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은 외삼촌 내외가 침실 겸용으로 쓰고 있다. 절반은 온돌인데 많을 때 밥상 세 개를 놓을 수 있고 손님이 갑자기 불어나면 나는 이 방에 쫓겨 와 자게 된다.
많은 사람의 시걱을 마련하고 빨래까지 하노라면 외숙모는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바삐 돌아 쳐야 한다. 요즘은 하수도 구멍이 얼어들어 구정물을 회사밖에 버리는 작업까지 새로 생겼다. 장작은 이미 패 놓은 걸로 수태 사 들여서 땔 나무 걱정은 없는데 가끔 불이 들지 않을 때 시걱을 제때에 할 수 없었고 전기가 없으면 나를 깨워 발전기를 돌리게 하고 굴뚝 위에 올려놓고 있는 인풍기를 써서 연기를 빨아내 군 했었다.
요즘 내가 두 번째로 세탁기를 고쳐 놓았다. 자동 양수기도 고장났는데 그것도 역시 내 일이었다.
다행히도 플라스틱으로 만든 부품 하나가 중간이 끊어 진 고장이었는데 강력 점착제로 잘 붙여 넣어주니 정상이 되었다. 며칠에 한번씩 나와주는 야채로 우리 식사는 항상 풍성해져 있었는데 중국 야채가 떨어졌을 때엔 장마당에 가서 두부와 콩나물, 감자, 무우 등속을 사왔고 낙지회도 만들어 식탁에 올려놓았기에 언제나 알뜰한 음식을 먹었다. 흠 아닌 흠이 있었는데 짜게 먹는 로따네 습성대로 간을 맞추었기에 초창기 때 좀 고생했을 뿐이고 지금은 식구들 모두가 습관되었다.
조선의 두부는 바닷물로 앗은 것이었는데 그에 맛을 들인 후 중국의 두부를 아예 먹지 않게 되고 무공해의 콩나물과 감자, 무우는 맛이 어찌도 고소한 지 다른 요리들은 울고 갈 지경이었다. 다 외숙모의 손끝에서 나온 음식이니 그렇게 맛있을 수 있었던 거고 다른 사람이 하면 다들 투정을 부리기가 일쑤였다.
식사는 무료였다. 원래 술과 담배도 무료공급 했는데 이모가 나 온 후로 얼마 되지 않아 담배는 각 자 사 피우게 만들어 놓았다. 주방 옆의 작은 방은 야채 저장고와 욕실, 세면실 겸용으로 쓰고 있다. 열 몇 개의 칼라가 서로 다른 컵을 이모가 각 자 쓰게 사다 놓았고 치약을 공급해 주었다. 전기 수도는 대기실 남쪽의 화장실에만 끌어 들였는데 대기실을 지은 후 일년이 넘도록 물이 나오는 날이 며칠 안 되었다.
그에 대비해 우물을 판 거였고 세면실에 자동 양수기를 장치해 두고 쓴다. 세면실 구석 쪽의 욕조에 전기가 있을 때 물을 길어 올려놓고 마음대로 쓸 수 있었다. 추위를 타지 않는 외삼촌이 거기서 자주 목욕을 하는 외 다른 사람은 욕조를 거의 쓰지 않는다. 여름철에 내가 한번 설화가 목욕하고 있는 줄 모르고 들어 갔다가 난처하게 된 일도 있다. 그 일이 있은 후로 샤워기를 갖추지 않은 욕실을 다른 사람들은 쓰지 않았고 흔히는 집에 갔을 때 목욕을 했다. 집에 잘 가지 못 하는 나는 남산 호텔과 나진호텔 1층의 사우나에 가서 4백이라는 비싼 요금으로 몇 번 목욕한 적이 있었다.
소한이 지난 뒤 날씨가 형편없이 추워지고 바람도 더 세차게 불었다. 태풍 예보도 여러 번 있었고 나진 주변의 모든 배들은 출항하지 않아 수산물 시세가 정신 없이 올라가고 있었다.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주방에서 매일 패치기가 이어졌다. 수산물 식당을 하는 주보스가 두 번이나 다녀갔지만 조개 한 개도 얻지 못 한 채 돌아갔고 예란이도 요즘 한번 다녀갔다.
초창기 때부터 그녀와 허물없이 지내왔고 고모벌 되는 그녀와 속심의 얘기도 나누곤 했다. 지난해 3월 차 사고를 저지른 게 계기로 되었다고나 할 가.
주방에 들어서기 전부터 마당이 떠나갈 듯이 웃고 떠드는 예란이가 참 재미있다. 오누이 자식을 두고 있는 집이 흔하지 않는데 그녀는 그 복을 누리고 있었고 로따의 대퇴골무균괴사증과 같은 병으로 앓고 있는 남편 때문에 꼬치 구이를 억척스레 벌려나가고 돈도 잘 벌고 있었다. 혼자 벌어서 네 식구가 살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고 드문히 나진을 다니면서 원정 쪽의 화물수속도 해주고 있다.
예란이가 주방에 들어서기 전에 뛰쳐나가 힘껏 포옹해주었다. 초창기 때 내가 처음 포옹했었다.
그때 옆에 있던 종업원들이 아니꼬운 눈길을 주었고 처녀들은 얼굴을 붉히기까지 했었다. 경비실에서 차영감은 나와 예란의 포옹을 두고 이런 얘기를 해 주었다.
“여자를 안고 있는 것을 보는 게 메사하단 말이야(난감하다). 근데 예란이 그 간나한테 내가 더 메사하게 된 적이 있지. 짧은 치마(미니 스카트)를 입고 온 예란일 놀려줬더니 치마를 들고 빤쯔(팬티)를 보이면서 ‘아바이, 보고 싶슴둥? 보겠으면 콱 봅소!’ 그러더라.그때 어찌도 메사하던지.”
예란인 그런 여자다.
꼬치 구이 장사를 하다보면 별의별 사람들을 다 보게 된다. 같이 앉아 술을 나누는 일도 거의 매일 겪게 되고 자지러진 웃음소리와 호방한 성격으로 남자들을 많이 끌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장사의 수단이고 남자들에게 손 끝 하나 맡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 식구들과는 포옹도 잘 나누고 짙은 농담도 잘 주고받는다. 내가 포옹을 풀지 않으니 동네가 떠나갈듯한 소리를 질러댔고 그러는 우리를 보는 종업원들의 눈길은 이제는 볼만하다는 뜻으로 덮쳐왔다.
차영감도 구석 쪽에서 손가락질 하면서도 히죽이 웃어 주었다. 보수적이던 조선 사람들은 이제 약간씩 개방의 물을 먹어가고 있다. 영화도 연인사이에 단지 손만 잡던 데로부터 지금은 가벼운 포옹에까지 이르고 있었는데 그 이상은 보지 못했다.
“야, 이 쌍 개 간나야! 너 왜 약속을 지키지 않니, 응?”
내가 주방에 들어온 예란에게 욕을 퍼붓는 시늉을 했다. 얼굴도 푸르뎅뎅하게 만들고 진짜 연기를 하는 듯이. 다들 어리둥절해 했다.
“개좆같이 약속은 무슨 약속이야! 이 새까!”
“만날 때마다 하나 소개해 준다 하구선! 이젠 그런 약속을 스물 일곱 번 했다. 너 나한테 여자 스물 일곱을 빚졌단 말이다! 언제 내놓겐! 빨리 내놔! 이 개 간나야!”
예란이 자지러지게 웃어대는 모습을 보고서야 다 들 농담인줄 알고 폭소를 터뜨렸다.
“지금 당장 내놔! 내 놓을게 없으믄 니라도 내놔라! 난 급해서 못 살겠다. 오늘 저녁 이방에서 같이 자!”
“이 싸쓰개(미치광이) 같은게! 잘 굶었구나, 오늘 하나 구해준다? 이 손 놔!”
“어야! 스물야듭(여덥)이 됐다. 오늘 구하지 못하믄 나진에서 귀신 될 줄 알아라.”
“개 소리 작작 쳐라, 손두 놓구. 야, 야! 아파죽겠다!”
짐짓 엄숙한 체 했고 나는 쥐였던 손목을 놓고 계속 욕을 해댔다.
“예란이 그 쌍 개 간나, 다시 나진에 와 바라. 앞 바다에 처넣어 고기밥으로 만들어 버리겠다. 왜 아직두 안 오니, 이 쌍 개 간나야!”
문밖에 대고 실감나게 욕하는 나를 두고 식구들은 또 한바탕 웃어주었다.
그렇게 웃고 떠들던 주방이 지금은 어떤 모습인지 궁금하기만 하다. 저녁 때 불을 지피니 불길이 전혀 들지 않는다. 인풍기를 아무리 돌려도 막무가내였다. 연기가 뽀얀 주방에서 가까스로 식사를 마쳤지만 패치기는 다 글러먹었다. 여자들이 영철이 방으로 몰려가고 장걸이 방에서 종전대로 카드놀이가 자정까지 펼쳐졌다.
아침에 일어나니 머리가 어지러웠다. 바깥에서는 바람이 기승을 부렸지만 장걸이와 같이 쓰는 내 방도 주방과 같이 굴내가 났다. 오늘은 다른 일을 제쳐놓고라도 구새목 (굴뚝밑) 을 훑어야겠다고 생각을 다잡고 벌떡 일어났다. 늄창조는 매일 출근해서는 따뜻한 내 방에 모여서 하루종일 훙스(카트놀이의 일종–중국에서 나온 놀이법인데 조선에도 전해졌다)만 놀아댔다. 영실이와 영옥이에게 한 개 방씩 맡겼는데 놀이에 정신이 팔려버려 불이 꺼진 후 나무를 보충해 주지 않아 얼어 든 구새목을 녹일 수 없었다.
잔소리하기 싫어 직접 손댔고 두 방의 굴뚝 밑을 엇갈아 가면서 반나절 불을 때서야 얼어들었던 구새 목이 다 녹아 내렸다. 반대로 내 몸은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얼어들고 말았다. 아침에 불을 때지 않은 주방에 점심에 불을 때 보니 소리치면서 잘 타 들어갔다. 외삼촌은 신정 전에 들어간 채로 아직 나오지 않았고 그 때문에 내가 고생했다면서 외숙모가 걱정해 주었다.
따뜻한 주방 온돌에서 온 오후 푹 자고 나니 정신이 좀 들었다. 일어나서 내 방에 불을 지펴보니 예전대로 잘 타 들어갔다. 이 정도면 겨울을 다 나고도 봄까지는 문제 없을 것 같다. 일은 일대로 했는데 저녁 식사 때 욕이 찾아 들었다. 신정 전부터 잠잠했고 신정 후에도 뜸해 졌던 로따의 욕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누기 그런 일 하랬지? 넌 쉽게 말해서 회사의 간분데 간부는 그런 일 하는게 아니다. 간부는 할 일이 따로 있고 그 일도 할 사람이 따로 있는 거다. 이따부터 그런 일 하지 말아라!”
며칠 전에 내가 박동혁을 해고할 것을 또 한번 들고 나왔었다. 오일사건을 겪었을 때도 내가 강력히 주장했는데 로따는 묘한 표정을 짓더니 그저
“제대군인이야!”
하고 한 마디 했을 뿐이었다. 박동혁과 한 부대에 있던 현역군인 운전수 하나가 나를 찾아와서 자기 차에 오일을 보충하려고 박동혁이에게 청 들고 그래서 생긴 일이라며 말도 안되는 사과를 했었다. 며칠 전부터 동혁이는 운전수들의 부추김을 받아 정지된 운행을 회복할 것을 청구해왔고 차장들로부터 수익금을 노골적으로 챙겨먹는다는 고발을 듣고 난 뒤여서 나는 그와 한바탕 격렬한 다툼을 했었다.
로따는 또 한번 이상한 표정을 짓더니 성가신 듯이 나를 푸념하는 거였다.
“야! 숟가락을 살랑 놓으면 안 되니? ”
나는 식사가 끝난 후에 숟가락을 밥상에 큰 소리나게 놓는 버릇이 있었다. 놓고 나서는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거의 매일 습관처럼 말했었는데 로따와 이모는 그게 이상하고 못마땅해 보이는지 자주 나에게 귀띔했고 기분이 안 좋을 때면 격한 어조로 욕 비슷이 말해 주었다. 나는 그들의 반응으로부터 요즘 언젠가는 욕이 시작 될 가부다 하고 생각했는데 내 판단이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
제대군인은 벌써 여러 명이다. 그 중에서 박동혁과 김종형은 군관으로 있다가 제대했다. 제대군인을 사회적으로 알아 봐주는 제도이고 제대 군관은 더 말 할 나위 없이 대우를 잘 해 주는 나라에서 단독 기업 중에서도 제대 군관을 잘 아껴 쓰는 모범이라고 할 수 있는 사실을 많이 만들어 놓으면 결정적으로 회사 운영에 좋은 영향이 있게 된다는 것을 모르는 로따가 아니다.
그 때문 이여서 그런지 오유투성이인 박동혁을 끔찍이 생각해 주고 잘 써 주는 로따다. 내 입에서 동혁의 말만 나오면 이상한 눈길을 주었고 조금은 우락부락한 내 눈길과 마주치면 금방 나올 것 같던 욕을 걷어들일 때도 있었는데 오늘은 욕 할만한 계제가 아닌데도 거침없이 욕을 토해 내고 있다. 마치 그동안 못 한 욕을 오늘 다 해 버린다는 것과 비슷한 무엇이 있기라도 하듯이.
“굴내 나기 시작한 지 며칠 됐는데 누가 손댔소? 오늘 내가 하지 않는다면 누가 한답데?”
나는 될수록 온화한 어조를 갖느라고 무진 애를 쓰면서 말했다. 별의별 욕을 다 처먹고 다니면서도 침묵을 지키던 나였고 쌓였던 스트레스는 다른 데서 풀었다.
욕을 하는 데에 말대꾸를 한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이제까지 녹녹하게 보였던 자신이 싫었고 이런 말대꾸를 많이 하는 것으로 내 성격 개조를 하고 스트레스가 쌓이기 전에 금방 푸는 방법을 익히기로 벌써부터 계획해 오던 터이다.
로따는 경이로운 표정을 짓고 입을 벌린 채 할 말을 못 찾고 있다. 그런데 그것도 다른 사람이 눈치 채기 힘든 잠간 동안이었을 뿐이었다. 역시 설전을 많이 경험한 사람은 다르긴 달랐다.
“내가 사람을 찾아 어련히 시키지 않을 라구? 그런 걱정은 더 말아라!”
주방에 있기 무안했던지 말을 끝내자마자 나가버리었다. 평소 같으면 식사가 끝난 후 한참씩 한담했었다. 나의 말대꾸는 일리가 있는 거였다. 주방의 부엌은 로따의 방과 같이 쓰는 거였고 지난 여름에 영철이의 방에다 부엌을 하나 더 앉혔는데 온돌이 짧은 그 방은 불길이 잘 들었고 로따의 방과 함께 굴내 먹을 가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주방과 내 방은 굴내 나기 시작한 지 며칠 되었고 외숙모와 나 그리고 장걸이는 경한 가스중독을 앓고 있었다. 더우기 가스중독에 약한 체질이 되어버린 나는 건강 때문에 신경을 너무 도사렸고 후유증이 심해질 가봐 로따의 체면도 고려하지 않고 지시가 있기 전에 선손을 써 버린 것이다.
나는 구새목 때문에 로따와의 무언의 전쟁을 끝내고 말았다. 누가 뭐라고 하든지 이제부터는 자존심을 세워야겠다는 느낌마저 들었고 가이드 생활에서 단련된 내 혀를 휴식시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요즘 발전소의 파이프는 다른 거래 파트너에 의해 실려 나오고 있다. 말하자면 그 장사를 다른 사람에게 뺏긴 거다. 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로따가 괜히 나한테 욕을 한 것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대낮에 초롱불 켜고 찾아 다녀도 욕먹을 만한 사람은 나 밖에 찾을 길 없다. 이제까지 그만큼 욕먹어 왔으면 됐지 나진을 떠나는 시각이 각일각 다가오는 지금에도 그 지긋지긋한 욕 사발이 차례 지는 것이 죽어도 싫었다. 주방은 나에게 욕 사발을 제일 많이 선사하는 장소로 되기에 손색없는 곳이었다.
식탁에서마저 차례지는 그 욕사발이 싫어 식사 시간을 더러 피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외삼촌 내외와 맘속의 말을 할라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 주방에 틀어 박혀 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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