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할매

십년의 타향살이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왔을때 가장 기뻐한 사람은 우리 할머니였다. 우리 할머니는 슬하에 아들 넷, 딸 둘을 두었는데 다들 먹고살기가 바빠서 외국으로 떠나다 보니 막무가내로 양로원으로 모셔가게 되였다.  그러다보니 이제나 저제나 자식들이 언제면 보러 오나 기다리는 것이 할머니의 일상이 되여 버렸다. 내가 고향에 가기 전까지는 일년에 한두번 뵈러 가는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생활비는 누구보다도 넉넉히 지니시고 또 치장을 좋아하시다 보니 옷도 남들보다 많았지만 항상 시샘이 많아서 주위에 할머니들이랑 잘 싸우셨다고 들었다.

늙으면 애가 된다더니 늙은이들만 모여사는 곳이여서 그런지 애들처럼 서로 자랑하고 비교하고 시샘하는 일들이 수두룩했다. 자식이 저그만치 여섯이나 되는데 너도나도 외국으로 떠나 버렸고 또 한번씩 돌아오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닌지라 할머니는 그게 늘 서운하신 것 같았다.

그럼에도 할머니는 항상 자식들한테 부담을 줄가 봐, 또 자식들이 부모를 직접 모시지 못한다는 죄책감을 안고 살가 봐 통화할때마다 양로원에서 사는 게 편하다고 말씀하시군 했다. 친구들이 많아서 외롭지 않고 고부갈등을 겪을 일도 없지, 얼마나 좋냐고 하시면서도 내가 일주일에 한번씩 갈때마다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내가 할머니 뵈러 갈 때마다 다른 할머니들 앞에서 얼마나 자랑하시는지 막 민망할 정도였다.

어린아이처럼 일요일아침부터 문이 보이는 자리에 앉아서 나를 기다리시던 할머니, 어쩌다 그번 주일에 일이 생겨서 못 가면 하루종일 문앞에 앉아 움직일념을 하지 않는다고 주위의 할머니들이 귀띔해 주는 바람에 아무리 바쁘고 일이 많아도 일요일 점심에는 꼭 할머니가 반기는 송편과 과일들을 사가지고 양로원으로 찾아갔다. 안 가면 해질 때까지 기다리시면서도 정작 가게 되면 바쁜데 뭐하러 또 왔나면서 마음에도 없는 말들을 뱉으면서 나무라시군 했다.

명절이거나 며칠씩 쉬는 날이면 난 할머니를 집에 모셔와서 함께 지내기도 했다. 내가 음식을 하고 방청소를 하면 할머니는 내 뒤를 따라다니면서 기웃거리시군 하였다. 할머니 눈엔 내가 그냥 코흘리개 어린애로 보이는가 보다. 가끔 괜히 잔소리 같이 들려서 참다 못해 “어련히 잘하지 않을라구요.”라며 괜히 걱정한다는 표정을 지으면 “그게 그렇게 하는 게 아닌데…” 하시며 서운하다는 듯 자리로 돌아가 텔레비죤을 보는 척 하셨다. 내가 뭐하나 궁금해하는 것이 뻔하건만 토라진 티가 역력한 얼굴로 텔레비죤에만 집중하시는 척하는 것이 귀여우셔서 나는 항상 웃음이 나오는 걸 겨우 참고는 했다.

난 바보같이 할머니께서 내가 만들어준 음식을 맛 있게 드시고 편안한 방에서 주무시면 그것이 효도인 줄로 착각했던 것이다.  그냥 나와 함께 무언가를 하는것이 할머니의 소원이였겠는데 그걸 미처 눈치 채지 못한 채 할머니를 그냥 앉아 계시라고만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우연히 인터넷을 통해 한편의 글을 보게 되였다. 어느 대학교수님 집에 학생들이 놀러 갔는데 저녁을 먹고 상을 물리니 교수님의 80세 로모가 설겆이를 하더란다. 설겆이가 끝나 로모가 다시 방으로 들어가자 교수님께서 로모가 넣은 그릇들을 꺼내서 다시 하나하나 씻기 시작했다. 로모가 나이 들어 자신이 쓸모 없는 사람이 된 것 같다는 우울한 생각을 안하게 하시려는 교수님의 배려였다.

어머니의 눈에는 자식은 60살이던 70살이던 그냥 자식일 뿐이다. 설겆이를 하는 일이라도 자식에게 쓸모가 있는 부모가 되고 싶은 마음을 헤아려 준 그 교수님이 새삼 대단해 보였다. 어리석은 자신의 판단으로 내딴에 효도라고 한 짓이 오히려 할머니에게 설음이 될 수도 있었다는 걸 그 순간 깨우치게 되였다. 고기를 사올 때마다 “요즘은 돼지고기 한근에 얼마냐? 소고기는 값이 더 올랐더냐?” 라고 물어 보시면 예전 같으면 “그걸 알아서 뭐하시게요? 할머니 이제 와서 살림살이 하시려고요?” 라며 퉁명스레 뱉었을 건데 그 글을 읽고 난 후에는 할머니 물음에 꼬박꼬박 대답을 해주는 인내심까지 생긴 게 스스러도 대견스러웠다. 그러면 할머니는 말문이 터져서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은 지난 날 고생했던 옛이야기를 해주시는데 그때마다 리액션까지 해가며 할머니 말씀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할머니에겐 자식들 키우면서 고생하시던 이야기가 유일하게 한집 식구 다 모여서 살던 시절이였으니 추억이고 그림움이였으리라… 품안에 끼고 있을 때나 자식이지 가정을 이루고 떠나가면 부모들에겐 그저 추억만이 재산이 되여 남는 것 같다.

그러던 할머니가 몸이 편찮으셔서 병원에 입원하셨다가 우리 집에서 한달 누워 계시게 되였다. “내가 죽어야 되는데… 살아서 뭐하나…빨리 죽어야지…” 할머니는 아마도 자식도 아니 손군한테 대소변 수발을 들게 하는 게 마음에 걸리셨나 보다.

물론 자식들이 고생하며 번 돈을 치료비에 썼다는 게 미안해서 한 말씀일 수도 있고 또 손녀인 나한테까지 부담을 주는 것 같아서 한 말씀일 수도 있었으나 병원에 두주일 입원해서 계시는 동안에도 그렇고 퇴원한 뒤 우리 집에서도 그렇고 자꾸 횡설수설 하시는 것 같아 나도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하여 하루는 할머니의 그 넋두리가 또 시작되자 대뜸 받아쳤다.

“시내에 빨리 죽는 약 파는 곳이 있다던데 사오람까?”

짐짓 정색해서 하는 내 말에 할머니는 잠간 침묵을 지키더니 나지막하게 중얼거리셨다.

“사와서 내 먹구 죽음 니 감옥 간다.”

진짜 사다줄가 봐 무서운 듯 내 눈치를 슬쩍 보는 할머니가 너무 귀여워서 그만 “풉”하고 웃어 버렸다. 옛말에 세상에서 제일 큰 거짓말중 하나가 늙은이가 죽고 싶다는 말이라더니 우리 할머니도 례외가 아닌 듯 했다. 그뒤로 할머니는 다시는 그런 말씀을 하지 않았다.

아무 약이나 알지도 못하면서 드시겠다고 생떼를 부리는 것이 아마도 로인네들의 통병인가 보다. 누군가가 “난 이 약을 먹으니 저녁에 잠이 잘 오더라.” 하시면 할머니도 덩달아 사다가 드셨고 또 누군가 “난 이 약을 먹으니 가슴이 답답하지 않더라” 하면 또 그 약을 사다가 쟁여 놓으시곤 하셨다. 딱 봐도 할머니의 증상에 맞는 약이 아니건만 설명서도 알아도 못 보시면서 약병이 한박스는 좋이 되게 사 놓으셨다.

거기다 자기절로 기침약, 가래약, 목이 마르는 약… 이렇게 어디에 쓰는 약인지 손수 적어 놓기까지 했다. 어떤약은 잘못 드시면 큰일 날 약이건만 당신이 의사라도 된 듯 마음대로 처방해서 드셨다.  그래서 난 정기적으로 약방에 가서 칼슘이나 비타민 영양제를 사다가 가만히 바꿔치기 해 놓아야 했다. 그러면 또 그 약을 드시고 안 아프시단다. 조금 유치한 장난이였음에도 할머니가 드시고 안 아프시다니 그나마 다행이였다.

나의 계몽선생님이셨던 할머니가 어느새 이렇게 나의 얼렁수에 넘어가는 어린아이가 되여 버렸는지 가끔은 서글퍼지기도 했다. 우리 할머니 년세 되시는 분들중 할머니는 그나마 학력이 높은 축에 속했다. 녀자아이에게 공부를 안 시키는 세월이였지만 할머니 친정 쪽 형편이 꽤 괜찮으셨는지 당시 일본사람들이 꾸리는 학교에서 중학교까지 다녔다고 했다. 그래서 난 어릴 때 일본어로 된 동요도 배웠고 셈을 세는 것도 일본어로 배웠다. 물론 지금은 새까맣게 잊어 먹었지만 말이다.

공부를 하셨던 분인지라 할머니는 책읽기를 무척 즐기셨다. 소학교때 숨박꼭질 하다가 우연히 사랑채에서 상중하로 된 <서유기> 책을 발견했다. 난 그 책이 삼촌이나 우리 아버지가 보던 책인 줄 알았는데 할머니가 읽던 거란 말에 깜짝 놀랐다. 그다지 책읽기를 즐기지 않던 내가 할머니가 이렇게 두터운 책을 다 봤다는데 내가 못보겠냐는 오기로 방학 내내 그걸 다 읽었던 기억이 난다.

책을 좋아하셔서 할머니는 민간이야기라든지 잡지 같은 걸 얻어 오셔서 읽고는 저녁에 자기전에 불을 끈 캄캄한 어둠 속에서 이야기를 해주시군 했다. 예전엔 우리말로 된 책이 적어서 한번 했던 이야기를 하고 또 해서 거의 외울 정도였는데 그 때는 왜 그렇게 재미났던지… 또 할머니가 나름 대로 추임새를 넣고 살과 피를 붙여서 과장되게 부풀려 이야기하다 보니 같은 내용인데 번마다 새로운 이야기로 구수하게 들렸다.

엉터리 옛말로 어린 손녀를 잠재우던 우리 할매, 책을 좋아하셔서 단지를 깨먹어도 가만 놔두다가 책을 한장이라도 찢으면 부지깽이 들고 혼내던 우리 할매가, 또 내가 무얼 하던 졸졸 쫓아다니시며 잔소리하던 꼬부랑 할매, 내가  하는 거짓말에 속아  넘어간줄도  모르고  좋아하시던 우리 할매가 너무 보고 싶다. 몇년만 더 살아 계셨더라면, 고향에 돌아와 자리 잡느라 헤매면서 만날 뭐가 그리 뭐가 그리 바빠서 할머니 생전에 더 잘해 드리지 못했는지 하는 유감을 많이 남기진 않았을텐데, 이젠 그냥 기억 속의 모습을 상상하며 그리움을 달랜다.

어린아이처럼 맨날 이런저런 거짓말을  해서 구슬려야만  했던  할머니가  돌아가신지도  만 5년이 됐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외롭게 지내시다 돌아가신 할머니, 저세상에서 할아버지와 상봉하셨는지 궁금하다. 술 좋아하시는 할아버지 때문에 술공장이 망해버려라, 불이나 나라 하더니 이젠 할아버지와 다투지 않고 사이좋게 지내시는지… 

천국에서도 어린천사들에게 말도 안되는 엉터리옛말을 해주시는지…

생전에 나랑 제일 가까이 지내다가 정작 돌아가시고 꿈에 한번도 안 나타 나시는 매정한 할매… 내가 보고싶어 하는 줄 알면서도 울면서 매달릴가봐 그러시는 걸가? 눈물 많은 것도 할매 닮은건데…

엉터리 거짓말쟁이 할머니를 닮은 손녀가 이렇게 보고 싶어하는데 한번만 꿈에 나와서 옛말 하나 해주시고 가셨으면… 할머니, 너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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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세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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