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도시 이야기는 베니스의 1000년 력사를 풀어낸 시오노 나나미의 책이다. 

바다의 도시다보니 배에 관한 이야기거나 배를 타는 이야기가 많은데 인상깊었던 구절이 있다. 

한달간 배를 타니

바람이 잘 불어 배가 잘 나가는 날에는

서로 너그럽고 친절하지만

바람이 약하거나 반대방향으로 부는 날에는

밥 투정도 하고 

선원이 계란을 훔쳤다고 의심하기도 한다.

***

코로나로 2주 넘게 집에 박혀 있으니 이 구절이 다시 떠오른다.

요즘 이런 대화가 있었다.

– 사발 씻는다는게 어째 재철이 하나는 남겼음두

– 아, 그거, 내 설명할게

– 설명 필요없으꾸마. 지금 씻겠음두 안씻겠음두

– 그게 왜 남았는가므

– 한마디만 말합소. 지금 씻겠는가 말겠는가

– 아이 씻겠소

아저씨가 씻지 않은, 고기 기름이 묻은 그릇을 내가 마저 씻을때까지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억눌린 불평은 그 이후 이런 식으로 여러번 튀여나왔다.

 – 지는 재철이 씻겠는가 물어보니 단마디로 거절하던만. 나두 거절하겠스끄마

– 제 어디 재철이 씻으라 했소, 씻겠는가 물어밨지

– 내 심심해 물어보겠슴두

그러다 재철이를 씻지 않은건 설겆이를 본인 일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본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건 이 집을 자기 집으로 생각하지 않기때문이라는 높이에 이르렀다.

그제야 심각함을 느낀 아저씨가 '오늘은 내가 바닥을 닦을게' 하는 양보를 보였다.  

***

나는 집순이다. 

일주일간 쓰레기 버리러 딱 한번 나가고 집에 박혀 있은 적도 있다.

그런데 다니지 말라고 하니 집에 있는게 숨이 막힌다.

출퇴근이 고단하긴 했지만 자전거 타고 지하철까지 가는 길에선 바람 타고 나는듯 했고,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시간은 온전히 내 시간이였다. 돌이켜보면 바람이 불어 배가 잘 나가는 날들이였다. 그런 날은 숟가락저가락만 씻어도 고와보였을텐데…

바람이 자거나 반대방향으로 부는것 같은 요즘에는 잘 먹고 잘 자고 운동을 해도 어딘가 석연치 않고 찌뿌둥하다. 자유를 잃은 몸과 마음은 머리가 아프거나 입술이 터지거나 심술을 쓰는 등 반항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영어 선생님께 하소연하니, 자유를 잃은 것도 있지만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는 막막함도 한몫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매우 작더라도 기대할 수 있는 일을 만들라고 한다. 아이스크림을 주문해서 기다리거나 선생님과의 대화를 기다리는 등이다.

그리고 두가지 팁을 더 주었다. 슬픈 영화를 보면서 펑펑 울기,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소리 지르기. 울기? 소리 지르기? 기억을 더듬어도 언제 내 몸이 이런 기능을 했던지 떠오르지 않는다.

***

수백년전 한달간 배를 타면 바람의 크기와 방향에 따라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고 한다. 더 거슬러올라가면, 만년전 강수량이 다른 지역에서 서로 다른 품종인 벼와 밀을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동양과 서양 두 가지 서로 다른 문화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함께 줄을 맞추어서 모를 심는 벼농사로 주변인과 협업하는 가치관과 시스템이 발달하고, 혼자 땅 위를 걸어다니면서 씨를 뿌리는 밀농사로 개인주의적 성격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렇듯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바뀌거나 이루어지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 내 의지를 내려놓기로 한다. 힘을 뺀다. 

쉽게쉽게 스친다. 핵산검사하러 갈때 푸름이 우거진 길을 스윽 돈다거나, 채소 사러 갈 때 동네 한바퀴 슬쩍 산책한다거나, 아저씨를 괴롭힌다거나 하면서.  

—–

바다의 도시 이야기     시오노 나나미

공간이 만든 공간         유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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