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사람 (외 1수)
김영수
계절따라 같은 꽃이 핀다는 건
우리의 착각이다
꽃은 단 한 번 밖에 피지 않는다
오랜 세월 한 사람과 지내왔다는 건
우리의 가슴이 꽃처럼 날카롭지 못해서이다
사람과는 단 한 번 밖에 만나지 못한다
꽃과 사람과 흘러가는 모든 것에
우리는 얼마나 아는 것처럼 오만했었고
남몰래 상처를 가졌는가
세월의 강물이 가슴을 뚫고 지나가는 동안
수많은 돌덩이를 휘뿌렸지만
아직 별이 되진 못했다.
그러나
캄캄한 밤하늘 고개들어
쉴새없이 흘러가는 은하수 보았는가
꽃은 한 번 밖에 피지 않고
사람은 한 번 밖에 만나지 못한다.
— — — — — —
가로등
김영수
나는 그렇게 경직된 몸으로
서 있었다
날카로운 빛들을 창처럼 치켜세우고
창백한 몸으로
어둠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어둠은 늘 주위에 몰려들어
초조하게 서성이면서 내 안을 들어오지 못해
사람처럼 울었다
밤이 깊을수록 나는 빛발을 뽑아들고
리얼하게 날을 세운 이성의 이빨을 드러내면서
한치의 양보도 없이 빛과 어둠의 경계를 만들며
실면하는 자의 밤과
밤이 그리운 외로운 자들의 꿈을 추방시켰다
나는 밤길을 오가는 도시의 행인들과
눈을 정중히 맞추며 약속하였다
그들에게 눈부신 빛이 되어 주기로
대신 그들이 지닌 눈부신 상상과 신화를 해부하고
어둠이 되면 그 잔해들을 연소시키며
새로운 전설의 에너지를 만들어
밤의 나라를 사냥하리라고
그들의 어깨에 앉아
빛의 추위에 떨고 있는 신들은
나에게 말했다
그들이 죽어서 여덟 개의 눈을 뜰 때,
양귀비 꽃처럼 황홀하게 피어나
신들린 춤을 추는 영혼들의
가슴 한가운데 볼랙홀이 필 때
그 사이를 오리라고
오늘밤 나는 가냘픈 긴목을
고귀한 사슴의 목처럼 드리우며
도시의 밤을 행진한다
골목마다 가로등 빛들은 밤의 냄새를 맡으며
짐승처럼 신음을 울부짖는다.
<시선> 2020-03-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