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오랜 시간동안 자신만의 정신세계에서 살아왔던 사람이다.
그것은 나의 선천적인 기질 때문이기도 하지만 외부의 현실을 외면해도 될 만큼 부모님의 무한한 사랑이 뒷받쳐주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나의 '그늘'은 현실의 고난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 사랑의 잉여에 의해 피어난 것이다. 마치 유럽에서 시회적 복지가 좋아지면서 우울한 사람이 많아졌다는 그 아이러니한 메커니즘 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나에게 "현실" 만큼 하찮은 것이 없었다.
왜냐하면 "현실"에서의 이해관계는 사랑과 믿음으로부터 생성된 이타성을 바보처럼 여기고 하찮은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그 "현실"에 연루되기 싫었고, 오로지 나만의 세상을 지키면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친구들은 나를 "다른 세상에서 사는 애", "사차원" 또는 "마녀"라고 불으곤 했다.
그렇게 자라왔기에 나의 상상력과 세계에 대한 이해는 나의 내면을 풍족하게 만들었고, 보통 사춘기에서 그치는 민감한 감수성은 성인이 되어서도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아직도 사춘기를 보내고 있다. 이렇게 보면 내가 예술에 매혹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적인 결과다.
따라서 미술의 길에 들어섰을 때 나는 물 만난 물고기가 되었다. 여기까지 참으로 순조롭고 완벽했다. 나는 가족의 정신적 금전적 지지를 온전히 받으면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다 누리면서 살았다. 거기에 대학이라는 울타리에서 암흑적인 사회적 현실과 문제점에 대한 인식이 깊어지면서 나는 항상 작품으로 나의 세계와 충돌하는 현상들을 '폭로'하고 있었다.
내가 유독 공감할 수 없었던 것은 바로 "자신의 세계가 없는 삶"이였다. 왜냐하면 나에게 "자신만의 세계를 향유하는 것"이야말로 한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필수 조건이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사람들이 자신의 내면을 외면하는 행위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은 솔직하지 못하며 나약하고 비겁한 행위라고 생각했다.
이와 동시에 내가 놓치고 있었던 것이 있었다.
2
만약에 내가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받지 못했고 어린 시절 경제적으로 어려웠으며 내가 좋아하는 꿈을 펼칠 수 있는 조건도 여건 받혀주지 않았다면 과연 내가 이토록 거대하고 풍족한 나만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었을까?
내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인간 다운 삶"이 "냉혹한 생존 현실"로 인해 "인간"을 걷어내야 하는 순간이 닥쳐올 때, 나는 과연 그 참답고 정의로운 "나만의 세계"를 지켜낼 수 있었을까?
내가 그토록 하찮게 여겼던 그 "현실"이 진정 무시할 수 있을 만큼 하찮은 존재일까?
그렇게 나의 세계관은 몇 차례 경제적인 자립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뜯기고 부서지고 갈기갈기 찢겨지는 봉변을 당한다. "현실"을 직접적으로 맞닥뜨리는 순간부터.
만일 내가 "자신의 세계가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면, 그리하여 나의 삶에서 더 이상 나를 찾을 수 없게 된다면…
만일 생계유지를 위해 나의 내면을 수 없이 외면해야 하고 비겁함을 일삼아야 한다면…
과연 나는 이 혹독함 속에서 부서지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거의 처음으로 생각해 본 문제다.
따라서 나는 최근 몇 년간 여러 편의 글에서 "나의 오만함"에 대한 반성을 하게된다. "나만의 세계" 속에서 이루어진 그 모든 현실 비판은 올바름을 내세우지만 내가 실제로 그 현실 속에 들어서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내가 현실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나를 지켜줬던 지고지순한 정신적 울타리는 쉬이 효력을 발하지 못했다. 그때 마주한 "현실"은 더 이상 하찮게 볼 수도 무시할 수도 피할 수도 없는 거대 괴물로 다가왔다.
괴물의 세계에서 첫 순위는 생존이다.
"나만의 세계?" "나 다운 삶?" 더 이상 생각나지도 않는다.
만약 이것이 끝이라면 참으로 암울했을 것이다.
3
나는 어렸을 때 하도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 '자살'을 택하는 사람들을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누가 자살의 생각을 했었다면 동정심 보다 화가 먼저 나곤 했다. 어떻게? 어떻게?! 이 소중하고 사랑과 열정으로 가득 찬 은혜로운 삶을 스스로 끊을 생각을 한단 말인가!!
자라면서 이 지점이 나의 감수성의 맹점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사춘기 소녀에서 어른으로 되어가는 것일까?
나는 부끄럽고 고마웠다.
현실에서 자신을 잃어가면서도 열심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부끄러웠다. 삶의 의지는 생명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다.
그리고 그 사랑이 고갈되어 더이상 살아갈 여력이 없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드디어 이해할 수 있게 되어 내심 고마웠다.
"현실"은 내가 "나의 정신적 울타리"를 잊는 순간 거대한 힘을 지니게 된다. 나를 압도하여 삼켜버릴 수 있을 만큼이나.
따라서 우리는 자신만의 정신적 울타리를 짓는 것에 게으르면 안된다.
내가 "냉혹한 현실"의 막강한 힘을 인정한다고 해서 굴복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 자신한테 "지피지기"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우려는 것이다.
막강한 현실 속에서 "나 다운 삶"을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다시 정확하게 진단해야만 삶의 중심을 되찾을 수 있다.
그리고 이상의 세계가 아닌 잔혹한 현실 속에서 "사랑과 믿음으로부터 생성된 이타성"을 다시 되새겨 본다.
여전에 나는 풍족한 사랑에 힘입어 우쭐거리면서 암흑의 힘을 조롱하였다.
그만큼 사랑의 힘은 압도적이다.
다만 내가 타인으로부터 받은 무한한 사랑의 힘을 당연시하여 그것을 나의 능력의 일부로 간주하는 순간 나는 사랑의 능력마저 잃어버리고 곧바로 암흑 속으로 추락하게 될 위험에 놓일 것이다.
결국 나를 암흑의 유혹으로부터 다시 구원해 줄 수 있는 것은 "사랑에 대한 소유욕"이 아닌 "사랑에 대한 믿음의 능력"이다.
이제 "나는 절때로 암흑 속으로 추락할 수 없을 꺼야" 와 같은 맹목적인 오만함이 아닌 "언제든지 다시 암흑 속으로 추락하게 될 수도 있겠지만 꼭 다시 사랑에 대한 믿음과 함께 나의 길을 찾아낼 꺼야"와 같은 희망으로 다시 나 자신을 믿어 본다.
(끝)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삶에 대한 열정을 갖는 자가 진정 현명한 자가 아닐까요? 오늘도 화이팅요~
열정을 되찾고자 에너지를 축적하는 중입니다~ 함께 화이팅 해요!
보통 자정무렵에 각성글이 나오는군요. 김진님의 밤이 낮보다 또렷하다는 증거 ㅎㅎ
낮에는 햇빛이 너무 맑아 그늘이 잘 안보이긴 해요 ㅎㅎㅎ
지니는 더 잘 될 사람. 이제 좋은 기회와 타이밍이 뙇 하고 나타나서 크게 될 사람. 그때 우리나무를 잊지 말아요.
좋은 기회와 타이밍이 질주하여 달려올때 탁! 붙잡을 수 있도록 단디 준비 해야겠슴다! 우리나무을 업고 다녀야지 ㅋㅋㅋ
울타리를 칠만큼 사랑의 힘을 키웁시다요
네 정말 인생의 한 단계가 마무리짓고 다시 시작 할 때마다 사랑의 힘을 키워야 한다는 중요성을 다시한번 뇌우치게 됩니다!
“나 다운 삶”이 뭔지 궁금해지는 밤이군요 🌛
저도 다음 편에서 “나 다운 삶“에 대한 구체적인 해부를 해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