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울지 않게 되였다. 공항에서 게이트에 들어가는 남편에게 울지 않고 웃으며 몸 조심히 일해 수고해 하고 말할수 있게 되였다.

남편도 웃으며 울 마누라도 수고~ 하고 손 흔들며 떠나갔다.

곁에 어떤 50대 후반의 부부도 이별을 하고 있다. 남편이 간다~ 하고 인사를 하는데 아내는 대답이 없다. 곁눈으로 보니 아내는 울고있다. 60을 바라보는 부부도 이별을 하고 있다. 처음으로 되는 이별인가. 아니면 아직 이별에 익숙하지 못해서일가. 남편의 인사에 답을 못하고 아내는 말없이 울고 있다.

우리 부부가 처음 이별할때가 떠오른다.

세돐이 안된 아들애를 안고 나는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고 있는 남편을 바래고 있었다.

철없는 아들애를 아빠  빠이빠이 해라고 시켜주며 내가 울고 있다.

아들애는 떠나는 아빠에겐 건성으로 빠이빠이 하고 엄마를 달래주고 있다.

“엄마, 울지 말라 . 엄마, 울지 말라. 엄마, 뚝! 그쳐.”

그것이 이젠 10년전의 일이다. 그러던 아들애가 지금 중학생이 되였고 엄마, 아빠는 곁에 없어도 제가 있지 않습니까. 하는 든든한 위안이 되고 있다.

공항을 나서는 나의 발걸음은 급해지고 있었다. 가게 사장님과 오늘 좀 늦어질거라 말은 해 놓았지만 될수록 너무 늦지 말아야지하면서 서둘러 뻐스에 몸을 실었다.

한국에서 돌아와 직업을 찾으려 했지만 나에게 합당한 직업을 못 찾았다. 한국에서 한식을 접했던걸 떠올리며 자그마한 음식점에 취직했다.

그 곳에서 나와 비슷한 언니들을 만났다.

기본 5년 10년 외국으로 떠돌던 언니들은 애들 중학교 입학쯤 돌아와 애곁을 지킨다. 남편들은 역시나 아직 외국에 있고. 사춘기를 앓고 있는 애들을 데리고 열심히 뛰고 있는 여인들. 짬짬히 애를 챙기며 일터에 나오는 여인들, 어쩔수 없이 비여진 남편의 빈자리에 자신 나름대로 무언가 채워 넣으며 오늘의 그리움이 끝나는 날이면 온 가족이 함께 있는 행복을 맞이하리라 오늘도 채소꾸러미 들고 종종 퇴근길에 오르는 언니들.

서둘러 점심장사준비를 마치고 짬을 내여 각자의 머그컵을 모아 놓고 커피를 탄다.

그러다가도 손님이 들이닥치면 바삐 돌아치고 어느 순간 보면 잔의 커피는 식어서 우릴 기다리고 있다. 하하 웃는다. 커피라도 우아하게 홀짝홀짝 마시려 했더니 우아하긴 글렀네.

식어빠진 커피를 원샷하고 빈잔을 챙긴다.

잔은 원래부터 비여 있었던거 같다.

아들애를 시어머니께 맡기고 남편과 둘이서 한국에 가서 일하던 시기.

타향살이라 집엔 컵이 구전하지 못했다. 물컵으로 사용되는 머그잔이 주인공이다.

깨여나면 반나절이 지나가는 나른한 휴일, 아침겸 점심밥을 해결한후 머그잔은 커피잔이 된다.
동네 시장 한바퀴 돌아와서 나름대로 건강하고 영양있는 저녁상을 갖추면 온 하루 땡볕에 몸을 혹사한 남편이 돌아와 마주앉아 그 잔에 시원한 맥주 한잔 부어 자그마한 여유를 갖는다.

감기기운이라도 으실으실 느껴질때면 빈잔을 당겨와서 따뜻한 유자차를 탄다.아들애가 옆에 없어 비여진 마음에도 따뜻한 차 한잔 붓는다.

이젠 아들애의 학업을 위하여 귀국했다. 남편혼자 한국에 남겨두고. 아들애와 내가 있는 옆자리, 아빠와 남편이 있어야할 그 자리가 또 비였다.

어둠이 깔린 퇴근길, 뻐스를 기다리는 대신 걸어가기로 했다. 걸어서 30분거리의 집, 남편이 있는 동안 마중나왔던 길이였다.

일부러 차타지 않고 함께 두런두런 얘기 나누며 서시장 골목길을 빠져나와 하남다리 건너서 집근처 광장에 앉아 모기를 쫓으며 광장무도 구경하고 길옆의 난전에서 오얏이나 구운 옥수수도 사들고 들어가던 소소한 행복들.

그 길을 걸어가느라면 남편이 저쯤에 두렷이 마중 나와 있을거 같다.

어느날 비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퇴근길에 우산 두개 말아쥐고 마중 나오던 남편이 저어기 나와 있을거 같다.

집과의 거리는 점점 좁혀지고 한껏 어두워진 아빠트 단지에 들어섰을때, 우리 아빠트 문앞에 섰을때, 이 문을 열고 들어가도 남편은 없다는 생각에 멈춰섰다.

남편은 이미 바다건너 남편의 일상으로 돌아가버렸다는 사실에, 나의 일상과 남편의 일상이 이렇게 다를수 있다는 사실에 차마 문을 열지 못했다.

공항에서 잠잤던 눈물이 이제야 마구 쏟아졌다.

이별은 역시 아프구나.

아픔은 역시 적응될수가 없구나.

나는 손을 들어 어둠을 훔쳤다.

비교적 젊은 지금이란 시간은 쌓여서 추억이 되고 이 추억속에 당신이 그냥 그리움이란 이름으로 있을수밖에 없다는것이 나에겐 아픔이다.

언제면 함께 하여 빈자리 메울가. 손꼽아 헤여보니 꽤 많은 세월이 필요했다. 그때면 내 나이가 어떻게 되지.

간절히 그리웠던 순간들도 지나고 애틋하게 바라보던 시선도 흔들리고 그땐 더 이상 바라보지도 않고 사랑의 말들도 짜증어린 푸념으로 바뀌진 않을지. 어이없게 지나버린 사랑의 순간들이 그 대상이 옆에 있어도 더 이상 아름답지 않게 돼버릴지. 내 옆에 지나가는 세월의 화살이 내 몸에 숨어있던 감성마저도 다 뺐어버릴때 우리의 옆에는 함께 할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있을것이다.

어느새 다시 비여져 내 앞에 놓이는 잔, 나더러 쉬지 말고 여기에 담으라 한다. 그 잔에 무엇을 담든 그것은 오로지 내가 인내해야할 내 몫이 된다.

이른 봄 비가 추적거리는 날이라든지 늦가을 진눈까비가 흩날리는 날이라든지 나는 빈잔에 따뜻한 유자차를 탄다. 잔을 두손으로 감싸쥐면 따뜻함이 손끝을 따라 가슴에까지 전해진다.

뭐라 말할수 없이 마음이 힘들때면 빈잔에 맥주 한잔 붓는다. 괜찮아, 잘 될거야하고 위로를 빈 가슴에 붓는다.

비여있는 오늘을 열심히 살아갈수 있는것은 언젠가 채워질 빈자리를 확실히 믿고 있기때문이 아닐가.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믿음을 믿으며 오늘도 손을 내밀어 빈잔을 당겨온다.

오늘은 내 마음이 일기예보에서 내일 온다고 하는 비를 먼저 마중갔다가 함뿍 젖어 돌아오나보다. 돌아와 빈잔에 담기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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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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