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금주성밖 수림.

적막하고 음침한 수림이였다. 서은은 머리를 들어 자신을 납치해 여기까지 온 우사를 노려보았다. 주점에서 우사를 알아보고 그가 생각보다 젊고 청수한 인물이라는것에 놀란것도 잠깐, 그녀는 우사가 뿌린 정체모를 하얀 가루에 그만 의식을 잃고 말았던 것이다.

"그만 보시게. 눈이 힘들지도 않는가."

우사가 이죽거리자 그녀는 또 한번 화가 치밀었다. 우사가 이런 식으로 자신을 끌고 온것도 벌써 두번째였다. 그녀는 분노를 억누르며 이여백이 원기가 회복된 다음에도 여기로 찾아오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그녀의 이런 생각을 우사는 일찍부터 꿰뚫어 본 듯 했다.

"장소를 잘 모를가봐 지도까지 그려 주막에 서신을 남겼으니 늦어도 오늘 해가 지기전엔 당도할 것이요."
"무치하군요."

그녀가 한마디 내뱉자 우사는 피씩거리며 웃었다.

"그래도 명실이 명교인데 내게서 그 어떤 광명정대한 수단을 바랐던 건가? 가소롭기 짝이 없소."
"형님이 오시더라도 당신과 대결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녀는 애써 차분함을 유지했다. 우사는 그런 그녀에게 한쪽 눈을 찡긋해 보였다.

"교주한테 사람을 보내면 이 일이 중단될 줄 아나본데."

우사가 자신들의 계획을 손금보듯 알고있는데 대해 그녀는 속으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녀의 어두워진 얼굴에 우사는 또 한번 피씩 웃었다.

"내가 그렇게도 준비가 없었을 거라 생각하면 그건 오산이요."
"정말 이해가 안가는군요."

그녀는 수림 한끝에 높이 걸린 해를 바라보았다.

"대체 형님과는 어떤 불공대천의 원수 사이기에 그렇게 이를 가는 겁니까."
"원수?"

우사가 눈섭을 꿈틀했다. 그녀는 오후의 햇살에 눈이 부신 듯한 표정을 지으며 눈을 가늘게 뜨고 우사를 보았다.

"원수가 아니라면 형님께 그 어떤 억하심정이 있는 걸로 보입니다. 아니면 그렇게 목숨까지 걸 수가 없죠."
"그놈의 일을 돕자고 이러는 건 알겠는데…"

우사의 말투는 차츰 싸늘해졌다.

"이건 그놈과 나 둘만의 일이니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렇게 짚지 마시오. 내게 격장법은 통하지 않으니까."
"당신들 둘의 일이라면서 날 끌어들일 건 뭔가요?"

그녀의 예리한 반박에 우사는 언뜻 미간을 찌푸렸다.

"거 참 아녀자들처럼 수다스럽구려. 이럴줄 알았으면 아까 해독약을 써서 깨우지 말걸 그랬소."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머리를 숙이고 침묵하다가 뭔가 생각난 듯 다시 우사에게 시선을 주었다.

"건곤대나이 말입니다."

우사는 아무 말 없이 미간을 찌푸린채 그녀를 보았다.

"교주와 좌우사를 제외하고 또 누가 알고 있습니까."
"호교…"

우사는 무심히 대답하다가 문득 그녀를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그걸 알아서 뭐하려오."

그녀는 빙긋 웃고 수림속을 몇발자국 거닐었다.

"어차피 시간도 있고 그쪽도 심심하지 않습니까."
"전혀."

우사의 냉담한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는 다시 몸을 돌려 그의 앞으로 걸어갔다.

"건곤대나이와 같은 경공을 쓰면 말입니다…"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 바쁘게, 우사는 그녀가 뽑아든 검을 재빨리 튕겨버리고 뒤로 몸을 움직였다.

"이렇게 피할수 있군요."

헛탕을 친 그녀가 어색한 웃음으로 무마하려고 하자 우사는 온기 없는 싸늘한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

"내가 누차 봐주는 것도 이번까지요. 더이상 내 인내심을 자극하지 마시오."

잠깐의 접전이었지만 그의 무공은 깊이를 알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그녀는 내색하지 않고 나무가지 사이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탄식을 내뿜었다.

"오늘이 다 가려면 아직 시간이 많은데…아아…이 시간을 저런 재미없는 사람과 어떻게 보내야 하나…"

우사는 억이 막힌 듯 눈에 힘을 풀고 그녀를 등졌다. 우사가 몸을 돌리자 그녀의 얼굴에서 남은 웃음기가 씻은 듯 사라졌다. 햇살이 나무가지 사이로 희미한 빛을 그녀의 얼굴에 던졌고, 그녀는 붉은 햇살을 맞받아 묵묵히 속으로 되뇌였다.

형님…이젠 제가 도울 방법은 따로 없을 것 같습니다…

……

이여백은 정확히 해가 수림끝으로 저물무렵 둘의 앞에 나타났다. 노을이 나무가지를 금황색으로 물들이고 있었고, 이여백과 우사는 서로를 주시하면서 그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서은은 걱정어린 시선으로 이여백을 바라보다가 다시 우사에게 눈길을 주었다. 복면을 쓰지 않은 우사의 얼굴에 살짝 균열이 일었다. 이여백은 그런 그를 한참 응시하다가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장무수(张懋修)…형님."
"다행이 날 기억하는군."

우사는 슬쩍 입꼬리를 치켜올렸고 그녀는 어디선가 한번 들어본적 있는 듯한 그의 이름을 천천히 되새겼다.

장무수라면 혹시, 철혈재상 장거정의 아들…이 아닌가.

장재상은 죽은지 1년만에 반대파들에게 비리로 탄핵을 당해서 만력에게 가산을 몰수당했고, 그의 네 아들중 장경수는 자결하고 장사수와 장무수, 장간수는 변방으로 유배를 가서 그 결말은 모두 비참한 것으로 역사에 알려져있었다.

그중 장무수는 문장이 뛰어나 3년전 문과 과거 장원의 출신이였지만, 나중에 그것마저 비리로 얽혀져서 자결을 시도하다가 실패했었다고 한다. 역사에 기재되어 그녀가 알고있는 장무수에 대한 정보는 여기까지였다. 그녀의 사색을 끊으며 이여백이 한걸음 앞으로 다가갔다.

"형님이 어찌."
"형님? 친한척 하지 마라."

이여백을 바라보는 우사의 표정은 싸늘했다.

"네가 묻고싶은 건, 문과 출신인 내가 수년 후 어찌 명교의 우사가 되어있는가 하는 거겠지."

이여백은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네놈은 우리 집안에 무과 출신이 간수 하나인 걸로 알고 있었더냐. 간수가 금의위지휘사를 맡아서 그리 알려져있긴 하다만."
"형님께서…뭔가 오해가 깊으신 듯 합니다."

이여백의 말에 우사는 고개를 젖히고 웃음을 터뜨렸다.

"오해?"

말을 끝내기 바쁘게 우사는 검을 빼어들고 이여백을 겨누었다. 그와 동시에 그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그녀는 크게 숨을 들이켰다. 우사의 눈빛은 전에없이 형형했고 그것은 어쩌면 철천지 원수를 만났을 때의 눈빛 그 자체였다. 둘사이 어떤 오해가 있기에 우사는 이토록 이여백을 증오하는 것일까. 그녀의 의혹을 한껏 증폭시키며 우사는 검을 겨눈 채 목소리를 깔았다.

"교주가 구해주시지 않았다면…난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내가 무엇을 겁내겠느냐. 오늘의 이 기회는 내가 아버지를 위해, 가문을 위해 원수를 갚을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내가 어찌 놓칠수 있겠느냐."
"원수라니요? 당치 않으십니다."

이여백의 태도는 의연했다. 그는 흔들림 없는 시선으로 자신을 겨눈 검과 우사의 일그러진 얼굴을 주시했다.

"제가 어찌하여 형님의 원수가 되었는지 알려주신다면,저는 군말없이 오늘의 이 대결에 응하겠습니다."

우사는 이여백을 집어삼킬듯 노려보았다. 두 사람사이 팽팽한 기운에 서은은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

바람이 일지도 않았는데 둘의 옷자락이 나붓겼다. 아마도 둘은 서로의 기를 운용해서 대치하는 모양이었다.

"네놈이 끝까지 뻗댄다면 내가 알려주마."

우사는 검을 겨눈 채 차갑게 말을 내뱉었다.

"세간에선 아버님이 병으로 세상을 하직했다고 전하고 있지만, 우리 식구들은 알고 있었다. 아버진 지병이 있었지만 아버지에게 밀려난 관리들이 매수한 살수가 집에 침입해서 우리 형제에게 쫓겨난 그날 병세가 악화되어 돌아가신 것을. 어쩌면 그날 그런 큰 일이 아니었다면 아버님께서 좀 더 오래 앉으실수 있었을 것이다…"
"…"
"그 살수는 우리 집안 내부 구조를 상세하게 알고있을 뿐만아니라, 심지어 내 동생마저 따르지 못하는 신출귀몰의 보법을 쓰고 있었지."
"…"
"하지만 살수를 뒤쫓던 내 동생 간수는 그 보법이 강호에 전해지는 건곤대나이 보법이라는 것을 알아보았고, 당시 그 보법은 명교 교주를 제외하고는 명교 좌사만이 익히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아냈다."
"…"
"유감스럽게도 우리 형제가 이 일을 밝히기도 전에, 금상께서 우리 아버지에게 밀려난 관원들의 탄핵만 듣고 우리 집의 가산을 몰수하라는 교지를 내리셨다. 우리 가문은 미처 어쩔새없이 몰락의 길을 걸었고, 동생은 금의위지휘사 직책을 박탈당하고 병으로 앓다가…"
"…"
"나 역시 3년전 문과 장원의 신분이 비리로 얽혀 억울함에 목숨을 끊으려 했었다. 그때 우연히 명교 교주가 나를 구해주었고, 나는 어쩌면 이것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명교 좌사가 누구인걸 알아내려면 붓을 버리고 검을 들어야 했으니까. 나를 놓고 말하면 명교에 가입하는 것이 원수를 갚는 제일 빠른 지름길이 아닌가."
"…"
"일은 내 계획대로 되었지만,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은 명교 좌사가 그사이 손을 씻고 명교를 탈퇴한 후 강호에서 은퇴까지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누구더냐? 그놈이 어디에 숨어있든간에 난 찾아내고야 말았으니…"

우사는 검을 쥔 손에 힘을 주고는 이를 부드득 갈았다.

"이젠 이해되느냐? 너와 나 사이 이 불공대천의 관계가."

이여백이 뭐라고 대답하려는 순간, 옆에서 서은이 불쑥 끼어들었다.

"이해되지 않습니다."

우사와 이여백은 동시에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비스듬히 팔짱을 낀채 미간을 구기고 우사를 응시했다.

"당신 얘기대로 추리해본다면 말입니다. 건곤대나이 보법을 아는 사람이 장재상을 해하려 들었던 살수라면, 왜 명교 교주는 의심하지 않는 건가요?"

우사가 눈썹을 꿈틀했다. 검을 쥔 그의 손도 멈칫했다.

"좌사가 사람을 죽이더라도 교주가 지시를 내리지 않았으면 감히 함부로 죽일까요? 건곤대나이 보법 하나로, 그리고 장재상님 집안 구조를 알고있다는 사실만으로 형님을 살수로 지목한다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자네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네."

우사는 쓴웃음을 지었다.

"명교 교주는 그 어떤 중요한 일이라 해도 종래로 몸소 거동하지 않아. 이것은 태조이후로 명교가 부활되어서 줄곧 전해내려온 계율이지."
"만일 당대 교주가 그 율을 깼다면요?"

그녀의 질문에 우사는 말문이 막힌 듯 보였다.

"설마."
"설마가 사람을 잡죠. 설마했던 형님이 명교 좌사였던적도 있으니까요. 다만 당신이 형님과 전에 교분이 있는 사이라면 이런 무근거한 의심은 더욱 하지 말아야 하는게 아닌가요? 총병님은 애초에 재상님께서 극력 추천하셔서 요동 방위를 맡게 된건데, 총병님의 아들인 형님이 왜 하필 재상님을 해하는 일에 나설까요?"
"…"
"제가 아는 형님은, 아무리 교주의 명이 지엄하다 할지라도 벗의 아버님을 해하는 일에 나설 사람이 아닙니다."

그녀의 말에 이여백은 그녀를 힐끗 쳐다보았다. 우사는 그녀의 말발에 눌려 입속으로 웅얼거리 듯 말했다.

"내가 어떻게 알겠나? 그래서 이번 기회에 똑똑히 확인하려던 참…"
"당신이 확인하는 방식이 검을 겨누고 불문곡직 한 사람을 살인범 취급하는 것인가요?"
"허…거 참."
"그리고 이 대결, 사심이 너무 보이는데요? 절 인질로 잡고 협박하면서 그 무슨 공평을 운운합니까. 차라리 독침으로 해하는 것이 더 깔끔한 것 같습니다만."

그녀의 정곡을 찌르는 말에 우사는 눈썹을 곤두세웠다. 이여백은 한참 듣다가 손을 들어 둘사이를 가로막았다.

"그만하십시오. 형님…그리고 명교 교주에게 제가 한번 따로 뵙자 한다고 전달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건 왜."

우사가 퉁명스레 대꾸하자 이여백은 그를 바라보았다.

"명교를 떠날 때, 저만 함구하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이런 일들이 생길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형님과 이런 식으로 얽힐줄은 더욱 생각지 못하였습니다."
"…"
"이젠 무작정 피하기만 할수 없습니다. 교주를 한번 만나겠습니다."
"만나서 네가 뭘 어떻게 한다고."

우사는 불퉁한 기색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한참 뭔가 생각하다가 다시 정색하고 이여백에게 물었다.

"그래, 정말 네가 아니더냐?"
"제가 어떻게 재상님을…아버님들사이 교분은 념두에 두지 않는다 쳐도….잊으셨습니까, 제 문장도 형님의 주옥같은 가르침을 받은적 있습니다. 그런 제가 어찌 형님의 아버님께 그런 불경스러운 일을 저지르겠습니까."

이여백의 말에 우사는 한참 그를 보다가 서서히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리고는 검을 검집에 넣어 갈무리했다.

"내게도 물증이 없으니 이 일은 이쯤하도록 하자. 대신 증거를 확보한다면 내 기필코 다시 너를 찾을 것이다. 교주께는 일단 네가 뵈려 한다고 전달하도록 하겠다."
"알겠습니다. 저 또한 이 일을 소상히 조사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사는 고개를 끄덕인 후 잠깐 뭔가 생각하다가 다시 이여백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헌데, 명교를 나온후 교주와 만날 기회가 그동안 한번도 없었단 말이냐."
"그건…"

이여백은 머리를 숙이고 나직히 한숨을 내쉬었다.

"얼핏 뵙긴 했었으나, 말을 나눌 자리는 못되었습니다."

우사는 알았다는 듯 머리를 끄덕이다가 문득 옆에 있는 서은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는 피씩 웃었다.

"어이, 아우양반. 말주변이 장난 아니구료. 앞으로 다시 볼 일이 자주 있을테니 너무 사람을 괄시하지 마시오."
"제가 언제 괄시했다고 그럽니까."

그녀가 투덜거리자 우사는 씩 웃어보인후 한번 몸을 솟구쳐 수림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그녀는 우사의 모습이 숲에 가려 보이지 않자 그제야 안도의 숨이 나왔다.

"참…저사람때문에 10년은 감수한 것 같습니다."

이여백은 그녀를 한참 응시하다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맙다."
"네?"
"날 위해 나서줘서…말이다."
"아유…그거야…"

그녀는 민망함에 얼굴을 붉힌채 급히 손부채질을 했다.

"그정도 일을 어찌 마음에 담아두십니까. 형님을 위해서라면 그런 것쯤은 기본 아닙니까."
"기본이라."

그녀의 말에 그는 머리를 숙이고 깊은 사색에 잠긴 듯 했다. 한참후에야 그는 시선을 들었다. 그의 눈동자에는 회의감이 오롯이 내비쳤다. 그는 그런 눈길로 그녀를 이윽히 주시했다.

"그 기본…난 지키지 못했으니까."
"…"
"난 너를 의심했었다. 네 정체를 의심하고, 네가 내게 온 의도도 의심했었지. 너의 예지능력도 반신반의했고, 네가 요동정세와 국가대사를 줄줄이 꿰뚫고 있음을 놀라워했다."
"형님…"

그는 손을 들어 그녀의 말을 막았다.

"이젠 나도 그 믿음을…그 기본을…지키도록 하마."
"그건…마음에 담지 마십시오. 저는 형님을 알지만 형님은 저를 알지 못했으니까요. 전 괜찮습니다."

그녀의 말뜻을 알아듣지 못한 듯 그가 살짝 미간을 구겼다. 그녀는 짐짓 홀가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젠 이 일이 마무리 되었으니, 집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버님께서 걱정하고 계실터이니."
"여기 오기전 당주한테 부탁해서 집에 소식을 전하라 했으니 걱정말거라. 그전에 들려야 할 곳이 있다."
"또 어딜 말입니까?"

그녀가 눈을 크게 뜨자, 이여백은 피씩 미소를 지었다.

"주막에 들려 우리가 무사하다는 걸 당주에게 알려줘야 하지 않겠느냐. 네가 없어졌다는 걸 알고 엄청 걱정하셨으니."
"아, 그렇네요."

그녀는 민망한듯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둘은 어깨 나란히 수림속을 빠져나왔다. 저녁해가 둘의 그림자를 길게 내리드리웠고, 서은은 그 그림자를 보다가 문득 무언가를 생각해냈다.

"형님, 명교에 왜 계셨는지 알려주신다 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언제."
"아우…그렇게 입 싹 씻을 줄 알았다면 대답이라도 받아놓는건데요. 말씀 안하시기에 묵인인줄 알았습니다."

그녀가 터뜨리는 불만에 그가 조용히 웃기만 하자 그녀는 머리를 갸웃하고 다시 뭔가를 생각해냈다.

"그럼…명교 교주와는 후엔 만났던 적 있다고 하셨죠?"
"…"
"침묵하면 대답으로 알겠습니다. 만났는데 왜 말을 나눌 기회가 없었는지요? 주위에 이목이 많아서?"
"글쎄…"

그는 그녀를 보며 부드럽게 눈꼬리를 휘었다.

"내가 왜 알려줘야 하느냐."
"형님…!"
"암튼 이번 일은 고맙다. 고마운건 고마운 거고, 그렇다고 네가 묻는 말에 다 대답해야 하는 건 아니잖냐."
"그럼…사과하십시오."
"사과? 그건 또 왜서?"
"이렇게 고마운 일을 하는 저를, 언제는 싫다고 내쫓았잖습니까? 얼른 사과하십시오…"
"글쎄…"
"이건 침묵으로 넘어갈 일이 아닙니다. 얼른요!"

둘의 다정한 그림자가 차츰 석양속에 물들어갔고, 수림 한끝에서 그녀의 웃음소리가 간간히 들려오고 있었다.

……

총병부에 되돌아온 서은에게는 다시 평온하고 한적한 날들이 이어졌다. 총병부에 와서야 그녀는 철령 무당할머니의 일을 이여백에게 알려주었다. 이여백은 그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다는 듯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저번에 철령에 내려간 것이 마지막 인사가 되었군."

이여백은 이성량에게 할머니를 기념해 철령에 절 하나를 세워줄 것을 부탁했다. 이성량은 바로 승낙했고 그녀는 이런 공사도 선뜻 허락할수 있는 이성량의 재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역사에서 장거정이 이성량을 중용하고 청렴하기로 유명한 해서[海瑞](명나라 유명한 청관[清官],해청천이라고도 불리움)는 오히려 멀리했다는 사실을 떠올리자 그녀는 얼굴 한가득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녀가 그러는데는 이유가 있었다. 총병부에 거주하는 동안 그녀는 줄곧 귀빈을 대하는듯한 융숭한 대접을 받아왔었고, 심지어 자신을 따라온 령이마저도 손에 물 한방울 묻히지 않을 정도로 안일한 생활을 누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어느날 총병부 후원의 석담과 가산, 그리고 연꽃과 대나무들도 멀리 남방에서 운반해온 것들임을 전해듣자 그녀는 억이 막혀서 눈을 크게 떴다.

"요동총병이 그렇게 사치해도 되는 건가? 이런 전란의 년대에."
"공주님…제발 소리를 낮추시와요."

령이는 손을 흔들어 그녀의 말을 중단시켰다.

"그건 총병님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가히 요동의 제후로도 칭하실만한 분이시온데 그깟 나무 몇그루, 꽃 몇송이를 남방에서 가져온다 한들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그렇다면 오라버니께선 왜 장거정을 청산했는데. 조정의 부정비리를 막고 매관매직을 조사하려고 탄핵당한 재상의 가산부터 몰수한 것이 아닌가?"
"조정의 일은 소인이 모르옵니다."

령이는 손으로 입을 막고 웃었다.

"다만 여기 와서 궁에서보다 갑절 더 편안하니 소인로서는 나쁘지 않사옵니다. 저 문만 열면 시비들이 대기해 있으니 이 얼마나 호강이옵니까."

령이는 신이 나서 재잘거리다가 서은의 기색을 보고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녀는 령이가 금세 주눅이 든 모습을 보자 머리를 흔들어 언짢은 생각을 털어버렸다.

"오늘은 어디 나가지 않는 것이냐."
"오늘은 공주님을 뫼시고 한담이나 해드리겠사옵니다."

령이는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대답하다가 그녀가 살짝 눈을 치뜨자 주눅이 들어 어깨를 움츠리고 말했다.

"소인이 무엇을…잘못 말했사옵니까."
"호칭을 주의하라고 몇번이나 일렀더냐."
"명심하겠사옵니다. 도련님…"

령이가 혀를 홀랑 내밀어보이며 말했다. 서은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다가 문득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가 놀거라. 오늘은 날씨가 덥지 않으니 외출하기엔 제격이 아니냐."
"추수가 지났사옵니다. 공…도련님."
"벌써 그렇게 되었구나."

그녀의 대답에 령이는 다시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도련님께선 나가지 않으시렵니까."
"나야 그동안 몇번이나 나가지 않았더냐. 궁에 있었던 네가 족히 무료할 것이니 이런 기회에 마음껏 놀거라."

서은이 빙그레 웃어보이자 령이는 생글거리며 말했다.

"그럼, 반시진만 나갔다 오겠습니다. 요즘 조선 사신들이 총병부에 자주 들려 앞채에 희귀한 물건들이 많습니다. 구경하러 가겠다고 대답한지 몇일째인데 도련님께서 오시자 그만 깜빡하고 말았습니다."
"어서 가보거라."

령이는 그녀에게 만복을 한후 곧바로 몸을 돌려 문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머리를 흔들면서 조용히 웃었다. 다시 창문밖으로 시선을 돌린 그녀는 창밖에 우거진 푸르른 대나무가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조선의 사신들이라…요동을 거쳐 명조 조정에 공물을 바치러 왕래하는 조선 사신들이 근자에 가끔 이성량의 총병부에 들려서 인사를 주고받는다는 소리는 들었다.

앞채에서 가끔 그들의 담소가 들려오면 그녀는 창문을 의지하고 한숨을 내쉬군 했다. 지금은 저렇 듯 웃고 있지만, 임진왜란에 이어 후금의 침입에 두번의 호란을 겪고 삼전도에서 굴육의 무릎을 꿇게 될 참담한 운명을 그들은 알고나 있을까.

요동의 분란에 이어 후금이 일어서면서 명과 조선이 겪어야 할 고난의 길은 아직도 멀고도 험난했다. 눈앞에 닥치게 될 명나라의 쇠퇴와 이로 인해 당하게 될 조선의 수난에 미소한 자신은 대체 무엇을 할수 있을까. 그녀는 대나무에서 시선을 거두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웬 한숨인가."

언제 들어섰는지 이여백이 말을 건네왔고 그녀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령이가 아까 나가면서 문을 그대로 열어놓은 것이 틀림없었다. 그녀는 그에게 차탁옆의 자리를 권한후 차주전자를 들어 손수 차를 따랐다.

"오늘은 웬 일이십니까."

그동안 철령의 절 공사때문인지 그는 그녀의 처소에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차잔에 차를 따라 그의 앞에 놓은후 그녀는 시선을 들어 다시 그를 바라보았다.

"절은 완공되었습니까."

그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그 눈빛에 그녀는 시선을 돌려버렸고 그는 문득 입꼬리를 올렸다.

"왜 묻지 않는 건가."
"뭘 말입니까."
"절 말이다. 사람이 갔는데 절이 무슨 소용이냐…넌 사실 내게 그걸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닌가."
"형님께서도 신기가 있나 봅니다."

그녀의 불퉁한 말에 그는 담담히 웃었다.

"예지능력이 있는 사람의 생각을 알자면, 이정도 독심술(读心术)은 기본이 아닌가."
"네…네…절을 지으랴, 독심술로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들여다 보랴…바쁘신 형님께서 어련하시겠습니까."

그녀의 말에는 비아냥이 섞였고, 그는 살짝 웃음기 어린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단단히 화가 났구나."
"화는 무슨…"
"절을 짓는 것때문이냐, 여기로 걸음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냐."
"아닙니다."

그녀는 벌떡 일어나서 창문쪽으로 다가갔다. 왠지 이유모를 갑갑함에 그녀는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저런 가느다란 대나무가 여기서 뿌리 내리기는 어려운 일일텐데요. 저건 남방에만 있는 대나무가 아닙니까."
"아버님께서 지인을 통해 남쪽에서 구해온건데, 아, 그러고보니 나치야가 저 대나무를 굉장히 좋아했었다."

그녀는 머리를 돌려 그에게 시선을 고정시킨채 약간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었다.

"그래도 혼담이 오가던 사람이라 나치야아가씨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도 세세히 기억하시는군요."
"오늘은 내가 잘못 왔군."

그는 잠깐 그녀를 응시했다.

"혹 몸이 불편한가? 아니면 기분나쁜 일이라도 있는가. 오늘저녁 조선 사신을 접대하는 연회엔 참석할수 있겠느냐.”

그녀는 귀가 솔깃해졌고 그는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아버님이 참석하라고 부르셔서 이르러 온 길인데 의외로 푸대접을 받았군."
"그동안 총병부에선 사신접대 연회까진 없었는데, 오늘 온 사신은 특별한가 봅니다."

그녀의 말에 그는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

"오늘 온 사신은 올해 조선에서 무과 급제한 인물로서 명이 공물을 바치는것이 아니라 여행을 목적으로 온 듯 하다. 경성에는 가지 않고 요동에만 머문다 들었으니. 사신이라기보단 귀객이지.”
"사신의 이름은 뭐라 했습니까."
"신충일이다."
"…"

그녀는 뭔가 한참 생각하다가 머리를 들고 빙긋 웃었다. 그는 그런 그녀가 이상하다는 듯 주시했고 그녀는 알쏭달쏭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 사람의 여행지는, 누르하치가 있는 헤투알라성이 될 것인데 누르하치가 환영을 할지…"

그는 살짝 미간을 구겼고 그녀는 그를 향해 웃었다.

"이참에 제 예지능력을…한번 더 시험하지 않겠습니까."

……

신충일…죽화를 잘 그리기로 이름난 조선중기 무신…그가 남긴 <건주기정도기>는 역사상 한만관계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였다. 왕명으로 건주 누르하치에게 들어가 지형을 탐지하고 산천, 지명, 군비, 풍속 등에 대한 정밀 지도를 작성 보고한 <건주기정도기>, 바로 이 <건주기정도기>를 작성하기 위해서 신충일은 지금부터 여진과의 접촉을 시도하고 있을 것이다.

후금의 누르하치에게 오배삼고두를 함으로써 국위를 손상시켰다는 죄명으로 파직까지 당했던 신충일…400년전의 조선은 후금이란 작은 민족에게도 휘둘리우는 약소국가로 살아야 했지만 그런 후금을 미연에 알고 경계하겠다는 신충일의 노력은 역사의 한폐이지로 남을 것이었다.

신충일을 만나는 자리에서 서은은 그런 생각을 하고있었고, 이여백과 서로 겸양하는 인사들이 오간후 신충일은 다소 의혹어린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무과에 장원급제한 총병부 둘째도련님의 성함은 익히 들었사오나 이분은…"
"제 아우로서 역시 조선인의 후손입니다."

이여백의 소개에 신충일은 그녀에게 머리를 숙여보인 후 다시 이여백을 향해 말을 이었다.

"이번에 제가 명으로 온 것은 다만 산수를 구경하는 것이 목적이오니, 요동에 체류하는 동안 두분 도련님께 많은 가르침을 바라겠습니다."
"저희가 도와드릴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편하게 말씀하십시오."

이여백의 말에 신충일은 단도직입적으로 화제를 돌렸다.

"듣자니 지금 요동에서는 누르하치 세력이 점점 커지고있다고 하는데 그것이 정녕 사실입니까."

이여백의 침착한 시선은 서은의 눈길과 마주쳤다가 다시 신충일에게 돌려졌다. 그가 담담히 반문했다.

"산수를 구경하는 신공자의 여행이 요동 작은 민족의 세력을 알고자 함이 목적이셨군요."
"산수를 구경하면서 그 땅의 인물과 풍토를 알아가는 것 역시 여행의 재미가 아니겠습니까."

신충일이 웃으면서 받아치자 이여백은 대답대신 머리를 숙여보였다.

"오늘저녁에 아버님께서 후원 정자에 박주 한잔을 마련하셨으니 때가 되면 사람을 보내 모시러 오겠습니다."
"이토록 접대해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신충일과 작별하고 역사(驛舍)를 빠져나온 두 사람은 총병부로 돌아올 때까지 묵묵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총병부 후원에 이르자 이여백은 눈앞의 연못을 바라보았고, 서은은 연못의 마른 연잎들을 한참 내려보다가 침묵을 깼다.

"형님…무엇을 생각하십니까."
"너의 예지능력이 놀랍구나. 신충일의 이번 길은 과연 누르하치가 목적이었다."
"이제 겨우 시작입니다."

그녀는 머리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형님이 생각하시는 건 단지 이것뿐이 아니지 않습니까."
"…"
"형님께선 신충일이 누르하치와 그 어떤 교역이 있을까 염려하시지 않는지요."

그녀의 말에 그는 말없이 그녀를 주시했다. 그리고는 한참 침묵하다가 그가 입을 열었다.

"나하곤 상관이 없는 일인데 내가 왜 그런 걱정까지 하겠느냐."
"형님도 참…"

그녀는 잠깐 한숨을 내쉰후 말머리를 돌렸다.

"만일 그들의 교역이 이루어진다면, 명과 조선에 해로운 건 아닌지요. 형님께선 저대로 방치하시렵니까."

그는 말이 없었고 그녀는 몸을 돌려 그와 마주섰다.

"제 질문이 그렇게도 어려웠습니까? 어렵다면 뭐 꼭 대답 안하셔도 됩니다."
"아니다…"

그는 머리를 가로젓고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이런 문제를 나한테 묻지 않았고 나도 한번도 생각해본적 없었다. "
"…"
"나는 내가 누구인지…무엇을 해야 하는지…갈피를 잡지 못할 때가…많으니."

그가 낮게 중얼거렸고, 그녀는 착잡한 눈빛으로 그를 보다가 말했다.

"형님뿐이겠습니까…"

그녀는 시선을 돌려 연못 중간에서 가을 바람에 떨고있는 외로운 연꽃 한송이를 바라보았다.

"이보다 더 많은, 복잡한 문제들이 몇십년후…아니 몇백년후에도 그 해답을 찾지 못할지도 모릅니다…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살면서 자신의 사명을 정확히 알고 행동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습니까."

그는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 서있었고,그녀는 그런 그에게 모를 박아 조용히 말을 던졌다.

"그러나 해답을 찾아야지요. 어쩌면 형님께서 고민하는 것이, 바로 그 해답을 찾는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

총병부 후원 정자에 신충일을 접대하는 호화로운 연회석이 차려졌다. 날이 저물고 달이 높이 걸리자 연회 분위기는 바야흐로 무르익고 있었다. 향기로운 술과 희귀한 음식들이 줄지어 오르는 가운데 융복대신 평복을 입은 이성량은 한낱 자상한 아버지의 모습 그 자체였다.

서은은 그런 이성량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짧게 한숨을 쉬면서 머리를 돌렸다. 만일 자신이 이 시간대에 오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그들 부녀지간은 화해를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에 그녀는 잠깐 넋을 잃었다.

"서안아."

옆에 앉은 이여백이 가볍게 불러서야 그녀는 신충일이 자신을 향해 술잔을 들고있는 것을 발견할수 있었다. 그녀는 급히 정신을 가다듬고 두손으로 술잔을 받았다.

"죄송합니다. 신공자…"
"아닙니다. 제가 괜한 권주로 임공자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드린 것 같습니다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녀는 당황해서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녀는 술잔을 내려놓은 후 자리에서 일어나 신충일에게 머리를 숙였다.

"이런 자리에 익숙치 않아 잠깐 넋을 놓은 점 송구하옵니다. 부디 너그러이 용서해주시옵소서."
"용서하고 말 것까지야 없습니다. 둘째도련님께서 한가지만 들어주신다면 이 일은 없던 일로 하겠습니다."

신충일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고 있었고, 서은은 그가 결코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달빛이 정자를 환하게 내리비추는 가운데, 신충일은 이성량을 향해 정중히 머리를 숙였다.

"총병님, 소인 잠깐 무례를 범하오니 부디 용서해주시옵소서."
"신공자께선 편하게 말씀하시오."

이성량이 미소를 지어보이자 신충일은 이여백을 돌아보았다.

"우선 이같이 융숭한 대접에 감사 드리옵니다. 소인 두분 공자를 뵙고 또 오늘과 같은 아름다운 자리에 젊은 혈기를 이기지 못해 한가지 청탁 드리려고 하오니 부디 총병님께서 웃지 말고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연회석은 물뿌린 듯 조용해졌고, 신충일의 눈에는 한가닥 도전의 빛이 날카롭게 스치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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