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어머니가 기분 좋게 얘기하셨다. 

– 어저느 집에 가야겠다. 가서 아들집에도 가 있고 너네 집에도 가 있고….

어마마님이 오신다는데 기쁘지 아니한가. 헌데 튀여나온 말은 이랬다.

= 우리 일할라 가구 학교 가므 심심해어찌겠슴까.

– 거기 동미들이 있다. 누구도 있고 누구도 있다. 

= 우리 바쁨다. 어머이랑 놀아줄 시가이 없슴다. 동미들 찾아서 놀든가.

– 오지 말라므 아이 가께.

자꾸 되뇌이게 된다. 내가 왜 이런 말을 했을가. 나는 뭐가 두려워서 빨리 오시라고 말하지 못했을가.  

나는 왜 늘 거리를 두려 할가.

***

동생을 집에 데려오던 장면이 생각난다. 우리는 뜨락또르에 타있었고 아버지인가 어머니 등에 업힌 아기는 호랑탄자로 감싸져 있었다. 그날부로 나는 웃방에 홀로 재워졌다.

동생은 어머니가 꼬집으면서 내쫓아도 기어이 살을 비비며 옆에 붙어 있는 찰거마리로 자랐고, 나는 길을 같이 걸어도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는 법 없는 랭혈로 컸다.

나는 늘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했고 자유를 우선시했다. 내게 관심은 간섭으로 감지되기 일쑤다.

***

아이 할머니가 아이를 업고 집에 가서 한동안 계시면, 나는 그동안 부부싸움이라도 크게 나서 다시 아이를 못보게 하면 어쩌나 걱정했다. 아이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와서 아이를 봐주시면, 나는 이렇게 앞으로 수십년을 시집살이 해야 하나 고민했다.

눈에 옥수수알이 보이면 내 뇌는 뻥튀겨서 옥시티개로 받아들이고는 심장을 빨리 뛰게 하고 가슴을 답답하게 하면서 몸을 괴롭힌다.

***       

박경리 선생님은 <토지>에서 예민한 사람이 허둥지둥 하는 것을 감수성이 많은 것을 일시에 받아들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홍수현상이라고 했다. 순간적으로 그것들을 감당치 못하고 혼란에 빠져 허둥대는 것이 겁에 질린 듯 잘못이라도 저지른듯 하다고 했다. 

두 사람만 있을 때는 하나의 관계를 처리하면 되지만, 세 사람, 네 사람이 있으면 기하학적으로 관계가 복잡해진다. 그런 다양함을 즐기는 사람도 있고, 즐기지 않더라도 그까짓 옥수수 몇알 더 많아진 것쯤이야 하고 가볍게 넘어갈 사람도 있겠지만, 예민한 사람에게는 옥수수 몇알이 아니라 뻥튄 옥시티개들이 이리저리 굴러다니는셈이다. 

어머니가 온다고 하니, 나는 벌써 내 주방, 내 살림, 내 공간을 빼앗긴 상황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래서 거리부터 두려 했을 것이다.

어린 내게, 엄마 품이 사라진건 뻥튀기된 엄청난 자극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한참을 어리둥절하다가 심한 자극과 거리를 두고 내 공간을 만들기 시작한건 아닐가.

다 큰 내게, 아이가 내 품에서 사라진것 역시 뻥튀기된 자극으로 다가왔을 것이고, 내 몸이 피곤하더라도 서러움과 거리를 두는 독박육아를 택했을 것이다.

***

다른 사람에게는 적당한 긴장을 주는 자극이 민감한 사람들에게는 강한 자극으로 다가온다고 김도인이 <숨쉬듯 가볍게>에서 말한다. 민감한 사람들은 하루 일과를 마친 후 휴식을 취하면서 긴장된 상태를 진정시키라고 한다. 산책을 하거나 조용한 공간에서 호흡명상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한다.

같은 활동이라도 민감성이 높으면 자극을 많이 받기 때문에 일을 끝마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의 기준에서는 사회적 활동이 부족해보일 수 있어요. 그래서 사회부적응자라든가 소심하고 내성적인 사람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민감성이 높은 것은 자극에 대한 반응 범위가 넓은 것이지, 사회적 능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에요. 그러므로 남들과 똑같이 행동하기 위해서 자극이 심한 환경을 견딜 필요는 없습니다. 자극이 심한 환경은 적절히 피하세요. 어쩔 수 없는 경우라면 그곳으로부터 벗어난 뒤에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 됩니다.

까다롭다, 유난스럽다, 감성적이다, 소심하다, 사회성이 부족하다 처럼 예민하다와 비슷한 표현들은 부정적으로 많이 쓰여요. 너무 예민해서 고민이라면 자신을 고치려고 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이해해야 합니다. 심리적 문제들은 내 몸과 마음의 특성을 잘 모르고 있을 때 생기거든요. 내 자신이, 내 삶이 버거운건 나한테 어떤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에요.

단지 자기기 세상에 반응하는 방식에 익숙하지 않은 것뿐입니다.

***

<토지>에서는 예민한 사람들은 홀로 있을 때 자신과 타인의 상황을 전후좌우 세밀하게 분석하는 버릇이 있고, 전모를 파악하기까지 추적해가는 끈기도 있다고 한다.

예민한 사람들의 실을 말하자면 대접을 못 받는데 있고 득은 반복되는 사이 어떤 지속성을 이루에 된다는것, 새김질하면서 판단의 정확성에 접근해간다는 점, 항시 자기 내부를 둘러보며 또 남의 심부에 칼을 꽂기도 하고, 남보기엔 위태로우면서도 결코 그런 성향의 사람들은 자신을 팔아넘기는 짓을 아니한다. 

예민함을 부정적으로만 보지 말고 좀더 알아가면서 다뤄야겠지.

***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여러 오빠 밑에서 자란 채송화가 밥을 먹기 전에 "이건 다 내꺼다"하고 주문을 외우는 것처럼 나도 중얼댔다.

나는 어른이다.

나는 내가 원하는대로 살 수 있다.

내 집은 내 마음대로 꾸민다.

내가 주인이다.

나는 자유다.

***

어린 나는 엄마 사랑이 고팠을 것이다. 다 큰 나는 여전히 엄마 품을 갈구하고 있을 것이다. 엄마가 원하는대로 해서 사랑을 받고픈 욕망과 그렇게 하면 자유를 잃을 것 같으니 거리를 두려 하는 방어기제가 함께 작동할 것이다.

엄마가 내 인생에 간섭한다고 투정하지만 따지고 보면 사실은 내가  은근 관심 받고 인정 받고 싶어서 여지를 둔 것이였다.

***

속내 다 드러내는걸 보니 모녀가 맞긴 맞구나, 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데, 이렇게 자꾸 새김질하고 뻥튀기 한다. 쉽게 가볍게 넘어가면 안되나.   

김도인 님의 <숨쉬듯 가볍게> 도움이 필요하다.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자기의 기분이나 생각을 반추하면 나쁜 기분이나 생각들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불어나요. 반추적 반응은 우울하고 무기력한 기분과 부정적인 생각을 부풀리고 지속시키는 특징이 있거든요.

스트레스를 받는 일들이 있다면 그것에 대해서 생각하는 대신 그로부터 벗어나야 해요. 그래야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도 해결할 수 있어요. 자동적으로 문제를 처리하는 마음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집중력을 키워야 해요. 강한 집중력은 스트레스를 강화하는 반추적 반응 양식에서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거든요.

***

생각이 많은게 아니라, 집중력이 약해서 생각에 휘둘리는거란다. 

나의 잡생각에 휘둘릴 때, 다른 사람에게 휘둘릴 우려가 있을 때,  한가지 생각에 골똘히 잠기는 것이 좋은 대응방법이라고 한다.   

'저녁에 뭘 해먹을가' 라는 생각에 집중해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박경리  <토지>

김도인  <숨쉬듯 가볍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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