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스를 타고 가다가 문득 차창밖으로 눈길을 주었을 때 내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야트막한 울바자가 이쁘게 자리하고있고, 그 안으로 하얗게 회칠을 한 아담한 초가가 보이는 그런 풍경이였다. 울바자에는 무슨 넝쿨인가가 엄마등에 업힌 아기처럼 찰싹 달라붙어서 칭얼대고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파랗고 납작한것들이 요기조기 앙증맞게 달려있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앞에 나는 잠시 려로의 피로도 잊은채 영문 모르게 들떠있었다.

벽돌을 쌓아 콩크리트로 다진 담장이거나 혹은 우중충한 철사로 건물들을 비잉 두른 그런것들이 우리를 조이는것에 사뭇 숨막혀 어떤 체증에 시달리던 나는 참으로 오래만에 만나는 울바자라고 감히 칭할수 있는 그 정경앞에 어린애처럼 들떠있었다. 

울바자―

금방 나는 시골집아버지가 만드셨던 울바자를 떠올린다. 유난히도 손재주가 없었던 아버지, 아마 내가 살던 시골동네에서 가장 못생긴 울바자는 우리 집 울바자였을것이다. 굵기도 길이도 맞지 않는 참나무를 베여다가는 그대로 이리저리 8호선 쇠줄로 꿍꿍 엮어서는 집 둘레를 비잉 에돌아 세웠던 아버지의 울바자는 어린 내 마음에도 그렇게 못생겼을수 없었다.

그뿐인가. 그닥 촘촘하지도 못한 울바자는 때론 이웃집 암탉이 들어와서 앞마당을 헤집기도 하고 때론 아래 집 햇강아지가 들어와서 순라를 하고 가기도 했었다. 

유난히도 헐렁했던 그 울바자는 우리 네 형제에게 비밀통로의 역할도 확실하게 해주었다. 대문을 나가 비잉 에돌아가는 그 에두름이 싫어지면 우리는 그 허름한 울바자사이를 척 헤집었고 거짓말 같게도 아이 하나쯤은 온전히 빠져 나갈만한 틈새가 생기곤 했었다. 그 사이로 비비작비비작 빠져나가서는 빗장 지르듯 대충 잡아당겨 세워놓고 어데론가 환호성을 지르며 뛰여나가곤 했던 그 재미…

대체로 채소를 심어두는 뒤마당에는 따로 갓난애들 팔뚝만큼씩한 나무를 어슷어슷 엮은 촘촘한 울바자를 세워두어서 헐렁한 울바자가 갖다주는 불편은 별로 없었던걸로 기억한다.

시간이 지나 우리가 자주 헤집었던 그 울바자 사이는 다른 곳에 비해 유표하게 넓어지고 땅바닥도 우리의 잦은 발자국에 세멘트바닥처럼 땅땅히 굳어졌지만 부모님은 전혀 뭐라고 하지 않으셨다. 우리는 당연히 우리의 행각을 아버지는 모르실거라고, 우리에게만 열려진 비밀통로 하나를 우리는 온전히 갖고있다고, 잔뜩 부풀어진 마음에 까닭없이 설레며 봄을 맞이하고 겨울을 맞이하며 조금씩조금씩 즐겁게 커갔다.

그 울바자 사이로 얼마나 많은것이 오고갔던가? 

그 울바자 사이로 이웃집으로 혹은 뒤집으로, 앞집으로 떡사발이 오갔고 이른 가을의 잘 삶아진 감자를 담은 양푼이나 엿사발도 오갔다.

언젠가 나보다 십년 이상이였던 언니가 발갛게 상기된 두볼에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뒤집오빠한테 전해주라던 종이쪽지도 그 울바자 사이로 오갔었다.

그 울바자 사이에는 그렇게, 우리의 꿈이, 나의 동년이, 그리고 언니의 순정이 봄을 따라 가을을 따라 다녀갔었다.

그때 시골에는 몽골등에라는 무서운 등에가 있었다. 한여름이면 들판이나 혹은 강가에서 풀을 뜯다가, 혹은 밭에서 후치질을 하다가 벼락같이 고삐를 채가지고 마을로 뛰여들어오는 소떼를 볼수 있었다. 바로 몽골등에라는 무서운 놈의 작간이였다. 그 순하던 소가 몽골등에의 습격을 당하면 단 한순간에 포효하는 야수로 변해 날뛰는것이였다. 

안으로 굽은 뿔이 유난히 뾰족했던 뒤집 부림소나 덩치가 유난히 컸던 누구네 얼룩소가 마을로 뛰여들어올 때면 우리는 겁에 질려 얼른 울바자안으로 들어가 숨군 했었다. 

못생겼지만 참나무를 통째로 엮은 든든한 우리 집 울바자가 우리를 굳게 지켜줄거라는 확고부동한 믿음이 있었기에 우리는 울바자뒤에만 숨으면 그 미쳐날뛰는 소떼들도 겁나하지 않았다.

한여름 갑작스런 천둥이 때리는 날에도 나는, 그리고 우리 형제는 울바자안으로 기여들어오기만 하면 금방 안도할수 있었었다.

그 시절 못생긴 아버지의 울바자는 투박하지만 그렇게 넉넉할수 없었던 아버지의 성품만큼이나 따스하게 우리 형제를 품어주었다.

가쯘한 널판자에 페인트칠까지 새하얗게 먹인 선이네 울바자는 우리 마을에서 가장 이쁜 울바자였다. 

청일색 흰바자에 파아란 대문이 있고 거기에 빨강기와가 있고 눈부신 하얀 벽과 마당 어느 쪽에 하늘거리는 봉선화나 다리아가 어우러진 풍경은 그때 내 또래 모든 친구들에게 동화 그 자체였다.

투박한 여느 농군과는 다르게 마을에서 합작사를 하셨던 선이아버지는 항상 눈부시게 하얀 샤쯔에 주름이 칼날같은 바지를 입고 윤기 흐르는 머리칼을 반짝거리던 멋쟁이셨다. 아마 내가 본 남자중에 가장 멋진 남자를 꼽으라면 나는 당연히 그 우리 시골마을 합작사 최경리― 선이아버지를 꼽을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이쁜 울바자가 있고 멋쟁이아버지가 있는 선이네 집은 우리가 다가가고 마음대로 들락거릴만큼 편한지는 못했다. 

어덴가 모르게 딱딱하면서도 쌀쌀맞은 아낙네같은, 이쁘고 화려하지만 정이 가지 않는 그런 아낙네의 몸짓 같은것이였다고나 할가.

방과후에 애들이 뛰노는 놀이터는 거의가 못생긴 울바자를 두른 우리 집 마당이거나 삽작문이 찌겅 하고 귀찮은 소리를 내며 우는 누구네 마당이거나 했다.

선이네 마당에 가서 놀려는 아이들도 없었거니와 선이도 선뜻 자기 집으로 초대를 안했었다. 그만큼 선이는 우리하고 잘 어울리지 않았기도 했다

삶은 감자를 나눠먹거나 이리저리 해여지고 물이 난 옷차림에 가마치를 들고다니고 장알박힌 투박한 손에 소고삐를 잡은 아버지가 있는 우리와, 언제 보나 고운 새옷을 산뜻하게 받쳐입고 우리한테는 명절에나 볼가말가 한 사과나 과자를 시큰둥하게 바라보는 상큼한 비누향이 나는 아버지가 있는 선이네 사이에는 필경 넘을수 없는 강이 있었으리라.

울바자는 공간적인 경계표지가 아닐가. 그리고 원시적인 사고에서는 신역을 나타내는 표지이기도 하다.

내 집앞을 막은 나트막한 경계선도 울타리이고 성이나 국경도 하나의 울타리이다. 

작게는 하나의 가정 크게는 한 민족, 한 나라를 지켜주고 나와 다른 사물과의 어떤 구분점이나 경계를 나타내는것이기도 하지 않는가.

내것과 남의것을 구분하는 경계의 상징같은 울타리―

나트막하고 약간은 허술한 울타리는 어쩐지 푸근하고 어덴가 허점이 있어서 오히려 사랑스럽고 따듯한 아낙네가 떠오르게 한다.

내것과 남의것의 구분을 모르는 그런 울타리가 없는 풍경보다는 도를 넘지 않는 그러한 구별점도 갖춘 현명함이 보이는 풍경이 더 아름답지 않을가.

빈틈없이 가쯘하여 범접할 그 무엇이 보이지 않는 울타리같은 녀자보다는 약간은 들쑥날쑥하기도 하고 어덴가 엉성하여 조금은 만만해보이기까지 하는, 그래서 누구라도 다가설수 있을것 같은 그런 녀자가 좀더 사랑스럽다는것이 나름대로의 나의 기준이다.

흔히들 우리 조선민족의 문화는 농경문화이고 울타리문화라고 한다. 

보호라는 사회적 기능과 안과 밖의 구별이라는 심리적 기능, 거기에 미적, 실용적 기능을 아우른 울타리문화는 우리 조선민족선인들의 능동성과 지혜를 그대로 보여주는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 같다.

하나의 세계를 감싸 외부의 불길한 세력이 안으로 들어오는것을 방어한다는 뜻도 포함된 울타리는 평화와 휴식의 내밀한 공간을 보장하는 그러한것이 아닌가.

이런 의미에서 울타리는 행복한 가정과 나아가 모태가 가지는 상징적 의미와도 통한다.

하지만 이제 정겹게 감히 울바자라고 불리울수 있는 울타리는 우리의 생활속에서 서서히 사라져가고있다. 

내가 사는 이 도시에도 매일같이 새로운 건물이 일떠서고 새로운 변화가 도래한다. 고층건물이 즐비하게 늘어서고 날카로운 창을 박아놓은듯한 철담장이 그 어떤 든든한 수호신마냥 우리의 아파트문화에 울타리가 돼주고있는것이다. 

관리가 잘되여 경비 튼튼한 아파트단지는 우리의 몸은 온전하게 보호해줄지 몰라도 딱딱하고 차가워진 우리의 마음까지는 다독여주지는 못하리라.

그 옛날 허름한 울바자사이로 오가던 그 끈끈한 인정세태, 그리고 아름답게 커가던 동년의 꿈이 얼마나 값진것이였는지를 다시 한번 떠올려본다.

울바자를 사이두고 오갔던 그 수많은것들이 이제 우리가 한 울타리안에서 문과 문을 사이두고도 찾아볼수 없다.

매일매일 한 아파트단지내에서 계단을 오르다가, 혹은 내리다가 부딪치는 꼭같은 얼굴을 마주하고도 우리는 아무런 표정없이 전혀 이방인같은 얼굴로 스치고지난다. 울바자 사이로 무단침입하는 동네 멍멍개나 꼬꼬닭도 이쁘게 봐줄수 있었던 그러한 넉넉함을 우리는 잊고 사는것이다.

누구네 집 삽작문이 열려있으면 대신 닫아주기도 하고 자물쇠가 뭔지 몰랐던 그 풋풋한 인정세태속에서 넉넉하게 어우러지며 살수 있었던 그것은 얼마나 값진것이였던가.

아버지가 그립다. 

못생겼지만 온전하게 든든하면서도 우리 네 형제의 동년의 꿈과 추억이 이쁘게 오갈수 있었던 울바자를 만들줄 아셨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넉넉함이 그리워진다.

감히 울바자라고 불리울수 있는 그런 울타리가 그립다. 

울바자가 있는 풍경, 그것이 야트막하고 앙증맞은 울바자라면, 파랗고 빨간 넝쿨들을 등에 업고 다독여줄줄 아는 그런 울바자라면, 가끔 지꿎은 병아리도 들락거릴수 있는 그런 마음가짐을 가진 울바자라면 얼마나 아름다운것인지를 이제 나는 비로소 알것 같다.

이제 나는 그런 울타리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싶다.

그것이 나 혼자만의 아름다운 꿈은 아니리라.

김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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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몽(蛤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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