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도서관의 책속을 그 무슨 보물상자 마주한듯 두근두근 서성이다가 문득 눈길이 멈추는데가 있었다.
“33세의 팡세”
내손은 나의 사유를 거치지 않고 그 책을 뽑아 옆구리에 안고 있었다. 또 만났다. 이 책을, 그립지만 연락이 끊어졌던 친구를 만나듯 우연치 않게 다시 만났다.
처음 이 책을 만나던 때 제목도 이해하지 못했었다. “33세의 팡세” 지극히 종교적인 제목이라 생각했다. 분명히 신앙에 관련된 단어라고 생각했다. 후에야 알게 된것이지만 “팡세”란 프랑스어로 사색, 생각이란 뜻이란다. 그 유명한 파스칼의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란 문장이 있는 저서의 제목도 “팡세”였다. 아주 후에야 알게 된것이지만.
그러니까 “33세의 팡세” “33세의 생각”이란 이 책을 펼칠때 나는 20대 후반이였었다. 아직 지극히 센치멘탈한 감성을 지닌 내가 그 책을 펼쳤다. 그 책속에서 날 기다릴것이 무엇인지 모른채.
“태초에 아픔이 있었다.” 이런 문구가 내 마음을 쿡 찔러왔다.
그리고 거기엔 어린 작가가 있었다. 유치원 마당에서 이쁜 친구가 타던 그네를 자기도 이뻐지고 싶은 욕망에 떠밀려 타고 하늘로 훨훨 날아 오르던 어린 작가는 자기를 바라보던 다른 애들의 눈길을 본 순간 그네 아래로 추락하고 만다. 그 마음상함이 그 태초에 있었던 아픔처럼 칼이 되여 내 마음을 벤다.
그 책을 사랑하게 되였다. 헌데 사유에 의해  책의 초반부분만 읽었을때 나는 그 책을 돌려주게 되였다.
책은 주인한테 돌아가고 책은 내 마음에 남았다. 그 만져지던 촉촉한 어둠의 감성은 미완성인채 내 기억에 아름답게 남았다.
세월이 흘러 다시 10년쯤 지나 나는 한국에 가게 되였다. 날마다 하던 독서도, 내 식사같이 항상 필요하던, 노력하지 않아도 내 손이 가던 독서도 하루 내려놓고 이틀 내려놓고 하다보니 어느샌가 내 생활에서 멀어져 있었다.
하루는 알라딘 중고서점에 마음 먹고 찾아갔다. 더 이상 독서를 미루는것은 내 자신에게 미안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거기에서 나는 인연인듯 이 책을 다시 만났다. 어쩜 거기서 날 기다리고나 있었던듯이 내 앞에 나타나주는 “33세의 팡세” 오래동안 잊고 있었던 책. 그러나 잊혀진것이 아니고 그냥 가슴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었던 그 책. 나는 그 책을 안고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20대 그때의 기대를 품고 책을 펼치는 순간 그 안의 어둠이 날 덥썩 안았다. 나는 잊고 있었다. 난 이미 그때 20대 후반의 내가 아니고 이젠 40대에 들어서고 있었다는것을.  20대의 감성을 바라고, 그 잃어버린 감성이 이 책속에 들어있기라도 하듯이 기대한 내가 본것은 실망이였다.
그때의 어둠을 간직하기엔 난 이미 너무 멀리 와있었다. 그때의 어둠을 계속하기엔 나의 옆엔 사랑과 일상의 행복이 있다.
내가 동경하고 갈망하던것은 변하지 않고 그 자리에 있었다. 변한것은 나였다. 내가 변한것을 받아 들일수가 없어 나는 그것이 변했노라 우기기라도 할것 같다.
오래동안 마음에 품고 있던 책을 만나듯 살아가는 길모퉁이에서 우리는 부서진 꿈의 쪼각들을 만난다.
어린 시절 나는 작은 가슴에 아름차게도 작가와 화가라는 두개의 꿈을 간직하고 있었다.
초중시절 나는 화판을 메고 학교의 미술반에 발을 들여 놓았다. 화가라는 망연한 꿈을 살짝 건너다 본것이다. 내 화판속엔 그림 한장이 들어 있었다. 태양이 금방 떠오르려고 하는 저 멀리 산봉우리, 길은 구불구불 그 산봉우리까지 이어졌고 길 이쪽 끝엔 화판을 멘 여자가 그 태양을 마주향해 서있다 그림 아래 귀퉁이에 내 자작시 한수도 적어 넣었다. 두말없이 상징적인 그림이였다. 그 그림엔 내 꿈이 담겨져 있었다.
얼마동안 미술반에 다니다가 나는 그만 접어야 하는 시점에 다달았다. 미술반 애들은 공부는 하지 않고 온 하루 그림만 붙잡고 있는데 나는 학교 공부가 끝나면 마술반에 가서 한두시간 그리는게 다였다. 공부를 놓고 미술을 택하던가 미술을 놓고 공부에 집념하던가 두가지 선택중에 나는 미술을 놓아버렸다.
그림을 접었지만 화가의 꿈은 내 추억속에 아름다운 한 귀퉁이다. 이루지 못한 꿈이여설가. 가끔가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꿈의 기억들, 텔레비죤프로에서 어느 화가를 소개하면 어느샌가 빠져들어 보고 있고 웹툰에 매혹되여 네이버나 다음에 들어가면 웹툰부터 찾아본다. 어쩌면 어릴적 꿈 화가+작가의 쟝르라고 생각되여설가.
화가의 길은 그냥 길목만 서성거렸을뿐 발도 들여놓지 못하였다.
학창시절 편지로만 인연을 주고 받다가 멀어져버린 어느 친구처럼. 얼굴도 모르고 그냥 필체로만 보던 그 친구처럼 너무 그립지만 이제 만난다면 무엇을 얘기할수조차 있을가 하는 어려움을 느끼는것처럼 화가는 나에게서 이미 멀고 멀어졌다.
나는 “33세의 팡세”를 절반도 못 펼치고 한국에 두고 중국으로 돌아왔다.
고향에서의 시간이 얼마쯤 지난후 찾아간 도서관에서 문득문득 만나는 꿈의 잔재처럼 거기서 날 기다리는 “33세의 팡세”를 또 만나게 되였다.
하지만 빌려온 책을 나는 오래도록 펼치지 못했다. 그제날 빠져들던 감성이 아니고 물우에 기름뜨듯 어울리지 못하는 감성이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을가하는 두려움때문이다.
근데 책을 펼치지 않는 지금이 나는 좋다. 그 책속에 예전에 슬쩍 보았던 실망이 있을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젊은 시절 나의 어둡고 또 그 어두운 속에서 위로 받던 감성이 고이 접혀있을수도 있기 때문에 책은 펼치지 않는것이 더 좋을듯 하다.
많이 잊어져 갔던것들, 그러다 어쩌다 기억의 갈피에서 꺼내보며 아파했던 이루지 못했던것들. 어쩌면 어제날 이루지 못한 유감때문에 세월의 길목길목에서 만나는 그것들로 하여 나는 그립고 행복하고 또 자책한다.
펼치지 못한 책을 밀어놓고 나는 밖을 바라보았다. 계절은 또다시 봄을 선사하려나 보다.
가지 못한 길들에 대한 아픔을 버려버리고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에 대한 유감도 잊어버리고 나는 현실에만 충실하기로 했다.
하지만 봄이 깊어가는 이 밤. 나는 또다시 지나쳐버린 길, 잠간 스친 사람을… 그리고 “33세의 팡세”를 생각하며 어느 모퉁이에서 추억을 줍고 있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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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근데 책을 펼치지 않는 지금이 나는 좋다. 그 책속에 예전에 슬쩍 보았던 실망이 있을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젊은 시절 나의 어둡고 또 그 어두운 속에서 위로 받던 감성이 고이 접혀있을수도 있기 때문에 책은 펼치지 않는것이 더 좋을듯 하다.
    많이 잊어져 갔던것들, 그러다 어쩌다 기억의 갈피에서 꺼내보며 아파했던 이루지 못했던것들. 어쩌면 어제날 이루지 못한 유감때문에 세월의 길목길목에서 만나는 그것들로 하여 나는 그립고 행복하고 또 자책한다.”
    이 부분에 울컥했습니다. 담담한 단어들 또한 열정을 잠재우려는 노력처럼 보입니다. 그리워해서 다시 열어보지 못하는 기억들이 있지요. 마흔을 코앞에 둔 일인으로서, 공감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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