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자!

지하철을 기다린다. 좌측엔 김현덕이라는 분이 쓴 시 <마라토너>, 우측엔 결혼정보회사 광고. 중간엔 예쁜 옷을 입고 들뜬 나.
버스에 탔다. 움직이는 건물들 사이로 많은 것들이 떠올랐다.
핸드폰을 꺼내고 메모장을 연다.
그리고 사색하며 써내려 간다.
나는 졸업하고나면 이 기나긴 박사 여정에 대한 소감을 작성하려고 했다. 하지만 졸업이 미루어지면서 '승자'의 소감은 아쉽게도 '패자'의 기록물로 대체된다.
언뜻 그런 생각이 든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온 사람들의 삶은 그 전과 얼마나 달라졌을까? 과연 달라 질 수 있는 것일까? 만일 달라졌다면 어떤 점에서 달라진 것일까?
나는 나의 다음 학기의 논문이 더 '잘' 쓰여질 것이라는 장담을 못하겠다. 왜냐하면 '잘' 쓴 논문이라는 평가기준이 나한테는 절대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제출했던 첫 번째 논문도 만족스러웠고, 두 번째 수정한 논문도 나름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나는 매번 나의 한계를 도전하면서 그 시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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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 跑题를 하겠다.
정치적 남용으로 이미 그 본래의 의미를 상실한 '正能量'이라는 단어, 이 단어는 오늘날 왜 이토록 상투적으로 변용되었을까?
실제로 正能量은 우리의 일상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이는 우리에게 고난과 역경을 넘어설 수 있도록 막강한 에너지를 제공해준다. 하지만 이토록 중요한 단어는 이내 '躺平'에 의해 조롱의 대상이 되어버린다.
"최선을 다해 살라."
"절벽 끝자락에 서있다고 하더라도 최선을 다해 뛰어 내리자."
이미 충분히 힘든 사람들에게 이런 말들은 되려 가장 힘빠지는 용어로 들려올 것이다. 우리에게 요구된 正能量은 넘쳐나지만 우리가 내뿜을 수 있는 正能量은 항상 고갈된 상태다. 그렇다면 우리 내부에서 발산되는 正能量은 도대체 어디서 연원하고 형성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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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나의 분수를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나의 한계를 인지 한다는 뜻이다.
드높은 이상(理想)을 욕망하는 개인은 자신의 한계를 느낄 때마다 한없이 작아진다.
그렇다면 자신을 속이며 목표치를 낮춰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이미 이상적인 인간이라고 자신을 부풀이면서까지 자기기만을 해야하는가?
실은 누구든 정답을 알고 있다.
그 흔한 지침서 — "자신을 알라"
바로 여기에 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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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이 문구를 보자.
"최선을 다해 살라."
"절벽 끝자락에 서있다고 하더라도 최선을 다해 뛰어 내리자."
우리가 우리의 추하고 하찮은 모습까지도 직면할 용기가 주어진다면 위의 두 문장은 달리 보일 것이다.
"최선을 다해 살라"는 외적 요구가 아닌 내적 요청으로,
'절벽 끝자락에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뛰어 내리려는 다짐'은 죽음을 염두에 두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죽음을 삶의 긍정 속에서 몰아내는 것이다.
결말을 못쓴 채로 속초에 도착했다. 결말이 뭐가 중요할까. 그래서 그냥 안쓰기로 했다,

창밖을 보라. 바다는 언제나 옳은 선택이다.

멀리서 보이는 어선. 배고프다.

흰색 꼬깔모자는 속초항 오징어 횟집들이다.

싱싱한 오징어회.

회를 잘 못먹지만 오징어 회는 거의 절반을 먹어버렸다. 남은 절반은 라면에 풍덩 넣으니 칼칼한 오징어 탕으로 변신했다. 익은 오징어도 야들야들 참으로 맛있었다. 배도 불렀으니 바다구경 더 하고 숙소로 고고!

오늘 내일 나의 쉼터.
끝.

아… 바다냄새가 막 여기까지도 나네요. 오징어도, 라면도, 맛잇어 보입니다. 그리고 “결말이 뭐가 중요할까. 그래서 그냥 안쓰기로 했다”라는 마인드까지 굿굿 ㅋㅋㅋㅋ
같은 음식도 다른 장소에서 다른 방식으로 먹어보니 맛이 또 다르더군요!
흰색 원피스 넘넘 이쁨다~^^
실은 옅은 노란색입니다 ㅎㅎ
제일 어려운 것인데 또 일상 속에서 사람들이 종종 쉽게 말하는 두 문장.
지니가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작성하다보니 더 솔직한 심경을 보여준것이 아닐가 라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익숙한 신촌 지역이 아닌 그렇다고 잠시 쉬어갈 속초도 아닌 순간순간 계속 변화되는 것 자체를 느낄수 있는 이동 중인 상태가 “살아 있음”을 공간 위치적으로 느끼게 해준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제 자신이 그런 느낌을 받았던 지라 지니 글 본 후 떠올라 이렇게 댓글 남깁니다~
잠간이겠지만 “쉼터”에서 맘편한 시간 누리다 오세요.
덧붙이자면,
출발지와 목적지가 명확한 이동을 할 때면, 특히 창밖 풍경이 보이는 경우
시간과 공간이 우리 몸을 관통해 지나간다는 상상을 해었습니다.
이런 느낌이 저는 참 좋습니다. ㅎㅎㅎ
그 반작용으로 저는 어두컴컴한 동굴을 달리는 지하철은 시간이 급한 경우가 아니면 우선으로 이용하지 않는 편입니다.
‘익숙한 신촌 지역이 아닌 그렇다고 잠시 쉬어갈 속초도 아닌 순간순간 계속 변화되는 것 자체를 느낄수 있는 이동 중인 상태’ 구카는 항상 제가 느꼈던 그대로를 읽어 내시는 군요!
버스에서 창밖을 바라보면 ‘시간과 공간이 우리몸을 관통해서 지나간다는’ 표현이 아주 적절한 것 같습니다. 동시에 사유 또한 시공간을 넘나들죠.
지니 글은 항상 읽기가 편합니다. 난해한 화제를 다룰 때도, 편하게 생각을 흐름 따라 적었을 때도. 이번에는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함께 힐링이 되는 사진들과 함께인 글이라 2배로 좋습니다. ㅋㅋ 오징어회 먹어본 기억이 없는 저는 꿈틀대는 산낙지 맛이 떠오르는군요. 😂
감사합니다. 산낙지만큼 질기지 않아요! 꼬들꼬들하지만 또 부드럽게 씹혀집니다.
육아를 하면서 비슷한 고민을 했었어요.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라고 해서 90점 이상 맞으면 성취감 느껴서 더 열심히 하지 않을까, 최선을 다했는데 80점이하 맞으면 자존감이 떨어지지 않을까…최선을 안했는데 100점 맞으면 이게 최선이라고 착각하지 않을까…노력이란게 뭔지 모르지 않을까…ㅎ
결론은 엄마가 뭘 원하고 뭘 주문하든 아이들은 결국 자기가 내키는 대로 하고 있고, 그것을 그대로 거울처럼 미러링 해주는 것이 엄마의 최선이다 였어요. ^^
잘 읽었습니다~
네, 맞는 말씀이신 것 같습니다. 아이의 행동을 마러링하여 아이 스스로가 자신의 상태를 깨닫을 수 있는 그러한 교육방식, 이것이야말로 부모의 최선이죠!
오징어회, 캬~ 달다달어
정말 맛있어요! ㅎㅎ
드라마에서 몇번 들은 속초,
이름도 참 좋아요.
벌써 다음 호가 기대되어요.
낼 아침 바다도 올려줘요.
오징어회, 맛있겠어요.
도시는 많이 낡았습니다. 하지만 여유롭고 혼자 사색하기 좋은 곳입니다. 곧 다음 글도 올려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