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가 거의 끝나가니 남편이 걱정한다.
– 집에서 놀므 되지므. 무슨 문제될게 있니. 근데 어째 자꾸 생각하게 되구 걱정이 되지.
그래서 조금 길게 얘기를 나눴다.
"너는 좀 현실적인 편이라서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 가장 나쁜 상황에 대비하려고.
프로젝트가 끝나면 떠나게 될거다, 이런 생각을 하면 그 메세지는 전달돼. 주변에서 느낄 수 있지.
30% 명단을 올려야 한다면 누구를 올릴가. 떠날거라는 메세지를 전달하는 사람.
그러면 넌, 그럴줄 알았어, 하겠지.
자기실현예언.
당신은 전문적인데다가 책임감도 강하고 경험도 많아. 나이도 적절해, 딱 일하기 좋은 나이. 회사나 관계사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면 생판 모르는 사람을 구하기보다 실력이 이미 검증된 당신을 우선 고려하지 않을가.
적절한 프로젝트는 있겠지. 어디에 있는지, 언제 만날지가 문제고. 마침 회사에서 새로 추진하는게 있다면 서로 좋지. 떠날거야, 대신, 또 기여할거야 라는 메세지를 내보내는게…"
속이 좀 풀렸는지, 집안의 정신적 기둥이라고 칭찬하신다.
그 말에 힘입어서 계속했다.
"애한테도 마찬가지. 왜 화가 나는가 보면, 공부 안할거야 좋은 직장 못갈거야 잘살지 못할거야 하는 예언을 하고 있으니 애가 하는 행동이 그 예언에 들어맞아 보인단말이다. 그러다 정말 못하면, 그것 봐라, 내가 뭐랬냐 그러겠지.
얘는 잘살거야 행복할거야, 에미애비가 누군데, 하면 애가 하는 짓도 이뻐보이겠지. "
솔직히 민감하고 불안한 내가 기둥이 되고 있다는 이 집이 무너지지 않은것도 대단하다.
올해는 신체기능의 断崖式저하를 느끼고 있고 11월에는 날이 춥고 낮이 짧은데다가 잠을 늦게 자다보니 더 기가 빨린다.
***
요즘 인사철(인사이동과 조직개편)이기도 하다. 누구는 웃고 누구는 운다.
존경하는 분이 퇴임을 앞두고 있다. 퇴임년령이 이미 지났으나 능력자이시다보니 좀 더 일을 하셨고 이제 과도기를 가지다가 정식 퇴임하실것이다.
AI와 로보트에 관해 얘기하다가 "니들은 새로운 시대를 직접 볼 수 있겠구나" 하셔서 당황했다. 이 분도 이런 생각을 하시는구나. 안쓰럽구나.
젊고 혈기왕성한 시기가 길지 않음을, 그리고 지나고나서야 알아차림을, 게다가 흘러가는 시간을 어쩔수 없음을 쓸쓸하게 실감한다.
***
"갱년기 시작을 정식으로 선포합니다. 나 이제 일찍 잘거야. " 했더니 딸래미가 늙으면 잠이 준다는데 왜 더 자냐고 되묻는다.
이눔이, 나 이제 시작이라고. 아직은 잠이 많다고.
그러고보니 아직은 인정하기 싫구나. 어쩔수 없으니 그냥 받아들이려는 중이구나.
그리고 툭 하면 혈압이 오르는군.
남편한테는 도움을 청한다.
지금은 멀쩡하지만 이제 정신 사납게 굴거임. 그땐 곱게 말해주오. 자기실현예언 같은거.
– 어디 적어야겠다.
미리 고맙소.
***
11월에 글을 많이 쓴걸 보면 아무래도 복잡했나보다.
맛있는게 많아서 하루 다섯끼 먹고 군입질도 하면 좋겠다만, 신진대사가 느려진 지금은 기다렸다가 배고픈 느낌을 즐기기도 한다.
그때그때 먹고픈게 있겠지.
목표 같은건 세우지 않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그때그때 하고픈 게 있겠지.
흘러가는 시간에 몸과 마음을 맡기고 주어진 것을 소중히 다루고 간직하면서,
잘 지낼거야.
자기실현예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