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마이, 깨까잠둥?*”(어머니, 안녕하십니까?)
“야, 홍하아부지, 잘 쉬었소?”(양, 홍하(큰손녀 이름) 아버지, 잘 쉬었소?“
나의 어린 시절, 우리 집의 아침 풍경이었다. 아침이면 고방 미닫이가 드르륵 열리고 아버지가 정주간에 계신 할머니를 향해 그렇게 인사를 올리곤 하셨다. 곧은 가르마를 타고 은비녀로 쪽지머리를 단정히 얹으신 우리 할머니는 당신의 아들과 며느리에게 항상 하오체를 쓰셨다. ‘-오’나 ‘-소’로 끝맺는 그 말투는 조용하고 품위 있었다.
나의 할머니 김정옥 여사는 1921년생 함경남도에 살던 한 경주 김씨 집안의 장녀로, 다섯 살이던 한겨울날 어른들의 손에 이끌려 꽁꽁 언 두만강을 건너셨다고 한다. 그날 이후 정착한 곳이 바로 지금의 연변, 나의 고향이 되었다.
분명 같은 말이지만 조선이나 한국의 그것과는 다른 연변말을 사용하는 연변에서 어른들끼리 주고받는 말씨는 참으로 점잖았다. 거기에 하오체가 한몫했다.
“오랜만이오.”
“또 보기오.”…
하오체는 자신을 낮추지 않으면서 상대를 높이는 말투이다. 어른에게만 정중하게 사용하는 하오체에는 예의와 거리가 절묘하게 녹아 있었다. 아이들은 언니, 형님, 이모, 삼촌 등 윗사람에게 하오체를 쓰기는 했지만, 반대로 어른들로부터 하오체를 들을 일은 없었다. 나는 빨리 커서 누군가에게 그런 점잖은 말을 듣고 싶었고, 또 하고 싶었다.
한국어의 종결어미는 화자와 청자의 관계를 반영한다. 하십시오체, 해요체, 하게체, 하오체, 해체, 해라체. 그 중의 하오체는 자신을 낮추지 않으면서도 상대를 높이는 절제된 말씨, 관계의 온도를 조절하는 높임법의 어미이다.
하오체는 남한의 현대 한국어에서는, 인터넷 언어를 제외하고, 이미 자취를 감추었지만 조선 시대의 문헌에서는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춘향전』의 이본(異本)들 중에 조선 후기 판소리 계열의 춘향이는 이몽룡과의 대화에서 하오체를 자주 쓴다. “이 몸이 춘향이오. 어사 낭군을 기다리옵니다.”처럼 하오체를 사용해 신분을 넘어선 대등한 관계를 드러낸다. 이후의 필사본으로 넘어오며 춘향이의 말은 “소녀 춘향이옵니다.”처럼 하십시오체로 바뀌는데, 점차 위계와 격식이 강조된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게 보면, 하오체를 포함한 우리의 종결어미는 단순한 문법이 아니라, 시대와 관계를 담은 말의 전략이고, 언중들의 인간관계에 대한 시각을 드러내 준다.
요즘 연변에서도 하오체를 쓰는 사람이 줄고 있다는 얘기가 들려온다. 조선어 사용 인구가 점점 줄고 조선족 학교의 수업은 중국어 위주로 바뀌었다. 공적인 상황은 물론이고 사적인 상황에서조차 조선어 사용은 급감하고 있고, 그 안의 말투와 격식은 빠르게 단순해지고 있는 것이다. 효율과 직설의 언어가 예의와 거리의 언어를 밀어내고 있는 셈이다.
유네스코는 세계 언어의 절반 가까이가 소멸 위기에 놓였다고 경고한다. 언어는 단지 말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다. 언어가 사라진다는 것은, 그 언어로 빚어진 관계와 감정, 문화의 맥락이 함께 사라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라질 것 같은 세계의 말』이라는 책에는 소수 언어의 하나인 웨일스어(사용 인구 약 56만 명)의 단어 ‘히라이스(Hiraeth)’를 소개하고 있다. 이는 "더는 돌아갈 수 없는 곳에 가고 싶은 마음”이라는 뜻으로, 다른 언어의 어떤 낱말로도 대체할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이다.
하오체도 그런 말 중 하나가 아닐까. 관계의 방식, 말의 품위를 품은 연변의 하오체가 사라질까 나는 두렵다. 말의 결이 사라지면, 관계의 결도 함께 흐려진다.
어느 날, 고향 친구가 “잘 지냈소?”라고 물어오면, 나도 “덕분에 잘 지냈소.”라고 답하리. 아, 상상만 해도 좋다. 하오체, 그 말이 내 고향, 내 고향 친구들 만큼이나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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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말 Tip: '깨까잠둥?'
'깨까잠둥'은 '깨까자다'에 연변식 의문형 종결어미 '-ㅁ둥'이 붙은 말로, '안녕하십니까?'에 대응된다. ‘깨까자다’는 본래 ‘깨끗하다’의 함경도 방언형이지만, 어르신께 안부를 여쭐 때 “깨까잠둥?”처럼 인사말로도 사용된다. 이는 깨끗함, 즉 청결함이 곧 건강하고 단정한 상태를 의미하며, 나아가 무탈함과 안녕함을 빌고 확인하는 인사로 의미가 확장된 결과로 추정할 수 있다. 특히 연변 지역에서 어르신의 건강과 장수를 중시하는 문화가 이러한 언어적 전이를 가능하게 한 것이 아닐까 한다.
'안녕하다'는 말이 '안녕하세요.', '안녕.'처럼 인사말에서만 쓰는 것과 달리, '깨까자다'는 어르신이 건강하다는 의미로 '깨까잡니다'처럼 활용되는 등 형용사 활용 제약이 덜하다. 결국 ‘깨까자다’는 단순한 형용사를 넘어 존중과 안부의 정서를 담은 방언 인사말로 자리 잡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