얹는 순간 조급했던 마음도 다시 진정을 되찾았다.

“많이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오가씨는 문을 열고 피자를 받았다. 엄마 뒤에서 문밖을 빠끔히 내다보던 어린아이가 수줍은 듯 엄마 뒤에 다시 숨어버렸다.

피자를 넘겨주고 다시 자전거로 돌아왔더니 다리에 힘이 쫙 풀렸다. 사실 진정하고 처음부터 이름을 불렀더라면, 아니면 주문서에 적힌 전화를 쳤더라도 이렇게 까지 헤매지는 않았을 텐데… 여러 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춥고 목이 말라 아까와는 달리 따뜻한 음료수가 생각났다.

다시 골목입구로 나왔더니 아까 그 자판기가 그대로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자전거에서 내려와 자판기로 다가갔다. 하지만 다가갔을 뿐 나에게는 자판기에 넣을 돈이 없었다. 그러다 가게의 잔돈가방에 손을 얹었다. 

일단 쓰고 가게에 돌아가서 내 돈을 넣으면 된다. 하지만 그 누구도 빌려준다고 허락하지 않은 돈을 쓴다는 것은 자기 스스로만 빌렸다고 생각 할 뿐이지 사실상 공금횡령, 금방 자기 돈을 보탠다고 해도 보태기 전까지 공금을 썼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혼자 머리를 흔들며 주머니 속에서 손을 떼고 다시 자전거를 타려고 했다.

“피자배달 고맙습니다.”

이때 등 뒤에서 어떤 아저씨가 말을 걸었다.

“아, 네 감사합니다.”

나는 얼떨결에 대답을 했지만 이상하게 느껴졌다. 길가에서 마주친 피자 배달원에게 일부러 말을 걸다니, 참 고마운 분이다. 혹시 전에 배달을 하셨던 분이신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좀 전에 저희 집까지 피자 배달해 주신 분이시죠?”

아저씨가 웃으며 말했다.

“네?”

나는 조금 어리둥절했다. 좀 전에 배달을 한곳은 오가네 댁인데 아저씨가 무언가를 착각하고 있지 않나 싶었다. 

“아아아 오가씨!”

그러다가 다시 생각해보니 그제야 나는 아저씨를 알아챘다. 아저씨도 오가씨였다. 좀 전에 피자를 받은 오가네 아빠였던 것이였다. 아저씨는 퇴근길에 피자를 주문해놓고 들어오던 중 골목입구에서 우연히 나랑 마주쳤던 것이다.

“뭐 좀 마실래요? 자, 여기 동전.”

내가 놀라는 것을 보고 아저씨는 더 활짝 웃으며 동전을 내밀었다.

“아, 아닙니다. 제가 어떻게”

나는 손을 휘저으며 거절했다.

“괜찮아요, 괜찮아.”

아저씨는 괜찮다고 하시더니 재빠르게 자판기에 동전 두 잎 을 집어넣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아저씨 등 뒤에서 외쳤다. 그러자 아저씨는 손을 저으며 괜찮다고 하셨다. 

하루 종일 일하시고 퇴근해서 들어가는 아빠, 그를 기다리고 있는 엄마랑 아이, 가족 셋이서 나누어 먹는 피자는 분명 더 맛있을 것이다. 

자판기에서 따뜻한 음료수가 떨어져 나왔다. 밤늦게 퇴근하는 아저씨도, 어두운 밤에도 환하게 길 비추는 자판기도, 어둠을 헤치며 배달을 하는 나도, 오늘도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음료수가 들어가기도 전에 몸이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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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향수(響水)는 울릴 향에 물 수자로 구성되여 돌에 부딪히여 널리 울리는 물소리를 뜻한다. 목단강에서 북경을 거쳐 동경에 유학 온 새시대 청년의 이야기들을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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