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이라는 시간 동안 세 번의 이사를 했다. 그 전의 이사까지 더하면 다섯 손가락이 모자랄 만큼 박스를 싸고 푸는 일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 이집 저집 살다보니 이사를 할 때마다 일상을 리셋하는 기분이 들었다. 짐을 풀며 배치한 가구는 늘 비슷했지만, 방의 구조나 햇빛이 드는 방향에 따라 내가 사는 방식이 달라짐을 발견했다. 같은 나인데, 집이 바뀌면 내가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 신기했다.
이사는 고단한 일이었다. 여러 번의 짐싸기와 짐풀기를 거듭하면서 어느정도 요령이 생기긴 했다. 그럼에도 과거의 흔적을 박스에 담고 그것을 새로운 공간에 옮기는 것은 시간과 체력을 소모하는 일이었고, 누군가가 살았던 흔적을 지우며 내 것을 채우는 과정은 별로 유쾌하지도 썩 달갑지도 않은 번거로운 일이었다. 급하게 이사를 가야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이삿짐을 옮기고 나면 내 팔이 내 팔 같지 않고 너무 지쳤다.
이사 온 집과는 잠깐의 낯가림을 가졌다. 낯선 천장을 올려다보며 ‘이사를 오긴 왔구나’ 싶은 순간, 화장실에 들어갈 때 불이 어디에 있는지 손을 더듬어 찾는 순간, 물건을 어디에 뒀던지 헷갈려 사척을 뒤적이던 순간들이 있다.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양말 한 짝이 방 한 켠에 놓인 걸 보고 안도하는 순간도, 끼니 때 집안을 가득 채운 집밥 냄새에 안심이 되는 순간도 있다. 그러한 순간들을 살아내는 동안 어느새 집은 편한 공간으로 되어갔다.
이사가 피곤하긴 해도 이사를 할 때마다 조금은 설렌다. 이전과는 다르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설렘을 준다. 이번엔 아침마다 집 앞 산책을 나갈까, 햇살이 드는 창턱에 꽃병을 놓으면 좋을 텐데, 아늑함을 더해주는 스탠딩 조명을 장만하자. 이번 집에서는 좋은 일이 가득했으면 하는 막연한 기대도 생긴다. 현실은 정리되지 않은 짐더미에 한숨이 나오지만 천천히 구석구석 쓸고 닦을 생각에 금세 기분이 좋아진다. 이쯤되면 내가 이사를 좋아하는 건 아닌가 싶은 의심이 들기도 한다. (이사로 갈고 닦은 정리정돈의 실력으로 이사짐 센터에 이력서를 내볼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아마 이사를 가야 하는 날이 또 올 것이지만 이젠 ‘이사 가자’는 말에 ‘응, 그래.’하며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어디로 이사를 가든 집을 집답게 만들어가는 법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벽지가 바랜 집이어도, 바닥이 한쪽으로 기운 집이어도 괜찮다. 이런 집, 저런 집에서 두루 살아보니 이렇게도, 저렇게도 살아지는 법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었다. 집이란 결국 함께 살아내며 조금씩 집이 되어가는 곳이라는 걸 이젠 알겠다.
ps. 그래도 이번에는 좀 더 오래 머물렀으면 좋겠다.
썸네일 BY 초보사진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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