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새로이 직장을 구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직면했다. 아예 다른 도시로 옮겨 살 수도 있다. 무슨 일을 할가, 어떤 마음으로 할가, 언제까지 할수 있을가, 두렵고 불안하다.

그러는 중에 시오노나나미의 <생각의 궤적>을 펼쳤다. 시오노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이다. 1937년생 시오노나나미는 55세가 되던 해인 1992년부터 <로마인 이야기>를 집필하여 2006년까지 15권의 시리즈를 마무리하였다. 퇴임하고 집에서 손주를 볼 나이에 1년에 한권의 강도로 꾸준히 고품질의 전문서적을 써낸 시오노나나미는 나에게 신비한 존재이다. 이 일본인 할머니가 궁금했다.

***

<생각의 궤적>은 시오노나나미가 가끔 잡지에 발표한 짧은 문장들을 모은 에세이집이다. 살면서 떠오른 이런저런 생각을 간결한 언어로 담고 있어 로마력사 전문서적의 작가가 아닌, 그냥 한 사람으로서의 모습이 엿보인다.

1989년에 쓴 에세이에서 작가는 정기적으로 건강 상태를 체크해주는 주치의를 찾아야겠는 생각을 한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 작가의 얼굴색이 안좋아보인다면서 이제는 주치의가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조언했던 것이다. 그해 나이 52세, 로마인 이야기를 포함하여 향후 20년의 출간계획을 잡고 있던 시오노나나미에게 건강은 그야말로 본전이였다.

이태리에 거주하면서 일년에 두세번씩 일본에 다녀가는 작가는 어떤 주치의를 찾아야 하는지 고민하다가 본인의 작품을 좋아해야 하고, 동경에 근무해야 하며,  유명한 의사가 아니여야 한다는 세가지 조건을 든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단다. 

동경에 근무해야 하고 너무 유명한 의사가 아니여야 한다는 점은 쉽게 납득된다. 일년에 두세번 일본 와서 주로 동경에 머무는데, 체류기간이 짧은데다 출간에 관해 편집자와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남은 시간이 빠듯하니 작가가 원하는 시간에 만나려면 동경에 근무하면서도 그다지 바쁘지 않은 의사가 적절하다.

본인의 작품을 좋아해야 한다는 조건은 재미나는 발상이다. 다음 작품을 기대하는 마음에서라도 작가의 건강을 더 잘 챙길테니까. 같은 맥락에서 무료서비스에 대해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나는 가난한 글쟁이다. 현재로서는 가난한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싶지 않다. 주치의에게 반드시 뭔가 이익을 드려야 한다면 같이 얘기를 나누거나 쓴 책을 선물할수 있다. 그러니, 내 작품을 사랑하지 않는 의사는 이런 고생을 사서 하지 않을것이다.

나는 내 인생을 어디에 써야 하는지 알고 있다. 내게는 목표를 향해 나갈 힘이 있다. 다만 그 힘의 기반으로 되는게 체력이다. 내게 있어 주치의는 역할이 다를뿐 내 작품의 공동저자라는 점에서 편집자와 다름 없다. "

시오노나나미는 향후 20년간 로마 력사를 글로 풀어내려 했고 이 일을 사명이나 목표로 삼았다. '로마 력사를 집필하여 유명한 작가가 되자, 유명한 작가가 되여 가난한 상태를 개선하자, 인세를 받아 로년을 편안하게 보내자'가 아닌, '쓰고 싶은 글이 있다, 20년은 써야 하는데 그동안 건강해야 한다, 가난하니 무료로 서비스를 받아야겠다, 내가 쓰는 글을 좋아하고 이에 동조할 의향이 있는 의사를 찾아야겠다'라는 마치 로마력사를 풀어내기 위해 태여난 사람인양, '내 가치는 여기에 있으니 당신이 원한다면 합류하여 당신이 잘하는 부분을 맡으시오'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이다.

시오노나나미에게는 글쓰기가 목표이다. 글을 쓰기 위해 글을 쓴다. 건강은 수단이다. 돈도 수단이다. 

시오노나나미는 당장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잘 안다. 어느 대리상으로부터 제안을 받았듯이 일본에 올때마다 대리상이 짜놓은 일정대로 강연도 하고 티비에 나가고 세미나에도 참석하면 된다. 작가는 이 제안에 대해 30분간 고민한 끝에 거절했다고 한다. 작가는 '청빈(清贫)'해야 일을 잘할수 있다고 하면서 제안을 받아들이면 '빈'을 벗어나는 동시에 '청'도 잃는다고 한다. 

작가는 1년 12개월 중 6개월을 지정된 주제에 대해 공부하고 2개월간 초안을 작성하고 1개월간 필을 놓고 생각을 돌이키고나서 한달간 글을 수정하고나면 10개월이 훌쩍 지난다고 한다. 나머지 2개월은 일본에서 책을 출간하는데 사용한다.

공부하는 시간을 6개월에서 좀 줄이면 안되냐는 의문이 들수도 있는데 작가는 만일 이 시간을 줄이면 독자도 줄어들 것이라 한다. 출간속도가 빠른 1000엔의 에세이집과 전력을 다 해 쓴 3000엔의 서적을 비교하면 전자가 후자의 3배이상 팔리지 않을 것이라 하면서, 작가에게 있어서 독자들이야말로 진정한 협찬인인데 10년, 20년을 공들여 만들 책들이기에 최선을 다 해야 한단다. 

여기서 독자도 협찬인일뿐이다. 글쓰기가 목표이고 독자도 이 목표에 동조하는 자일뿐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는 것은 책을 꾸준히 오래 쓰기 위한 수단일뿐이다. 

내가 내 인생을 사는데 마침 너에게 도움이 되였다면 기쁘구나, 나도 덕분에 사명을 계속할 수 있구나.  

세상에 존재하는 그 많은 유혹들을 제치고 시오노나나미는 오로지 로마력사를 풀어내는데 전념한다. 어떻게 이럴수 있지. 

***

마흔을 앞둔 나는 십여년간 종사한 분야에 이제 겨우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늘 떠나고 싶으면서도 밥벌이에 도움이 되니 어쩔수 없이 계속한다는 느낌이 들었던 직업이다. 이 일을 하기 위해 태여난 사람인양 일한적 없다.  일이 아니라 다만 밥벌이 직장이였을까. 

흥미를 가진 것은 전공책을 읽고 조금 어렵지만 재미나는 사건을 맡아 처리하면서 이 분야에 애착을 가지고 일하는 분들을 만나면서부터다. 소위 고객관리만 하면 될법한 위치에 있으면서 실무담당자들과 함께 전문지식을 연구하고 정리하고 나누는 모습을 보고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내 가슴에 불꽃이 튕겨 들어온 느낌, 나도 저리 되고싶다는 바램이 생겼다. 설레였다. 

그분들은 본인의 인생을 사는것뿐인데 마침 내게 도움이 된 것이다. 시오노나나미가 로마 력사를 풀어내기에 전념하는데 마침 독자들에게 도움이 된것처럼.

내가 전념하고픈 일이 무엇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전공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고 해서 그게 나중에 10년, 20년 계획을 잡을만큼, 내 사명으로 느낄만큼 절실하게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어쨌든 설레였다는건 좋은 일이다.

타지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할수도 있다는 압박감에 고민했지만 지금, 여기에서도 필요한 질문이다. 내 사명은 무엇인지, 일 자체가 목표인 일이 무엇인지. 나를 증명하기 위한 직장이나 지위가 아닌, 내 사명이 될 일(그것을 위해 직장이나 지위가 수단으로 될수는 있지).

응답하라, 2020. 

기대된다. 

盐野七生   思想的轨迹

시오노나나미   생각의 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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