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닿일때마다 숨이 넘어갈 거 같다. 손가락은 바르르 떨렸고 물줄기는 사정없이 내 아픈곳을 스며든다. 대충 샤워를 마치고 나는 급급히 물기를 닦아낸다. 거의 달려가다싶이 선풍기앞에 가서 열 손가락을 꼬부린 채 바람에 갖다댄다. 후~ 좀 살거 같다. 이런 반복도 이젠 고통스럽다.
나는 미국에 와서 첫 직장으로 약국에 출근을 했었다. 의료쪽으론 문외한이었고, 약에 대해 딱히 관심도 없었지만 어영부영 첫 시작이 하필이면 약국이었다. (어릴때부터 너무 건강해서 병원 간 기억이 거의 없고 링게를 맞거나 입원한 적도 없으며 심지어 중국에 있을 땐 감기도 잘 걸리지 않아서 몸상태가 최악의 상황이라해도 感康이란 감기약정도로 끝났던 거 같다. 또, 대학4년을 다니면서 학교 의료카드를 일전도 쓰지 않은 건 아마 우리 숙소침실에서 나밖에 없었을 정도로 나는 병원이나 허약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병원이나 약국은 늘 나랑 상관없는 곳 같았고 평소에 거기에 대한 생각(아마 젊어서 신체가 좋았을수도 있다.)도 적었던 거 같다. 미국오기전까진. 약국에 출근하기전까진.
약국출근은 지루하고 재미없었지만, 난생 처음 접해보는 새로운 분야라는 점에서 나에게 어느정도 자극이 되었다. 더군다나, 외국생활이 처음인 시점에 겹쳐진 새로운 직장이 주는 긴장감은 배로 더 있었다. 약국업무는 주로 세 파트로 나뉜다. 비처방약인 OTC, 처방약, 그리고 슈즈(슈즈에는 두가지가 있다. 건강신발 & 당뇨신발).
처음에는 간단한 OTC 업무(처방전 없이 살 수 있는 약과 식품보충제)를 보다가 처방약파트로 넘어가면 약사랑 함께 PRESCRIPTION (처방의 내용을 적은 종이)을 보면서 입력도 하고 약 체크와 정리를 하게 된다. 마지막 단계로 슈즈파트가 있는데, 거긴 주로 당뇨병 환자를 위한 맞춤형신발제공이다.
그 마지막단계인 슈즈파트쪽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난 무좀균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알게 된다. 무좀균은 발에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한번 만나면 작별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약국에서 취급하는 건강신발과 당뇨신발은 약국손님 혹은 당뇨환자들을 위해 전문적으로 만들어 진 신발이다. 당뇨환자들은 상처가 한번 나면 쉽게 회복이 안되기 때문에 발도 편안하고 다치지 않는 특수 신발로 골라 신어야 한다. 내가 일했던 약국은 신발브랜드 종류도 다양했고, 그냥 특수신발이라기엔 모양도 나름 이뻤다. (보스가 운영하는 매장중 약국 열몇개를 제외하고도 전문적으로 브랜드만 엄청 많이 런칭해서 파는 슈즈매장도 따로 크게 하나 있었다. 주요하게, 젊은층 상대로 멋지고 유명한 브랜드를 판매하는 동시에 각 지점 약국에 모자라는 디자인이나 싸이즈를 윤활하게 보충공급하는 작용을 했다.)
그중 SAS라는 브랜드가 할머니 할아버지들한테 인기가 많았는데, SAS만의 제조공법기술(모카신공법, TRIPAD 3중 쿠션, 특수에어버블 우레탄 밑창소재)로 신으면 발가락, 발등, 발볼, 발바닥 그리고 연계된 관절까지 편안함을 느낄수 있는 발에 최적화 된 신발이라 상당히 편해했다. (기억에 취급하는 슈즈브랜드가 열 몇가지 되었는데, 사스 한 브랜드만 모델네임 외우는 데 족히 삼일은 걸린 같다. 몇십가지 모델이 있었던 거 같다. 무튼 약국에서 일하면서 뭘 많이 외웠던 거 같다. 약이나 성분 이름도 하아.. 어찌나 길던지..문과생인 게 다행인가 싶기도 하고.)
다시, 주 흐름으로 이어가자면. 당뇨신발이나 건강신발(당뇨병은 없지만 매디케어나 매디케이드 조건에 포함되는 분들은 정부에서 일년(여름/겨울)에 신발 2컬레씩 무료로 준다.) 을 맞추려면, 보험서류 작성하고 발 싸이즈 재는 일이 젤 첫 스탭이다. 그래서 할머니 할아버지 발을 만지게 되는 일이 상당하다. 또 거동이 불편한 분들도 많기에, 발 싸이즈를 재려고 하면 여러번 재봐야 수치의 정확도를 보장할 수 있다. 싸이즈를 재고 난 뒤에도 여러가지 모양의 신발을 골라서 신어보는 시간들이 그분들에겐 행복한 타임들이겠지만 나는 앉았다 일어났다 허리가 아프다. 다 나이드신분들이 대부분이라 말귀도 잘 못 알아들으시고 행동들이 굉장히 느리시다. 또한 팔 다리가 불편한 분들이 많기에 내가 도와서 해야 되는 부분들이 꽤 많다. 이건 분명 체력노동이다. 온하루 거의 장갑과 마스크를 하고 있다. 심지어 가끔은 그분들이 원하는 싸이즈가, 엄청 높게 쌓인 신발박스중 젤 위에 있을때에는 높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내려와야 할 때도 많다. 매니저가 계실 때면 다행인데 가끔 일보러 나갔거나 자리를 비울때면 난 심호흡을 하고 올라갔다 내려온다. 다리는 후덜거리고 손에 식은땀이 흐른다. 그렇게 찾은 모델이나 싸이즈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맘에 썩 드는 게 아니어서 또 다시 올라가 찾아야 할 때면 진짜 울고 싶다.
하지만, 내가 무좀균이 옮은 건 정작 다른 곳에서였던 거 같다.
약국에서는 한주 두번정도 통증병원이라는 곳에 간다. 통증병원에 가면 데이케어처럼 물리치료를 받으러 오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엄청 많다. 그러면 발병원의사가 와서 진찰하고 처방전을 적어주고 약국에선 그 처방전에 의거해 약을 발급한다.
발에 바르는 각종 무좀균 약들은 보험에서 커버해주는 부분들이 많고 우린 그런 약 처방전을 많이 받아올수록 좋다. (발병원의사들은 외과의사들처럼 수술하는 것도 아닌데, 미국에선 꽤 돈을 많이 버는 거로 알고 있다. 전문발병원 같은 병원도 도처에 엄청 많아보인다.) 그래서, 발 검진때 양말을 벗기고 진찰하는 과정에 약국에서 간 사람들이 의사보조로 옆에서 이것저것 거들어준다. 서류도 정리하고 환자도 케어하고 주의사항도 얘기해주고. 그때 나는 무좀균이 옮았다.분명 소독제도 자주 썻고 장갑도 잘 했건만…
무좀균은 물을 만나면 증식을 한다. 축축해도 번식을 대폭으로 한다. 하지만 손은 물을 안 닿기가 너무 힘들었고 그때는 한창 무더운 여름이었다. 무좀균들은 삽시에 열손가락 모두 퍼졌고, 손톱과 손톱밑 살 사이가 칼로 에이듯이 베어진 것처럼 갈라지면서 야들야들한 속살들이 겉으로 훤히 드러났다. 조금만 건드려도 너무 아려왔고 열 손가락 다 그러니 일 할때(키보드 사용시 혹은 팬 같은 걸로 뭘 쓸때) 도 너무 아팠다. 화장실 다녀오면서 손을 씻을 때도 얼굴을 찡그리고 씻었고 샤워는 거의 고무장갑 끼고 팔목 부분을 고무줄로 동여매고 엄청 빨리 하는 방법으로 때웠다. 샤워가 끝나면 안에 수증기가 차서 더 눅눅하고 염증이 생긴 상처들이 가렵고 그렇다고 긁을수도 없고 속이 바질바질 탄다.
약국에서 일하니까 뒤에 좋다는 처방약은 다 발라봤지만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손은 완전히 건조상태에 놓이기 힘드니까, 무좀균은 시시각각 살판친다.
매니저님은 “여니가 살이 연해서 옮은거 같다”고 하면서 날 안쓰러워한다. 확실히 남자들은 가끔 맨손에 할 때도 많은 데 옮은 적이 없었다. 그때는 손가락을 보면 그냥 눈물이 났다. 아픈거도 괴로운데 손으로 할수 있는 모든 게 너무 불편했다.
화장도 거의 못했고 샤워도 맨날 대충하고 머리 감을 땐 고역이다. 일할때도 건반에 손끝이 닿일때마다 찔끔찔끔 아팠고 뭘 먹을때도 진물이 나고 피투성이인 손가락을 보면 밥맛이 떨어졌다. 가뭄에 땅이 갈라지듯 뽝 째진 살들 사이에 새빨갛게 보이는 안에 살들이 아물사이가 없이 그 옆에로 또 갈라지고 굳은 살 생겼다가 또 갈라지고 무한 반복이다.
일상은 연속이고 무좀균은 거의 나와 3개월이나 함께 였다. 여름에서 가을이 되고 좀 선선하니 그나마 사그라든거 같다.
그 3개월은 긴 악몽같았다. 갈라진 자국들이 서서히 붙고 더 이상 쓰라린 아픔이 덜 했을 때, 나는 숨통이 틔이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트라우마로 인해 슈즈파트는 다시 하고 싶지 않아서 그 뒤로 처방약만 했다. (처방약 파트는 위험요소는 없었지만 머리가 쥐 날거 같았다. 약사 옆에서 함께 일하는 태크니션 같은 건데 라이센스 차이일 뿐 거의 약사가 할줄 아는 걸 다 알아야 했다.)
그 뒤로 한동안 지났을 까..
난 지인의 결혼식에 가기 위해 네일아트를 받았다. 한동안 무좀균으로 인해 고생했을 내 손가락이 네일을 받고 이뻐질 생각을 하니 좀 흥분도 됐다. 하지만, 난 좌절했다. 네일만 하면 열손가락이 막 퉁퉁 부으면서 손톱과 그 밑 살 사이가 간지럽고 갈라지고 예전처럼 속살이 바로 겉으로 나온다… 이건 그때 무좀균 옮은 이후 생긴 현상이다. 옛날에 아무일없이 네일을 받고 다니던 사람이었는데.
의학적으로 무슨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 이후로 나는 좀 지나면 시도하고 좀 지나면 시도하고 세번이나 시도했는데, 번마다 증상은 비슷했다. 정녕 이젠 네일도 제대로 받을수 없단 말인가, 한숨이 나왔다. 다행인 건, 젤(한 번 하면 오래가고 물로 씻어도 그대로인 네일)은 안됐고 Regular(일차성 네일 같은건데 한 3/4일정도 유지 가능)은 그럭저럭 할 수 있었다. 네일하는데 돈을 아껴라는 계시인가? 생각하며 자아위안도 해봤다.
결국, 나는 나의 결혼식 당일도 이쁜 네일을 받을수가 없었고 가장 간단한 하얀색으로 Regular를 했었다.
지금도, 오랜시간이 흘렀지만 난 젤 네일을 시도하지 않는다. 그 열손가락 다 엉망이었던 기억이 너무 무섭고 공포스럽다. 가끔 샤워를 할 때 흘러내리는 샴푸땜에 눈을 감으면 고무장갑을 하고 샤워하 던 아찔한 기억들이 얼핏 얼핏 스쳐가는 날들이 있다. 약국에 가서도 무좀균 케어 약들이 가지런히 놓여진 코너를 지날때면 좀 메슥거려서 일부러 쓱 빨리 지나간다.
약국에서 일했던 나날들은 쉽지 않았다.
연상법을 동원하며 요상한 발음의 긴 영어자모를 외우던 모습, 온하루 할일 없어서 약국에서 반나절을 보내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똑같은 이야길 신물나게 들어주던 모습, 진상을 부리던 할머니가 땅바닥에 대자로 뻗어서 영업방해를 강행해 어쩔수 없이 경찰부르던 모습, 처방약들은 생긴 게 다 비슷비슷해서 눈알빠지게 분별하며 약 세던 모습(후에는 약 세는 기계를 보급, 이미 CVS나 대형병원들은 기계로 함) ,신발 찾겠다고 사다리 타고 높은 곳까지 갔다가 다리가 후들거려 눈 감고 한참을 공중에 서 있는데 할아버지가 빨리 내려오지 않고 뭐하냐고 소리지르던 모습, 꼰대약사랑 기싸움하고 이간질에 당하고 분해하던 모습.. 그리고 난생 처음 무좀균이 옮아 생고생을 했던 나날들의 모습..
그래도 되돌아보니,
약국엔 고달픔도 있었고, 손녀처럼 아껴주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관심도 있었다.(비록 이상한 물건이나 엑스파일 된 호두과자 같은거도 많이 받았지만. 어디서 받은 걸 자꾸 챙겨뒀다가 날 가져다 준다는 게 그 사이에 엑스파일 되거나 선물받은 물건들도 숨겨뒀다가 날 가져다준다는 게 풀어보면 모양이 찌그러지거나..)
그 관심들은 가끔은 벅차고 부담스러웠지만, 평범한 그때의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따뜻함이었고 멀리 있는(훈춘에 계신) 엄마아빠도 어딘가 가서 이런 케어를 받겠지 하는 대리만족이었다.
지금은 단정하고 깔끔한 손톱유지에 그냥 만족을 하는 정도, 진짜 멋부리고 싶을 땐 가짜네일을 사서 붙이고 맘을 달래는 정도, 안되는 건 안되나 싶은가보다 하고 내려놓는 정도…


와 아팠겠네요. 읽는 제가 다 아픕니다. 손은 참 소중합니다. 약간 베거나 상처나도 엄청 불편하더라구요. 마지막에 사진 상큼.
아프고도 흉측하죠…손은 정말 소중한 거 맞다는 걸 다시 실감하는 시절이었습니다.
고달펐던 기억도 시간이 지난 후 따뜻한 기억으로 덮을수 있어서, 우리는 이렇게 자기보호에 능한 대뇌를 갖고 태어나서 참 다행인 것 같아요~ ㅎㅎ
네일을 하지 않아도 여니는 그냥 마냥 이쁨다~~
그런 대뇌구조가 아니었다면 인생은 굉장히 서글플거 같습니다. 네일 너무 하고 싶네요 ㅠㅠ ㅋㅋ
헉, 무좀균이 이럴수가… 상당히 위험하네요
지금 멀쩡한 손톱들을 보면서 감사한 하루하루네요.. 그때를 떠올리면 소름돋을 정도로..
읽는내내 손가락을 바라보게 되는 글이 었습니다, 마니 아팠겠네요…
근데 캐나다는 보조 약제사도 라이선스 없으면 못하는데 미국에서는 가능하네요…
약제사 보조도 2년넘게 공부해야 된다는…
한번 그 공부해볼까 한게 문과생은 입학이 거의 불가… 화학이랑 수학성적을 요구해서…
네, 약제사 보조 즉 태크니션도 공부해서 라이센스 따야 합니다. 큰 병원이나 CVS 같은데 들어갈라면요, 저는 사장님들이 중국사람이랑 한국사람이 동업한 회사라 가능했습니다. 업무를 배우면 근데 태그니션 못지 않게 해야 돼서 영 힘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