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너네 양아치야?  경찰에 신고할거야! 

혈압이 올라서 엄청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한 할망구가 있다. 정작 혈압이 올라야 할 사람들이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늘 노인들이라 양보한 게 우리가 잘못한 일이다. 

미국에 와서 이사를 여러번 했다. 북경에 있었을 때도 그렇고, 이사를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은 게 내 소원이지만 이사에 그 누구보다 덤덤하고 익숙한 것 또한 나이다. 새로운 환경이 좋아서 이곳저곳 살아보고 싶은 맘은 지금도 변함없지만, 나의 이사는 번마다 어쩔수 없는 이유로 그 주변을 맴돌면서 자리옮기기가 일쑤였다. 많고 많은 이사중 이번 이사가 이렇게 나를 힘들게 만들줄은 생각도 못했다. (뭐 이사한 횟수에 비하면 아주 희소한 비율로 적중한 사건이지만 말이다. )

그때는, 하루하루가 너무 고달프다는 생각밖에 안들었다. 눈을 뜨면 또 “어떻게 이 하루를 버텨내고 제대로 된 잠을 잘수 있을까” 하는 그 고민이 일상의 전부 번뇌라고 할 정도였다. 아니, 불편하고 피페해서 잠도 안왔다. 한달째 제정신이 아닌 채로 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그만 두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싶었지만 억울해서 그럴수가 없었다. 

그때는, 별이(키우는 강아지_시바이누)를 입양한지 한달밖에 안 되었을 때이다. 그 2개월밖에 안되는 애기강아지를 이곳저곳 떠맡기면서 난 여러사람들에게 인정을 빚지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방도는 없었고 분해서라도 끝을 봐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살면서, 렌트집 주인이랑 안맞거나 갈등이 있어 심하게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종종 볼수 있는데, 그게 나랑 뭔 상관일까 할 정도로 여태껏 이사를 많이 했어도 난 이상한 주인을 만난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이 할매할배를 만나기 전까지.

미국에선 한번 이사를 하면 통돈이 깨진다. 일단 3개월 집세를 미리 디파짓 해야 하고 브로커비 한달치 나가며, 이사비용(이삿짐 센터에서 당일날 짐을 옮겨주는 비용) , 이사하면서 버리고 또 새로 사들인 잡동사니들… 다 합치면 만불이 깨지는 건 쉬운 일이다. 그래서 이사를 하게 되면 정신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한동안은 어지럽다. 더군다나, 이 할매할배랑 실랑이를 한달동안 벌이면서 난 지칠대로 지쳤고 녹다운이란 단어는 이런 상황을 묘사할 때 쓰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하우스 2층에 렌트를 맡아 살게 된건 난장판 싸움이 벌어지기 9개월전이었다. 좀 큰 집에 이사하고 싶어서, 하우스 2층 전체를 렌트하고 싶었던 찰나  좀 괜찮은 가격에 교통도 편리한 하우스가 눈에 띄였다. 집주인이 할머니 할아버지라서 좀 걸리긴 했지만, 자애로운(나이만 몇십년 더 드신 꼰대일줄이야, 보아내지 못 한게 문제) 거 같아서  바로 계약을 했었다. 그 당시는 별이를 키울 계획이 없었고, 사람이 돌변하면 이렇게 미친 모습을 보이는구나 라는 예상도 없었다. 

계약을 맺기전에, 우리는 몇가지를 확실히 해 둔게 있었다. 

첫째, 우리는 젊은 사람들이라서 생활활동시간이 다를수 있기 때문에 주말 같은 경우는 좀 늦게까지 안 잘수 있다. 대신 주중은 웬만하면 11시-12시 사이에 취침하도록 하겠다.

둘째, 미국 하우스 재질특성상(얇은 나무합판이라 층간소음이 쉽게 생긴다.)  이층에서 걸어다니면 1층에서 소리가 들리는 건 불가피하기에 (최대한 살살 걸어다니겠지만 ) 이 문제에 대해서는 주인측에서 이해를 해야 한다. 

셋째, 서로 불쾌한 일이 있으면 소통하고 합의해서 원칙적으로 좋게 잘 해결을 보도록 한다. 

아무문제 없다면서, 손자손녀 같아서 우리가 집 사기 전엔 자기들도 우리랑 쭉 같이 살고 싶다면서, 우리가 착해보이고 애기두 없어서 렌트들어와서 너무 좋다면서, 온갖 잘해보자는 입에 발린 말은 다 하더니, 막판에 이렇게 막장으로 끝날줄이야…

렌트들어 산지 3개월 쯤 됐을 때, 눈이 자주 내리는 겨울이었다. 계약상 눈이 오면, 집앞과 차 주변 눈 치우는 일은 사실 주인이 해야 할 몫이고 안하면 고소도 가능하다. 하지만, 할배는 번마다 눈을 제때에 치우지 않았고, 우리는 이튿날 출근때문에 어쩔수 없이 대부분 남편이 치웠다. (그냥 노인들을 도와준다는 맘으로) 여러번 얘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치우는 일을 질질 끄는 게 답답해서 남편이 늘 했다. 이때부터 우리를 만만하게 본 계기가 된 거 같다. 

한번은 눈이 너무 많이 내려서 남편이 치우면 내리고 치우면 쌓이고 쓰러질거 같다고 했다. 나는 너무 빡쳐서 그 길로 내려가 밑집 문을 두들겼다. 나는 할배보고 이거 원래부터 주인이 해야 할 일인데 여태껏 우리가 당신들 도와줬고, 이번엔 눈을 치워도 치워도 그냥 내리니 알아서 처리해달라고 했다. 그러자, 할배가 자기는 힘이 들어서 못하겠단다. 그럼 사람이라도 구해서 치워라고 했다. 알아서 한다 하더니, 이튿날 깨나보니 그대로다. 너무 어이가 없었지만, 일단 출근은 둘다 해야 하니 결국 또 남편이 고생을 했다. 

남편이 가고, 한시간 늦게 출근하는 내가 뒤를 이어 내려갔는데, 글쎄 할배가 눈 치우는 기계로 자기 창고 앞 눈을 치우고 있었다. 나는 순간 목까지 쌍욕이 나왔지만, 침착했다. 저기요, 눈 치우는 기계도 있으시면서 왜 안 치워주신거에요? 할배가 이렇게 답했다. 이 기계 망가진거야…(지금 아주 잘 작동하고 있고 내 눈앞에서 작동중인데, 제정신이 아닌가? 헛소릴 대낮에 아무렇지 않게 하는게 대박이었다.) 하아… 정말 세상에는 별란 인간이 다 있다. 

고소하는 게 귀찮고 그냥 우리가 치우자 하는 마음이였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멍청했던 같다. 그걸 또 할매할배는 불쌍한 척, 우리를 이용했던 거 같다. 

또 한번은, 밤에 설겋이를 하다가 그 밑에 管子가 터졌다. 갑작스런 일이라, 물이 거꾸로 콸콸 올라오는데 악취는 물론, 그걸 정지시킬수 있는 방도가 없었다. 남편은 대충 옆에 수건으로 막고 손으로 압력을 줘서 물이 뿜어나오는 입구를  꽉 잡고 있었으며 나는 큰 대야 같은 게 없어서 일단 주방에서 쓰는 제일 큰 그릇으로 흘러나온 물들을 퍼냈다. 긴급처리를 하고, 남편이 밑에 내려가서 상황을 말했는데, 돌아온 말은 수리공이 다 퇴근했을테니 내일 아침에 보자는 것이다. 그럼 온밤 물 퍼내면서 자지두 말고 온집에 악취를 어떻게 해야 하냐고 소리를 지르니 그제야 수리도구들을 들고 천천히 올라온다. 하아… 그날 수건만 7장은 넘어 버린거 같다. 

한번은 샤워하는데 물 배수하는 管子가 막혔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낮에 봐달라고 분명 얘기를 했는데 저녁에 와보니 그대로다. 샤워도 해야 하고, 내일 아침 머리도 감아야 하는데, 아직도 손도 안대면 어떻게 하자는건지… 또 내려가서 한바탕 따졌다. 그제야 마지못해 어딘가 전화를 걸더니, 좀 있으면 사람이 온단다. 결국, 그 사람이 와서 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너무 깊게 막혀서 내일 오전에 뚫는 기계를 가지고 와서 다시 해야 한단다. 기가 막힌 일이다… 

오래된 하우스라 여기저기 손볼데가 많은 집인거 같았다. 삶에 불편함을 주는 집이었지만 그냥 이미 계약을 한거라 이러루한 잡다한 일들은 그냥 스치기로 했다. 

진짜로 빡친 건, 렌트들어 산지 6개월쯤 좀 넘었을 때이다. 할매가 맨날 우리한테 위에서 걷는 소리가 너무 크다고 컴플레인을 걸어온다. 우리는 최대한 살살 걸어다니고 주말 빼면 평소엔 거의 12시전엔 취침한다. 노인들이 빨리 자고 빨리 깨니깐, 우리도 예의상 밤엔 조용하려고 노력한다. 칭구들도 놀라오면 살살 걸어라 당부하고 목소리도 하이톤이면 10시 이후론 좀 낮춰서 말해라고 한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지만, 그냥 좋게 좋게 넘어가고 싶은 게 우리의 심정이다. 사는거도 빡센데 굳이 집에 와서까지 피곤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밤중에 할매가 막 우리문을 두들긴다. 정신없이 소리지르면서. 무슨 일인가 열어봤더니, 우리보고 시끄러우니까 당장 나가란다. 자기가 밤에 잠을 설쳐서 미치겠단다. 이게 뭔 아닌 밤중에 홍두깨 인가 싶어서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다. 그날은 아마 내가 야근하고 들어와서 샤워를 늦게 한 날이었을 거다. 샤워소리도 거슬리고 이리저리 늦은밤에 걸어다니는 소리도 너무 크게 들린단다. (고작 12시 정도인데 말이다. 젊은이들한텐 한창 저녁이고, 매일 있는 일도 아니고 어쩌다가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젠장!) 그건 그쪽 집  나무판 문제고, 내가 걸어도 못다니고 샤워도 늦게 못할거면 이 집에 몇천불씩 내고 살아서 뭐하냐고 되물었다. (심지어, 계약전에 다 짚고 넘어간 문제들인데 왜 이제와서 말도 안되는 거로 갑자기 이사를 가라는게 제정신이냐고) 

사람이 사는 집인데 인기척 하나 원하지 않으면 그냥 아침일찍 일어나서 밤늦게 귀가하는 사람한테 렌트를 줬어야지, 왜 정상적인 걸어다니는 일 조차 눈치를 봐야 한다는 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뛰어다닌거도 아니고 새벽에 쾅쾅 댄거도 아니고 소리를 지른거도 아니고 밤에 샤워를 열두번 한거도 아니고, 할매는 도리가 없었다. 더 한심한 건, 할매가 우리 발소리 때문에 제대로 자지 못해서 당뇨병이 더 심해졌단다. 이건 정말 무슨 개소리인지… 

우리는 계약이 끝나지 않아서 이건 계약파괴니, 당신들이 이사비용을 절반 부담하라고 했다. 절반이라고 말한 것도 지금 생각하면 이것도 멍청하기 짝이 없다. 다 내라고 해야지 왜 절반이라고 했는지… (아마, 우리도 스트레스를 받아 더이상 같이 살고 싶지 않아서 탈출을 원했는지도) 그냥, 절반이라도 부담해주면 통돈 깨지더라도 이사를 하고 싶은 심정이 간절했다. 진저리가 났고 상종하고 싶지도 않았다. 할매할배는 오케이를 했고 우리는 새 이사할 곳을 열심히 찾았다. 이미 이사는 확정된 일이었고, 이사비용 절반 부담도 다 말이 끝난 뒤었다. 

이사를 마음먹은 우리는 그 와중에 어떻게 별이를 입양하게 되었고, 2개월 된 아기 강아지라 하루 대부분 시간은 조용하고 자기만 했기에 일단 이사전까지 대충 이 집에서 살기로 했다. 그런데 할매할배가 진짜 오리발은 이때부터 내밀었다. 계약에 강아지를 키우게 안되어 있으므로 당장 내 쫓아라는 것이다. 미친… 우리는 곧 나갈거고, 이미 집을 찾고 있고, 강아지가 짖지도 않고 걸어다니는 발자국 소리조차 안나는 데 왜 또 저 지랄을 하는지 모르겠다. 

당장 내보내란다. 자기 집에 강아지 냄새 나는거 싫단다. 와, 하루빨리 그냥 이 집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우리는 이튿날 당장 집을 구했고, 비싸지만 계약하기로 맘 먹었다. 너무 갑작스레 찾으니 초이스가 몇개 없는데다가 강아지까지 키울수 있는 조건이 구비되어야 해서, 예상보다 비싸게 렌트 할수밖에 없었다. 일단 강아지는 어쩔수 없이 칭구집에 부탁을 했고, 그 칭구도 마침 집에 강아지를 키우고 있고 그때 회사를 잠깐 쉬는 타이밍이라 다행이었다. 보통은 강아지를 봐줄 사람도 찾기 힘들거니와 볼줄 모르니 보내도 정말 민페다. 

한마디로, 총체적난국이었다.

조용히 넘어갈라 했지만 진짜 나를 빡 돌게 만든 건 그 이후였다. 이사 갈 집을 다 찾았고 다음달부터 살기로 계약까지 다 했는데, 할배가 말을 바꾼다. 자기가 얘기한 이사비용은 짐을 옮기는 비용 500불의 절반 250불이란다. 하아… 우리는 계약이 끝나지도 않은 집에서 갑작스런 이유도 아닌 이유로 나가라는 통보를 받고 통돈 만불이 깨지게 생겼는데 고작 200불 대준다고??? 거기에 지금 별이까지 이집 저집 돌리면서 신세를 지고 있는 마당에…(별이도 계약서엔 없지만, 그럼 당신들도 얼마나 계약에 맞게 룰을 지켰길래 계약서 계약서 거리는지) 

새로 찾은 집 한달 집세가 2800불이니, 브로커비 절반 1400불 지급하기로 해놓고 왜 이제와서 말을 바꾸냐고 했다. 할배가 펄쩍 뛴다. 내가 언제 그랬냐고?? 다행이 녹음이 있었다. 우리를 고소하겠단다. 녹음이 불법이란다. 하아… 상식이 없는건지 늙어서 오막을 쓰는건지…

우리는 억울해서 이대로 나갈수 없었고, 이대로 나가면 우린 땡전한푼 못받고 흐지부지하게 똘기워난 셈이다. 1400불은 죽어도 받고 나가겠단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그 돈을 못받으면 여기서 움직일수가 없고, 당신들도 그럼 다른 사람들한테 렌트를 줄수가 없으니 매달 집세를 날리는 셈이라고 일단 통보를 했다. “야, 너네 양아치야? 경찰에 신고할거야!” 

그래, 제발 신고하세요. 경찰이라면 무서워 할 줄 아나보다. 경찰이 이런 문제에 개입할 게 뭐가 있고, 또 누가 누굴 지금 신고한다고 날뛰는지… 시의원이 친구란다. 불러와서 우릴 조지겠단다. 하아… 정말 진정한 양아치는 늙어서도 양아치다. 우리를 분명 만만하게 생각하고, 아는 인맥을 동원해서 내 쫓으려 하는 꿍꿍이었다. 

남편이 정말 유유한 사람인데(7년 같이 살면서 소리지르거나 누구한테 상처되는 말을 하는 걸 거의 본적 없는데), 남편도 얼마나 짜증났으면 벽을 주목으로 쳤다. 

“야, 왜 우리집 벽을 치고 난리야, 배상할꺼야?!”

“사람을 칠 순 없자나요!”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댄다고, 나도 악이 올랐다. 가만히 있으니 가만히로 보는구나 싶었다. (사실 할배는 그 사이 인종차별 발언도 종종 했다. 또 알지도 못하면서 우리 직업도 자기 멋대로 넘겨짚으면서 잘난 척을 했다. 똥이 무서워 피하나 더러워 피한다는 맘으로 늘 흘려들었을 뿐.) 나는 할아버지를 고소하기로 맘을 먹었다. 변호사를 찾았고 상황을 설명드렸다. 하지만, 변호사는 이 건은 문제의 핵심인 발소리의 강약정도를 정확히 규정할수 있는 규준이 없기에 쌍방에게 다 불리하다고 사적으로 합의를 보는 쪽으로 해보라고 건의한다. 

그 사이, 새로 살게 될 집은 입주날짜가 다가왔고, 우린 새 집 렌트비는 그냥 나가게 생긴 상황이었다. 별이는 다른 집에서 이래저래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었고 가끔 보러 가면 우리를 까먹었는지 어리둥절해 있었다. 정말 열이 나고 분하고 별이를 보면 안쓰러웠다. 거기다가 입주날짜가 오니, 이사는 예정대로 했다. 또 이 할배집에서 짐을 다 빼면 1400불을 받을수가 없기에 한동안 살 옷이나 식량 물건들은 좀 남겨 놓고 이사를 하게 되었다. 결국 남은 건 침대 소파 이런 큰 건이기에 이사를 두번 하게 생겼다. 그럼에도 이 싸움은 끝까지 해야 겠더라… 

이사당일, 우리의 동선을 끼쑥거리던 할배할매는 우리가 완벽히 물건을 빼지 않는 걸 보고 화내면서, 자기네가 1400불의 절반 700불을 줄테니 그냥 오늘 마저 나가라고 한다. 나는 그때부터 여유를 가지고 싸움을 하려고 작정했던 시기이다. 이젠 1400불도 안된다고, 우리가 이사를 두번 하게 생겼으니 2800불 안 주면 짐 안 빼겠다고 했다. 그리고, 밑에 반지하 렌트 준거도 불법이니 고소하겠다고 했다. 이건 나의 마지막 카드였다. (사실, 반지하에 사는 커플은 20대의 어린 친구들이라 내가 고소해서 갑자기 내 쫓기게 되면 정말 막막할거다. 하지만 할배를 겁줄수 있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어서 일단 지르고 봤다.) 

아니나 다를가 할배는 온밤 할매랑 소리지르면서 상의 하더니(역시 고소될 약점을 가지고 있으니 급해한다) , 이튿날 밤 나한테 와서 1400불 주겠단다. 대신 우리가 그 돈을 가지고도 발뺌할수 있으니 영상을 찍으면서 하잔다. 뭔가 쌔하다… 분명 우리는 그 돈을 가지면 지금이라도 당장 나가고 싶어하는 애들인데, 왜 또 며칠뒤에 동영상까지 찍으면서 돈을 주겠다 하는가? 나는 감이 왔다. 분명 어른 몇명을 불러서, 이 계약에 싸인한 우리 남편만 불러놓고 겁주고 돈은 나가서 한달뒤 준다 뭐 이딴 식으로 얼려넘기려 하는거 아닐까 추측댔다. 

영상을 찍으면서 돈을 주겠다는 당일, 나는 우리 회사 사장님 한테 내 삼촌이라고 하고 같이 가자고 했다. 한달넘게 이 일 땜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걸 알고 있는 사장님도 흔쾌히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사장님과의 동행은 이 할배가 생각지 못한 일임이 분명하다. 

근데, 정말 재밌는 일이 벌어졌다. 세상은 정말 요지경이다. 사장님이랑 할배집에 들어가는 순간 할배가 막 허리굽혀 인사를 한다. 사장님도 멋적게 인사하며 반가워한다. 뭐야 둘이 아는 사이야? 할배는 평소에 우리한테 자기가 앤지니어라고 자랑한 적이 있다. 알고보니, 사장님이 서른즈음부터 비지니스를 햇는데, 이 할배가 젊은 시절 우리 사장님밑에서 일을 한거다. 즉 사장님이 일거리를 던져주면 와서 전기봐주고 했던 전기공사 사람이었던거다. 둘이 거의 20여년만에 다시 만난거지, 오늘날 직원(나) 의 사장이란 명의로. 

순간 할배는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얘지더니, 급급히 돈 봉투를 꺼내면서 나한테 건네주고 일을 얼른 마무리 하려는 어설픈 행동을 보였다. 이때 공교롭게도 할매가 등장하더니, 우리 사장님이 내 친척이거나 내가 데려온 변호사인줄 알고, 할배한테 소리지르면서 좀 있다가 사람들 다 오면 다시 돈을 줘라고 돈 봉투를 빼앗아간다. 하하하… 할배는 그 순간 얼마나 챙피할가? 그리고 또 어떤 사람들을 불러올지도 은근 기대가 됐다. 난 무서운 게 없으니까, 아무리 시의원이 온다 할지언정 우리동네 시장이 사장님 절친이다. (저번에도 누굴 경찰이라고 불러오더니 알구보니 부동산 하는 사람이었다. 하아… 대가리가 돌을 맞았나, 사람이면 그냥 경찰이라는 게 이젠 우습다.) 

좀 지나니 뭐 나이든 사람 두명이 등장한다. 그중 한명은 저번에 저런애들은 미리 초반부터 조져야 한다는 개새끼였다. 근데, 신기한 건 그 사람들도 갑자기 급 공손해지더니 사장님한테 인사를 한다. 확실히 사장님이 인맥이 넓은 건 사실이고, 회사규모도 크기에 웬만한 기업들하고 협업했어서 아는 사람들 천지다. 웃기는 건 사장님은 이 두사람을 모르는데 이 두사람은 아주 우리한테 급 친절하다. 하아…나보고 다시 보니 너무 착하게 생겼단다, 토나오는 말을 옆에서 그냥 하고 있다. 

한시간동안  6명이 둘러앉아 6자대면이란 걸 했는데, 절반이상 시간은 우리 회사 주업무에 대한 궁금증을 사장님이 답변해주는 시간이었고(그 굽신거리는 모습은 참 보기 역겨웠다. 강자를 만났을 때 잘 보이고 싶어하는 그 아첨이나,  순간 아무일 없다는 듯이 눈빛이 돌변하더니 우리를 칭찬하는 그 가식)  나머지 시간은 순조롭게 1400불을 받고 각자 싸인을 했다. 할매는 따뜻한 티를 꺼내오며 마시라고 한다. 한입도 대지 않았다. 

이튿날, 우리는 당장 그 집에서 나왔고, 할배는 나한테 웃으면서 어디 이사가냐고 물어봤다. 자기 험담을 할가바 두려웠나보지. 악질이란 악질은 다 해놓고 이제 와서 축복하는 척 하하…

별이는 새 집으로 픽업해왔고, 우리는 좋은 집에서 다시 행복하게 새 삶을 시작할수 가 있었다. 새 집 주인은 독일인 부부 였는데, 너무 나이스 했고 집도 큰 창문이 양쪽으로 있어서 채광도 잘 되고 예뻤다.  노을이 한눈에 보이는 뒤뜰도 있어서 별이 놀이터로도 제격이었고 우리도 종종 야외바비큐를 즐길수 있는 테라스까지, 폭풍우가 지나간 뒤의 고요함 같았다. 새 집에 이사를 한 뒤의 작년 7월은 미국생활을 시작해서 가장 푸르렀던 썸머였던 거 같다. (드뎌 정신의 안녕을 찾은 시기) 

그 뒤로 어느날, 카나다에서 취직했던 동생이 휴가여서 우리집에 놀러오게 되었다. 동생은 좀 덜렁대는 성격인데, 주소를 잘 못 기억해서 옛날 우리집에 찾아간거다. (새 집이랑 그 할배집이 같은 라인 두 불럭 차이라 헷갈릴수 있다.) 근데, 거지같은 사건은, 동생이 원래 살던 집에 모르고 갔는데 강아지 두마리가 막 찢었다는 거다. 하아… 결국 강아지를 키울수 있다는 말이다. 망할 사람들…살면서 저주란 걸 하게 되더라. 인간성도 없고 양심도 없는 양아치들! 

지금도 가끔 가다오다 그 집이 보인다. 

밥은 꼬박꼬박 먹고 다니는지…

아직도 그렇게 양아치 짓 하면서 늙으막을 보내는 지…

그냥 나이만 처 먹고 어른이 아닌 성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주변에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어서 괴롭다. 빽없고 의지할 곳 없는 우리처럼 젊은 친구들은 이 시각 또 어디에서 억울하게 당하고 있을지 가슴아프다. 

잦은 스트레스와 무기력함으로 이어지는 일들, 난데없는 우울, 투명한 소주, 볼품없는 그리움, 자기도 모르게 보게 되는 눈치, 흐릿한 불투명한 미래, 결국 찾아온 두려움, 거울을 보며 억지로 웃어보는 뻘짓거리, 어두운 고독, 표정의 메마름, 모든 게 맘 같지 않은 스산한 밤..그리고, 약자에 대한 사회구조와 시스템이 주는 구속들. 

그리고, 나도 이젠 날카롭게 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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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김에 사는 여니

별거아닌 생각, 소소히 적기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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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말 어이없는 늙은 Karen과 그 남편이네요 (미국 백인이라 추측했는데 혹시 이런 추측도 인종차별이 될라나…). 회사 사장님을 데리고 간 뒤 태도가 급변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함께 어이가 없었습니다, 세상 참 뭐같다 싶네요.

    여니가 고생을 많이 하다 보니 오히려 아우라가 더 밝고 낙관적인 느낌인 걸까요? 평소 활발하고 감성적인 여니만 보다가 이런 글을 읽으면 마음이 안쓰럽습니다.

    안 좋은 일들은 하나 둘 다 풀려가고 지금은 세 식구 함께 소소한 행복을 즐기며 여유를 만끽하는 날이 점점 더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2. 참 사람들이 곱게 늙어야지 뭡니까 이게. 그 와중에 여니님과 남편분 대처 사리 밝으면서도 기지가 넘칩니다. / 복도 카펫 바꿔준다고 들어갈때부터 말하더니 나올때까지 안바꿔주던 나의 십여년전 집주인 생각나네요. 집안에 난 쓰지도 않을 소파들 치워주기로 해놓고 자기 엄마 생각나서 못 치운다고. 그럼 자기 방에 두든가 ㅠㅠ

  3. 지하철에서 정말 시간 가는줄 모르고 읽었어요. 읽는 내내 긴장하였고 상황이 역전되면서 인간의 간사함에 대해 생각이 많아지는군요. 그동안 에너지 소모도 만만치 않았을텐데 이젠 마음을 다독이면서 나이스한 사람들과 함께 새로운 공간에서 좋은 추억을 쌓아요. 세상에 쌍욕이 나오는 일들 천지 잖아요. 그래도 잘 해결되어서 다행입니다. 여니마저 날카로워질 때에는 꼭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기에 그런 상황에는 주저하지 말고 강력하게 대응하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두분 하루 날잡고 대자연서 원기회복 하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4. 좋은 주인 부부를 만났다니 다행입니다. 마음고생이 심했겠네요 ㅠ 선을 안 그으면 得寸进尺하는 인간들이 꼭 있으니…날카로울수도 있어야 합니다! 타인에게 No하고 나 자신에게 Yes하는 삶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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