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미쳤었나봐……”

    K양은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대책을 세워달라는 듯이 애처로운 눈빛을 하고 있었다. 

    약 3년 전이었다. 잊을 수 없었다. 그날, K양이 털어놓았던 고민, 그 뒤로 뜬금없이 만약 그때의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리고 지금의 “나”는 어떠한 선택을 했을까 생각한다.

    뜨거운 햇볕을 등지고 나는 부랴부랴 한 카페를 향해 걸어갔다. 오래된 고향 친구이지만 서로 하는 일이 다르고 나름 열심히 살려고 애쓰는 우리에게 한 번 약속 잡기란 힘든 일이었다. 어렵사리 오랜만에 드디어 만나게 된다는 기쁨을 안고 걸어가는 나의 발걸음은 빨라질 수밖에 없었다. 등에 송골송골 맺힌 땀은 척추 라인을 타고 비 내리 듯 흘렀다. 더위와 싸우며 인파속을 뚫고 카페 앞에 도착했다. 급기야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K양은 반갑게 일어서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날도 역시 그녀는 맑은 눈동자에 거짓 없이 자신에 대한 모든 걸 털어놓기 시작했다. 

    K양과 나는 알고 지낸지 거의 20년 정도 된다. 초등학교 때부터 쭉 알고 지낸 사이지만 중학교부터는 다니는 학교가 달랐고 연락이 뜸해졌다. 그리고 고등학교, 대학교는 더 말할 나위 없이 멀리 떨어져 있게 되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결국엔 다시 같은 곳에서 만나게 된 우리, 비록 다른 환경에서 다른 분야의 일을 도맡아 하고 있지만 그동안 함께 하지 못했던 시간을 되돌리며 그 사이에 생긴 일들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시간이 가는 줄을 모르고 긴 수다를 늘어놓았다. 나는 학교생활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긴 에피소드를 얘기했고 그녀는 자신의 일터에 대한 얘기를 했다. 그러던 중 맑은 그녀의 눈동자가 흐릿해지더니 후회스러운 표정을 하고 입술을 꼭 깨물고 날 쳐다보았다. 

    “저기…… 나 어떡하면 좋지……” 

    나는 의아해 하며 무슨 일이냐는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입술을 다문 채 쉽게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답답한 나는 그녀를 뚫어져라 보았다. 그녀는 깍지 낀 두 손에 힘을 주고 길게 한숨을 쉬더니 말하기 시작했다.

    “나…… 지금 영어 학원에 다니고 있는데…… 사람들이 내가 중국인인줄로 알아…… 한족으로……”

    “그게 뭐가 어때서? 짧은 인연으로 만나는 사람들인데 뭐 어때…… 큰 일 난줄 알았네!”

    “아니야…… 별일 같지 않아도 내가 엄청난 거짓말을 했어…… 사람들은 내가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어를 진짜 잘한다고 칭찬 엄청 해줘…… 중요한건 내가 그걸 즐기고 있는 것 같아…… 아무도 나를 의심하지 않았을 때 같은 반인 한 오빠가 너 조선족이 아니냐고 했을 때……”

    그녀는 두려움에 가득 찬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 아니라고 대답했다…… 이건 나답지 않은 대답이야…… 중국인이라고 했을 때 왜 이렇게 한국말을 잘 하냐고 하면 꼭 조선족이라고 밝혔는데…… 내가 무언가에 홀린 것 같아…… 큰 거짓말을 했어, 그것도 돌이킬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을 속였어…… 미안하기는 한데 솔직하게 이제 와서 고백 할 자신은 없어…… 무서워……” 

    “괜찮아…… 실수 할 수도 있지 뭐 그래…… 신경 쓰지 말고 영어 공부나 잘하세요!”

    “죄책감이 들어…… 그리고 예의치 않은 거짓말을 한 내 자신이 너무 어이없고 창피해…… 나 늘 무시 했었어…… 빠른 적응을 위해 이곳에 억지로 자신을 끼워 맞춰 인사이더로 살아남으려는 자들…… 그러면서 지금 나도 그들과 똑같은 사람이 되어 가고 있어…… 나 변해가고 있는 것 같아……” 

    “너도 사람이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그 집단에 소속되고 싶어서 튀어나온 말일거야…… 사람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어차피 학원 끝나면 다시 보지 않을 사람들이잖아…… 지금 중요한 게 무엇인지만 생각해!”

    K양은 바르르 떨고 있었다. 이 일이 그녀에게 그토록 충격적이었을까……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나의 한 마디 한 마디에 그녀는 실망하는 눈치다. 그녀는 밀려오는 죄책감에 누군가가 자신을 심하게 혼내주길 바란다고 했다. 처음엔 그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으려 했다고 한다. 영원히 혼자만 알고 있는 비밀로 간직하려다가 죄책감에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아무나 잡고 말해보고 싶었다는 그녀, 그렇게 자신이 한 거짓말에 대한 책임을 다 할 수 없는 것에 괴로워하면서 결국 나에게 말했다. 그녀는 학원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자신을 아주 대단하게 여긴다는 것이었다. 능숙한 2개 국어에 영어도 뒤처지지 않게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자신은 그러한 상황이 즐겁고 좋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를 골치 아프게 하는 것은 솔직하지 않았던 자신에 대한 실망과 언젠가 똑같은 거짓말을 또 하게 될 불안감이라고 고백한다. 조선족을 배신한 기분이 든다고, 사람들을 만나고 공부하는 것은 좋은데 언젠가는 들통이 날 것이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고백을 해야 하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럴만한 용기가 없다고 한다. 그녀는 극심한 딜레마에 처한 상황이라고 한다. 

    똑같은 경험은 아니지만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 일들을 겪은 적이 있는 게 분명했다. 나 뿐만 아니라 조선족이라면 한 번쯤 겪게 되는 일, “넌 한국인이야, 우리나라 사람이라고.”, “당신은 어느 나라 사람이라고 생각합니까?”, 등등의 질문들, 참 쉬운 질문일 수도 있지만 나는 쉽게 단정 지어 답하지 못했다. 마치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처럼 가혹하고 폭력적인 질문이었다. 대답을 할 수는 있지만 조심스럽고 대답을 잘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앞섰다. 그 한 번의 대답으로 질문자는 나라는 개인에 대해 평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조선족에 대한 인상을 정립하고 자기방식대로 조선족 공동체에 대한 “아는 지식”을 늘어뜨리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XXX 영화에서 나오는 조선족의 이미지는 늘 흑화 된 역할로 그려지는데 이토록 대중에게 편파적인 모습으로만 비춰지기 때문에 그 대중들이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 전에 스크린을 통해 부각된 이미지는 부정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하여 객관적인 판단을 흐려지게 하는 것에 일조한다. 초반에는 나는 중국 국적이고 민족은 조선족이며 증조할아버지가 조선인이고 고향이 XXX라고 설명을 했지만 한국 사회가 외부인을 포용할 수 있는 정도가 출신국의 양상에 따라 온도의 차이가 달랐기 때문에 더 이상 설명을 하고 싶지 않았다. 

    만약 내가 K양과 같은 환경에 처하였다면 나는 더 솔직해 질 수 있었을까…… 고백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나도 K양처럼 다시 고백할 용기는 없었을 것이다. 거짓말이라는 게 들통 날 것이고 그 뒤로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인지 쉽게 추측이 가기 때문이다. 조선족을 처음 접촉하는 사람한테는 “나” 한 사람으로 인해 역시 조선족은 속임수에 능숙한 집단일 것이라는 인식으로 각인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조심스럽게 행동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구질구질한 변명을 늘어놓겠지. 

    그녀는 결국 학원을 그만 두었다. 이유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단순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나는 누구인가?”에 해당하는 다양한 답변은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그것은 어쩌면 한 개인을 억압의 궁지로 몰리게 하는 일종의 번뇌일지도 모른다. 나는 꼭 누구여야 하는가? 그럴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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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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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국에서는 한국국적 한국사람 한민족 모두 Korean으로 설명하죠. 하지만 저의는 중국국적 중국사람 조선족이죠.다르자나요. 한국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워하는것 같습니다. 근데 저는 자신이 조선족인걸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봐요. 다른 나라면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만 한국이기 때문에 만약 북한에 가더라도 교류를 하는 상대에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생가합니다.

  2. 유학 할때 제가 조선족이라고 설명했더니 인도 사람이 저에게 그럼 너는 북한에서. 왔니 아님 한국에서 왔니?라고 해서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나네요, 그래서 나는 중국에서 태어났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어릴때 부보님 따라 북쪽에서 건너왔다. 하지만 그때는 남북이 나뉘어 지지않았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3. 공감합니다. 매번 조선족이라고 설명하는 것도 귀찮고, 매번 의심의 눈초리를 감내해야 한다는 것이 억울하기도 하지만, 이것이 과거부터 한국에서 형성된 조선족 집단의 이미지라서 어쩔 수 없네요. 누구도 이러한 이미지 형성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요.(한국인이든 한국에서 조선족이든) 작가님의 친구분께서 마음 고생이 많았겠어요ㅠㅠ 우리가 조선족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한 우리 세대부터 실제 행동으로 이러한 인식을 바꿔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시간이 걸려도 적어도 우리 후대에게까지 이러한 편견을 물려주지 않으려고 노력해야죠.(뭔가 역사의 빚을 내가 갚는 느낌이랄까….)

  4.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몇년전 한국에 간지 얼마 안됐을때 아직 사투리 억양이 조금 남아있을 때인데 중국에서 왔다고 하면 암묵적으로 한족이라고 생각하더라고요.저도 부연설명을 안 했구요.한국말 잘 한다고 하면 그냥 “네”하고 어색하게 웃곤 했지요.글의 여자분처럼 죄책감 비슷한 기분도 들면서 화가 나기도 하더라구요.죄지은것도 없는데 왜 스스로 나의 정체성을 감추고 있지 하는 생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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