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은 <사기>에서 항우를 오만하다고 했다.
항우는 류방과의 싸움에서 패배하여 병사 800여명을 이끌고 도망 가는 중에 추격을 당하여 28명이 남게 되자 이제 무슨 수를 써도 추격을 벗어날 수 없음을 안다. 그때 병사들에게 말한다.
내가 군사를 일으킨 이래 지금으로써 8년이 되였다. 그 동안 몸소 70여차례의 전투를 치렀고, 내 앞을 가로막은 자들은 모두 목을 베여 죽였다. 나의 공격을 받은 성들은 모두 항복하였고, 나는 지금까지 한번도 싸움에서 진 적이 없이 천하를 제패했다. 그러나 오늘 내가 졸지에 이곳에서 곤궁한 처지에 놓이게 되였다. 이것은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려는 것이지 내가 싸움을 잘하지 못해서 지은 죄가 아니다.
吾起兵至今八岁矣,身七十余战,所当者破,所击者服,未尝败北,逐霸有天下。然今卒困于此,此天之亡我,非战之罪也。
사마천은 항우가 오만하여 본인의 지혜를 믿고서 옛날의 법을 따르지 않고, 본인이 패왕의 업적을 이루었다고 자만하여 무력으로 천하를 다스리려 하다가 실패하였으나, 본인에게서 문제를 찾으려 하지 않고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련다는 황당한 말을 했다고 평가했다.
自矜功伐,奋其私智而不师古,谓霸王之业,欲以力征经营天下,五年卒亡其国,身死东城,上不觉寤而不自责,过矣。乃引“天亡我,非用兵之罪也”,岂不谬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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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이 만족스럽지 않아 자꾸 화가 스멀스멀 치밀어 오르길래 꼰대인가, 잘난척인가, 어찌된 영문인가 반성하던 차에 이 대목을 읽으면서 뜨끔했다. 오만일지도 모르겠구나.
강신주 작가는 <강신주의 감정수업>에서 ‘오만(superbia)이란 자신에 대한 사랑 때문에 자신을 정당한 것 이상으로 느끼는 것’이라는 스피노자의 말을 인용했다.
오만이라는 감정은 자신이 어떤 것에 대해 항상 전지전능하다는 자신감에서 싹트는 법이다. 그래서 오만은 항상 비극으로 끝나기 마련이다.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것이 자신의 전지전능을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오만한 사람을 파멸로 이끌기 때문이다.
자동차를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동차 사고로 죽기 쉽고, 암벽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추락하기 쉽다. 이런 비극적인 결과가 발생할 때, 우리는 절로 탄식이 나온다. “도대체 자동차는 무엇이며, 자동차를 안다고 자임하던 나는 또 누구인가” 사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 아닌가. 우리를 배신하는 사람은 사실 우리가 가장 잘 안다고 확신하는 사람일 경우가 많다.
항우도 본인이 전쟁터에서는 전지전능하다고 자신했을 것이다. 그 전지전능한 전쟁터에서 패배할 것이라고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그러면 무엇때문에 가장 자신 있어하는 분야에서 쓴맛을 보게 될가.
자동차도 암벽도 그리고 어떤 사람에 대해서도 다른 사람보다 내가 더 잘 알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가 자동차를, 암벽을, 그리고 어떤 사람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사랑을 하면 우리는 그 대상을 알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사랑한다’는 말의 동의어는 ‘알려고 한다’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제 모든 것을 알았다는 오만에 빠지는 순간, 그래서 더 이상 알 것이 없다는 오만이 생기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그것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한때는 사랑받았던 그것이 이제 우리에게 복수를 하는 것이다. “네가 정말 나를 안다고 생각하니?”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오만 때문에 우리는 순간순간 변하는 자동차의 상태를 민감하게 읽으려고 노력하지 않고, 암벽의 상태를 제대로 점검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또 애인의 상태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복수를 당할 수밖에.
전쟁터에서는 백전백승이라는 오만때문에 변화되는 상황을 민감하게 파악하려고 노력하지 않았고, 결국 실력이 나날이 느는 류방과 류방에게로 향하는 민심을 읽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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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으로 인해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할 때 본인의 능력과 장점을 확대하기 쉽상이고, 세계에 대한 인지가 부족할 때 쉽게 편견을 가지고 심지어 그 편견을 진리로 여기게 된다. 더우기 본인이 맞다고 생각하니 반성을 덜하게 되고 허망된 자신감에 들뜨게 된단다. 그리고 묘하게도 허황한 자신감으로도 순조롭게 생활할 수 있다고 한다.
누군가 거슬릴 땐 내 능력을 과장하고 주변사람들에게 편견을 가졌기때문일지도 모른다. 내가 잘났다는 허상에 들떠 있으면 기분이 좋으니까 누군가의 실수나 잘못에 확대경을 들이댈지도 모른다.
특히 실패자와 피해자에 대해 오만의 태도를 취하기 쉬운데, 실패자가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다든가, 피해자가 충분히 조심하지 않았다든가 지적을 하게 된다고 한다. 오만은 동정심과 리해력을 파괴한다. 본인의 성취는 노력으로만 얻어진듯 하여, 다른 사람의 도움이나 시대 흐름, 좋은 운과 같은 다른 요소들은 가볍게 보거나 무시하게 된다.
우물안 개구리처럼 오만의 세상에서 잘난척 살 수도 있겠지만, 복수의 쓴 맛을 볼 수 있으므로 오만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그 방법으로 ‘내가 틀릴 수도 있겠구나’ 라고 스스로 귀띰하는 것이다.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지적하기에 앞서, 혹시 다른 뭔가를 고려해서 저런 방식을 취하는 것은 아닌지, 내가 생각지 못한 뭔가가 있는게 아닌지 한번 더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러면 더 넓은 세상이 열린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에 대해 너무 각박하게 굴 필요는 없다. 사마천이 항우를 오만하다고 하면서도 <사기> 본기에 올리지 않았던가. 사마천이 보기에 항우의 업적이 여느 황제 못지 않았으니 황제들만 오르는 본기에 올렸을 것이다. 그러니 좀 오만하면 어때. 오만했으니 그만큼의 패업을 이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결국 이렇게 자아합리화를 하려는걸 보니, 오만은 고질병인듯하다. 고치기 어렵다.
아니지, ‘고치기 어렵다’는 내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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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오만한 사람과 슬기롭게 소통하는 방법으로 두가지 화법을 제안한다.
“就如您所说”와 같이 상대방과 대항하려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말투로 시작하여, 기본적인 상황이나 의견을 정리하고나서
“내가 보기에는”과 같이 본인 의견을 주장하는 언어보다 “能不能”“好不好”와 같이 제안하는 말투를 사용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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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사기>
강신주 <강신주의 감정수업>
和菜头 《成年人修炼手册》-100 傲慢:认真认识一下什么是傲慢 / 怎样跟傲慢的人沟通协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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