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온 뒤 참 많은 곳을 다녔다. 나고 자란 자그마한 연변보다 한국의 구석구석에 대해 아는 것이 더 많다고 할 정도이다. 그렇게 동네방네 다니면서 얻은 것은 한결 여유롭고 안정된 삶의 태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감정들이 세밀해졌다. 적절한 나이에 적절한 곳에 왔기 때문에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의 조화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나는 유홍준선생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를 애독했다. 그러나 나의 견문이 좁은 탓에 그런 느낌의 답사기는 아무래도 조만간 나오기 어려울 것 같다. 그저 드라이브에만 사진들을 묵혀두기 아까워 한 편씩 가볍게 써볼까 한다.  

시간순은 아니지만 나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던 곳들부터 꺼내본다.


첫째 날

6시 동이 트기 전에 서울에서 출발했다. 이른 시각이라고 생각했으나 길에는 이미 차들이 즐비하여 있었다. 네 시간 반 가까이 달려 10시 30분 즈음에 내변산탐방지원센터에 도착하였다. 안내원의 말에 따르면 직소폭포까지 왕복 2시간이 걸린다고 하였다. 바로 정비하고 직소폭포로 출발하였다. 직소 폭포로 가는 등산로 입구부터 고요한 분위기가 가득하였다. 속세를 떠난 음유시인이 밥을 짓는 하얀 연기가 굴뚝으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풍경이었다. 5분 정도 걸었을까, 대나무 숲 사이 나무다리가 보였다. 변산은 어느새 눈이 왔었다. 소복이 쌓인 눈이 초겨울 정취를 더했다. 대나무, 흰 눈, 나무다리 그리고 강 완벽한 조합이다.

그림1 관음봉
그림2 실상사지를 지나서

 

실상사지를 지나 본격적인 등산로가 보였다. 오르막 내리막이 조금은 있었지만 그리 힘든 길은 아니었다. 걷는 내내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오는 강물의 흐름 소리가 곧 다가올 그 어떤 모습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미선나무다리와 직소보 다리를 건너 얼마 더 가니 직소보 전망대에 도착하였다. 멀리서 산과 나무 숲 사이로 강이 굽이쳐 내려오고 있었다. 

 

그림3 직소보 전망대

 

강을 건너 한 고개 지나 선녀탕에 도착하였다. 선녀가 내려오고 싶어 할 만한 선경이었다. 그토록 맑은 물이 양 옆으로 자란 나무뿌리를 적시며 지나갔다. 강둑의 나무들은 강 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어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겨울이라 잎은 다 떨어졌지만 앙상하기는커녕 한 두 그루 소나무와 함께 아늑함만 남겨주었다.

 

그림4 선녀탕
그림5 선녀탕 아랫길

 

11시 40분 즈음에 도착하여 멀리서 직소폭포를 먼저 만났다. 폭포의 물량이 의외로 많았고 높이도 적당하니 보기 좋았다. 가히 폭포라 불릴만하다고 생각했다. 폭포에서 떨어진 물이 크고 작은 바위를 누비며 강으로 흘러갔다. 물살이 통쾌했다. 폭포쪽으로 더 가까이 가보았다. 외국인 유학생들이 단체 관광을 하는 날인가 보다. 이삼십 명 되는 유학생들이 폭포 아래에 몰려서 수다를 떨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외국인을 만나면 꼭 묻게 되는 ‘where are you from?’을 역시 이번에도 묻는 사람이 있었다. 폭포 앞에서도 한 장을 남겼다. 

그림6 직소폭포

숙소로 들어가기 전에 고사포와 내소사에 마저 들렸다. 한국에 와서 강릉 앞바다, 제주도 바다, 부산 바다, 제부도 바다 그리고 변산의 바다를 본 적이 있다. 고사포 바다는 이들과 또 달랐다. 바다의 색깔도 연녹색에 흰색 물감을 섞은 것 같았고, 멀리 서너 군데 섬들이 널려져 있은 모습이 참 이뻤다. 

예전에 내소사에 갔던 기억이 확실하지 않아 다시 가기로 했다. 내 머릿속에 편백나무 흙길을 지나면 나무 루각 뒤에 대웅보전이 세워져 있는 절의 모습이 늘 어슴푸레 떠올랐다. 그러나 그게 도대체 어느 절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내소사 입구에 들어가는 순간 ‘그래, 여기였어’라는 기억이 되살아 났다. 

내소사의 길은 참 좋다. 나무 숲 사이 놓인 흙길은 많겠지만, 내소사에 자란 편백 나무들의 높은 키와 둘이 나란히 걸을지라도 지나가는 사람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길의 너비 덕분에 그 길을 걸으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2018년 겨울 대웅보전 앞에서 나는 인사하는 법을 배웠다. 무심코  ‘절 집에 오면 주인한테 인사를 해야지’라고 하면서 일행이 인사를 가르쳐주었다. 그후부터 절에 다니면 항상 사람들이 인사를 하는 때에 맞춰 같이 인사를 하는데, 이번에는 다른 데를 관찰하다 한 눈을 팔아 사람한테 묻혀서 인사할 기회를 놓쳤다. 혼자 하기가 머쓱해서 인사를 안 했다. 

둘째 날

첫날은 어떻게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잠들어 버렸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뜨니 벌써 날이 밝아 있었다. 가벼운 여행일지라도 몸은 고단한가 보다. 둘째 날 일정을 정하지 않아서 일단은 출발하면서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한국에 온 뒤 산사를 탐방하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절에 대해 아는 것은 많지 않아도 각자 풍기는 독특한 매력은 구분할 수 있었고 특히 산사라는 이름에 걸맞게 산들과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물론 절로 향하는 산길 역시 최고이다. 며칠 전 동료가 순천의 선암사를 추천하던 기억이 나서 선암사로 목적지를 정했다.

두 시간 가까이 달리니 배가 출출해서 기사식당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였다. 메뉴는 한 가지뿐–돼지김치찌개. 첫 술을 뜨니 쌀밥 맛이 아주 좋았다. 특히 반찬이 아주 맛있었다. 가자미구이, 양념게장, 파김치, 토란이 메인 메뉴보다 더 손이 갔다. 어느새 밥 한 그릇 뚝딱 먹어버렸는데 배가 부르지 않은 느낌이었다. 나의 평소 식량보다 많이 먹었는데도 배가 차지 않다니 혹시 가짜 배고픔은 아닌가 잠시 고민했지만 맞은 켠 친구의 그릇에 남아있는 밥에 눈길이 가서 그것마저 다 먹기로 했다. 한 그릇 반 뚝딱. 나는 밥을 조금만 많이 먹거나, 빨리 먹거나, 불편하게 먹으면 바로 체하고 소화가 안 되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데 이렇게 많이 먹었는데도 전혀 더부룩하지 않고 속이 든든하기만 했다. 아주 즐겁고 맛나게 먹었다는 증거인가 보다.

뱃속을 채우고 다시 선암사로 가는 길에 올랐다. 선암사 역시 주차장에서 내려서 십오 분 정도 걸어야 만날 수 있었다. 선암사는 본인에게 의미 있는 절이라면서 선암사와의 연결고리들을 들려주는 일행과 함께 올라가니 나도 모르게 이 절에 정이 갔다.

절의 모습을 보기 전에 먼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승선교를 만났다. 그리고 그 뒤에는 강선루가 있었다. 길 왼쪽 편에는 다리를 보수하면서 들어낸 돌들을 가지런히 배치해 두었고, 오른쪽에는 조선 말기 즈음부터 다녀간 사람들이 새겨놓은 이름들을 볼 수가 있었다. 이름이라도 새겨두면 나는 더 오래 남아있는 것일까? 인간은 종종 흔적에 불과한 것들에 기대고자 한다.  자신의 두 다리로도 스스로를 지탱하지 못하면서 우둔한 그 몸을 바람 불면 사라질 것들에 맡길 생각을 한단 말이지. 

그림7 승선교와 강선루

강선루를 지나니 편백나무들이 하늘로 곧게 솟아있었다. 그 사이사이로 몇 그루의 은행나무들이 편백나무처럼 크고 곧게 자라났다. 봉생마중 불부자직(蓬生麻中 不扶自直). 생존은 치열한 싸움이다. 자신의 모습을 바꾸면서까지도 말이다. 그래서 살아남으면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가? 그런 건 없다. 그저 생존 그 자체, 그 과정일 뿐이다. 

선암사에서 반드시 구경해야 할 것이 있다면서 친구가 나를 데리고 간 그곳은 바로 뒷간이었다. 누구 집에 뒷간이 이리 이쁜 처마 곡선을 갖고 있으려나. 일단 외모에 놀랐다. 그러면서 안에도 구경을 해야 한다고 해서 순진하게 안까지 졸졸 따라 들어갔다. 그러나 안은 구경하지 않는 게 좋다. 옛 재래식 화장실이기 때문이다. 어릴 적 다니던 초등학교의 화장실이 생각났다. 내가 초등학교 3, 4 학년 즈음까지만 해도 화장실은 이런 재래식 화장실이었다. 어릴 때는 화장실은 다 이런가 보다 해서 아무렇지 않게 사용했었는데, 변기로 바뀐 화장실을 쓰기 시작하면서 이젠 어쩌다 간혹 마주치는 재래식 화장실은 도저히 쓰지 못하거나 어쩔 수 없이 사용한다고 해도 온 몸이 서리를 치게 된다. 

그림8 선암사 뒷간

조금 더 위로 걸어 올라가니 선암사의 매화나무가 보였다. 선암사에는 50그루 정도의 매화나무가 있다고 한다. 겨울이라 줄기만 남아서 감동받을 기회는 없었다. 꽃피는 철에 다시 와서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암사는 전반적으로 운치가 있는 절이다. 규모가 꽤 크지만 사람을 압도시키는 위엄 같은 것은 없다. 그저 어느 큰 종갓집 터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여 생활하는 공간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래서 편했다. 그리고 편안하다는 감정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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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사회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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