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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모아산인가.
십년전에 비해 눈이 홱 돌아갈 정도로 모아산은 변신해있다.
기차역전에 있던 호랑이가 모아산입구에 떡 하니 와서 앉아있고 사람의 손이 많이 간듯 화단에 꽃이 이쁘게 피여있다. 작은 나무정자도 보인다. 모든게 잘 가꿔져있다. 화장실도 번듯하게 세워져있다.
많이 변했구나.
그는 화장실에 들어간다. 번듯한 외관과는 달리 냄새가 진동을 한다. 수세식이 아니라서 그런가보다고 생각하며 돌아선다. 손을 씻으려고 보니 비누 한조각 보이지 않는다. 한국은 공중화장실이 참 잘돼있는데 여긴 겉만 번지르르하네. 그는 중얼거리며 씻지 못한 손을 들고 화장실을 나온다. 한참 섰다가 길을 가로질러 나무로 된 계단밑에 이른다. 계단을 따라 오른다. 여름샌들을 신었지만 걷는데 무리가 없을 정도로 계단은 평평하게 만들어져있다. 십년전에는 흙길이여서 비오는 날은 미끌어서 가관이였는데 그 흔적은 찾아볼수 없다. 이렇게 계단을 조성해놓으려면 돈이 많이 들었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계단을 따라 걷는다. 숲에서 풍겨져나오는 아침공기는 제법 시원하다. 앞에서 등산티에 등산바지, 등산화까지 잘 갖춰신은 중년 여자 두명이 팔을 앞쪽으로 내밀어 기역자로 뻗고 힘차게 걷고있다. 이 정도 산도 산이라고 히말라야라도 정복할 태세로 옷차림을 갖추고 나왔남. 그는 괜히 아니꼬와진다. 그러고보니 츄리닝에 곤색 반팔티를 입고 샌들을 신은 그가 산에 더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푹 웃음이 나온다. 두 여자가 쫑알거린다. 한국에 있을때는 말이야. 그때는 그렇게 연길 오고 싶었는데 오니까 또 가고싶어. 왜 이런거야? 그래? 실은 나도 그래.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또 가야지? 그럼. 가야지. 나누는 대화를 들어보니 여자들은 아마 그처럼 한국에서 금방 날아온듯 싶다. 하긴 요즘 연변사람치고 한국에 한번이라도 안가본 사람이 있을가. 그만큼 한국은 가까운 곳이고 뗄래야 뗄수 없는 고국이다. 한국에서 돈을 벌고 울고 웃고 그 한국 때문에 그도 촌에서 이 도시로 이사를 오고 아파트에서 살게 된것이고 그 한국에서 손가락 세 개가 잘렸다. 그 한국에서 보낸 십년동안 그는 일에 목숨 건 사람이 되여있었고 안해는 다른 남자의 품을 그리워한것이다.
모든 것이 꿈이였으면 좋겠지만 단 하나의 거짓도 없는 현실이다.
그는 그 사실을 생각하니 가슴에 통증이 느껴진다.
계단을 오르다가 보니 계단옆에 사람들이 소원을 빈듯 크고 작은 돌들이 탑을 이루고있다. 하나하나씩 쌓은 돌들이 저렇게 탑을 이루다니.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저기에 돌을 올려놓은거야. 게다가 탑은 하나가 아니다. 계단오른편에도 있고 왼편에도 있다. 누가 저렇게 소원들을 많이 빌었을가. 무슨 소원을 빌었고 그 소원들은 얼마간이라도 이루어지긴 했을가. 그는 그런 생각을 하다가 눈길을 돌렸다.
그가 여자를 본것은 그 찰나였다. 시들하게 돌탑으로부터 눈길을 거두던 그 순간, 여자 하나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언제부터 서있었는지 그와 대각선으로 서서 돌탑을 바라보고있는 여자. 안해보다 나이가 많아보이는 여자는 작고 마른 체구에 옆얼굴이 까무잡잡하다. 여자는 무슨 소중한걸 바라보듯 돌탑을 노려보다가 결심이라도 한듯한 표정으로 계단을 내려서 돌탑으로 다가선다. 가장 큰 돌탑앞에 멈춰서서 팔을 한껏 추켜올리더니 꽉 잡았던 주먹을 펼쳐 손바닥절반도 안될만큼 작은 돌을 조심스럽게 탑 가장자리에 올려놓는다. 잠간 눈을 감고 기도를 하는듯 서있던 여자는 뒤걸음질로 물러서서 다시 돌탑을 바라본다. 저게 뭐라고 저다지 신경을 쓰는것인가. 나이답지 않게 뭐하는 짓인가. 그는 여자를 흘깃 바라본다. 여자도 그의 시선을 느낀걸가. 여자의 눈과 그의 눈이 허공에서 부딪친다. 여자가 혀를 홀랑 내민다.
돌탑을 바라볼때 여자는 세상을 다 살아버린 사람같은 표정이였다면 그를 향해 혀를 홀랑 내미는 여자는 아직 때묻지 않은 무구함을 갖고있다. 마흔중반쯤 되었을가. 아니 어쩌면 그보다 어릴수도 더 나이 들었을수도 있으리라. 여자나이란 그렇게 가늠하기 쉬운것이 아니지를 않은가.
''저기,''
''네?''
여자가 웃으며 머리를 가리킨다. 그는 얼떨결에 손을 머리께로 뻗었다. 뭔가 뭉클 손에 잡힌다. 손을 내려보니 기억에 가물가물한 나무에 붙어사는 파란벌레다. 그는 벌레이름이 뭐더라 하고 머리를 갸우뚱하다가 손을 흔들어 털어버리고 게면쩍게 웃었다.
''등산 좋아하시나봄다. 이 아침에 여기까지 올라오신걸 보니.''
여자가 웃으며 말을 건넨다.
''아…네. 뭐''
그가 말끝을 흐린다.
''사실은 머리가 아퍼서. 아 그게 아니고.''
그는 자신의 답변이 너무 어설프다고 생각하며 과장되게 소리내여 웃는다.
여자가 웃어보인다. 돌탑을 다 쌓았으니 볼일을 다 본 모양인지 돌아서서 계단을 가로질러 어디론가 간다. 멀거니 여자의 뒤모습을 바라보다가 급기야 그는 여자가 간 쪽으로 걸어간다. 왜 그쪽으로 가는지는 그도 말할수 없다. 그냥 발이 그쪽으로 갔다라고 하는게 이유라면 이유가 될수 있겠다. 아무튼 그는 그렇게 간다. 너무 바싹 따라가면 이상하게 생각할것 같아 일정한 거리를 두고 여자의 뒤를 따라갔다.
안해는 지금쯤 뭐하고있을가. 아들은 학교에 갔을테고 안해는 늦은 아침을 먹고있을가. 이른아침에 집을 나간 그를 생각하고있을가. 그는 지난 십년을 생각한다. 모든 것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시간이 지났고 안해는 이제 더 이상 그가 이끄는대로 따라오고 그만 알던 순하디순한 어린 여자가 아니다. 막 말을 번지기 시작하던 아들은 이제 코밑이 거뭇해지고 묻는 말에 건성으로 대답한다. 그가 비행장에서 훌쩍 커버려 그의 아들이라는게 믿어지지 않는 아이한테 두팔을 벌려 껴안으려고 했을때 아이는 어색한듯 고개를 돌렸다. 뭉텅이로 짤려나간 필름같이 그 십년의 간격을 넘어 어떻게든 앞뒤로 맞추어보려고 해도 도무지 맞추어지지 않는 퍼즐이 그의 현실인것 같다. 그가 욕망에 몸부림치며 보냈던 그 불면의 밤들에 그의 안해도 욕망으로 달구어진 몸을 뒤척일거라는 생각을 왜 못했던걸가. 참아야 한다고 이겨내야 한다고 악을 쓰듯 살아온 십년, 과연 무엇을 이겨냈고 무엇을 얻었단말인가. 그는 답할수 없어 막연해진다.
어제밤, 그의 잘린 손가락이 가슴에 닿았을때 안해는 어떤 느낌이였을가. 방금전 그가 느꼇듯이 벌레가 기여가는 징그러운 느낌이였을가. 안해는 잠간 비껴나갔던거고 가정을 지키려고 지금 애쓰고 있는걸가. 만약에 그렇다면 그가 이 화산같은 마음을 억누르기만 하면 모든것이 제자리로 돌아올수 있는걸가. 발밑에 묵은 나뭇잎들이 밟힌다. 해살이 나뭇가지 사이로 비춘다. 그는 제법 통이 굵은 나무를 손으로 짚어본다.
그는 자신에게 묻는다. 아무것도 못본듯이, 아무 의심없이 모든것에 태연할수 있냐고.
그러나, 그는 대답할수 없다.
고개를 들어보니 여자는 보이지 않는다.
배가 고파난다. 간이의자에 앉았다. 먹을것은 없다. 그는 물을 한모금 마신다. 식어버려 미지근한 물이 식도를 타고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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