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서당에서 학동이 책 한 권을 다 공부하면 훈장과 학우들을 불러 한상 거나하게 차려 예를 갖추어 대접한다. 이것을 ‘책례’라 하는데, 다른 이름으로 ‘책거리’, ‘책씻기’ 등으도 불린다. 책 한권을 꼼꼼히 읽어 그것을 인생의 중요한 기점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물론 그 당시 책례는 성현의 말씀을 정독한 것을 가리키지만, 요즈음은 그 뜻이 달라져 동학이나 후학들이 책을 펴내면 이를 격려하고 기리는 축하의 의미가 더 크다. 그런 의미에서 80 세대 문사 셋이 비슷한 시기에 책을 펴냈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함께 기뻐해야 할 일이다. 그러므로 김현철 (『엄마의 온돌』), 리은실 (『좌충우돌 몽실이가 사는 이야기』), 모동필, (『하얀 넋 · 붉은 얼』) 세 작가만의 의 경사가 아니라, 크게는 조선족 8090 세대의 경사이고, 8090 세대인 우리 개개인의 경사이다. 

8090 세대는 개혁개방과 중한수교를 맞아, 많은 사람들이 대도시나 해외로 이주하기 시작하던 시기였고, 조선족 사회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산아제한 정책의 영향으로 독신자녀로 태어나 소학교 이후부터 조부모 또는 부모 중의 한 분과 생활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가족 중심의 가정교육이 열악했지만,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다소 풍족하게 성장했다. 그러나 선조들의 궁핍도 보았기 때문에 ‘궁핍과 풍요’, ‘전통과 개방’, ‘조국과 모국’ 등의 ‘이중적 사고의 부조화’도 동시에 지니게 되었다.

특히 이민 3세 또는 4세였던 우리들은 90년대 이후 조선족 사회를 휩쓴 ‘한국바람’속에서도 본질적으로 ‘조선족 디아스포라’라는 특수성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다. 비록 한글과 중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했지만, 이중 문화나 이중 정체성 같은 문제들이 빚는, 현실과 이상의 문제는 여전히 족쇄로 작용했다. 그러나 이러한 환경이 부모 세대와는 다른 특수한 경험으로 작동했을 것이다. 

글쓰기는 개인이 경험하는 특수하고 미세한 주관성을 객관화시키는 작업이다. 작가는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을 통해 이 주관성을 통해 객관 세계의 독자들을 설득해야 한다. 그런데 작가가 ‘책’을 펴내는 순간 비록 그것들이 자신들만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라고 해도 이를 벗어나 독자와 만나는 ‘소통의 장’의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80 세대 문사 세 명이 처음으로 책을 펴낸 것은 유쾌하고 즐거운 일이면서도, 그들이 자신의 정신세계를 독자들에게 까발리는 ‘두렵고 냉정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책을 펴낸 순간부터 작가는 독자들에게 책 이외의 것으로 변명하거나 덧보탤 수 없다. 작가는 독자들이 책에 쓰인 그대로, 아니 우리가 늘 그래 왔듯이, 책의 전체 내용이나 부분을 자기 방식대로 비틀고 오해하고 곡해할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처음부터 그것을 다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 8090 세대들이 출간식에 즈음해 적어도 두 가지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첫째, ‘시작’이 주는 의미이다. 

『엄마의 온돌』은 이 시대의 조선족 어머니와 아들과의 애틋하면서도 섬세한 정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슬프고도 의연한 이야기이다. 누구인들 저자처럼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내는 후회와 아픔이 없을까마는 가슴에 응어리진 이 말을 생전에 주고받을 수 있을까? 그는 시기를 놓치지 않고 행했다. 

『좌충우돌 몽실이가 사는 이야기』는 조선족 한 여성이 중국의 심장부인 북경에서 살면서 거침없이 행동하는 유쾌하면서도 ‘애잔한 삶’의 이야기이다. ‘애잔’하다는 것은 그의 삶의 중심 공간이 언제나 고향이며, 그리고 중심 시간도 ‘조선족의 시간’이라는 점이다. 그런 시공에 사는 필자의 삶이 드러나 있다. 

『하얀 넋 · 붉은 얼』은 비록 사실과 표현의 대차가 책의 문맥 속에서 생략되거나 멀리뛰기를 하고 있지만 백척간두에 서 있는 민족의 아픔이 여지없이 드러나 있는  조선족과 우리 축구팀에 관한 뜨거운 열정에 관한 이야기이다. 비가 온 날, 길을 가려면 빗물이 고인 물웅덩이가 있어 건너뛰지만 이젠 그대로 걷자고, 신발이 젖어도 그대로 걸어보자고 말하는 듯하다. 

둘째, ‘나’의 의미이다.

이 세 필자들이 펴낸 책의 주제와 표현 방법과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되새기자는 것이다. 그들이 어떤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펴냈으며, 우리 자신이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객관적으로 보자는 것이다. 우리 조선족에게는 언제나 ‘민족과 개인’의 문제가 늘 이중적으로 작용한다. 이 짐을 우리는 쉽게 부릴 수 없다. 그것이 긍지이고 자부심이면서 차꼬처럼 작용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피할 수 없고, 우리의 선조들의 방식을 비판 없이 수용할 수도 없다. 우리는 그들과 동질적이면서도 혁신적인 새로운 ‘인식의 전환’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것이 우리가 앞으로 쓸 책의 중요 주제라는 것도 잊지 말자. 

다음 필자가 바로 ‘나’이다.

2019년 12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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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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