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도 없이 일하는 아저씨가 불평을 해왔다.
– 어째 내한테 각별히 요구 높은거 같다
= 니한테 서적 쓰는게다
– 그런가…
= 그럴수도 있네라. 나이가 들면 틀이 짜여져서 틀을 벗어나는 지식들을 불편해한다. 니 하는 일이 전문 분야라서 로반한테는 익숙하지 않으니 저도 모르게 거부한단말이다. 니는 대충 얼버무릴 성격이 아니라서 꼼꼼하게 정확하게 전달하려 하니까 그 사람 보기에 너무 어렵지. 사실 그 분은 사업에 욕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잘나보이려고 일을 벌인건데, 잘난척할수가 없으니 얼마나 불편하개
– 하하하하하 맞는 말인거 같다. 그래서 M총이랑 내가 말이 잘 통했구나. 그래서 M총이 견디지 못하고 떠났구나. M총한테 전화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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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는 아마도 M총과 즐거운 대화를 나눴나보다. 한참 후 다시 얘기한다.
– 너는 어찌 그리 잘 아니? 무섭다야
= M총도 동의하디?
이런저런 얘기 나누다가 여느때와 같이 또 아이한테서 마음에 안드는 구석을 집어내고 싶은 아저씨.
= 너는 사실 아이한테 불만인게 아니라 어릴적 니 자신한테 불만이다
– 헐, 니 정말 무섭다. 사실은 내한테 불만이다. 지금 상황이 맘에 안들고, 이 상황을 만든게 30년 전 내가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단말이다
= 아이와의 관계는 나 자신과의 관계를 반영한다고 하더라.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자꾸 애가 맘에 안든단말이다. 그렇다고 어른이 해결못한 문제를 애가 지금 당장 해결해줄수도 없고…
– 갠데 갸가 나를 닮았단말이다. 딱 그때 나를 보는 같은게 답답해서
= 니랑 다르다. 근데 보고 싶은 것만 보이고 듣고 싶은 것만 들려서 그렇다. 확증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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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가 나를 무섭다고 했다. 책을 읽는 녀자들이 무섭긴 하지.
남성들이 세운 규칙을 따라야 하는 세상에서 덜 착취받고 더 존엄있게 살라니 어쩌겠어, 아등바등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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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수의 산문집 <절대강자>에 '무서븐 울 마누라' 라는 글이 있다.
키우는 진돗개가 마을에 내려가 닭 20마리를 물어 죽였다. 아내가 병원에 있을 때였다.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말해 주었다. 그러자 울 싸모님 왈, 닭이 개 물어 죽였다면 몰라도 개가 닭 물어 죽인건 사건도 아니우. 닭값 물어주고 개 묶어두세요.
참. 이상도 하지. 내가 아무리 찾아도 눈에 뜨이지 않던 물건들이, 마누라만 출동하면 천연덕스럽게 모습을 드러낸다. 제기럴.
장날이 되면 마누라하고 장보러 다니는 일이 재미있다. 그런데 시골할머니들이 바구니에 담아서 팔고 있는 강아지들, 으헝, 너무 귀여워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하지만 마누라의 가시 돋친 한마디. 개똥 즐거운 마음으로 치울 자신 없으면 곧장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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