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실패했다. ‘나는 실패했다’고 말하기가 무서웠다. 마음 한 구석의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두고 입 밖으로 내뱉기를 두려워했다. 내뱉는 순간 나의 나약함을 세상에 알리고 그것을 변명으로 삼아 보상받을 수 있는 동정이라고 여겨왔다. 이러한 ‘변명’과 ‘동정’은 나를 성장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만과 나태의 늪으로 빠져들게 하는 것이라고 단정했다. 늘 비관적인 정서와 싸워야 하고 머릿속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만 믿어왔다. 긍정적인 태도로, 낙관적인 마음가짐으로, ‘괜찮아’ 외치기를 무한반복하면서 눈앞의 해야 할 일들에만 매달렸다. 

    좋지 않은 결과에 직면하더라도 금세 잊어버리고 바로 정신을 차리고 “철인(鐵人)” 코스프레에 몰입했다. 삶은 도전이고 그 도전에 준비된 자세로 책임을 다 임해야 하는 것이라고 인지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지런함의 미덕은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부터 성인이 다 되어서도 책이나 미디어 매체를 통해 항상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흥부와 놀부』부터 우리가 가장 가까이 접목할 수 있는 영화나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열심히 노력하는 주인공이 최후의 성공을 이루어내는 것으로 엔딩의 막을 내리는 것이 다반사다. 이렇게 보고 듣고 배워왔으니 노력하는 태도가 진정 올바르게 사는 것의 기준이 될 수밖에 없었고 나는 이렇게 사는 것이 잘못됐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습관이 낳은 아픈 결과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지만 ‘나는 실패했다’를 말하기가 언짢았다. 실패를 했다면 그것은 나의 능력의 한계이거나 100에 도달하는 정력을 쏟아 붓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판정했다. 궁극적으로 책임은 나에게 있고 세련된 성인답게 과거의 실패에 전전긍긍하거나 잘못된 선택이라고 후회하지 말자는 것이 거의 신념처럼 작동했다. 자연의 섭리처럼, 당연지사로 내 생활의 원칙이 되어버렸다. 힘듦과 피로를 망각한 채 나를 방치하고 있었다. 결국 밸런스를 파괴당한 나의 ‘엔진’은 폭발을 일으켰다.

    내가 서울의 한 대학교에서 석사과정을 수료하고 졸업을 하려고 논문과 투쟁을 하던 무렵이다. 이십대의 후반이지만 아직도 학생이다. 오랫동안 캠퍼스에 몸을 담그고 있어서인지 나는 어색하지 않지만 주변의 시선들은 다양한 섞임의 반응이다. 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한 이 희열을 온 몸으로 느끼면서 멋스럽다고 여겨왔다. 쉽지 않은 길이다. 공부가 어려워서, 연구를 하는 과정이 어려워서, 학자의 고상함을 지켜야 되어서만이 아니다. 본분을 지키는 일을 빼고 어른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할 때가 있다. 특히 독립을 해야 하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할 때가 많다. 보통사람인데 보통처럼 살지 못하고 있다고 괴로워했다. 그리고 그해 여름, 8월에 졸업을 하려고 애를 썼다. 논문이 통과되지 못했다. 뜨거운 혈액이 역으로 순환하는 것 같았고 오장육부의 진통이 머리와 사지를 마비시켰다. 그날, 부정당한 나의 논문으로 인해 나는 모든 것에 회의를 품기 시작했다. 숨 가쁘게, 착실하게, 배웠던 대로 살아왔다. 문득 잘못 살았나 싶기도 했다. 잉여의 존재라 인식하면서 그토록 발버둥을 쳐왔는데, 그래도 실패할 수는 있다. 이것은 단순한 실패가 아니다. 실패로 분노가 끓어오르는 게 아니다. 그동안 살아온 방식이 회의가 들만큼 고통스러워하는 내가 비참해보였고 그토록 애를 써왔으면서도 그것을 회의하는 내가 못난이가 된 것 같아 화가 났다. 비뚤어지고 싶어졌다. 평소대로라면 실패에 연연하지 않고 강해지려고만 했겠지만 이번만큼은 실패에 끙끙 가슴앓이를 해보고 싶었고 앞만 보고 내달리지 않고 과거도 챙겨가면서 깊은 생각과 고민에 빠져보고 싶었다. “나는 실패했다.”를 내뱉었다. 그것도 큰 소리로, 이런 느낌이었구나! 내가 정해놓은 금기를 파괴했다. 후련했다. 실패에 전전긍긍하며 시간을 갖고 여유를 부려 봐야 하겠는데, 쾌감은 오래 가지 못했고 불안감의 엄습으로 잠시 부풀었다가 그만 중단되었다. 여유를 어떻게 부려야 하는지도 잘 몰랐다. 

    그리고 졸업을 한 지 3년이 된 지금도 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사는 방법을 잘 알지 못한다. 직장을 다니면서 쉬는 동안에는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운동을 하거나 독서를 하거나 인문학 강의를 듣거나 등등의 행위로 빈 시간을 채워야 마음이 편하다. 삼십대가 시작되면서부터 더욱이 시간이 아까워졌고 비어 있는 시간을 알차게 잘 써야겠다는 강박관념과 허투루 보냈을 때 밀려오는 자괴감이 나를 가만히 있지 못하는 인간으로 만들어버렸다. 

    모두가 다 그러한 것은 아니겠지만 사실 나처럼 사는 청춘들이 대부분인 것 같다. 보통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치열하게 살아야만 청춘답고 젊은이답다는 이 사회가 정의내린 틀 속에서 보통의 일상을 살지 못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젊어서 고생은 돈 주고도 못 산다”에 속아 고생을 찾아서 해야만 하는 것과 그 논리로 각인된 사람들 속에서 얼마나 치여야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 보상을 위한다기보다 그저 설 수 있는 자리, 있을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치이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적절하다고 보아야 하는 게 맞지 않나 싶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라, 이같이 열정을 식히지 않고 살려면 항상 끓어오르도록 가동된 엔진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것이 청춘다운 마땅한 자세라고 함은 인색한 구두쇠나 다름없다. 자신에게 무책임한 구두쇠 말이다. 여유로움을 즐기는 방법을 모르고 얼떨결에 즐긴다고 하더라도 자신으로 대변되는 익숙한 대상의 낯선 모습에 두려움과 공포를 느낀다. 스물과 함께 몰려오는 자유의 혼들이, 몸에 장착된 ‘구속’이라는 갑옷을 벗겨내려고 한다. 그 갑옷만 벗으면 의젓한 어른이 될 것이라는 착각에 어른 흉내를 내지만 미숙하거나 여기저기 치여 남긴 상처의 땟자국이 그대로다. 보통사람으로 살아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지만 사회가 만들어낸 ‘청춘’의 기표는 젊은이들에게 다양한 수식어를 씌워준다. 수식어라는 모자가 늘어나고 그것에 부응하여 살아가야 하는 청춘은 오늘의 사회에서 덜 자유로운 가(假)청춘이라고 함이 마땅하지 않은가 라는 질문을 던져보게 된다. 

    나는 특별해지기 위해서라기보다 나를 위한 삶을 살아보려고 노력을 하며 조금씩 변하기로 마음먹었다. 퇴사를 하고 익숙했던 생활환경을 떠나 새로운 곳에 머무르면서 머리로만 구상했던 해보고 싶은 것을 몸으로 움직여 체험하고 있다. 삶이 끝날 때까지 어떻게 살아야 맞는지에 대한 해답을 모르는 듯이 사회와 시대가 정해놓은 청춘다움, 어른다움에 대한 정의(定义)도 사실은 근사한 허울일 뿐이고 주변에는 참 많은 “어른아이”가 우리와 함께 동행 하고 있다. 나도 그 가운데의 한 사람으로 가(假)청춘에서 서서히 벗어나 내가 움직일 수 있는 보통의 속도로 나만의 보통 이야기를 만들어가려고 한다. 

    결국 우리는 보통의 삶을 엮어가며 사는 보통 사람일 뿐이다. 대개 유사한 사회 환경 속에서 어렴풋이 한 번씩 누구나 느끼는 감정을 공동으로 느껴보고 주먹을 쥐고 이 세상에 왔다가 힘을 놓고 이 세상을 떠나며 갈무리하는 것도 똑같이 경험해야 하는 일이다. 누구나 이렇게 살아가기 때문에 특별한 것이 없으니 그저 자신의 속도에 맞춰 도덕을 넘지 않는 선에서 무조건적인 열심히 하다가 아니라 지나간 청춘이 아깝지 않을 만큼 지금의 나에게 충실하며 미래에 과거를 뒤돌아보았을 때 “그래도 무의미하지는 않았구나!”라는 말을 과감히 꺼낼 수 있는 지금을 잘 사는 삶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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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쉬는 시간에 뭐라도 하면서 빈 시간을 채우는 일인으로써, 뭐라도 해야만 마음이 踏实해지는 기분이 드는 일인으로써, 저도 비슷한 생각을 많이 하면서 살고 있는거 같습니다. 삼십대 중반에 들어서니 성공에 대한 가치관도 조금씩 변해가는거 같고. 가족들이랑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기도 하고. 우리 모두의 청춘을 응원합니다 🙂

    1. 피드백 감사합니다 🙂 저도 조금씩 느끼는 것이지만 새롭게 맞이하는 연령대마다 머리와 마음으로 떠올리는 객체의 순위에 변화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가치관에도 변화가 생기고 자신을 알아가는 정도가 분명해져 가는 것 같습니다.

  2. 저는 석사를 일년 연기했더랬습니다. 지도교수 연구실 문앞에서 노크를 하려 손을 들었다 내렸다 도망쳤다 돌아왔다 하기를 몇번이고 반복했지요… 여러가지 두려움에 싸여서.. 근데 지금 이렇게 펀펀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교수님과 한시간 반동안 털어놓고나니까 오히려 힘이 되더라구요. 조바심을 내는데 따라가기 쉬운 현실이지만 그래도 한템포씩 멈추면서 자신에게 맞추는게 훨 좋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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