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직한지 반년이 지났다.
가장 큰 변화는 예술과 상업에 대한 나의 태도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혼돈의 카오스 속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었지만
7월에 크게 앓고 8월에 부모님을 잠깐 뵙고나니 마음이 안정 되었는지
사로가 이 만큼 잘 정리되기는 또 처음이다.
나는 줄곧 상업성을 지닌 예술 또는 예술 작품의 상업적 이용에 대해 대체로 경시, 아니 경멸 정도의 태도를 취해 왔었다.
"만약 내가 순수 화가의 길을 택한다면 어떻게 상업성에 타협하지 않고 나를 먹여 살릴 수 있을까?" 나는 항상 이 질문을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그 당시 내가 상상할 수 있었던 가장 이상적인 생활 패턴은 바로 일단 자신을 먹여 살릴 수는 있는 예술과 상관 없는 일을 하면서 상업화에 오염되지 않는 작품을 마음껏 만들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졸업하고 나서부터 일년 동안 취업 요구에 끼워 맞추려고 애를 쓴 나의 행보가 참으로 역겨웠다. 그러한 역겨움은 취업 전 마지막 달 2주넘게 걸린 몸살 감기, 그리고 한 학기를 마치고 난 뒤 무너진 나의 마음가짐(气郁)로 발현되었다.
실제로 나는 적응을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저항을 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그래서 창작 따위를 포기하였고 내 몸에 쌓였던 모든 재능을 망각으로 파괴하려고 들었다. ("지금의 너는 예술을 섬기는 자격을 저버렸어"와 같은 비난을 하며)
이와 비슷한 위기는 2014년에도 한 번 겪었었다. 나는 그림에 온전히 충실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함으로써 회화에서 퍼포먼스로 전향했다. 그 당시에도 나는 순수한 마음으로 그림을 대하지 못한 자신을 비난하며 화가의 자격을 스스로 박탈해버렸다.
참으로 민감하고 어리석고 융통성이 없는 극단적인 인간이 아닌가?!
그만큼 나는 예술의 개방성을 여유롭게 담아낼 그릇이 못되었던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자.
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수 많은 저명한 아티스트들이 사회적인 명성을 날리고 부를 축적하였다고 해서 그들 작품의 예술성도 하락했던 것인가?
이 예술성이란 작가가 작품에 임하는 태도와 전달하는 "각자의 언어 형식"과 연관되는데 어떻게 보면 부와 명예가 작품의 예술성에 미치는 영향은 적어도 직접적이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 말은 즉 우리 모두 알고 있는 사후에 명성을 날린 반 고흐이든 아주 어린 시절부터 미술 실력을 인정 받으며 부와 명예를 생전에 누렸던 피카소이든 작품의 예술성은 그 작품들의 판매 여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내부의 형식의 힘에 의해서였다.
따라서 그림의 순수성을 잃어버릴까봐 그림을 내던지려고 하고, 내가 몸을 담고 있는 직종이 순수 예술창작의 길이 아니라고 나의 잠재적 예술성마저 부정하는 방식은 예술의 순수성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실리적인 유혹에 동요될 만큼 예술에 대한 마음이 단단하지도 순수하지도 못하다는 증거다.
그렇게 다시 나의 과거의 10년을 돌이켜 본다면, 나는 예술의 미궁에 갇힌 미아처럼 늘 막다른 길목에서 헤매다 예외 없이 번머다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그것은 내가 너무 평면적인 사고에 사로잡혀 상황을 입체적으로 보지 못한 결과다. 만약에 내가 예술의 미로에서 하늘 위를 향해 힘껏 뛰어 본다면 아마도 출구는 "중력의 장벽"을 뛰어 넘은 그 순간 열렸을 것이다. 하지만 왜 나는 여태껏 예술의 순수성을 나의 단선적인 예술인식 속에만 집어넣으려고 했을까? 왜 나는 "중력의 장벽"을 단 한 번도 의심해보지 않은 채 나의 눈 앞을 가로 막는 벽들만 보고 울분을 터뜨렸을까? "중력의 장벽"을 뛰어 넘어서려면 중력의 반대 방향인 "위"를 인식해야하며 중력을 뚫을 수 있을 만큼의 에너지도 축적해 놓아야 한다. 그래야만 나와 나의 예술은 내가 구축했던 '예술의 미궁'으로부터 풀려나오면서 우주의 모든 영역을 향해 마음 껏 손을 뻗을 수 있을 것이다.
횡설수설 논리가 없어보이는 글이 이제야 논점을 드러낸다.
만약에 그 어떤 직업의 제한성과 상업적인 유혹이 저항의 대상이 아닌 '지식(예술)의 지니화'를 구축하는 요인으로 간주된다면 아마도 예술과 제도, 예술과 상업은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유희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의 얍립 불가한 '대립', 즉 힘겨루기가 아닌 양자를 유희로 볼 수 있는 '눈', 즉 정체된 인식을 넘어 설 수 있는 인식의 층위다.
와…나의 예술 각성… 또 한 단락을 마무리 한 것 같다.

각성하는 단계군요. 매 하나하나의 여정을 나누어서 다 즐기는거 같아서 부럽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