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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안해를 처음 만났던 때를 생각한다. 

그와 안해는 중매로 만났다. 그때 그는 적은 월급이나마 받는 림업국산하 검측원이였다. 어찌하다보니 서른을 막 넘기는 차에 친한 형의 안해가 중매를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고 딸 둘이 엄마랑 사는 시골아가씨인데 만나보지 않겠냐고 했다. 장가갈 나이가 찬 로총각인 그에게 이런 중매자리는 고마울수밖에 없었다.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게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그는 면도를 하고 최대한 잘 차려입고 아가씨를 만나러 갔었다.

''애기구나.''

안해를 마주한 순간, 드는 생각이였다. 금방 고등학교를 나왔다는 안해는 솜털이 보송보송했다. 단둘이 마주한 그 시골집에서 안해는 애매한 비자루만 잡고 만지작거리고있었다. 

''난 그쪽보다 나이가 열 살이나 더 많고 그렇게 돈이 많은것도 아닌데…''

''성실하신분이라고 들었슴다. 동생 공부시켜주시고 어머니 돌봐주시면 저는 다른 요구는 없슴다.''

뜻밖에 안해의 목소리는 옹골졌다. 뭔가 단단히 결심한 모양이였다.

그는 안해를 바라보았다. 눈가에 이슬이 촉촉이 맺히고있었다.

그는 가슴이 뭉클했다. 오죽했으면 저렇게 눈물을 보이랴. 그는 저 아기같은 여자의 눈에서 눈물이 나게 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여름에 만난 그들은 몇번의 어설픈, 연애라고도 말하기 힘든 만남을 가지고 그해 겨울 결혼했다. 그는 약속대로 처제가 공부할수 있게 뒤바라지를 했고 장모님을 가까이 모셔왔다. 그의 집에는 그 외에도 아들이 두명 있었으므로 그는 처갓집의 아들이자 사위로 최선을 다할수 있었다. 그는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였다. 

안해는 그런 그한테 고마워했다. 아버지없는 집의 큰딸답게 안해는 어리지만 철이 든 여자였다. 아들을 낳고 애기 키우는 일에 열중했으며 살림도 알뜰하게 했다. 그는 행복했다. 언제까지나 그렇게 살기를 원했다. 아기같은 안해가 옹골지게 살림하고 아이랑 노는걸 보는게 기쁨이였다. 그는 여태껏 느껴보지 못한 행복을 느꼈다. 그는 언제까지나 그렇게 살기를 바랐다. 셋이서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서로 마주보며 웃고 밤이면 그와 안해가 누가 먼저라고 할것 없이 손을 뻗어 지치도록 사랑을 나누며 그렇게 살기를 바랐다. 

하지만 한국바람이 불고 먼저 약삭빠른 사람들이 나가서 돈을 벌어 도시에 아파트를 사고 이사를 가고 차를 사고 미처 그들이 생각하지 못한 삶을 시작하자 그도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안해는 누구누구네는 시내로 이사간대요. 누구누구네는 아파트를 샀대요. 우리 건이도 시내가서 공부시키면 좋을텐데 하고 언제부터 그를 할깃거리며 넌지시 말을 던져왔다.

''그래, 까짓거 나도 나가보자. 나가서 몇 년만 고생하고 오면 될텐데. 내 자식도 마누라도 남한테 뒤처지게 하지 말아야지.''

어느 푸른 새벽, 드디여 그는 결심했다. 아들애의 볼에 입맞추고 눈물짓는 안해한테 애써 웃어보이고 돌아서서 그도 눈물을 훔쳤다. 드디여 그도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산을 누비며 림장일로 뼈가 굵은 그에게 한국에서 막로동을 하는건 남들이 말하는것처럼 힘든 일은 아니였다. 노가다도 하고 회사도 다니고 닥치는대로 일을 했다. 빨리 돈을 벌어서 돌아갈 생각으로 그는 일에만 매진했다. 정신없이 일을 할때는 아무 생각없다가 일을 끝내고 텅빈 자취방에 들어서면 쓸쓸함이 한가득 몰려왔다. 그는 이겨내야 한다고 다짐하며 이를 악물었다. 일주일에 한번 집으로 전화를 해서 안해와 아들의 목소리를 들었고 그걸 위안으로 삼아 다시 새로운 일주일을 버텨갔다.

어느정도 돈이 모여지자 그들은 이사를 계획했다. 그는 작은 아파트를 사려고 예상했지만 안해가 애가 크면 공부방이 있어야 되고 학교가 가까워야 한다고 우기는바람에 대출을 끼고 안해가 원하는대로 방 세칸짜리 아파트를 사고 시내로 이사왔다. 한층 부담이 커졌지만 그는 묵묵히 일을 했다. 안해가 고생할가봐 애가 다른애들한테 뒤처질가봐 그는 돈을 버는족족 안해한테 보냈다. 생활에 쓰고 나머지 돈은 모으라고 했다. 곧 집에 돌아갈수 있을것이라고 그는 믿었다. 하지만 세상에 뜻대로 되는 일이 있던가. 장모가 뇌출혈로 쓰러졌다. 그동안 모은 돈은 장모의 치료비로 다 들어갔다. 일년후 장모가 돌아갔다. 그는 부랴부랴 청가를 맡고 비행기를 탔다. 돌아와보니 번듯한 집에 현대식 가전가구들이 즐비한 집에서 제법 도시티가 나는 안해가 기다리고있었다. 아들애는 들어올릴수 없게 커있었다. 안해는 전처럼 돈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먹고 쓰는 물건들은 모두 고급이였다. 그는 그동안 아끼고 아끼며 살아가던 자신을 생각하며 한숨이 나왔다. 돈을 얼마나 더 벌어야 되는것인가. 아득했다. 안해는 시내로 오니 물가도 비싸고 학원비도 많이 들고 돈이 많이 남지를 않는다고 했다. 안해는 물질적인것에 눈을 뜨고있었다. 그는 막연했지만 다른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는 다시 한국행 비행기를 타며 좀 더 돈을 벌어야겟다고 생각했다. 그것외에 그는 다른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는 가장이고 남편이고 아버지라면 이 정도는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언제 집으로 돌아갈지 모른다는 것이 그를 착잡하게 했지만 돈만 더 번다면 그것 또한 곧 이루어질것이라고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제 돌아가야지.''

그 무렵 그를 다급하게 하던 생각이였다. 그는 초조해지고있었다. 십년이 가까워온다. 그 사실을 생각하자 그는 더는 지체할수 없다고 생각했다. 전화기너머로 아들애의 목소리가 굵어지고있었다. 부부란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데 어영부영 십년가까이 되는 시간이 흘렀지 않은가. 지금까지 가정이 잘 유지된것만도 생각해보면 천만다행이다. 한몫 쥐고 들어가겠다는 욕심은 여전하지만 한집건너 이혼했다는 세월에 이러다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 아닌가. 그는 남은 시간에 돈을 좀 더 벌고 이제 지체말고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사고는 귀국을 앞둔 두달전쯤에 일어났다. 

순식간이였다.

돈을 좀 더 벌 목적으로 산에서 풀베는 일을 시작한지 삼일째 되던 날이였다. 그날따라 몸이 찌부둥했다. 일을 시작해서 얼마 안됐을때 눈앞에 날아가는 말벌을 쫓느라 고개를 한쪽으로 튼 순간, 정신을 차릴새도 없이 면장갑을 낀 손이 제초기에 빨려들어갔다. 억. 신음이 나갔다. 옆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달려와 제초기를 멈추고 그의 팔을 끄집어냈다. 그야말로 눈깜짝할새에 면장갑이 피범벅이 되여버렸고 손가락쪽이 너덜너덜해져있었다. 그는 그저 멍해있었다. 장갑을 벗고 손가락이 어떻게 됐는지 확인할 용기가 도무지 나지 않았다. 구급차가 오고 병원에 실려가면서도 그는 그저 모든게 꿈이기를 바랐다. 기적처럼 손가락에 아무 이상이 없기를 기도했다.

하지만 꿈이 아니였다. 그는 그 순간의 사고로 인해서 손가락 세 개가 중간을 짤린채로 병원문을 나서야 했다. 이렇게 돌아가는것인가. 그는 무감각한 상태로 십년의 시간들을 보낸 방을 정리하고 아릿한 손가락을 놀려 짐을 쌌다. 산재보험으로 받은 이천만원이 든 손가방을 옆구리에 꽉 낀채 그는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올랐다. 드디여 돌아가는것인데 이상하게 모든 것이 아득해지려고 했다. 눈물이 나오려고 해서 그는 눈을 껌벅였다. 비행기차창너머로 손을 뻗으면 만져질듯한 하얀 구름이 끝없이 펼쳐져있었다. 이상하게 아무런 마음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구름우를 걷는듯 꿈과 현실의 경계사이에 있는듯한 느낌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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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몽(蛤梦)

사소한 것들을 사랑하며 웃음이 헤픈 아줌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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