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다 된 아이가 부친에게 "아버지는 왜 내가 상을 받아도, 좋은 일을 해도 칭찬을 하지 않나요?" 라고 질문을 한다. 부친은 대답을 하지 않는다.
아이에게 칭찬과 격려를 하는 법을 모르는 부친이 있다. 부친은 채찍만이 아이의 교육에 도움이 되고 겸손하고 사회에 민폐가 되지 않는 바른 사람으로 자라는 데 필요하다고 여겨왔다. 물질적인 당근은 부친의 능력으로 역부족이고 정신적인 당근은 예의를 버리고 오만함이 부각된 성격을 형성시켜준다고 판단했다.
늘 가족, 친척 그리고 지인들의 찬사를 받으면서 "머리 좋은 아이", "공부를 잘하는 아이" 로 인정받은 부친은 지금의 말로 하면 '엄친아'인 것이 분명하다.
부친은 아이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려고 했다. 적어도 부친 본인이 알고 있는 만큼 아이도 알아야 하는 것 혹은 더 많이 알아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 부친이 주변인들에게 '엄친아' 이미지로 각인된 것처럼 아이도 그러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사진 출처: 위챗 공식계정 潮人
아이는 즐겁지 않지만 부친과 부친의 지인들 앞에서 부친이 희망하는 모습으로 연기를 한다.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 혹은 혼자일 때는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 조금이라도 숨이 잘 쉬어지는 순간이기에 갑갑하지 않고 자유의 숨결이 느껴진다.
부친의 억압이 진솔하지 못한 아이를 만들어냈다.
아이는 큰 눈을 항상 부릅뜨고 있는 부친이 무서웠다. 아이에게 크고 엄격한 부친은 넘을 수 없는 가파른 바위 언덕이었다. 부친의 존재는 항상 그림자처럼 아이를 따라 다닌다. 어디를 가도 바위 언덕은 어둑하게 곁에서 아이를 노려보고 있다. 부친의 말을 따라야만 했고 아이는 자신의 의견을 내세울 수가 없었다. 그냥 마음속으로 자신의 생각을 되새겼고 입 밖으로 내뱉었을 때 부친에게 부정당할 것이 분명함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그저 "네" 라고 대답만 밥 먹듯이 한다.
아이는 커가면서 부친 앞에서 바른 아이, 내면에는 불만이 가득 찬 염세주의자가 되어 갔다. 아이는 상황에 따라, 만나는 사람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이는 다중인격체인 스스로가 버거웠고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자신의 정서를 갉아먹고 있는 점을 발견했다. 아이는 부친의 마음에 들기 위해 부친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 애를 쓰며 '엄친아'가 되려고 노력했고 부친에게 그러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아이가 갈망하는 칭찬과 격려가 아니라 부친의 질문이었다.
"우리의 거리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니?“
아이는 부친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을 거라곤 예상을 못했다. 아이는 부친을 이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부친을 넘어서면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너의 할아버지도 나에게 칭찬과 격려를 해준 적이 없단다. 나의 할아버지도 나의 아버지에게 칭찬과 격려를 해준 적이 없다."
캠퍼스를 벗어나 사회인으로 거듭날 때 아이는 부친을 초월했다. 학력도 넘어섰고 부친보다 아는 것도 많아졌고 본인이 알고 있는 것을 부친에게 말해줄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부친은 여전히 칭찬과 격려를 하지 않는다.
"인정을 받으려고 영혼이 남루해질 때까지 갖은 노력을 다 해도 칭찬과 격려는 없었다. 증조할아버지도 증조할아버지의 아버지도…… 증조할아버지의 아버지의 고국도……"
아이는 허탈하다. 부친을 넘어섰지만 예상을 빗겨간 결과 때문에 본인의 판단이 파괴되었으나 그것을 수용한다. 이제는 더 이상 타협의 여지가 보이지 않고 외면할 수는 있어도 사라지지 않는 흔적으로 남게 되었다. 부친을 넘어서면 인정을 받고 확연히 혹은 입체적으로 본인을 인지하고 자신감도 생겼을 텐데 이대로 영원히 어긋날 부친과 아이의 관계 때문에 아이는 지속적으로 질문한다.
"참된 나는 누구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일까?"
위태로워 보이는 아이에게 부친은 부친의 "모친" 이야기를 이어간다.
"내가 지금 이렇게 살아 숨 쉬고 있지만 너나 나나 사실은 고국으로 회귀할 수 없는 처지라 부친이 부재하기는 마찬가지다. 회귀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더라도 처음부터 그곳에 살던 사람과 그곳을 떠나 이방인이 되었다가 다시 돌아가 정착하여 그곳에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은 서로 다른 의미이니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하니 내가 받지 못했던 칭찬과 격려를 나한테서 바라지 마라. 나는 그것을 너에게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모른다. 부친이 부재하니 모친의 품에서 있는 그대로의 스스로를 지키는 수밖에 없다. 부친이라고 하는 수많은 뿌리 가운데 적지 않은 뿌리가 처음 잉태했던 땅을 떠나 송두리째 뽑혀 여기저기 내버려지고 찾은 곳이 지금 살고 있는 모친의 품이다. 다행이 우리를 거둬들인 너그러운 모친이 있기에 너의 할아버지 그리고 증조할아버지가 가르친 것을 잊지 않고 잘 보존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는 근엄해야 하는 부친의 의도를 조금은 알아차린 듯하다. 명확한 경계선을 소유하고 있지 않는 우리에게 칭찬과 격려는 사치이고 있어야 할 자리와 주어진 위치가 어디인지 불분명한 채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흐트러지면 아니 되는 사명감을 떠안아야 했다.
아이는 더 이상 칭찬과 격려를 바라지 않았다. 부친과의 거리가 어느 정도인지 재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부친과 아이의 거리는 항상 고무줄처럼 멀어지면 팽팽해져 긴장감이 돌고 가까워지면 느슨한 상태가 되어 서로에게 관심이 없다. 아이는 아이와 부친의 실제 고국과 지금의 부친과 아이를 존재하게 한 "조국"과의 거리도 따지려 하지 않았다.
"우리가 어디쯤에 서 있고 우리의 거리가 어느 정도가 되는지 따지지 말거라. 부친은 그것을 말해줄 수가 없고 부친의 부친도 알 수 없는 것이니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 대해 고민을 하지 말거라. 칭찬과 격려에 대한 욕망을 버리고 부끄럼 없이 너의 결을 지켜내며 살아가면 된다."
근엄하고 성실하게 그리고 떳떳하게 살아야 하는 것을 삶의 원칙으로 삼고 있는 부친은 오직 그것만이 살길이라고 여겨왔다. 특히 고국의 땅이라고 일컫는 그 곳에서 이미 미운털이 박힌 채 살아가고 있는 부친과 같은 사람들은 수도 없이 많지만 그 사람들 전부가 '악마'인 것은 아니다. 부친, 그리고 부친과 같은 사람들은 달러의 가치가 상승하던 시기에 증조할아버지가 가족을 거느리고 지금의 "모친"의 품으로 갔을 때처럼 육체노동을 마다하지 않으며 "부친"의 품으로 가보는 것으로 선택했다. 부친은 아이와 달리 부친의 품으로 돌아갔지만 부친을 넘어설 수 없었다. 오히려 점점 초라해져 가고 있었고 아이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부친"의 품에서 냉대와 차별을 받으며 버텨온 과정을 아이는 반복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기에 부친은 아이에게 여지를 주지 않았다. 그렇게 부친은 아이가 부친에게 바라는 기대치를 낮추고 떨어뜨리는 데 집중했고 이 신념을 지켜내고 있다.
사진 출처: 나의 사진첩
아이는 지금까지 칭찬과 격려를 받지 못했던 것이 본인의 문제라고 여겼고 따라서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아이는 부친을 넘어섰다고 생각했으나 좀처럼 시원하지가 않다. 부친을 넘어서면 자연스레 칭찬과 격려가 따를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아이는 부친을 초월해도 이것은 진정으로 넘어선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부친도 아이도 좁혀지지 않는 거리를 무엇으로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모른 채 어디쯤에 서 있어야 적절한지도 모른다.

참 아버님이 마음 아프기도 하고 서로 안타깝기도 하고 그런 글이네요.
글 속의 부친과 아이의 거리가 좁혀졌으면 좋겠지만 더욱이 세계 각 곳으로 흩어져 간 동포들과 고국과의 거리도 좁혀졌으면 좋겠네요…
어떻게요? ㅋㅋㅋㅋ 한때는 조금씩이라도 좁혀지면서 가능하다고 믿었는데, 아닐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어느 한 책의 제목을 인용하여 봅니다. “잘 살아라 그게 최고의 복수다”, 어디서든 잘 삽시다. (글의 내용이랑 상관없을수도 있지만 웬지 생각나서…. ㅋㅋ)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