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 것도 아니고 호남으로 가는건 더욱 아니지만 남행열차를 탄 셈이다. 오랜 친구를 만나러 가는 여행이기도 하지만, 좋은건 그뿐이 아니다. 오후 네시경이라서, 혼자라서, 맘에 드는 신발을 신어서.

기차나 비행기같은 빠른 운송수단을 타게 되면 잠깐 다른 세상에 사는 것 같다. 인터넷 공간 못지 않게 비현실적인 느낌이 든다. 하여 본분을 잃지 않으면서 조금 다른 사람이 되기도 한다. 

없으면 사흘이 불편할 물건들을 담은 가방을 좌석위 선반에 올리고, 읽다가 조금 남은 전자책을 마저 읽었다. 유명하지만 처음 읽는 사강, 근데 읽다보니 익숙한 영화대사가 나온다.  원문을 그대로 외우지 못했지만,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조금 더 사랑받기 위한 것”이라는 말. 비포선라이즈에서 셀린의 대사는 그러니까 사강의 글에서 나온거구나. 이런 출처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일수도 있겠으나, 또 아니면 그보다 더 원조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어쨌거나 혼자서 이런 발견을 할때면 잡다하고 좋아하는 것만 남기는 나의 기억력이 싫지 않다. 

근데 요즘 그 기억력에 고장이 나서 퍽 속상하고 불편하다. 코로나가 남긴 가장 선명한 후유증이다. 했던 말을 또 하는걸 싫어하고, 내가 누구에게 무슨 말을 했던지를 잘 기억하는 편인데, 요즘은 그렇지 못하다. 그건 노화의 일환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미운건 아니지만 오초간 얄밉다.

어떤 일을 일부러 잊어서 극복하려고 한적도 없지만, 애써 남긴적도 없다. 코로나든 노화든 선택적 망각이든, 그저 나의 기억을 지켜보려 한다. 가벼운건 휘발하고 소중하고 의미있는건 알아서 남을테니. 

건너편에 꽤 예쁜 커플이 앞뒤로 앉았다. 남자는 킹즈오브컨비니언스의 멤버를 닮은 곱슬머리 고운 청년이다. 그의 연인은 더 멋쟁이였는데, 염색한 노란 머리를 양갈래로 묶고 두개를 뒤로 연결해서 얹었다. 어두운 노란색 체크무늬의 양털같은 플리스를 입고 있었고  노트북을 꺼내놓고 타자를 하는데, 글을 쓰는것 같았다. 훔쳐보기는 나쁜거지만 한 단어라도 보고 싶어서 열심히 촛점을 모아봤으나 실패. 그리고 두달째 아무것도 쓰지 못한 내가 생각났다. 

‘생각났다’라고 썼지만 사실 아무것도 쓰지 못하는 이런 기분과 늘 함께 살고 있다. 대단한 걸 쓸 것도 아니고 누가 기다리는 것도 아니지만 나는 늘 뭔가를 쓰고 싶다는 마음에 사로잡혀있다. 정신세계가 얄팍해서 사려깊은 글은 쓰지 못하지만, 종종 근사한 음악을 듣거나 괜찮은 무언가를 보면 그것이 텍스트가 아닐지라도 저런걸 닮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생각이 떠올라서 메모를 해둘때면 자기가 언어의 마술사라도 되어 그 생각을 능수능란하게 표현할 것 같은 착각이 드는데, 정작 워드를 켜면 스스로가 세상 바보스럽게 느껴진다. 그럴때면 잠깐 숙연해지거나 반성의 시간을 가진다. 그 일이 별거라서가 아니다. 다만 내가 몹시 좋아함에도 어려워서다. 그리고 어렵기에 좋아한다. 

한길 이라는 노래를 무한반복해서 듣고 있다. 한길이 보편적인 이름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들어도 이 노래에서 한길은 어떤 인격체임에 분명하건만 큐큐음악에선 一条大路라고 번역해놨다. 한길이가 대통로가 절대 아니라는 법은 없겠지만 상상력이 부족해서인지 아무리 양보해도 그건 아닌것 같다. 한길= 一条大路라는 번역, 서로 성향이 다른 두사람의 대화를 닮은 것 같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오후를 지나 저녁에 왔다. 창원시 마산, 이곳에 올거라 생각한적 없다. 잊은줄 알았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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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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