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학을 전공하고 한국의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나에게 있어서 공식적인 장소에서 연변말을 할 기회는 거의 없다. 그렇다고 연변말에 대한 애정이 식지는 않았다. 오히려 말할 기회가 없다 보니 더욱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 같다. 

 내가 하는 말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 말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객관화해서 본다는 것은 나 자신과 내가 속한 무리를 조금 더 이해하는 일이기도 하다. 연변말에 관심이 갈수록 뿌리가 같은데도 조선, 한국의 말과는 의미나 형식이 다른 낱말과 표현들을 특히 좀더 찬찬히 보고 꼼꼼히 공부하여 기록할 의무감 같은 것이 싹트기 시작했다.

☞ 연변 성인 가요(1950-2000)에 출현한 고빈도 명사로 만든 워드 클라우드

1. 말과 삶

말은, 그 말을 하는 사람들의 삶을 담는 그릇이다. 삶이 달라지면 말도 달라진다. 있던 말도 없어지고, 없던 말도 생겨난다. 필자의 어린 시절, 그러니 1980년대만 해도 연변TV방송국의 정시 뉴스 말미에는 “체육 소식”이라는 큰 자막이 나오고 나서 국내외 체육 소식이 이어졌었다. 그러다가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마 1990년대에 들어선 뒤부터였을까, 어느 날부터 더는 “체육 소식”이 아닌 “체육 뉴스”로 자막이 바뀌었고, 지금은 모두들 “스포츠 뉴스”라고 말하고 쓴다.

 “스포츠 뉴스”, “컴퓨터”, “무선망”, “왕바(网吧)” 등의 말들도 생겨난 지 불과 삼십 년이 채 안 된 나젊은 말들로, 내 나이보다 어리다.(내가 나이를 먹은 것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원래 있던 말에 새로운 뜻이 더해지거나, 말의 원래 있던 뜻이 더는 쓰이지 않기도 한다. “무선망”의 ‘망(网)’이 그렇다. 이삼십 년전만 해도 ‘망’ 하면 사람들은 물고기 잡는 그물 같은 것을 제일 먼저 떠올렸을 것이다.

아무튼, 그래서 말은 그 생명이 훨씬 길거나 또는 말도 안 되게 짧은 경우도 있지만, 태어나고 자라다가 늙어가고 결국은 죽는 그 과정이 우리네 삶과도 닮았다. 세상의 모든 말은 대략 만년쯤 지나면 의사소통이 전혀 안 될 만큼, 외국의 말처럼 달라진다고 한다. 있던 말이 없어지면, 즉 말이 사라지면 그 말이 담은 우리네 삶의 조각도 같이 이 땅에서 사라지고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지워진다. 연변말을 기록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간절함마저 더해진 것은 이런 이치를 알고, 비슷한 다른 언어의 사례를 접한 덕분이기도 하다.

수백 년 역사의 청나라를 세우고 드넓은 중원을 호령했던 만족(滿族), 막상 그들의 글로 된 만족의 문화와 역사가 박물관에서, 도서관에서 백 년 가까이 고이 잠자고 있다. 전국적으로, 아니, 세계적으로도 그 문헌들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대학교 만족어나 언어학 전공의 몇몇 교수들 말고는 없는 탓이다. 

지인 중에 만족 친구 셋이 있는데, 그들 모두 이구동성으로 자신을 청나라 귀족 출신(八旗子弟)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지만, 자신과 자민족의 역사에 대한 지식은 딱 거기까지인 듯싶다. 물론 그들은 만족어의 말과 글을 모두 몰랐다. 그 셋 중 한국 유학 중에 만난 후배녀석은 나중에 우리 학교에서 왕복 두 시간은 넘게 걸리는 서울대학교에 만족어 강좌가 열린다면서 청강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벌써 십 년전의 일인데, 설레는 목소리로 만족어 공부 소식을 내게 알리던 후배의 약간 상기된 얼굴이 아직 눈앞에 선하다… 

막강했던 민족의 통용어가 역사에서 잊혀질진대, 한 지역의 방언이 그렇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다. 나는 내가 쓰는 말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할머니께서 해 주셨던 곱고 지혜로운 말씀들이 나의 아이들, 그 아이들의 아이들이, 그 아이들의 아이들이… 되새기거나, 또는 다시는 쓰이지 않을망정 어딘가에 기록되어 필요한 누군가에 의해 읽히고 말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2. 말, 그 따땃함

한편, 오랜 연변친구를 만났을 때 우리만 아는 연변말로 왁자지껄 반갑게 인사하면서 느끼는 둘도 없는 편안함과 재미도 이 글을 시작하는 데 한몫 했다.

“야~ 오랜마이다. 내 니생각 영 마이 했다. 썩어 보고 싶었다.”

조금 과장스럽기는 하지만, 아마 이 글을 읽는 조선족 독자라면 한 번쯤 말해 봤거나, 들어봤거나, 또는 쑥스러워 내뱉지 못할 망정 속으로 생각했을 법한 말일 것이다. 거의 30년만에 만난 어릴 적 동창이 싱글벙글 내게 ‘도라쓰’를 하자고 손을 내밀며 한 말이기도 하다. 그 말을 듣는 필자는 요즘 말로 심쿵(심장이 쿵!)했다. 마음에 따뜻함이 느껴졌다. “썩어지” 좋기까지 했다. 그 친구가 내게 “아주 보고 싶었다.”, “매우 보고 싶었다.”, “엄청 보고 싶었다.”… 다른 말로 바꾸어 말했어도 나는 같은 느낌이었을까?

그런데 이처럼 우리에게는 분명 감동으로 다가오는 다정한 연변말이 어쩌다 영화나 텔레비전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조폭 아니면 사기꾼의 입에서만 흘러나오게 되었을까. 또는 개그의 소재가 되어 웃음거리가 되었을까. 잘만 부려 쓰면서 소위 말하는 ‘표준’보다는 낮은 것으로 폄하되는 연변말의 처지, 누구보다 치열히 살면서도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는 우리 조선족의 그것과 닮은 구석이 있는 것 같아서 섭섭하다. 그래서 연변말을 한 번이라도 더 곱씹고 소중한 보물 다루듯 더 잘 다듬어 기록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3. 말의 기록, 글

무엇인가 기록하는 데는 글만한 것이 없다. 570여 년전에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대왕님께, 그 훈민정음이 한문보다 못한 언문으로 천시 당하는 긴 세월 동안 계속해서 써 온 많은 평범한 아낙네들과, 그 글을 잘 다듬어 모든 이들이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한 우리 말 언어학자들에게 참 감지덕지할 일이다.모든 언어에 글(문자)이 있는 것은 아니다. 세계의 언어는 7천여 가지인데, 문자는 훨씬 적다. 문자가 없는 언어가 있는가 하면, 남의 문자를 빌려 쓰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글이 있다는 것은 말을 기록할수 있다는 얘기다. 말이 쉽게 잊혀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기록의 힘은 강하니까.

그렇다면 연변말을 어떤 식으로 기록하는 것이 좋을까?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이 말의 보물창고로 불리는 사전처럼 발음, 어원, 원어(原語), 품사, 뜻풀이, 유의어, 반의어, 기타 관련어, 사용환경 등등 다양한 정보를 다 기술하고, 실제 쓰인 예문까지 더하는 사전적 기술 방법이다.

물론 위와 같은 언어학적 정보 외에 해당 연변말과 관련된 일화, 실제 이야기를 붙이고, 어울리는 그림이나 사진, 영상 등까지 더하면 사전의 고지식함에 재미와 생동함까지 더할 수 있을 것이다.

4. 말의 역사 – 어원(語源)

한번씩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연변말을 기록하는 일을 시작하려고 할 때마다 자꾸 나를 주저앉힌 것은 바로 말의 어원(語源)어떤 단어의 근원적인 형태. 또는 어떤 말이 생겨난 근원.(표준국어대사전, 1999)  문제였다. 어원은 말의 역사뿐만 아니라 현존하는 말의 정확한 의미와 쓰임을 파악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조선, 한국의 말과 가장 이질적으로 들리는 연변 낱말에는 여러 가지 갈래가 있다. 그중에 더러는 바로 뼈아픈 일제 침략 역사의 흔적으로 일본어에서, 구 소련의 러시아어에서, 중국의 한족들과 섞여 살면서 한어(漢語)에서 들어와서 이렇게 저렇게 변형된 말들이다. 물론 중세, 그러니까 수백 년전의 조선 시대의 말이 한반도에서는 이미 그 본디 모양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달라졌으나, 연변에서만은 그대로 남아서 여전히 쓰는 말도 있다. 

표준어로는 “만들다”라고 하는 말의 연변말 “맹글다”가 바로 한 예이다. “맹글다”는 한글의 초기 형태인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그에 대한 설명을 덧붙여 나온 “훈민정음 언해(諺解)”(1459)에도 나오는 말이다.

☞ “훈민정음 언해”(1459년): “새로 스믈여듧자를 맹가노니 = 새로 스물여덟자를 만드노니”

위의 그림에서 파란색으로 표시된 “맹가노니”가 곧 오늘의 “만드노니”이다. 1459년 당시 우리 글의 표기가 다르긴 하지만 어렵지 않게 현대어의 “만드노니”가 올 자리에 “맹가노니”가 쓰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어원의 답을 찾는 데 빼놓을 수 없는 게 문헌 연구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글로 기록된 문헌을 찾다보면 오늘날 우리가 쓰는 말이 언제부터 쓰였는지, 지금의 형태와 의미로 쓰기 전에는 어떻게 쓰였는지, 왜 달라졌는지 등에 대한 단서를 찾게 된다. 허나 연변말이라고 하는 말들 중에 많은 낱말은 글말이 아닌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입말로만 존재해 온 터라 찾아볼 문헌이 없다. 연변 사람들 대부분이 알고 쓰는 말이지만 표준말 대접을 못 받아 사전에도 올라 있지 않다.

그렇다 보니 도무지 어원을 알 수 없는, 찾을 방법이 없는 말들도 적지 않다. “도라쓰”가 그렇다. 발음이 우리말 고유어보다는 외국어에서 온 듯하여 먼저 가능성이 높은 한어, 일본어, 러시아어의 사전을 두루 살펴봤다. “握手,握手あくしゅ(일본어), рукопожатие(루카바라찌에, 러시아어),” 이들은 발음도, 형태도 “도라쓰”와 닮은 데라고는 없으니 “도라쓰”의 어원 후보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필자가 나고 자란 룡정의 마을은 그 옛날 영국 선교사들이 살았던 동네라 영국데기라고도 불렸다. 그래서 혹시나 싶어 영어사전도 찾고(handshake), 프랑스어(poignée de main), 스페인어(estrechamiento, apretón, de manos), 독일어(Händedruck; das Händeschütteln)…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사전은 거의 다 찾아 보았다. 구글번역기도 돌려 보았다. “나는 그와 악수했다”라고 입력하고, 이런저런 언어로 번역을 해 보아도 “도라쓰”가 어디서 왔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5. 무모한 도전, 그 시작

어원 문제로 연변말 기록의 일을 시작했다가 방법을 도저히 몰라 손 놓기를 몇 번이고 하다가, 여러 해 전 페이스북에서 뜻이 같은 동지들을 만났다. 심지어 그들은 언어학과는 거리가 먼 IT 전문가나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들이었고, 먼저 그 일을 시작하고 있었다.

☞ 페이스북의 “사라져가는 조선족 사투리 살리기” 그룹 첫 페이지 갈무리 화면

한국, 일본 등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조선족 페친페이스북 친구들이 모이면서 칠백여 개의 낱말과 표현이 모아졌다. 요즘은 뜸해졌지만, 그래도 가끔씩 연변말을 제보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어떤 타당한 기준으로 분류가 되거나 하지 못했고, 부정확하거나, 좀더 많은 정보를 담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물론 어원 문제는 여전히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아 있고 말이다.

☞  “사라져가는 조선족사투리 살리기” 그룹의 구글 문서편집기를 이용한 온라인 협업 결과물

최근 들어 위챗을 통한 여러 채널의 조선족 문화 창달의 움직임 덕분이랄까. 다시 감히 연변말을 모으고 갈무리하는 일에 손을 댈 용기가 생겼다.(연변말에서는 그냥 “고새풍이 일어서”라고 한다.) 언어학적으로 완벽하게 기록하고자 했던 애초의 의지는 필자의 능력 부족을 탓하고 문헌 부족을 탓하며 욕심이라는 꼬리표를 붙여 내려놓기로 했다. 그저 많은 이들이 연변을 떠나 뿔뿔이 흩어져 살며 연변말을 할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한국과의 교류가 늘면서 한국어가 많이 수입되며 옛것이 원래의 자리를 잃어가는 마당에, 기억에서조차 더 아득히 멀어지기 전에 최선을 다해 기록을 남기자는 소박한 생각으로 바뀌니 이 글을 시작하는 일이 한결 편해졌다.

나의 이런 아이디어를 두고 “써거(썩어)”좋은 생각이라며 박수 쳐 주는 친구들이 있다. 그들 중에는 연변사람도 있지만, 연변이 아닌 길림이나 흑룡강성의 이른바 안쪽사람들도 더러 있다. 물론 모두 연변에서 학교를 다니는 등의 연변 체류의 경험이 있기도 하다. 연변말을 조금씩 기록하는 이 작은 시작이 앞으로 길림, 장춘 지역, 흑룡강성 등 안쪽에 사는 조선족의 말까지 기록하는 더 큰 일로 이어질 수 있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6. 연변말: “썩어지다”

말 나온 김에 첫 글에서 찬찬히 뜯어보고 살펴볼 연변말로 “썩어지다”를 골랐다. 어원으로 따지자면 “썩어지다”는 “썩다”에 연결어미 “-어”와 변화를 뜻하는 보조동사 “지다”가 붙어서 생긴 말이다.

먼저, 이 말이 중국, 조선, 한국의 사전에서 각각 어떻게 다루어졌는지를 살펴보자.

중국에서 나온 “조중사전”(1992)에서는 “썩어지다”를 “부패하다”의 뜻과, 부사어로서 “심하게”의 쓰임 두 가지를 의미항목으로 제시하고 있다.

  ☞ 중국의 “조중사전(1992)”, 1212쪽(전성애님 사진 제공)

 다음은 조선에서 나온 “조선말대사전”(1992)을 보자.

☞ 조선의 “조선말대사전(1992)”, 1273쪽(리은실님 사진 제공)

“조선말대사전”을 보면 “조중사전”과 뜻풀이가 일치하고 예문도 비슷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연변에서는 “썩은 상태로 되다”의 의미로 “생선이 썩어지기 전에…”라고 말하지 않는다. “생선이 썩기 전에…”라고 말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이번에는 한국의 “표준국어대사전”(1999)을 보자. 이 사전에서는 “북한어” 표지가 붙어 있으며, 다시 말해, 조선의 낱말로 풀이되어 있다. 한국에서는 안 쓴다는 얘기도 되겠다.

☞ 한국의 “표준국어대사전”(1999)

“표준국어대사전”의 특이점은 “조선말대사전”과 “조중사전”의 두 번째 의미항목만 풀이로 보여 준다는 것이다. 

앞서도 썼지만, 연변의 “썩어지다”, “썩어지게”는 여러모로 조선의 그것과 차이가 있다. 을 보면, 조선의 “썩어지다”의 첫 번째 뜻은 ‘부패하다’인데, 연변말에서는 그런 뜻으로는 “썩어지다”가 아닌 “썩다”를 쓴다. 연변에서는 오히려 “썩어지다”를 다음의 예처럼 “죽다”의 의미로 쓴다. 

“니 썩어지개?(너 죽을래? 너 죽고 싶니?)”

“죽다”의 뜻으로 쓰지만, 그렇다고 “닭이 죽었다”를 “닭이 썩어졌다”로 쓰기보다는, 위의 예에서처럼 다툼이 났을 때 협박조로, 또는 친구들끼리 농담으로 “썩어지개?”, “썩어진다!”라고 더 자주 쓴다.  

두 번째 뜻인 ‘지독하거나 심하게’는 연변말의 쓰임과 비슷하긴 하나 일치하지는 않다. 다른 점이라면, 연변에서는 조선의 사전에서 기술된 것과 달리 “썩어지게”의 쓰임이 부정적인 맥락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썩어지게 맞았다/때렸다”(죽도록, 심하게)처럼 사용하지만 “썩어지게 좋다”, “썩어지게 재미있다”, “썩어지게 아프다”처럼 부정적인 맥락과 긍정적인 맥락을 가리지 않고 두루 쓴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긍정적인 맥락에서 “썩어지게”는 그 뜻과 쓰임이 정도를 나타내는 부사 “매우, 아주”에 가깝다. 

한편, “썩어지게”는 어미 “-게”를 생략한 채 “썩어지”라고 말하거나, 한 음절을 더 줄여서 “썩어”라고 흔히 말한다. “썩어 좋다”, “썩어지 좋다”라고 해도 “썩어지게 좋다”, “아주 좋다”와 같은 뜻으로 사람들은 받아들인다. “썩어지 좋다”거나 “썩어 좋다”고 해서 “썩어지게 좋다”보다 그 좋은 정도가 줄지는 않는다. 

요즘은 위챗 등 SNS가 발달하면서 글말과 입말의 기준이 모호해졌고, 만나서 말로 할 것을 위챗이나 카톡 등을 통해 글로 쓰는 경우가 많다. 그 덕분에 “썩어지게”가 입말임에도 불구하고 위챗에서 사용의 예를 적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 위챗 대화방(群)”에서 찾은 용례

위의 그림에서 “써거”, “써거지”, “써거지게”의 예를 볼 수 있는데, 이는 각각 “썩어”, “썩어지”, “썩어지게”를 발음대로 적은 것이다. 우리 한글이 표음(表音)문자다 보니, 특히 사적인 SNS 대화에서 발음 나는 대로 적는 사례가 많다.  

지금까지 말의 속살인 뜻이나 문법적 쓰임새를 살펴봤다면, 말의 껍데기 셈인 발음도 살펴보자.(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나지막하게 따라서 말해 봅니다.^^) “썩~어지게 좋다”에서 첫 소리 “썩”을 우리는 조금 길게 발음한다. 특히 그 정도가 강해질수록 말이다. 짧게 발음하면 자칫 “니 썩어지개?(죽고 싶니?)”의 서술어 “썩어지개”처럼 들릴 수도 있다. 

 자, 끝으로 지금까지 쓴 바를 갈무리하고 줄여서 연변말 “썩어지다”의 사전을 쓴다면 다음의 모양새가 되지 않을까 싶다. 

☞ “사전에 없는 연변말모이(가칭)”의 올림말 “썩어지다”

 

사실 “죽다”의 뜻보다는 다른 동사나 형용사 앞에서 “썩어지게”, “썩어지”, “썩어”의 꼴로 쓰는 경우가 훨씬 많아서 이들을 동사 “썩어지다”에서 독립시켜서 부사로 사전에 따로 올려도 좋지 싶다. 그러나 아직은 “썩어지다”와의 의미적 연관성이 남아 있다고 보아 하나의 낱말로 기술해 보았다.

연변말을 모으고 다듬어 기록하는 첫 번째 글은 이쯤에서 마무리할까 한다. 감히 이렇게 큰 일을 시작한 데는 사실 믿는 구석이 있어서임을 고백한다. 이제 “썩어지다”에 대한 위의 내용에서 깁고 고쳐야 하는 부분은 지행자 독자들의 댓글을 통해 보완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믿음이 내겐 있다.(책임 전가하기, 아니, 책임 나누기)

글에서 다룬 “썩어지다”에 관한 정보를 발음이든, 실제 쓰임새든, 또는 연변말을 모으는 일에 관한 어떤 아이디어든 댓글로 알려 주시면, 이 글을 쓴 필자와 댓글을 쓴 이들 모두곧 연변말을 함께 아끼고 기록하는 동무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글에 달리는 댓글은 유난히 더 소중하고 더 기다려질 것 같다. 

(이 글은 Wechat 공중호 지행자(知行者)(ID: zhixingzhe512)에 2018년 8월 3일자에 실린 글을 옮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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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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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인상깊게 읽었습니다.
      연변에서 살아가는 조선족으로서 필자가 적으신 연변말의 미래 혹은 더 나아가서 중국에서 살아가는 우리 조선민족의 미래에 대한 우려를 다시금 상기시켜주는 글입니다..
      더욱히 요즘 국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소수민족교육개혁에 떠밀려(학교교재가 전부 중국말로 바뀌고, 대학입시시험에서 조선말시험 제외되는 등.) 우리민족의 언어와 입지가 지금의 만족처럼 될가봐 우려가 깊어지는 시점입니다.
      연변말이 력사의 수레바퀴에 짓눌려 사람들에게 잊혀지지 말았으면 하는 작은 욕심?을 필자께서 친히 실천에 옮기시는것에 대하여 심심한 경의를 표합니다!

  1. 지행자에서 아주 인상깊게 읽었던 작품입니다. 다시 읽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뜬금없지만 연변말중에 색깔이란 말은 사투리라고 할수 있는지? 그 출처가, 연변배우 고최인호씨가 모소품에서 원조로 사용했다는 얘기도 있고, 중국어 표현에서 따온거라는 말도 있습디다.

    1. 고맙습니다. 아다먹끼님의 현대 예술에 관한 글을 잘 읽었습니다.
      ‘색깔’이라는 말(형태)은 우리말에 원래 있는 말이며 기본적인 뜻(의미)은 ‘햇빛을 받았을 때 드러나는 특유의 빛’이고, 전성된 의미로는 ‘성향, 경향성’ 등을 나타냅니다. 예를 들어 ‘그는 나와 정치적 색깔이 맞지 않는다.’처럼 쓸 수 있습니다. 연변말에서 ‘여색을 즐기는 사람’의 뜻으로도 쓰이는데, 그 의미는 연변말만이 갖고 있는 의미이고 한어에서 왔다고 보는 게 온당한 것 같습니다. 따라서 연변말의 ‘색깔’은 형태적으로는 사투리가 아니나 의미적 사투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2. 밑에 연변식 사전으로 정리해 놓은 부분이 인상 깊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둘씩 모이다보면 우리의 연변말과 사투리도 잊혀지지 않고 기록되면서 표준화가 되지 않을가 싶습니다. 응원합니다!! 아… 그리고 워드 클라우드를 사용하여 데이터를 정리한 부분도 새롭습니다. 우리가 어릴때 음력설야회에서랑 들었던 노래가 막 스쳐지나가기도 하고 ㅋㅋ

    1. 네, 조선어 워드클라우드는 아마 처음이시지요? 빅데이터 시대가 오면서 사용자가 많은 언어는 빅데이터의 구축과 정보 추출 및 재생산되면서 더 생명력을 갖고, 사용자가 적고 기술 발전이 상대적으로 늦은 언어는 소멸의 시간이 더 단축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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