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첫모금을 마시고 “캬~ 꿀맛이다”라고 감탄사를 뽑아올리지만 맥주 맛을 꿀맛에 비유하는 건 너무 게으르고 안일한 비유법이다. 더운 여름날, 빡세게 머리를 굴려 일하고 땀을 훔치며 마시는 로천 꼬치집에서의  한잔 맥주가 어디 꿀맛 정도던가? 세상에 다시 없는 황홀한 맛이다. 달고 시원하고 쌉싸름하고 풍성한 것이 식도를 타고 흘러들어가는 그 느낌은 가히 황홀하다. 

    머리 속 얽히고 설켰던 실타래가 홀연 풀리는 기분? 찌그덕찌그덕 돌아가던 녹슨 치륜에 윤활유가 쳐지는 것 같은 기분? 그도 아니라면 온몸의 세포에 반짝 불이 켜지는 기분? 

    과함은 아니함만 못하더라고 그 향이 황홀한 맥주가 량을 초과하면 이 모든 황홀했던 기분을 상쇄하고도 남을 고통이 몸을 덮쳐오기도 하지만 그 첫잔의 황홀함을 아는 사람은 쉬이 맥주를 밀쳐내지 못한다. 

    고향을 떠나 타지에 발 붙였을 때, 가장 외로웠던 순간은 홀연 맥주가 생각났을 때와 맥주를 마실 때였다. 가슴 한켠 밀려오는 씁쓰레한 서러움이 있었다. 

    맥주를 같이할 사람이 없다는 것과,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의 맥주가 없다는 것이 나를 홀연 외롭게 만들었다. 

    뜨뜻한 맥주를 아무렇지 않게 무심한 표정으로 상에 올려놓고 가던 식당 복무원 아주머니가 생각난다. 맥주잔으로 이 빠진 사기잔을 놓고 가는 복무원에게 애매한 화가 올라왔다. 사기잔은 좀 아니지 않냐고 했더니 실팍하니 무던하게 생긴 아주머니가 “괜찮아요. 다 한가지잖아요.(没事儿,不都一样嘛。)”라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돌아섰다.

    그게 어떻게 같은 건가요? 엄마가 떠주는 봉긋한 공기밥과, 학교 식당 아주머니가 나무칼로 긁어서 담아주는 밥이 같은 건가요? 라며 속으로 울부짖었다. 

    시간이 흘렀고 이 낯선 타향에도 계절이 바뀔 때쯤 가끔 가다 맥주 한잔할 술동무들이 생겨났고 안주가 입에 맞는 단골가게가 생겨서 처음 왔을 때의 서글픔은 잊은 지 오라다. 

    몇년 전, 한국에 갔을 때 오랜만에 그 외로움을 느꼈다. 맛있는 치킨을 앞에 놓고 나는 내 입에 생소한 한국 맥주의 야박한 맛에 난감했다. (순전히 내 개인 의견이니 한국 맥주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내 의견 따위 가볍게 무시해도 좋다.) 량순하고 두터운 보리의 맛은 없고 엷고 알싸한 맛만이 입안을 자극하는데 그대로 삼켜야 할지 뱉어야 할지 몰라 나는 울상이 되여버렸다. 

    거의 1년을 지내다 보니 나중에는 점차 적응이 되여 그런 대로 그 맥주를 마셨지만 종내 그 맛을 사랑하지는 못한 채 귀국하였다.

    맥주가 유난히 맛있었던 일본의 이자까야가 생각난다. 작은 테이블 세개 정도의 아주 작은 가게였다. 탄력 있고 풍성한 거품이 딱 적당한, 미끈한 잔에 찰찰 넘치는 맥주는 마시기도 전에 이미 사람을 매혹시키고 있었다. 그 첫모금은 그날 낮에 봤던 유명한 명승지의 감격을 잊게 했다. "그래 바로 이거지, 그깟 산사 뭐 볼 거 있다고." 싶은 기분이 되여버렸다. 잠간 감각의 노예가 되여버린 것이다. 

    그 한잔의 생맥주의 기막힌 맛이 뇌리에 박혀 일본에 있는 한달 동안 나는 모든 물건의 가격을 생맥주 값으로 환산하고는 했다. 쌀 5킬로가 3천엔이라고 하면 생맥주 6잔이네 하는 식으로 계산을 하고는 했다. 

    미용원에 가서 머리 한 번 자르는 데 4천엔이라고 해서, 그 생맥주 8잔에 해당하는 돈이 아까워서 나는 귀국할 때까지 텁수룩한 머리를 하고 저녁이면 동네 이자까야에서 생맥주를 홀짝거렸다. 그 맛이 기막힌 맥주도 같이 즐겨줄 사람이 없으니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자 조금은 지루해진 것도 사실이였다. 

    또 한번의 인상 깊은 맥주는 청도 야시장에서 후배와 같이 마셨던 비닐주머니에 담긴 맥주이다. 후덥고 믿음직한 맛이라고 할가? 구수한 것이 부드럽게 식도를 타고 넘어가자 저도 모르게 입이 다셔졌다. 

    우리는 시끌벅적한 청도 야시장에서 목청 높이 거의 소리를 질러가며 이야기를 밤새 나누었다. 어떤 말을 했던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후에 곱씹어보니 후배는 전문인재에 대한 사회적인 불존중에 대해 분통을 터뜨렸던 것 같고 나는 맛있는 맥주에 대해 감탄하다가 사회생활의 어려움에 대해 추상적으로 지저귀였던 것 같다. 

    그것은 대화라기보다 목청껏 내뱉는 '제좋은 소리'에 가까웠다. 아무려면 어떤가. 맛있는 맥주가 있었고 내 말을 곡해 없이 잘 알아줄 거라 믿을 수 있는 맘에 드는 상대가 있었으면 그만이다.

    맛있는 맥주와, 맥주에 집중할 수 있는 장소와, 같이 즐길 수 있는 맘 맞는 상대까지 삼자가 완벽할 때는 아주 적었던 것 같다. 맥주가 맛있으면 장소가 마땅치 않았거나 같이 즐길 상대가 여의치 않았던 것 같다. 

    언젠가 고향 선배에게 그런 넉두리를 했다. 내가 사는 이 곳 북경은 맥주나 안주는 훌륭하나 맥주 마실 분위기와 같이 할 지기가 별로 없어서 영 맛이 안 나고  한국은 안주나 분위기는 훌륭하나 맥주 자체가 맛이 없으며 일본은 맥주는 탁월하나 안주가 별로고 같이 즐길 상대가 없다고. 

선배가 그랬다. “어떤 맥주집은 맥주는 맛있으나 마른 명태가 별로이고 또 어떤 가게는 둘다 훌륭하나 마른 명태 양념이 별로네라. 그냥 살거라. 그리고 느껴라.”

    이제는 이 빠진 사기잔에 부어 마시든, 뜨뜻한 맥주가 나오든 다 잘 마실 수 있다. 마음에 안 드는 상대와도 가볍게 한잔할 여유는 있다고 자부한다. 그냥 마셨고 느꼈다. 마시다보니 뜨뜻한 맥주도 그 나름의 구수한 향이 있어서 썩 괜찮았고 그렇게 마시다 보니 마음에 안 드는 상대에게서도 반짝이는 우점이 보였다. 나는 누구에게 반갑기만 한 상대일가 하는 자아성찰도 해보면서. 

    따지고 보면 맥주 맛, 맥주 마실 장소, 맥주를 같이할 상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맥주를 맛있게 마시고저 하는 내 마음의 상태이다. 맥주를 향한 사랑만 있다면 그깟 이 빠진 사기잔이 무슨 대수겠는가. 같이 마실 상대를 어여삐 보고저 하는 마음만 있다면 분위기가 무슨 대수겠는가. 그냥 마시고 그냥 느끼는 것, 그냥 살고 그냥 느끼는 것… 그것만이 답이다. 

    다시 펼쳐 읽고 싶은 시가 있어서 또 살아가는 것이라고 어느 시인은 썼다. 하나를 더 보탠다면 다시 또 마시고 싶은 맥주가 있어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하고 싶다.

    마셨던 맥주와, 그 맥주를 마셨던 장소와 같이 마셨던 이들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긴 인생의 어느 한 시간을 외롭지 않게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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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gs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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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랜만에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코로나 때문도 있지만, 늦은 밤문화를 즐기기 힘든 이국땅에서 대부분 집에서 여러가지 맥주를 마셨는데, 오늘은 문득 좋은 안주도, 좋은 맥주도 없었던, 오직 친구들과 끝나지 않았던 스토리들만 있었던 그때 그 시절이 생각나네요. 글 마지막 구절과 다르게 저는 오히려 더 외로워지네요 ㅋㅋ 슬퍼지게서리

  2. 저는 청도에 온 뒤에야 비로서 맥주의 맛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전까지 연변에서 마셔봤던 빙천이나 북경에서 마셨던 연경은 쓴 맛만 기억에 남았었는데, 청도에 온 후 첨으로 ‘와~ 진짜 맛있구나’ 감탄했던 건 청도 맥주 박물관 참관 코스 제일 마지막에 주는 원액 한 잔이었습니다. 진짜 그 향이 참 좋았습니다. (ㅎㅎ 한여름에 참관하고 분위기에 또 시원한 맛에 곱절 더 좋게 느껴졌을 수도 있지만) 그후 청도 현지에서는 보통 음식점에 가면 “要一厂,还是二厂?“이라고 물어보는데 저는 좀더 맛이 진한 1창을 선호 합니다.
    몽실님의 글을 읽고 나니 코로나 시국이 안정된 후 저도 일본 현지에 가서 일본의 다양한 맥주를 마셔보고 싶습니다.
    한국에 한동안 지내면서 한국산 맥주를 마셔봤지만 크게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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