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저기, 또 저어기, 재빛의 버섯들이 알차게도 돋아나와있었다. 소나무밭 중간중간, 이제 막 검붉어진 소나무잎들이 우스스 몸체에서 떨어져 겨울과 봄, 여름내내 게으른 잠을 자고있던 묵은 소나무잎들과 화합을 하고 있었고, 누래지기 시작한 풀들이 으스스 다리께를 스치는 바람에 제멋대로 몸을 흔들고 있었다. 어서, 누군가의 손을 타기전에 어서, 녀자는 허리를 굽혀 바지런히 버섯을 딴다. 목수가 나무를 다루듯, 료리사가 음식재료를 다루듯, 녀자는 능숙한 솜씨로 버섯을 딴다. 시간이 흐르고 녀자가 허리를 편다. 바람이 불어와 녀자의 이마께를 시원하게 쓸어준다. 녀자는 허리의 통증을 느끼며 고개를 돌려 흘낏 바구니안을 눈짓한다. 악! 녀자는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지만 소리가 목구멍밖으로 나오지를 않는다. 바구니에 가득 차 있어야 할 버섯은 온데간데 없고 검은 뱀 한마리가 똬리를 튼채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녀자를 바라본다. 녀자는 바구니를 힘껏 흔들어보지만 뱀은 도망가기는커녕 꿈쩍도 하지 않는다. 바구니를 거꾸로 쳐들어보아도 소용없다. 이번에는 아예 바구니채 던져보려고 애써보지만 바구니손잡이가 녀자의 손바닥에 흡반처럼 단단히 붙어버려 떨어질념을 않는다. 녀자의 소란에도 뱀은 몸을 일으키지도 혀를 내밀지도 않고 얌전히 거기 웅크리고 있다. 갑자기 바람이 휙 불더니 주위가 어두워진다. 버섯도 소나무도 오간데 없고 잡초만 바람에 몸을 우수수 떨고있다. 어데선가 본듯한 잡초들이다. 어데서 봤을가, 이 낯익고 기분 나쁜 잡초들은. 녀자는 기억을 더듬으며 으스스 공포에 몸을 떤다. 이제 녀자는 바구니에서 뱀 떼여내기를 포기한채 멀거니 뱀을 바라본다. 뱀은 미동도 없다. 다만 눈을 슴뻑여 녀자를 올려다볼뿐이다. 무구한 두눈은 자못 애처롭기까지 하다. 뭔가? 이 기분 나쁜 눈빛은. 이 기분 나쁜 맑음은.

몸부림을 치다가 눈을 떴다. 허름한 뙤창에 쳐놓은 쑥색 카텐이 달빛에 펄럭이고있었다. 구석께에 놓인 일자형 옷걸이에 질서없이 걸려진 짙은색 계렬의 옷들, 소리없이 화면만 스쳐지나는 텔레비죤, 앉은뱅이 선풍기, 방안의 물건들이 차차 눈에 들어오며 녀자는 정신이 든다. 머리밑이 축축해서 손을 넣어보니 베개께가 흠뻑 젖어있다. 이마를 문질러보니 물기가 번들거린다. 옆으로 눈길을 돌려 로인을 바라본다. 로인은 하늘색 홑이불을 단단히 가슴 바로 밑까지 올리고 손으로 지긋이 누른채 조용히 잠을 자고있다. 

녀자는 금방전 꿈을 되돌아본다. 왜 이렇게 기분 나쁜 꿈을 꾼걸가. 녀자는 다시 잠을 청해보지만 눈앞에 자신을 바라보던 눈빛이 무구한 뱀이 아른거려 도무지 잠을 이룰수가 없다. 혹시 아들애한테 무슨 일이 있는건 아닐가. 이 찜통더위에 혹시 심장에 문제라도 생긴건 아닐가. 아니 괜히 내가 생각이 많은걸거야, 공부를 잘 하고 있는 애가 일은 무슨. 요 근래 크게 놀래지도 않고 그럭저럭 잠도 잘 잔다고 했는데. 심전도상으로도 별 문제가 없다고 했고, 그럼 엄마가 아픈건가? 며칠전까지만 해도 정정하다던 로인네가 별일 있을리가 있겟는가. 그럼 혹시 이 나그네가 무슨 사고라도? 그럴리야 있을가. 시골에서 농사 짓고 소 키우는 사람이 갑자기 사고는 무슨. 그런데 왜 이렇게 마음이 허전한걸가. 

녀자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불속에서 살며시 빠져나와 드르렁 오래된 미닫이문을 열고 거실로 나가다말고 뒤돌아본다. 텔레비죤은 소리없이 화면만 지나가고 있다. 로인을 흘끗 되돌아본다. 녀자의 움직임에도 기척을 안하던 로인은 그제야 귀찮다는듯 미간을 찌푸리며 끄응 소리와 함께 뒤돌아 눕는다. 아침밥을 준비하기에는 이른 시간이다. 녀자는 멀거니 거실에 한참을 앉아있는다. 이달만 지나면 영주권신청을 할수가 있다. 오늘이 벌써 26일이니 닷새밖에 안남았다. 녀자는 거실등을 켜고 책상서랍에서 종이 한장을 꺼낸다. 며칠전 출입국사무소에 가서 받아온거다.

1. 여권, 및 중국 거민신분증 사본 ( 원본 제시, ) 외국인등록증.

2. 사진 1매, 수입인지 6만원.

3. 신청서.

4. 생계유지능력 입증서류.

-본인 또는 생계를 같이하는 가족 명의의 2000만원 이상 예금잔고 증명 또는 부동산등기부 등본 또는 전세계약서, 재직증명서 ( 사업주의 사업자등록증사본 첨부 ) 중 택일.

5. 중국 호구부 전체 사본 ( 원본 제시 ).

6. 결혼증 등 혼인사실 입증서류.

7. 한국인 배우자 준비서류.

기본증명서, 혼인관계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 주민등록등본. 주민등록증 사본.

8. 기타 혼인의 진정성을 입증하기 위한 자료 제출.

-사진, 동거사실 확인서.

이 집에서 벌써 2년을 산건가. 그래도 시간은 흘렀구나. 목이 마르다. 녀자는 낡은 냉장고에서 끓여식힌 보리차를 꺼내 한컵 마신다. 찬 기운이 몸 구석구석을 통과하며 차차 진정이 된다. 

2천만원이상 잔고증명이나 재산증명, 저걸 어떻게 하지? 월급을 타는족족 아들애와 친정엄마의 생활비로 보내다보니 갖고있는 돈이 그렇게 많질 않은데. 로인네도 돈이 있을리가 없고… 그렇다고 갑자기 돈을 융통할만한데가 있는것도 아니다. 걱정마. 다 내가 생각이 있응께. 며칠전 녀자가 영주권을 신청해야겠는데요. 하면서 돈 얘기를 꺼냈을때 로인이 하던 말이다. 로인의 표정은 정색해있었고 확신에 차있었다. 평소에도 롱담이나 빈말같은건 안하는 로인이다. 그럼 정말 로인이 숨겨둔 뭐라도 있다는건가? 그렇다면 정말 좋겠지만 그건 아무래도 아닌것 같은데. 아무리 눈치를 봐도 로인은 돈은커녕 돈이 될만한 아무것도 가지고있는것 같지를 않다. 그렇다면 대체 로인한테 어떤 방법이 있다는걸가. 걱정마. 녀자는 다시한번 로인의 말을 떠올린다. 아무 리유 없이 불쑥 내던진 말은 아닐거야. 만약 로인한테 무슨 수가 있는거라면 얼마나 좋을가. 

녀자는 무릎을 세우고 벽에 기대앉는다. 바닥이 차다. 머리속이 한결 명징해난다. 로인은 녀자한테 많이 고마워 하고있다. 2년여동안 녀자는 진심을 다해 로인을 대했고 로인은 그런 녀자한테 고마움과 미안함을 함께 가지고있었다. 그건 녀자가 바라던바였다. 로인이 녀자가 요구해서가 아니라 고맙고 미안해서 영주권을 해주기를 원했다. 그래야만 언젠가 로인을 떠나는 날이 왔을 때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할것 같아 녀자는 힘들어도 웃는 얼굴로 로인을 대했고 친정아버지 모시듯 신혼초의 남편을 대하듯 정성을 다했다. 생각 같으면 뭐라도 해주고싶지만 내가 가진게 있어사, 뭐라도 자네한테 남겨주고 가야 할텐데. 어느날 로인이 녀자의 손을 잡고 그런 말을 했을 때 녀자는 원하던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활짝 웃었다. 가슴속을 가득 채우는 충일감이 녀자를 기분좋게 했다. 녀자가 크게 숨을 내쉰다. 그래,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하지 않는가. 방법이 있을거다. 어렵게 어렵게나마 일은 늘 해결되여 왔지 않은가. 착하게 살면 복이 온다지를 않은가. 이 2년동안 내가 어떤 헌신을 해왔는데. 하늘도 눈이 있다면 나를 외면하진 못하겠지. 그런데 꿈에 왜 하필 뱀을 본걸가. 녀자가 손을 마주 비빈다. 손바닥이 눅눅하다. 

오래전 녀자는 많은 뱀을 죽인적이 있다. 갓 다섯살을 넘긴 아들애가 밤이면 화들짝 놀래며 자주 깼고 쉬이 진정이 되지를 못했다. 처음에는 여름이라 날씨가 더워서거나 모기때문인줄 알았다. 자주 반복이 되고 놀라서 깬 아들애가 우들우들 떨자 례사롭게 넘길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른 아침을 먹고 뻐스를 타고 시내병원에 갔다. 의사는 선천적으로 심장에 문제가 있다고 했다. 아들애의 가슴과 련결된 모니터에서 가파르게 오르내리고 있는 파란 선들을 바라보며 녀자는 망연자실했다. 

이게 건강한 사람이면 이렇게 오르내려야 하거든요? 그런데 보다싶이 지금 얘는 이렇게 기복이 심하게 오르내리지 않습니까? 심장박동이 고르지 않다는거죠. 의사가 볼펜으로 가르키는 모니터에는 널뛰기하듯 뛰는 녀자의 마음만큼이나 급박하게 선들이 움직이고있었다. 심전도검사를 받고 있는 아들애는 가슴에 빨갛고 파란 선들이 련결된채 겁에 질린 눈으로 녀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놀래거나 울었으면 차라리 나았을 일인데 아들애는 멀거니 녀자만 바라보며 얌전히 누워있었다. 치료를 하다가 좋아질수도 있고, 정 안되면 큰병원으로 가봐야 됩니다. 약을 받아 손에 들고 아들애를 업고 버스부로 오는 길에서 녀자는 몇번이고 발을 헛디뎠고 하마트면 아들애를 놓칠번 했다. 덜컹거리는 시골뻐스 차창너머 이제 막 초록으로 물들고있는 여름산을 바라보며 녀자는 한숨을 쉬였다. 아들애는 장난도 안하고 얌전히 막대사탕을 입에 문채 앞만 바라보고있었다. 녀자의 가슴에 통증이 전해왔다. 

그날 저녁, 밭일을 마치고 돌아온 남편한테 녀자는 의사의 말을 전했고 남편은 길게 한숨을 쉬였다. 녀자는 밤마다 놀래서 깨여 우는 아들애를 안고 눈물을 삼켰고 남편은 애꿎은 담배연기만 피워올렸다. 담배 좀 그만 피우쇼, 애가 호흡이 더 안좋게 되지 않슴까. 녀자는 남편한테 신경질을 부렸고 남편은 멀거니 악을 쓰고있는 녀자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였다. 한숨은 왜 쉬냐고 녀자가 짜증을 냈다. 남편은 그만 못하냐고 소리를 질렀다. 엄마, 아빠 싸우지 마쇼. 그때마다 아들애가 울다말고 녀자의 옷깃을 잡아뜯었다. 녀자는 아들애를 껴안고 울었다. 

" 혹시 뱀을 잡아 심장을 먹이면 어떻겠소? 병원약보다 그게 낫다는구만. "

" 예? 그게 무슨? "

저 웃동네 누구도 심장이 나빠서 병원에서 다 내놓은걸 뱀 심장을 몇십갠가 먹고 나았다는데. 

" 예? 정말임까? 뱀을 잡아 심장을 먹이면 낫는담까? "

한동네 사는 아줌마 하나가 넌지시 던지는 말에 녀자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남편한테 뱀을 잡아오라고 했고, 친정동생한테도 부탁을 하고 동네 청년들한테도 뱀 한마리에 얼마씩 돈을 드릴테니 잡아달라고 부탁했다. 녀자의 남편이 뱀의 배를 갈라 심장을 빼냈고 녀자는 그 심장을 숟가락에 받쳐들고 아들애를 달래서 먹였다. 그렇게 며칠을 먹인 어느날 신기하게도 아이는 놀래지 않고 밤새 잘 잤다. 이거다, 녀자는 아들애의 병만 나을수 있다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뱀을 싸그리 잡아서라도 아들애한테 먹일 각오가 돼있었다. 

                                                          글쓴이 하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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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몽(蛤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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