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그랬지] 설날 – 기와집 큰딸

할아버지께서 돌아 가신지 40여년 지나 세월은 가고 시대는 변하였어도 설날은 어김없이 찾아 오건만...


섣달 그믐날부터 핸드폰은 쉴새 없이 微信 신호가 울린다. 지인들께서 올린 설명절 문안과 동영상들이 명절의 분위기를 띄우고 있지만 핸드폰만 끄면 썰렁하여 옛날 설명절 분위기와는 너무 다르다. 

내가 어릴때 우리집은 마을에서 제일 큰 기와집이였는데 아버지 어머니는 할아버지를 모시고 우리 다섯 남매를 기르면서 화목하게 살았다. 옆집은 삼촌네 집이였는데 삼촌네도 다섯 남매를 기르면서 오손도손 살았고, 뒤집은 5촌 숙부네 집이였고 년세많은 5촌 숙부네는 오누이를 기르면서 재미있게 살았다. 이렇게  우리 4촌 6촌 12명 형제자매들은 어릴 때부터 이집 저집에서 뛰놀며 뒤엉켜 자랐는데 그 중에서도 제일 재밌고 잊혀지지 않던 일은 설날이 오면 우리집에 모여 할아버지에게 세배 드리고 함께 모여 즐겁게 설명절 쇠던 일이다. 

설날이면 세 집식구들은 아침부터 우리집에 한 구들에서 야단법석했는데 지금 생각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나고 가슴이 뿌듯해진다. 설날 아침 할아버지에게  세배 드리는 행사가 제일 재밌었는데 그것이 우리 가문의 례의범절인것 같다. 열명도 넘는 우리 자매들은 모두 아침일찍 일어나 세수하고  저마다 설비슴으로 마련해준 꼬때옷을 떨쳐입고 우리집에 모여와 나이 순서대로 세배줄을 섰다. 그때  철부지였건만 그래도 신통이도 제자리를 찾아 서서는 히히닥거리며 제가 더 멋지게  하겠노라 마구 엎드려 세배련습까지 해가며 순서를 기다렸다. 

할아버지에게  세배 드리는 제일 첫 순위는  뒤집 5촌 숙부가 할아버지에게  절을 하면서 "아즈바님 오레도 무사합소" 하시면  할아버지도  맞절을 하며서 "조카도 무사하오" 하시고는 또 입속말로 뭐라고 하셨는데 그때 나는 너무 어려서 잘 알아 듣지 못했다. 두 번째 순위는 우리아버지와 삼촌께서 할아버지 앞에 공손히 엎드려 절하시며 "오레도 무사하고 오래오래 앉읍소" 하신다. 할아버지는 으으음 하시며 즐거워 하셨다. 

다음 세번째 순위는 10여명 손군들 순서다. 제일 처음엔 큰 손자부터인데 성욱, 정욱, 영욱, 태욱, 송욱이고, 손녀 순서는 일금, 정금, 순금, 오금, 선금, 신숙이였는데 모두 깍뜻이 엎드려 세배했다. 이때부터 온집안은 웃음소리가 넘쳐난다. 엉뎅이를 하늘로 췌들고 머리만  땅에 붙힌 놈, 머리와 배때기를 모두 땅에 납작 엎드리고 손만 이마에 대고 있는 놈, 두 무릅 꿇고 이마에 손만 얹고 엎드려 일어날 렴 하지 않는 놈, 별라별 우수운 꼴 다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제일 볼거리는 막둥이들이 절을 하느라 머리는 땅에 대고 궁뎅이를 꺼꾸로 췌들면 짜개바지 밑으로 삣죽 내미는 엉뎅이는 온 집안을 웃음바다로 만들어 저마다 웃느라 눈물이 찔끔 나기도 했다. 

세배를 받는 할아버지는 즐겁고 손군들이 너무 귀여워서 저마다의 머리를 쓰다듬고 잔등을 정겹게 뚝뚝 두두려 주며 "네가 제일 잘 한다", "네가 제일 곱게 한다", "네가 제일 멋있게 한다"고 하시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럴때면 철부지들은 저마다 제가 제일인 줄 알고 우쭐대며 너덜거린다. 그사이 우리 어머니와 숙모는 정주간에서 아침식사 준비에 여념이 없었지만 조무래기들이 세배하는 모습이 너무 궁금하고 재미있어 틈틈이 달아와 보고는 웃음보를  터뜨리며 다시 정주간으로 간다. 

설 세배가 끝나면 다 같이 모여 아침식사를 한다. 남자들은 술상에 앉아 권커니 작커니 하면서 술 마셨고 여자들과 애들은 끼리끼리 모여앉아 맛나게 설 음식을 먹었다. 할아버지는 술잔을 들고 마시기도 전에 가매목에서 바삐도는 며느리들에게 인젠 그만하고 식기전에 빨리 식사하라고 사랑에 넘친 어조로 재촉한다. 이렇게 온 집안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가득 찼다. 

아침 식사가 끝나면 동네 어르신들과 젊은이들이 할아버지에게 설 인사 드리려 연거퍼 들어오신다. 어머니는 아침  설거지도 채 끝내지 못하고 동네 손님 접대로 술상을 갖추고 거두고를 반복하며 온종일 뱅글뱅글 쉴새 없이 돌아쳤다. 그뿐만 아니라 초이튼날부터는 먼곳에 있는 친척들께서 할아버지에게 설인사를 왔기에 술상 차리고 정심까지 대접해야 했고, 어떤 분들은 오래만에 왔다고 몇칠씩 묵어가기도 했기에 우리집은 조용한 날이 별로 없이 시글벅적하였다. 그래도 우리 어머니는 짜증 한번 내지 않고 되려 꼭 오실분인데 안오면 이제나 저제나 하시면서 기다렸다 하기에 우리 어머니는 친척들과 동네에서 효자며느리로 소문이 자자했다. 

지금 할아버지께서 돌아 가신지 40여년 지나 세월은 가고 시대는 변하였어도 설날은 어김없이 찾아 오건만, 설날 우리민족의 전통과 풍속습관들은 전점 맥박이 약해지고 숨결이 낮아지는것이 현실인데 그래도 나는 그때그시절 설날이 너무 좋았고 너무 그립다. 례의가 바르고 착실하게 화목한 가정을 꾸렸던 우리 부모님들의 넋이 살아 숨쉬는 설날을 영원히 나의 가슴속 깊이 간직하고 싶다. 아니 영원히 간직하겠다. 

기와집 큰딸  최정금

*원문에 있던 명백한 오타나 띄어쓰기 오류는 일부 수정하였으나, 기본적으로 소리나는 대로 쓴 어휘나 구어적 표현을 그대로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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