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수업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을텐데요.”

정교수는 수연의 앞에 다가와 수연의 책상을 손등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수연은 정교수의 딱딱한 시선을 마주하면서 잠시 망설였다. 눈앞의 교수의 고집스러운 얼굴에서 한가닥 의혹이 읽혔고 수연은 짧게 숨을 들이킨 후 입을 열었다.

“네, 알고있어요.”

정교수의 눈살이 꼿꼿해졌다. 수연은 급히 다음 말을 꺼냈다.

“그런데요, 교수님.”

“네.”

“한가지 궁금한 것이 있어서요.”

정교수는 살짝 눈섭을 치켜올리며 수연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학생이 수업 계속 듣겠다고 하는데 선생님이 거부할 수도 있나요?”

“…”

“죄송해요. 그냥…저는 학생으로서의 수강신청 권리를 주장할 필요가 있는 거 같아서요.” 

수연은 살짝 머리를 숙여보인 후 교실을 빠져나갔고 정교수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수연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왜 하필…”

정교수는 허구픈 웃음을 지은 후 책을 거두고 자신의 연구실로 향했다. 그가 이 학교로 전근해온 지는 옹근 3년, 이제 일년만 더 지나면 학교측과의 계약이 만료된다. 일년안에 자신이 계획한 그 실험에 성공할수 있을지 미지수였고 그는 새삼스레 자신의 스승님이자 천체물리학 연구에 조예 깊은 박교수의 말을 떠올렸다.

“왜 하필 거기로 가야 하는지 자네도 의문이 많았을 거라고 생각하네. 하지만 바로 그곳에서 자네는 엄청난 것을 발견하게 될 거야. 그것이 바로 자네의 그 숙원을 이루어줄지도 모르는 일이고.”

“하지만 4년의 시간으로는 부족하지 않겠습니까.”

“충분하다고 생각해.”

“알겠습니다. 교환교수 파견을 신청해보겠습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났고 그는 지금 자신의 연구실 창문을 통해 캠퍼스를 바라보며 지난 추억을 더듬고 있었다. 이 3년동안 자신이 한 일이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낮에는 학생들에게 천체물리학 이론 강의나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침식을 잃고 연구실에만 매달려있었지만 그 실험은 추호도 진척이 없었다. 설마 이 모든 게 박교수의 예측과 계산이 빗나갔다는 말인가. 그는 커피 한잔을 뽑아들면서 가볍게 머리를 가로저었다.

“당신은 앞으로도 쭉 당신의 연구실에서 당신의 그 분자 방정식들과 연애하세요.”

“정인아, 내가 이제부터 시간을 자주 내면 안되겠냐?”

“늦었어요. 저 유학 가요. 수속은 어제 다 끝냈어요. 당신이 연구실에서 그 입자들과 씨름하는 동안 저는 유학 수속을 하고있었단 말에요. 하긴 당신…제가 뭘 하든 관심 있기라도 했나요?”

정인은 그렇게 그의 곁을 떠났고 전 국민을 놀래키는 그번의 비행기 사고에서 한줌의 연기로 흩어졌다. 부고가 전해오자 그는 한동안 폐인이 되다싶이 했다. 정인이 떠나기전 잡았더라면…자존심을 굽히고 절대 떠나지 말라고 잡았더라면 그녀는 그렇게 허무하게 가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정인과 만나는 동안 실험에 몰두하여 한번도 제대로 시간을 내준적 없었고, 유학 간다고 했을 때까지도 잡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만일 시간을 되돌릴수 있다면…그는 적어도 그녀가 그번 비행기를 타는 것을 막고 싶었다. 어쩌면 그가 박교수의 제안에 마음이 끌린 것도 바로 이런 과거가 있었기때문이였다.

느닷없이 울리는 전화벨소리에 그는 창문가에서 몸을 돌려 테이블위의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H대학 물리연구실 정경원입니다.”

“나야. 그동안 또 다른 발견은 있었나?”

박교수의 목소리가 먼 곳을 사이두고도 송수화기를 통해 또렷하게 들려왔다. 정경원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면서 언뜻 캠퍼스 숲속을 돌아보았다.

“아직은 없습니다.”

“조급해 말고 시기를 기다리게. 그건 아무나 쉽게 맞닥뜨릴 수 있는게 아니니까.”

“이곳이 확실합니까?”

“자네 설마…내 계산을 못믿는 건가.”

노교수의 목소리가 조금은 탁하게 들려왔고 정경원은 가볍게 머리를 숙였다.

“아닙니다.”

“천시, 지리, 인화…내가 말하던 것을 잊지 말게나.”

“명심하겠습니다.”

통화를 끝낸 정경원은 다시 창문가로 다가가 캠퍼스 한쪽 구석에 자리잡은 자그마한 관목숲을 바라보았다. 바로 저곳일까. 박교수의 계산이 틀리지 않는다면 왜 아직도 그곳의 질량변화를 감지할수 없는 걸까. 그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면서 이미 식어버린 커피를 한모금 들이켰다.

……

수연은 머리가 빠개질 듯 아파서 그만 반날 휴가를 내고 말았다. 그날 만난 후로 지은이 다시 연락두절인 게 마음에 걸린 것도 있었지만 오늘오후 또 정교수의 수업이 있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머리속이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젊은 교수가 왜 그렇게 무미건조한 상대성이론에만 집착을 하는지 수연은 그것이 답답했다. 이 세상의 모든 모순이 그런 딱딱한 이론으로 해결이 가능하다면 모를까.

숙소를 빠져나와 지은이 새로 임대한 세집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던 수연은 문득 눈에 익숙한 한 실루엣에 저도 모르게 머리를 갸웃했다. 이번까지 두번째였다. 관목숲 앞에 서있는 정교수는 정수리를 내리쬐이는 한낮의 태양에도 아랑곳하지 않은채 한곳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 그런 정교수의 수상한 모습이 수연에게는 어딘가 정신상태가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비추어졌다.

“교수님?”

수연의 부름소리에 정경원은 몸을 흠칫했고 수연은 그런 정교수의 반응에 한결 더 의아해졌다.

“그 숲속에 뭐가 있는가요? 뭘 그렇게 뚫어지게 보고계셔요?”

“아무것도 아니야…”

정경원은 당황한 듯 머리를 저었고 수연은 고개를 갸웃하다가 풋 웃음을 터뜨렸다.

“어? 저랑 반말하셨네요.”

“죄송합니다.”

“교수님도 별말씀을…그게 왜 죄송한 건데요. 다른 교수님들은 다 편하게 말씀하시던데 유독 교수님만 존대를 하셔서 저희가 오히려 송구스러웠거든요. 이참에 말씀 편하게 하세요.”

수연의 바싹 들이대는 공세에 정경원은 뒤로 한발자국 물러섰다.

“아닙니다.”

“혹시, 제가 오늘 수업 빠져서 화나셨나요?”

수연이 생글거리며 묻자 정경원의 눈이 한결 커졌다.

“아니요.”

“그럼 뭔가요? 학점 주신다 했으니 절 아주 밀어내치신 건 아니고…하지만 수업 안와도 된다고 하시니 꽤 화나신 것 같기도 하고…교수님, 저한테 대체 왜 그러시는지 오늘 확실하게 말씀해주세요.”

수연은 가까스로 웃음을 참고 있었다. 항상 냉정했던 정교수가 오늘따라 허둥대는 모습에 그녀는 저도 모르게 장난끼가 발동했다. 다른 학생들은 정교수의 이런 흐트러진 모습을 본 적 있었을까. 수연은 문득 이 얼음교수의 보이지 않는 내면뒤에는 어떤 사연이 깊이 숨겨져 있는지 궁금해졌다.

“확실하게 말하자면,”

그래도 정경원은 빠른 시간내에 냉정을 회복하고 입을 열었다.

“난 애초에 이 학과에 흥취가 없는 학생은 내 수업을 들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요. 알아듣지도 못할 테니까 서로 시간만 낭비하는 일이구요.”

수연은 눈을 크게 떴다. 그녀가 아연해진 틈을 타서 정경원은 빠른 걸음으로 관목숲앞을 떠났다.

“뭐야…사람 기분 잡치게 말하는 재주가 있네.”

혼자 남은 수연은 발을 탕 구른 후 캠퍼스를 빠져나와서 지은의 세집쪽으로 향했다. 원래 명랑한 성격이여서 정교수와의 불유쾌한 한단락은 바로 구중천으로 날려버린 수연은 지은의 집 주소를 찾지 못해 한참 헤매다가 좁은 골목에서 급히 달려나오는 한 아주머니와 부딪치고 말았다.

“아주머니, 괜찮으세요?”

“어유, 세상에…참 세상에…”

아주머니는 부딪친 자리가 전혀 아프지 않은 듯 땅위에 주저앉아 머리만 절레절레 흔들었고, 수연은 아주머니를 부축한 후 가방안에서 지은의 주소를 적은 메모지를 꺼내들었다.

“저어, 아주머니…이 주소가 바로 이 근처 맞죠?”

아주머니는 주소를 들여다보다가 흠칫 놀라며 다시 고개를 들어 수연을 주시했다. 아주머니의 불안에 흔들리는 시선과 숨막힐 듯 무거운 침묵에 수연은 그만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

지은은 간신히 눈을 떴다.

눈처럼 새하얀 벽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코를 찌르는 소독약냄새도…미처 정신을 차리기전에 수연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어 눈앞으로 다가왔다. 지은은 눈을 내리깔고 희미하게 웃어보였다. 바로 옆집에 사는 집주인 아주머니가 혀를 차는 게 보였고 수연은 그런 지은을 조용히 내려다보았다.

“욕하려고 하는 거 알아.”

지은은 무기력하게 입을 열었고 수연이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아주머니가 불쑥 끼어들였다.

“젊은 애가 그리 데면데면해서야 쓰나…가스냄새에 내가 문을 두드리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될번했나. 이젠 친구도 왔으니까 나 먼저 가볼께. 앞으로는 절대 그러지 말아.”

“심려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아주머니는 절레절레 머리를 흔들면서 병실을 나섰고 수연은 천천히 손을 내밀어 지은의 손을 잡았다.

“윤지은.”

지은은 알릴락말락 한숨을 내쉬었다. 수연에게는 항상 미안한 마음뿐이였다. 원래 밝고 명랑한 아이가 항상 음울한 자신 때문에 어두운 얼굴을 하고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역시 하늘은 그렇게 쉽게 자신을 놓아주지 않는 듯 했다.

“아직은 때가 아닌가봐.”

“윤지은, 이 바보 멍청이.”

수연의 말에 지은은 체념한 듯 눈을 감았다.

“그래, 더 심하게 욕해.”

“욕하다니? 내가 왜 널 욕해야 하지?”

수연의 반문에 지은은 의아한 생각이 들어 눈을 떴다. 순간 수연의 눈에 그 무엇이 반짝였지만 그것이 결코 눈물은 아니였다. 지은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고 수연은 한참동안 지은을 주시했다. 

“넌 참…내가 널 뭐라고 해야 좋을지…”

“…”

“바보 멍청이는 맞아. 고작 생각해냈다는 방법이 이거냐?”

“그렇게 비꼬지 마. 내가 어떤 마음인지 니가 안다면…”

지은은 알릴락말락 미소를 지었고 수연은 정색을 하고 지은을 바라보았다.

“아니까 이러는 거야. 엄마 보고싶다며.”

“미안해…”

지은이 고개를 떨구었고 수연은 다시 그녀를 이윽토록 보았다.

“만일, 만일 말이다.”

“…”

“시간을 돌리는 방법이 있다면…너 그래도 지금 이 방법을 택하겠니?”

“뭐?”

지은은 고개를 쳐들었다가 바로 쓴웃음을 지었다.

“농담하지 마. 그럴 기분이 아니야.”

“그럴 기분?”

수연은 그녀의 시선을 마주한 채 또박또박 힘주어 말했다. 

“친구가 생사를 넘나들었는 데도 농담이나 하는 그런 사람으로 날 생각하고 있니?”

“수연아…갑자기 왜 이래?”

“윤지은, 정신 똑바로 챙겨. 그리고 내가 한 얘기 무슨 의미인지 알고 싶으면 빨리 기력 회복해. 세집에만 들이박혀 있지 말고 학교 나오라고. 그럼 알려줄테니까.”

탕! 하는 문소리와 함께 수연은 병실을 나섰고 지은은 창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모든 자신에 대한 기억을 언제나 바라보던 하늘은 찌뿌둥하게 흐려있었다. 곧 비가 내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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