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3 중국의 남과 북이 바뀌는 시간

1 코앞에 진령을 앞두고: 광안(广安)에서 한중(汉中)까지 (2017년 7월 4일, 5일)

나의 마지막 자전거 려행의 둘째 날, 광안(广安)을 떠나 150키로 남짓이 달려 남충(南充)시에 도착을 했다. 낮에는 땡볕에 허덕이다 오후가 되어 소낙비를 만나 좀 고생을 했다.

스산하게 내리는 비를 맞받으며 어느 산중턱에 있는 마을을 지나다 마을입구에 만들어진 계획출산 벽화가 눈에 띄였다. 색바랜 그 벽화는 10년은 넘은 듯했다. 어릴 적에 많이 보아오던 그런 벽화였다. 때는 2017년, 출산정책이 많이 바뀌던 시기다. 그 시기에 2000년대 것으로 보이는 벽화가 마을 입구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었으니 풍자적이라고나 할까? 아이러니하다.

[2020년 현재, 아직 새 교과서를 채택하지 않은 운남에서 지리를 가르치고 있다. 2004년에 출판된 교과서를 갖고 수업을 하려고 보니 현실과 괴리감이 많은 내용들이 있다. 중국의 인구정책, 인터넷 쇼핑과 전자지도와 관련된 내용들이 대표적이다. 몇 십년간 지속되어온 계획출산의 평가는 력사에 맡겨보자.]

그날 밤에는 체력도 바닥나고 해서 쉬다가 가려고 황량한 국도 어디인가에서 자전거를 세웠더니 우글우글 모기떼가 덮쳐 들었다. 모기약을 뿌리기도 전에 온몸이 근질거렸다. 할수없이 다시 자전거에 올라타고 미친듯이 페달을 밟아대야 했다. 모기의 “도움”으로 그날 계획한 목적지에 도착을 했다.

[당시 취침하기 전 올렸던 위챗 모멘트]

셋째 날에는 남충에서 출발해 한중(汉中)으로 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주구장창 내리는 비에 심신이 지쳐 그 날 계획된 로정의 중간 즈음에 위치한 파중(巴中)시에서부터는 뻐스를 타고 한중까지 갔다. 자기 힘으로 페달을 힘차게 밟아 나아가는 게 제일 좋겠지만 그 당시에는 마음이 너무 많이 지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튿날 다시 진령에 오르려고 마음먹었다.

[당시 호텔에서 휴식하며 올렸던 위챗 모멘트]

2 상청천(上青天)보다 어려운 진령과의 재회 (2017년 7월 6일)

진령-회하 일선, 중국 지리에서 제일 중요한 분계선 중의 하나다. 중학교 때 배운 지리 수업으로 누구나 다 익숙히 알고 있는 중국 남방과 북방의 분계선이다. 1월 0℃ 등온선, 년간 800미리 등강수량선이기도 하다.

특히 진령은 그 험준한 산세로 남북을 갈라 놓은 터라, 진령 이남과 이북은 예로부터 많은 문화적 차이를 보여왔다. 리태백의 그 유명한 <촉도난(蜀道难)>도 그가 사천으로 가는 길에 진령을 지나며 쓴 걸로 전해진다.

[진령의 뭇 산봉우리들]

자전거 려행의 네번째 날이 다가왔다. 짐을 정리하고 식사를 마쳤다. 진령과 다시 마주할 시간이다. 한중은 진령의 바로 남쪽에 위치한 한수(汉水)를 품고 지어진 계곡의 도시다. 떠날 차비를 마치고 멀리 북쪽으로 진령을 바라보았다. 3년 전 진령을 지날 때의 무서웠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무서워서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3년 전의 여름 북경에서 운남으로 가며 지났던 진령 산속에서의 일들은 무척이나 힘들고 무서웠던 기억이었다. 게다가 또 전날 있었던 뻐스의 달콤함에도 빠져 있었다. 결국 난 다시 자전거를 타고 뻐스역에 가서 서안으로 향하는 뻐스표를 끊고 전날처럼 뻐스에 올라탔다.

뻐스는 곧게 뻗은 고속도로를 타고 수많은 터널을 지나며 서안으로 달려갔다. 창밖의 산 속 풍경을 보면서 수시로 핸드폰을 꺼내 위치를 살펴봤다. 뻐스가 진령 깊숙한 곳의 판방자진(板房子镇) 부근을 지날 때 난 무슨 생각을 했었던가?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3년 전의 잊을 수 없는 기억에 사로잡혔을 것이다.

3 진령, 강렬했던 첫 만남 (2014년7월)

이 시리즈의 프롤로그(Vol.1) 편에서 말했다싶이 지금까지 세차례의 장거리 자전거 려행을 했었다. 두번째 려행으로 2014년 대학 졸업식을 앞두고 6월17일에 난 북경에서 운남으로 가는 자전거에 올라탔다. 열흘의 시간을 거쳐 서안에 도착했다. 그리고 대학 졸업식에 참가하려고 자전거랑 짐들을 모두 서안에 남기고 6월 30일에 기차 타고 다시 북경으로 갔다. 2014년 7월 1일 오전, 졸업식을 마치고 곧바로 다시 서안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튿날 7월 2일 서안을 떠나 진령과 처음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번화한 서안 시내를 빠져나왔을 때 멀리 진령이 보였다. 동서 량쪽으로 널리 뻗은 산맥은 그 끝을 짐작하기 힘들었다. 그저 자연이 만들어낸 거대한 장벽처럼 보였다. 그리고 한시간 남짓이 달렸을까? 진령이 점점 더 가까워 오면서 난 수차례나 온몸을 관통하는 전률을 느꼈다. 책으로 익숙히 알고 있었던 진령, 실제로 그렇게 웅장할 줄은 몰랐다. 굳이 비유를 해보자면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그 거대한 얼음장벽 같은 느낌이다. 물론 눈앞의 진령은 그 얼음장벽보다 더 두텁고 더 높고 더 푸르고 또 위압감이 느껴지는 산맥이었다.

[HBO의 <왕좌의 게임>에 등장하는 얼음의 장벽]

산길을 올라가기 전, 편의점에서 음료도 충분히 사뒀다. 지도로 볼 때 산속엔 인적이 드문 듯했다. 그리고 무작정 길에 올라섰다. 판방자진까지 남은 거리 80키로 정도 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첩첩산중이라 많이 힘든 로정일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힘들 줄은 몰랐다.

산에 들어선 초반에는 체력도 남아있고 해서 꽤 순조로운 출발이었다. 올리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고 그나마 평탄한 길도 있었다. 물론 평지에서 산으로 오르는 로정이라 올리막이 훨씬 많았다. 처음에는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그러다 힘이 빠지면 자전거를 끌로 도보로 한참을 나가기도 했었다.

진령 깊숙한 곳으로 들어갈수록 인적이 드물어졌다. 처음에는 그나마 가끔 오토바이가 지나갔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핸드폰 신호도 점점 사그라지더니 나중에는 2G 신호도 자주 끊겼다.

그렇게 혼자 산 속에서 싱갱이질 하다가 밤이 저물었다. 물론 음식점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다행히 이런 상황을 대비해 마련해둔 비상식량이 있어 그나마 허기를 때울 수 있었다. 음료수는 바닥이 났고 가는 길 중간중간에 산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이 맑은지라 그대로 마셨다. 혹시 기생충이 있으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을 했지만 먼저 살고봐야 하지 않겠는가.

언제나 그랬듯이 해가 지고 밤이 오면 몸상태가 좋아진다. “식사”도 마쳤겠다 온몸을 태우며 진도를 뺐다. 산 속의 밤은 빨리도 찾아오고 또 칠흑 같이 어두웠다. 그나마 LED 손전등이 앞길을 비춰준다.

목이 타오르듯 말라왔다. 하지만 몸상태가 딱 좋은 상황에서 멈출 수는 없었다. 멈춘다고 해도 언제 어디서 다시 샘물을 만날지 모르는 일이다. 시간만 랑비하기 딱 좋다. 그래서 그냥 목마름을 견디며 판방자진까지 버틸 수 있을까 생각하며 나아가던 중 멀지 않은 길목에서 불빛을 발견했다. 나에겐 희망의 빛줄기였다.

정신없이 달려가 보니 아주 허름한 상점이었다. 국도를 달리다 보면 이런 상점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국도로 화물을 운송하는 운전기사들을 상대로 이러저러한 물건을 파는 것이다. 집앞 길가에 상을 펴고 한집 식구가 늦은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상점으로 들어가 음료수 세병을 샀다. 선 자리에서 한 병을 바로 제끼고 나머지 두병은 자전거에 안치했다. 모자랄 것 같아서 한 병 더 샀다. 그리고 바로 서둘러 출발했다. 떠나기 전 시간을 확인한 기억으로는 8시30분 정도다.

그리고 1시간 정도를 더 달렸을까? 기진맥진. 더 이상 자전거 타기에는 체력이 바닥났다. 하긴, 서안에서 출발해 산밑까지 60여키로를 달렸고 산속에서 또 60여키로를 헤맸으니 체력이 바닥날 만도 하다.

자전거에서 내렸다. 판방자진까지 아직 20키로. 아예 아무도 없는, 화물차도 보이지 않는 그런 깜깜한 산 속에서 혼자 피곤한 몸과 자전거를 이끌고 보이지도 않는 종착지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몸이 너무 지쳐서일까? 머리속에서 자꾸 섬뜩하고 무서운 상상을 하게 된다. 떨쳐내려고 해봐도 머리속에서 펼쳐지는 무서운 상상들을 물리칠 수가 없었다. 상상을 바꿔 보려고 애썼다. 처음엔 행복한 상상을 해봤다. 소용없다. 억지로 떠올려봤던 이러저러한 행복한 화면들이 곧바로 섬뜩한 화면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좀 우습지만 야한 생각도 해봤다. 역시… 소용없었다.

그러다 난 그 무서운 상상들의 “고문”을 이기지 못해 짐짝위에 모셔두었던 식칼을 손에 쥐었다. 뭐 소용없는 건 스스로도 잘 안다만 그나마 아주아주 조금이나마 마음의 안정을 되찾을 수 있다면 좋지 않겠는가? 혼자서 외롭게 칠흑을 파헤쳐 나갈 때 인간의 마음은 고도로 예민하고 취약한가 보다.

자전거 려행 중에 밤길을 달리다 보면 무서운 상상을 할 때가 종종 있다. 특히 인적이 드물고 화물차마저도 안 다니는 그런 길을 달릴 때 더욱 그러하다.

어느 한 번은 밤길을 달리다 가로수 하단에 칠해 놓은 하얀 석회에 연거퍼 놀란 적이 있다. LED 손전등에 비친 그 하얀 석회가 발린 이쪽 가로수는 소복 입은 처녀 귀신 같았고 저쪽 가로수는 같이 손잡고 길옆에 떡하니 서있는 흰색의 엄마랑 흰색의 아이같았다.

겁을 주는 건 가로수 뿐만이 아니다. 어느 한 번은 제 멋에 겁을 먹은 적이 있다. 태항(太行)산맥을 넘어 산서성 진중(晋中)으로 향하는 밤길이었다. 하루종일 오르막 길을 오르다 갑자기 길이 평탄해지더니 나중에는 페달을 밟지 않아도 속도가 제법 올랐다. 상식적으로는 내리막 길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자전거 위에서 살펴봤을 땐 아무리 봐도 내리막 길이 아니었다. 적어도 그정도로 속도가 붙을만큼의 내리막은 아니었다.

그러다 무서운 상상이 들었다. 글로 묘사해보자면, 자전거 뒤에서 입이 귀까지 째지고 피가 흥건히 묻은 송곳니 몇십개는 달린 눈이 반주먹만한 흰색 소복차림의 귀신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섬뜩하게 웃으며 내 짐짝을 쥐고 광란의 발놀림으로 나를 앞으로 밀고 나가는 그러한 상상이었다. 제멋에 소름이 돋는 와중에 길가에 있는 페가의 어두컴컴한 창문을 보며 또 소름에 소름을 거듭했다. 그 무서운 상상을 떨쳐내려고 페달을 밟아가며 속도에 속도를 더하다 안되겠다 싶어서 몇번이고 용기내 자전거를 멈추고 내려와 길을 살펴봤다. 아무리 봐도 속도가 날만한 내리막길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여러번 용기내 뒤를 돌아봤다. 물론 내가 지나왔던 어두움만 보였다.

다시 한밤중의 진령 산속으로 돌아와 보자. 왼손에 칼을 잡고 온몸의 소름을 달래보며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우연히 하늘을 바라봤다. 또 소름이 밀려왔다. 물론 그건 다른 의미의 소름이었다. 어릴적 농촌에서 살면서 맑디맑은 밤하늘들을 많이 봤었다. 하지만 진령의 그 깊숙한 산속에서 보았던 그러한 밤하늘은 처음이었다. 해발이 높아서일까? 아니면 맑은 공기때문일까? 듣도보도 못했던 별천지 그 자체였다. 그 밤하늘을 바라보며 잠시나마 무서운 생각을 잠재울 수 있었다. 그 밤이 지난뒤 다시는 그런 하늘을 볼 수가 없었다.

려행은 계속됐다. 자전거에 반쯤 의지한 채 밤길을 재촉한다. 아직 15키로 남았다… 아직 10키로 남았다. 수십번이고 길옆에 잠자리를 잡을까 고민을 했다. 산속이라 길옆에는 텐트를 칠만한 자리는 없었다. 또 더욱이 텐트 칠 힘도 없었다. 그냥 빨리 쉬고 싶었을 뿐이다. 날씨도 춥지 않은데… 그저 너무 딱딱하진 않은 풀밭에 누워 잠을 청하고 싶다. 마지막 5키로 남았을 때까지 곱씹어 한 생각이었다. 생각만 했을뿐 행동으로 옮기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 때 만약 그대로 잠을 청했더라면 산짐승이라도 만나지 않았을까? 산짐승이 없었더라도 새벽의 찬공기에 깼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산속에서 쓸쓸히 해가 뜨기를 기다렸겠지.

남은 로정 5키로가 되었을 때는 마음을 굳게 먹고 어찌됐든 반팡자까지 꼭 가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5키로면 도보로 1시간. 심야의 12시반 정도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했다. 반팡자에 도착하면 뜨끈시원하게 샤워하고 콜라를 마시며 이것저것 정리하다가 쉴 작정이었다. 그때까지 반팡자에서의 조우(遭遇)는 생각지도 못한채 말이다.

[위성지도: 진령, 서안, 한중 그리고 판방자진]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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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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