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 년에 집에 한두 번 연락할까 말까 하는 무뚝뚝한 자식이다. 부모님도 무소식이 희소식이겠거니 하고 생각하시지 않았을까 싶다. 굳이 연락해서 할 얘기가 없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요즘은 자주 전화드린다. 어머니가 특히 좋아해 하신다. 얘기를 하기 시작하면 한 시간이 넘을 때도 있다. 이렇게 쉬운 걸 이렇게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걸 진작에 자주 연락드렸던걸 그랬다.

얼마 전 “아빠가 딸에게 쓰는 편지” 시리즈를 흥미롭게 읽었다. 나도 대충은 들었지만 우리 가족사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물어봤고 잊어먹지 않게 기록해 두었다.

할아버지는 1893년에 출생했고 존함은 崔弘洙 (나중에 崔昌浩로 개명) 본적은 함경북도 경성군 주북면 서원동이다.

당시 간도(间岛) 지역에서 반일 사상을 퍼트리고 반일 세력 확대 및 군사자금 마련하는 등 독립운동 단체에서 활동하셨던 할아버지는 1932년 연길현에서 일본군한테 체포되었고 7년 징역을 선고받았다. 추후 연길 감옥에서 서울 서대문 감옥으로 이송됐다고 한다.

1934년 만주국() 정부는 간도성(间岛)을 설치하였고 1945년 8월 만주국이 해체되면서 자연 소멸하였으며 오늘날의 연변 조선족 자치주와 대충 맞아떨어진다.

하남 예술극장 남쪽에 있는 연길감옥항일투쟁기념비.

할아버지가 투옥 중이실 때 병약하신 할머니는 증조할머니와 육 남매를 책임지고 억척스레 살아가시다가 결국 큰아들이 굶어죽고 그 뒤로 몸져누워 다시는 일어나시지 못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증조할머니도 돌아가셨다고 한다.

옥중에서 비보를 접한 할아버지는 비통하여 난동을 부렸고 심한 뭇매에 결국 정신에 이상이 생기셨다. 나중에 병이 인정되어 뒤늦게 석방됐으나 이후에도 지속적인 뒷조사가 끊이질 않았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병세가 조금 호전되어 재혼을 하셨고 아들 둘을 낳으셨는데 그중 둘째가 나의 아버지다.

병세가 호전되긴 했으나 노동력을 상실한 할아버지는 둘째 아들(나의 아버지)이 모셨고 왜군들한테 잡혔었다가 중간에 풀려난 게 의심스럽다는 이유로 문화대혁명 시기의 어느 야밤에 밧줄로 묶어서 체포해갔다고 들었다. 이때 수감된 곳은 감옥은 아니라(이때는 잡혀간 사람이 워낙 많아서 교실과 같은 장소도 가두는데 사용됐다고 한다.) 음식도 제공 안돼서 어린 아버지가 매일 음식을 들고 찾아갔다고 한다. 그 와중에 반역자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생겨났고 엄청난 피해를 받으셨다고 들었다. 어린 마음에 얼마나 상처를 받으셨을까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할아버지는 얼마 되지 않아 풀려나셨고 74세에 돌아가셨다. 나중의 일이지만 할아버지의 혐의는 벗겨졌다고 한다.

그 뒤 아버지는 할머니를 모시고 왕청 농촌으로 갔고 얼마 안 돼서 할머니도 지병으로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아버지는 6년 정도 농사하시다가 추천받아서 연변대학에 입학했다고 한다.

한민족이고 서대문 감옥에 수감됐던 기록이 있어서 나중에 국가유공자로 인정되셨다.

집에서 보관중인 판결문 사본중 일부

국가유공자 가족한테는 혜택도 있어서 알아보았다고 한다. 족보 혹은 호구가 필요했고 혼란스러운 문화대혁명 시기에 분실돼서 없다고 한다. 부자지간인 걸 증명할 만한 건 함께 찍은 사진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인정이 안된다니 포기했다고 한다. 인정됐다면 나도 전액 장학금을 받으면서 한국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 현실은 근로장학생 & 연구실 월급 & 부모님의 지원으로 석사과정을 마쳤다.

가족사를 물어보면서 거의 할아버지 할머니 얘기만 한 것 같다. 나중에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얘기도 물어보고 아버지, 어머니의 어린 시절 얘기도 물어보고 싶다. 여기에 포스팅하지는 않을 것 같고 내 컴퓨터에 고이 간직할 예정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환경이 주는 영향은 어마 무시하다. 의식주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지금과 같은 평화로운 시대를 살면서 내가 했었던 고민들을 다시 생각해 보니 피식 웃음이 나온다. 혼란스러운 시기를 잘 벼텨주시고 나를 세상에 있게 해준 부모님을 오래오래 즐겁고 행복하게 해드리고 싶다.

사진출처:

http://www.yanjinews.com/html/news/yanjinews/2017/0406/100109.html

https://blog.naver.com/jhy8365/120147230326

https://namu.wiki/w/%EA%B0%84%EB%8F%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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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r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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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의 아버지가 연대 교수로 있었을때 한국대학의 교수 한분이 연대에서 중국어 공부를 하던중 그분한테 부탁했더니 서대문감옥으로 편지를 써서 부탁했다고 하네요. 그래서 판결서 사본을 구할수 있었어요. 운이 좋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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