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의 봄

권아

요즘, 내가 살고 있는 대륙의 북방도시는 비로소 코로나사태로 인한 봉쇄가 풀리고 있다. 아직 마스크는 착용해야 한다고 하지만 자유로운 바깥출입도 허락되고 있다. 오래 기다렸던 터라 나도 채비를 하고 강변산책을 나왔다.

갇혀 있던 시간이 길어서인가, 몸은 쉽게 바깥 공기에 적응하지 못한다. 어둠 속에 있다가 갑자기 빛에 노출된 사람처럼 몸도 마음도 어정쩡하기 그지없다. 세차게 소리치며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노라니 지난 겨울의 그 두꺼웠던 얼음이 언제 이렇게 풀렸는가 싶어진다.

스적스적 부르하통하 강변도로를 따라 걷노라니 내 안에 무언가 밝은 것이 스며드는 기분이 든다. 지난 시간동안 나를 못견디게 하던 어슴푸레한 장막의 더께들이 조금씩 내 안에서 밖으로 밀려 나가고 있었다. 봄이 왔구나, 그래, 봄은, 기어이 오고야 만 것이야. 나는 불어예는 바람의 부드러운 결을 느끼며 오랫동안 그리워 하던 어미를 만난 아이처럼 울컥해났다.

지난 겨울, 얼어붙었던 것은 이 강물만이 아니였다. 코로나19로 분류되어진 바이러스가 무한에 침투된 이후, 이 광활한 대륙의 땅 위에 평온한 마음으로 일상을 보낸 이는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설이 난무하고 있지만 최초의 바이러스가 유입된 경로는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언젠가는 밝혀지겠지만 그건 아마 좀 더 시간이 지난 뒤에 전문분야의 일꾼들이 할 일일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건 지난 겨울, 창가에서 밖을 내다 보면 사람 하나 안 보이던 거리와 굳게 셔터를 내리고 있던 가게들과 전례없던 마스크대란과 영상과 문자로 접했던 재난영화보다 더 참혹한 무한의 일상과 눈물과 비명소리들이었다. 병원의 침대가 포화상태가 되여 환자를 받을수 없고, 방호품도 인력도 부족한 상황에서 절규하며 죽어가는 생명들을 보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전민이 자가격리하라는 호소에 따라 집안에 갇혀 있던 그 나날들에 나는 매일 막연하게 인터넷에서 관련 소식들을 클릭해 보고 가깝고 먼 친지들과 문안을 주고 받으며 무한의 암담함에 대해 한탄하다가는 무기력하게 몸을 움직여 일용할 음식을 만들어 먹고 잠을 잤다.

끝날 것 같지 않던 시간들을 견디는 동안 할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었다. 자다가 깬 새벽시간에, 멀거니 창밖을 바라보다 뻣뻣해나는 다리를 움직여 돌아서는 순간에, 막연하게 자연의 봄을 기다리긴 했었다. 봄이 온다고 모든 것이 거짓말처럼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을것임을 잘 알고 있었지만 캄캄한 어둠을 헤쳐나가려면 빛이 필요해서 봄이라도 오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제, 2020년의 봄날은 종내 왔다. 하지만 나는 이 오매불망 기다리던 봄을 마주하고 웃을수 없다. 자꾸만 석연해지고 우울해지고 부끄러워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이 마음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언제나 그렇듯, 재난은 죽음과 이별은 이토록 급작스럽게 폭풍우처럼 들이닥친다는 것을 실감하게 하고 자연적인 것이든 인위적인것이든 재난 앞에 인간은 너무나 미약한 존재라는 것을 보여준다. 아비규환의 아수라장속에서 우리는 모든 허울을 벗어던진 차마 바라보기조차 힘들 정도로 민망하고 부끄러운 우리들의 민낯을 보았다.

이제 대륙의 바이러스 감염과 확산상황은 하락세에 들어섰고 개개인은 서서히 삶의 본연의 모습에로 되돌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무한은 신음하고 있고 지구촌으로 확산되어가고 있는 바이러스는 공포스럽기만 하다. 언제가 되어야 대륙의 지도에 저 빠알간 심장처럼 작은 점으로 표시된 무한이 흰색으로 돌아올지, 지구촌에서 코로나19가 종식되었다는 보도가 나올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이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서 자화자찬과 박수소리가 세차다. 재난의 용사들, 환자들을 구하는 일에 자신을 던진 백의천사들을 향한 찬양의 목소리는 마땅하다. 위급한 관두에 자신의 생명위험을 무릅쓰고 사명을 다한 그들은 갈채를 받아야 한다.

초기에야 어찌됐건 후기에 이뤄진 대륙의 통제와 방어 또한 훌륭했다. 다만 박수치는 일에만 열중하다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들마저 망각하게 될까봐 오롯이 밝혀두어야 할 진실들마저 묻히게 될까봐 두려울 뿐이다.

호각을 불었던 사람, 리원량을 아직 기억할 것이다. 이 봄을 끝내 기다려내지 못하고 생명을 마감한 나젊은 의사가 부딪쳤던 벽과 한 개인의 연약함을 기억할 것이다. 이 거대한 재난을 막기 위해 봉쇄되었던 무한과 외로운 섬 같은 그 안에서 공포의 나날을 견뎌야 했던 무한시민들과 스러진 수많은 생명들이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재난은 늘 닥치기 마련이고 우리는 그걸 피해갈 수는 없을 것이다. 중요한 건 우리가 얼마나 지난 시간의 교훈을 살려 초기대응을 잘하여 불필요한 희생을 막는가 하는 일일 것이고, 바른 목소리를 과감하게 낼 수 있고, 그 목소리가 묻히는 일이 없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2020년의 봄날은 왔다. 눈이 시리게 아름다운 저 초록의 하늘이, 마스크를 꼈지만 여전히 느껴지는 이 살랑거리는 따스한 바람의 결이 봄이 왔음을 말해준다. 푸른 물이 차오르는 저 나무의 힘찬 종아리가, 기어이 푸른 싹을 내민 저 풀들이 이제 완연한 봄임을 알리고 있다.

이 찬연하고 아름다운 봄을 마주하고 나는 다시금 내 귀로 전해지는 비명소리들과 환각처럼 눈앞에 어른거리는, 차마 두 눈 똑바로 뜨고 볼 수도 없고 감아버리고 외면할 수도 없어 가슴을 그러안고 신음했던 그 시간들을 다시 떠올려본다. 내가 마주한 이 아름다운 봄날이 누군가는 끝내 기다려내지 못한 봄임을 안다. 수많은 이들의 눈물과 아픔으로 바꿔온 봄임을 안다.

운동화 속에서 발가락을 안으로 꼬부리며 나는 2020년의 봄 앞에 몹시 부끄러워 입술을 아프게 깨물어 본다.

2020년 3월 28일 권아 씀.

이 글을 공유하기:

시선

너와 나, 우리의 '시선'

작가를 응원해주세요

좋아요 좋아요
2
좋아요
오~ 오~
0
오~
토닥토닥 토닥토닥
0
토닥토닥

댓글 남기기

글쓰기
작가님의 좋은 글을 기대합니다.
1. 아직 완성되지 않은 글의 초고는 "원고 보관함"에 저장하세요. 2. 원고가 다 완성되면 "발행하기"로 발행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