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야 자기야! 오늘 독수리 울이한테 덮쳤어!”

“어??!!!”

이게 웬 아닌 밤중에 홍두깨인가. 연구실에서 돌아와 집에 들어서자 바람으로 아내가 나한테 한 말이다. 정신을 다잡고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이랬다. 낮에 애를 데리고 식물원에 산책하러 가서, 아이가 오른손에 빵조각을 들고 먹고 있었는데, 하늘에 날던 ‘독수리’가 뒤로부터 꼰지르면서 그걸 낚아챘다는 것이다. 눈 깜작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 미처 반응을 못하고 있다가 다 날아가고 나서야 비명을 지르며 애한테 달려 갔다고. 지금 생각해도 식은땀이 난다고. 

사실 독수리는 아니다. 과는 같지만 솔개라는 녀석으로, 독수리보다는 몸집이 작지만 그래도 양날개를 펼치면 1미터는 쉽사리 넘기고 큰 놈은 180cm나 된다고 한다. 두살 가까운 아이를 채서 공중까지 날아오를 힘까지는 없지만, 손이나 머리가 발톱에 할퀴기라도 했으면… 상상하기조차 끔찍하다. 

교토에는 카모가와(鴨川)가 있다. 이름처럼 물오리들이 많이 서식하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솔개들도 많다. 교토 시내를 남북으로 꿰지르는 카모가와 연안에 100마리 정도 살고 있다고 하는데 강변에 나온 사람들의 들고있는 음식물을 덮치는 사건들이 적잖게 발생하고 있다. 그런터라 강변에 갈 때 솔개가 좋아할 만한 먹을거리는 꺼내지 않도록 주의해 왔는데, 오늘은 식물원이라 방심했던 것이다. 

솔개주의 경보판, 교토 시내 여러군데서 보임.

이 녀석이 맹금이라 워낙은 주로 동물성 먹이를 먹는데, 웃기는 것은, 교토의 솔개들이 빵을 그렇게 좋아한다는 것이다. 

빵은 서양에서 들어온 식품이다. 아시아의 서구화 역사는 일본이 제일 오라다고 할 수 있다. 교토하면 전통문화의 근거지이자 옛서울이라 보수적인 부분도 적지 않지만, 동시에 문화중심이었어서 그런지 제빵 역사도 일본에서 오랜 편이고 빵문화도 보급되어 있다. 발달된 편의점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중국이나 한국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체인점 빵집 문화는 거의 없고 동네마다 개인 빵집들이 구석구석 들어서 있다. 이 많은 가게들에서 만들어내는 각양의 빵들이 매일매일 다 소비되고 있다는게 신기할 따름이다. 

大正 8년(1919) 개업한 빵집
옛 풍미를 간직하고 있어 애용된다고 함

일본 총무성(總務省) 통계국에서 진행한 2012-2014년 가계조사 데이터에 따르면, 교토시의 세대당 빵 연간 소비량은 6만 2599그램으로 일본전역 1위를 차지하였다. 한 설문조사에서는 90% 이상의 교토인들이 “조식 빵주의자”라고 대답했다. 이러하니 한덩이(1키로)에 8, 9백엔(RMB 50원 좌우) 대의 식빵이 교토에서 최초로 등장한 것 역시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요즘 같으면 일본 전역에서 고급식빵 시장이 형성되어 있지만, 같은 양의 식빵이 마트에서는 3, 4백엔 정도인걸 감안하면 꽤 도전적인 시도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가 하면 50여 종류의 빵을 단가 100엔에 판매하는 “빵 100엔점”(중국의 二元店 같은 느낌)도 교토에 등장했다. 특히 대학들이 집중된 이마데가와(今出川) 거리는 빵집들이 격돌하는 전국시대 최전선으로 불린다. 

빵을 이렇게 좋아하니 그에 관련된 것들은 어떨까. 위와 같은 가계조사에 의하면, 교토시는 빵 외에도 버터, 우유, 커피 세대당 평균 소비량 역시 일본 1위였다. 교토에 유명한 카페가 많고 일본 최초의 카페라고 많이 홍보되고 있는 “스카트커피점”이 교토에 있는 가게인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昭和 7년(1932) 개업한 ‘スマート珈琲店’

이처럼 교토는 일식과자 와가시(和菓子)가 유명하지만 빵 역시 환영받는다. 말차와 다도가 이름있는 동시에 커피가 일상음료로 자리잡았다. “전통과 모던의 결합”이라는 건 그 어떤 추상적인 관념보다도 이렇게 실생활에서 확인된다. 

교토에 살면 이른바 ‘전통’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된다. 전통은 매스컴에 포장된 것처럼 ‘위대’한 것이기보다는 ‘평범’하게 이어져가는 것은 아닐까. 이어질 수 있는건 그것이 ‘내’가 사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삶은 평범하다. 그러나 이어져 내려가는 평범한 삶은 그런 의미에서 ‘위대’할지도 모른다.삶속에 들어온 ‘바깥’의 것은 결국 ‘내것’으로 몸에 묻어나게 된다. 

그래서 ‘탄수화물중독‘에 걸린 것처럼 빵이라면 오금을 못쓰는 솔개가 교토에 있을 수 있는 것이 다. 

+ 교찾로 시리즈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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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

떠돌면서 듣고 모으고 배우는, 이야기 "꾼"이 되고싶은. 북에서 남으로, 서에서 동으로 돌다가 고전과 씨름하게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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