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동안 11시를 넘겨 퇴근한 나는 백기투항 하고 말았다. 더이상 버티다가는 몸이 도저히 남아날것 같지 않았다. 모든 996의 시스템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청춘들한테 심심한 애도의 마음을 전한다. 나는 공장장한테 양해를 구했다.

“공장장님, 조수일은 좀 힘들것 같습니다.11시 퇴근도 이렇게 힘든데 1시, 2시 까지는 무리일것 같습니다.”

“그래. 그렇게 해.”

공장장은 쿨하게 대답했다.

“통역들은 8시 반 퇴근이죠?”

“인사는 뭐라 그러든?”

“아침 8시부터 8시 반까지라 그러던데요?”

“맞아. 통역들은 8시 반이면 퇴근이야.”

“그럼 저 이만 퇴근할께요.”

“그래.”

나는 그 길로 단부장을 찾아갔다.

“어때 결정했어.할만해?”

단부장은 마치 내가 올 줄 알았다는 듯이 먼저 물었다.

“조수일은 시간도 길고 힘들 것 같습니다. 만약 한다면 월급을 지금의 2배는 주셔야 할것 같습니다.”

중국의 현 로동환경에서 개인이 불이익을 받았을 때 회사를 상대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있다해도 그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와 별반 다를바 없다. 법의 힘을 빌릴 수는 있겠지만 그 것 또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모양새다. 조직이 자발적으로 개인을 위해 바뀌는 일도 결코 없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수밖에 없다.어차피 떠나기로 마음 먹은거 이것 저것 눈치볼 거 없이 일단 던지고 보는거다. 받으면 좋고 아님 말고.

“그건 불가능할거야. 너 먼저 조수로 온 애도, 사무실에서 공장장 바로 앞에 앉은 애 있지? 걔가 그 일을 1년 넘게 했는데 월급은 계속 그대로야. 걔가 오더도 관리하면서 조수일까지 하려면 너무 힘들어서 사람 하나 더 쓰기로 결정한거야. 내가 사장이였으면 걔를 벌써 잘라버렸을거야. 참 맘에 안 들어.”

모든 직장인들은 파리목숨이다.

“회사규정상 다른 사람 월급을 묻고 다니면 바로 해곤데 내가 걔 월급명세만 보여줄게. 자 여기 보이지? 5500.여기서 500은 기름값인데 저번달부터 처음으로 주기 시작한거야. 걔가 자기 차로 출퇴근하잖아?그러니까 실질적인 월급은 안 변한 셈이지. 그러니까 니가 요구한 월급은 불가능한 액수야.”

부장은 나한테 특정인의 월급만 보여준답시고 명세서에서 한줄만 남겨놓고 다른 부분은 뒷면으로 접어버렸다. 하지만 움직임이 더뎠던 바람에 나는 첫 줄부터 마지막 줄까지의 액수를 재빠르게 훑을수 있었다.

“예전에 통역들 월급은 3500이였어. 그냥 룡정주위의 농촌에서 조선말만 할수 있는 사람이면 뽑았거든. 통역들 보험 들어주기 시작한지 얼마 안돼.그런데 같은 값이면 공부를 한 사람을 뽑는게 낫지 않겟어?”

이 인간들이 경영이론을 아주 개떡으로 안다.

공평성이론의 창시자인 아담스(J.Stacy. Adams)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의 투입(교육,경험,노력,능력 등 포함)과 산출(월급,복지,승진,지위 등)을 비교함으로써 자신이 정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지를 판단한다. 이는 직원의 업무태도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요소이자 경영자들이 제일 골치 아파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여기서 인간의 비교대상은 ‘타인’ , ‘제도’와 ‘자아’ 3가지로 분류된다.

우선, 인간은 같은 조직, 혹은 다른 조직에서 자신과 비슷한 일을 하는 ‘타인’과 자신을 비교한다.이 경우 아래와 같은 공식이 성립된다.

QP/IP=QX/IX

여기서 QP와 IP는 개인이나 자신의 보상과 투입에 대한 인식이며 QX와 IX는 ‘내’가 ‘타인’의 투입과 보상에 대한 감수성이다.

첫째,QP/IP=QX/IX일때 직원은 자신의 보상이 공평하다고 느끼며 원래의 노력과 적극성을 유지한다.

둘째, 만약 직원이 QP/IP>QX/IX라고 느끼면 처음에는 미안한 마음에처음보다 더욱 열심히 일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보수에 상응하는 노력을 하고있다고 느껴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간다.(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마지막으로 QP/IP<QX/IX경우, 직원은 보상에 불만을 가지게 되며 이직하거나 보수를 올려달라고 요구하거나 노력을 줄임으로써 평정심을 유지한다.

이회사 다른 직원들과의 월급과 비교해봐도 남의 집 996과 비교해도 이건 아니다.

또 인간은 타인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과도 비교를 한다.

QPP/IPP=QPL/IPL

여기서 QPP와 IPP는 현재 자신의 보상과 투입을 나타내고 QPL과 IPL은 자신의 과거를 나타낸다. 이 심리과정이 조직에 미치는 결과는 타인과의 비교와 동일하다.

공식까지 겻들여가며 격식화된 언어로 쓰여졌지만 그냥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소리다. 경영학리론도 가끔 철학처럼 어렵고 복잡하게 푸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인간심리와 깊이 관련이 있는 월급제도는 회사경영의 최고의난제이다. 때문에 대부분의 경영자들은 투명하고 공평한 월급제도를 실행하는 대신 직원들의 월급을 철저히 비밀에 부치는 것으로 앞으로 발생할지도 모를 인재 이탈과 반발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한다. 때문에 독일이 남녀임금격차 해소를 목적으로 시행중인 ‘임금공개법’을 제정할 때에도 기업주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혔었다. 하지만 숨길수록 더 알고싶은 것이 인간심리이고(나만 그런가?) 인간의 입은 태생적으로 비밀유지에 부적합하게 만들어졌는 바 한 회사내에서 서로 타인의 월급은 기본적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반대로 직원들의 열정을 자극할 목적으로 월급 정산하는 날 직원 한명 한명의 월급을 그 자리에서 불러주는 회사도 있다.

“그럼 저 통역 하겠습니다. 그건 가능하겠습니까?”

경영학도 과학이다 .나는 아담스의 이론에 충실히 반응했다. 앞의 두 길(이직,월급 인상)은 이미 막혔으니 내가 할수 있는 것은 노력을 줄이는 것 뿐이다.

885=3000,886=4000,8027=5000,그러면 50h=1000이란 결론이 나온다.

당신이라면 어떤 것을 선택하시겠는가?

나는 886을 선택하기로 했다. 나도 이 일을 배워서 공장을 차릴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해.”

“통역은  8:30분에 퇴근이죠?”

“인사는 뭐라고 말하든?”

(이 회사 사람들 참으로 이상하다. 왜 다들 인사한테 물어보래? 부장이나 공장장이 일개 사원보다 업무 파악이 덜 된거야 아님 끗발이 약한거야?)

“8시 반까지라던데요?”

“그래, 그럼 8시 반이겠지. 그렇게 해”

“…? 알겠습니다. 그럼 저 이만 퇴근하겠습니다.”

“그래.”

나는 입사이후 처음으로 “칼퇴”를 하…는줄 알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숙소에 돌아와 자려고 누웠지만 이날따라 반찬이 부실했던 탓인지 배에서 연신 꼬르륵 소리가 나면서 도저히 잠들수가 없었다. 나는 시계를 쳐다보았다. 시침이 11을 가리키고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나는 주린 배를 부여잡고 슬리퍼를 질질 끌고 주방으로 내려갔다.

주방에는 나 먼저 내려온 사람들이 여러명 있었다. 재단쪽과 완성반 기술원들이 야식을 먹으려고 가마솥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어,마침 잘왔어. 우리도 막 면 삶는 중이야. 니 것까지 좀 더 삶으면 되겠네.”

“그럼 부탁드립니다.”

주방에 있는 재료는 면과 계란이 전부였다. 그래도 시장이 반찬이라고 각종 양념과 계란을 고명으로 얹은 면은 그런대로 먹을만했다.

“매일 이 시간에 야식을 드세요?”

나는 면을 우물거리며 물었다.

“어. 중간에 한번 먹어줘야 돼. 안 그러면 2시,3시까지 못 버텨.”

“너 많이 먹어야겠다. 그렇게 약해서 어디 일하겠냐? 너 100근은 되냐?”

(이 아저씨들이 왜 남의 몸무게를 묻고 난리야?)

“아니요.”

“어때 맛 괜찮지?”

“네, 맛있는데요?”

빈말이 아니라 진짜 주방장이 한 것보다 훌륭한 맛이였다.

“그럼. 누가 한건지 봐야지.”

맛은 있는데…갑자기 서글퍼졌다. 남들은 이 불금에 데이트다 클럽이다 신나게 놀 시간에 나는 지금 여기서 아저씨, 할아버지들이랑 뭐하는 짓이지? 갑자기 눈물이 찔끔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나와 같은 처지의 처자가 또 있었으니, 식사가 거의 끝나갈 때쯤 사무실 맨 끝자리의 어린 오더 담당 여자애가 식당앞에서 기웃거렸다.

“들어와. 지금 끝난거야?”

“휴~네.”

여자애가 한숨을 쉬며 의자에 걸터앉았다.

“너도 면 삶아줄까?”

“아니예요.전 계란만 먹을께요.”

여자애는 주방에서 젓가락을 찾아서 자리로 돌아왔다.

“얘가 여기 금방 왔을 때는 너보다 더 말랐었어.내가 이렇게 찌워놓은 거야.”

여자애는 소리없이 웃기만 했다.이들한텐 늦은 시간의 한끼가 이젠 익숙한가 보다.

“아,밥 먹고 완성쪽에 와서 말 한마디 전달해줘. 통역이 없으니 영 이사소통이 안된다.”

“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얻어 먹었으니 밥 값은 해야 한다.

우리는 먹은 그릇을 싱크대에 넣어놓고 다시 공장으로 향했다.

재단과 봉제쪽은 아직도 불이 환히 켜져있었다.나는 류공장장을 따라 완성반쪽으로 걸었다. 밥을 먹어서인지 슬슬 눈꺼풀이 내려오려고 하고 있었다.

“오늘은 몇시까지 하시나요?”

“포장 다 해서 차에 실을때까지. 아까 그 차 봤지? 창고 문앞에 서있던거.”

완성쪽엔 아직 기술원들과 북한 직원 열댓명이 남아 출고를 앞둔 옷을 포장하고 있었다.

“이 사람들 통역 해주면 돼.”

인수인계를 끝내고 공장장은 자기 할일을 하러 떠났다.

“네. 전할 말이 뭐예요?”

나는 완성반 기술원한테 물었다.

“아직은 없어.이따 포장중에 문제가 있으면 얘기해줄께?”

기술원은 나한테 눈길도 주지않은채 포장된 옷을 박스에 집어넣으며 대답했다.

“엥? 그럼 저도 끝날 때까지 남아 있으라는 거예요?”

“어.”

(이런 미친…)

““그럼 대충 몇시에 끝나는지는 알려줄수 있죠?”?”

“그건 정확히 모르겠다. 1시가 될수도 있고  2시가 될수도 있고…”

(이 인간들은 1,2시가 뉘집 개이름인 줄 아나?)

“어이구, 그럼 전 이만 가볼께요.”

늦게 퇴근하는 게 힘들어서 그나마 일찍 퇴근하는 통역업무를 지원했는데 이렇게 되면 전이랑 다를게 뭐야?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숙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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