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골 마을, 아무 생각 없이 들과 밭에서 깔깔대며 뛰놀던 아이들은 자신들 배에서 들려오는 '꼬르륵'시계로 밥먹을 시간임을 알고,아이들은 총총거리며 집으로 뛰어간다. 어린 아이들의 하루 일과는 지칠때까지 뛰어 놀기다. 아이들은 큼직한 두꺼운 종이로 딱지를 딱딱하게 만들어 그 안에 작은 돌덩어리를 집어 넣는 꼼수를 부린다. 코물을 질질 흘리며 고사리 같은 손으로 손에 잘 잡히지도 않는 딱지로 힘껏 땅에 내리 친다. 힘껏 내려친 딱지가 넘어가면 연거푸 ‘야 좋다. 좋다’ 를 외치며 환호를 보낸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이 씨베'라고 말을 하며 아쉬움을 표현 한다. 나는 딱지 치기를 그리 잘하지 못했다. 그래서 어릴적엔 교과서를 많이 찢었다. 딱지를 다 잃은 날에는 울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손에는 온통 흙투성이었다. 그 손으로 자꾸 흘러내리는 코를 닦아 얼굴 한쪽 뺨은 흙으로 얼룩져있었다.
아이들은 찢어진 양말 한짝을 짤라 그 안에 두부 콩이나 강냉(옥수수)이를 넣고 바늘로 꿰메서 제기차기를 했다. 그 제기가 헐어 찢어지면 그 안에 먼지 가득했던 낟알(옥수수, 콩)은 다시 구워 먹거나 음식하는데 재 사용됐다. 제기나 딱지치기는 보통 2명에서 4명이서 놀았던 생각들을 하면 마음이 짠하면서 옛날에 함께 놀았던 친구들이 그립다. 그 친구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어쩌면 일찍 세상 사람이 아닌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할수만 있다면 만약 같은 하늘 아래 살아 있다면 나와 같은 나이로 잘 살고 있기를 빌고 또 빈다.
동네마다 꼭 짓궂은 아이들이 있다. 남자 아이들은 보통 두 세명씩 짝을 지어 다니면서 마음에 두는 여자 아이들을 괴롭혔다. 장성한 젊은 청년들이 하는 연애 방식은 아니지만 나름 7~8세 나이에 맞게 좋아 한다는 표현을 꼭 장난으로 표현을 했다. 녹슨 쇠에 붉은 빛 색은 마치 벌겋게 달군 것처럼 보였는데 짓궂은 남자 아이는 한 손에 장갑을 끼고 진짜 불에 달군 쇠마냥 ‘불이다! 불이다!’라고 외치며 놀고 있는 어린 여자 아이들 무리로 돌진하곤 했다. 여자아이들은 돌진하는 남자 아이를 보고 기겁하며 도망가며 운다.
남자 아이들은 그런 여자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깔깔 웃는다. 그리고 철없는 남자 아이들은 여자의 치마를 올리고 도망간다. 여자 아이들은 땅에 앉아 ‘엄마한테 이를 테야!’ 라고 하면서 엉엉 운다. 그 모습을 보면서 철부지 아이들은 또 웃는다. 벌레로 장난치기도 하고 그렇게 해가 저물도록 재밌게들 논다.
내가 살던 시골집 풍경은 선진국처럼 화려하거나 도시의 고층 빌딩처럼 멋지지 않다. 사람의 손으로 지은 볼품없는 흙집이었다. 지붕은 기와로 장식했고, 나무로 기둥과 집을 대충 지운 후 그 사이 흙으로 미장을 하여 집을 완성한다. 그리고 집집 마다 네모나게 생긴 굴뚝들이 박혀있다. 그 네모난 나무 굴뚝에서는 아침과 저녁이 되면 연기들이 모락모락 피어 오른다. 똑 같은 굴뚝이지만 풍기는 연기 냄새는 다르다. 좀 잘 사는 집은 좋은 나무를 쓴다. 그렇지 못한 집은 마른 풀이나 마른 담뱃대로 불을 지핀다.
그러다 보니 연기 색도 연기 냄새도 다르다. 좋은 나무로 불을 때는 집은 맑은 연기 냄새에 연한 푸른 색의 연기와 흰 연기가 피어 난다. 아이들은 재밌게 놀다가도 굴뚝에서 피어 오르는 연기를 보고 밥 먹을때임을 알고 언제 재밌게 놀았는지도 잊은채 집으로 각자 돌아간다. 놀음에 깊이 빠진 아이들은 저녁 밥 시간도 잊었다. 그럴때면 정신없이 놀고 있는 아이들을 부르는 형이나 누나들, 혹은 부모들의 “와서 밥 먹어!” 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우리 동네 집 구조는 심심할정도로 간단하게 생겼다. 부엌 그리고 잠 잘수 있는 침실 겸 거실이었다. 사생활은 거의 없이 모두 공유하고 살고 있었다. 씻을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사람들은 더욱 씻지 않았을 것 같다. 여름에는 동네 아줌마들은 큰 강에서 목욕을 했다. 여자 아이들은 엄마 따라 강에서 목욕을 하고 남자 아이들은 멀찌감치에서 수영을 했다. 몇몇 남자 아이들은 숲에 숨어서 아줌마들이 목욕하는 거 보면서 깔깔 웃어되며 놀렸다. 그리고 또래 여자 아이들이 목욕하는 거 보며 숨어서 돌을 던지거나 멀리서 놀리기도 했다. 남자아이들이 강둑으로 지나면서 놀리면 어린 여자 아이들은 부끄러워 하며 물속에서 나오지 않았다.
아줌마들은 서너명이 함께 얕은 물에 원으로 앉아 서로 때 밀어 주면서 수다 떨고 있었다. 강 바로 옆은 큰 강뚝이 곧 길이기때문에 옷을 홀라당 벗고 목욕할 수 없다. 하반신만 벗은채 위에는 그대로 입고 한 손으로 가려가면서 목욕하고 있었다. 철없는 아이들은 그런 모습을 즐겨 보곤했다. 그리고 동네마다 큰 저수지 하나쯤은 있었는데 어린 아이들은 얕은 쪽에서 놀고 형, 누나들은 깊은 중간에서 수영하면서 놀았다. 수영을 좀 하는 아이들은 물 깊이 잠수 하여 아이들을 괴롭혔다. 다리를 땡겨 물을 먹게 한다거나 빤스를 벗겨 놀려주기도 했다.
물을 먹고 우는 아이들 , 속옷 벗겨져 부끄러워서 물에서 못 나오는 누나들 모습을 보며 장난기 발동한 어린 아이들은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올레리꼴레리 빤쓰 잃어버렸대요'라며 놀려댄다. 여름에는 우리 동네에서 이런 모습을 흔하게 볼수 있었다. 동네 아이들은 각자 맡은 임무가 하나씩은 있었다. 물에서 첨벙거리며 미역을 감다가도 부모가 시킨 심부름이 뒤늦게 기억해 내곤 급히 허둥되며 집으로 뛰어가는 아이들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동네 형들과 누나들과 함께 도시락을 싸서 산에 나무하러 갈때면 재미있다. 제법 나이 먹었다고 하는 동네 애들 중 어떤 애는 스스로 ‘입담꾼'이 되어 이야기를 지어낸다. 한 두시간 걸어가면서 재밌는 얘기를 한다. 그리고 형들은 거짓말로 이야기를 지어낸다. ‘옛날 옛적엔 말이야’라고 운을 떼며 했던 얘기들 그땐 얼마나 재밌었는지 모른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름 형이라 아는 것 있다 생각하고 막 지어냈던 얘기들 유치하고, 웃겼지만 그때 철이 없던 당시엔 너무 재미 있었다.
나무하다 그림자를 통해 대충 시간을 계산하여 점심임을 알면 하나같이 땅에 앉아 얇은 나무가지를 꺾어 젓가락을 만들어 싸온 도시락을 푼다. 그리고 서로 싸온 도시락을 번갈아가며 구경해보지만 밥은 똑같다. 모두 옥수수를 절구에 찧어 만든 밥이다. 다르다면 반찬이 조금 다를뿐이다. 어떤 아이는 두부 반찬도 있지만 대부분 산에서 캔 나물로 기름 넣고 소금 넣어 대충 만든 반찬들이다. 서로 깔깔 웃어 대며 밥을 아주 맛있게 먹는다. 밥을 다 먹은 후 잠시 누워 쉰다. 부풀어 오른 배를 만지며 땅에 누워 올려다 본 하늘은 참 맑고 푸르다. 하나같이 말을 한다. “저 그름은 내꺼 저 구름은 니꺼” 이렇게 소유권을 내 세우며 서로 내꺼니, 니꺼니 하면서 말을 한다. 그리고 한참 올려다 보면 구름도 제각각 모양이 달라진다. 언제는 토끼처럼 생겼다 좀 있으면 강아지처럼 바뀌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그렇게 놀던 추억을 지금 떠오르면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그리움이 되살아난다.
한참 수다를 떨고 각자 자기 힘에 닿는 것 만큼 나무를 해서 등에 메고 또 한참 걸어 집으로 향한다. 그렇게 집에 내려오면 어느새 해는 저기 멀리 노을을 띄며 산을 넘어가고 있다. 나무 하러 산으로 오를 때는 해가 산에서 오르고 있었는데 돌아 올땐 산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재밌게 놀다가도 굴뚝에서 피어 오르는 연기를 보고 밥 먹을때임을 알고 /나무하다 그림자를 통해 대충 시간을 계산하여 점심임을 알면 /“저 구름은 내꺼 저 구름은 니꺼” .. 따뜻하고 왠지 모르게 마음이 뭉클해지는 또 단숨에 읽히는 재미난 글 잘 읽고 갑니다.
고마워요^^
아~ 방황님 정체가 급 궁금해 집니다. 하하. 강에서 수영하고, 마을에서 딱지치고 하는 등 놀이는 저랑 비슷한 경험과 시간대인거 같으나, 점심 도시락은 모두다 옥수수를 찧어 만든 밥이라는데서는 또 경험해보지 못한 부부을 얘기하는것 같고. 프로필 사진도 멋지고 ㅋㅋ 글 잘 읽고 갑니다.
읽어주셔서 고마워요^^
굴뚝 연기 색이 다르다, 라는 걸 의식해 본 적이 없군요.. 사색하게 만드는 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