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일본 교토대학 교수 오구라 키조(小倉紀蔵)의 『朝鮮思想全史』(筑摩書房, 2017)의 제1장 <조선사상사 총론> 제2절에 기술된 조선사상사 특징에 관한 부분을 뽑아 번역한 것이다.  번역문의 첫 부분은 여기 붙인 링크를 참조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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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상사의 특징: 조선적 영성(靈性)의 네트워크

조선사상의 순수지향성과 이에 대한 대항적 움직임은, '운동'의 개념으로서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이러한 운동은 '영성(靈性)'이라고 불러야 되는 정신성과 밀접하게 이어져 있다. 

순수성을 획득하려고 운동하고 있을 때든, 순수성을 유지하고 있을 때든, 아니면 순수성이 쇠락하고 있을 때든, 조선의 사상은 뚜렷한 영성을 띤다. 예를 들어, 순수성이 쇠락한다는 것은 그 사상에 의해 영위되고 있는 생명이 열악해진다는 것을 뜻하는데, 조선에서는 이러한 국면에서도 그 사상이 그대로 사그라져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하여 영적인 힘을 발휘한다. 국가나 공동체 구성원의 육체적인 생명을 뛰어넘는 영성이, 사상의 불꽃처럼 불타오른다. 

"모든 사상은 인간의 육체적 생명을 보전하기 위하여 기능하여야 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생명을 영위하지 못하고 지켜주지 못하는 사상 따위는 아무런 가치도 없을 지 모른다. 그러나 사상이란 그런 것이 아니다. 개개인의 육체적인 생명을 뛰어넘는 사상이란 것도 존재한다. 

스즈키 다이세츠(鈴木大拙)의 '일본적 영성'에 대한 담론을 본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면, 이와 같은 것을 '조선적 영성'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최제우 초상화

지성으로든 이성으로든 감성으로든 설명할 수 없는 '정신적 현상'이라는 것이 있다. 영성이라는 말로 밖에는 설명되지 않는 정신현상인 것이다. 예를 들어, 제7장에서도 언급하겠지만, 19세기에 경주에서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崔濟愚)는 신라 원효(元曉, 7세기)의 화쟁(和諍)의 논리인 "불연-대연(不然・大然)"과 비슷한 철학을 피력하였고, 신라 화랑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칼춤(劍舞) 또한 중요시하였다. 

원효대사(교토 高山寺 소장)

나아가 '하늘의 마음'(天心)과 '사람의 마음'(人心)은 같은 것이라고 하면서 "시천왕(侍天王)"을 중시하는 최제우의 사상은, '하늘을 공경하고 하늘을 두려워하고 하늘을 섬기는'(敬天・畏天・事天) 것을 중요시하면서 천인합일(天人合一)의 도(道)를 추구했던 안동(최제우의 고향 경주와 같은 영남 지방임) 이퇴계(李退溪, 16세기)를 똑 닮아있다. 실제로 최제우의 아버지(최옥[崔鋈], 호는 근암[近菴])는 퇴계의 학문을 닦았던 인물이었다. 

퇴계 이황

이러한 사실을 모두 아울러 생각해 볼 때, 경주와 영남 지방에는 "하늘(天)과 사람(人)은 같다"고 하는 영적인 세계관과, 서로 대립하는 사물들이 회통(會通)한다고 보는 영성이 있었으며, 이것이 때때로 원효와 화랑과 이퇴계와 최제우라고 하는 구체적인 모습으로 역사의 표면에 분출되어 나타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것은 경주와 영남 지방이라고 하는 '토지의 영'(地)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을 것이고, 학통과 혼인관계 등의 네트워크와도 강한 연관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특히 모계의 네트워크는 표면상 족보=가계도 등의 기록에는 상세하게 드러나지 않으나, 영성적인 영향관계라는 의미에 있어서는 더없이 중요하다). 

이러한 '영성 네트워크' 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존재하며, 조선사상사 전체를 움직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동력으로 작용한다는 것은 명백하다. 하지만 여태껏 이루어져온 사상사의 기술에서는 이러한 요소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도외시되어왔다. 명확한 당파적 학통(사제관계) 및 혼인관계(부계 혈통만 중시)에 한하여 확인할 수 있는 것만을 기술하여 왔기에, "해동 주자(海東朱子)라고 불리는 조선의 대유학자" 이퇴계와 "동학(반유교적 민중사상)의 우두머리로서 조선정부에 의해 처형된" 최제우와의 사이에 어떠한 연관도 없을 뿐더러, "이(理)를 중시한 지배층" 측의 이퇴계와 "기(氣)를 중시한 민중" 측의 최제우는 완전히 정반대의 입장에 서있는 사상가로서만 기술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이성적인 분석"이 진짜 맞는 걸까? 그렇지 않다. 이(理)와 기(氣) 등의 개념과, 문헌에서 확인할 수 있는 역사적 사실관계만으로 사상사를 기술한다면 누락되어 버리는 부분이 너무나 많아진다. 이러한 빈자리를 메꿀 수 있는 것이 영성적인 시각인 것이다. 

이밖에, 한국에서는 이와 같이 "영성적인 시각으로 사상사을 바라보는" 방법론이 과거나 지금이나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내(오구라)가 아는 바로는, 김태창(金泰昌)을 위수로 하는 연구자들의 자발적인 모임에서만 이러한 발상이 이루어지고 있다. 최재목(崔在穆, 양명학연구), 박맹수(朴孟洙, 동학연구), 조성환(趙晟桓, 유학동학연구) 등이 김태창과 함께 여직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관점으로 조선사상을 되돌이켜 보려 하고있다. 나(오구라)도 그들 가운데서 큰 자극을 받으면서 조선사상사를 상고하고 있다. 

<들어가기>에서 적은 바와 같이, 이 책에서는 되도록 객관적인 기술을 지향하였으므로 '조선적 영성'에 특별히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니지만, 이를 항상 염두에 두면서 사상사를 서술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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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일본어
출처: 오구라 키조(小倉紀蔵), 『朝鮮思想全史』, 筑摩書房, 2017.11, pp.23-26

저자소개:

1959년생, 도쿄대학 문학부 독일문학과 졸업, 서울대학 철학학과 대학원 동양철학 전공 박사과정 단위취득 및 퇴학, 현재 교토대학 대학원 인간환경학연구과 교수. 전공분야는 동아시아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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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태면서

읽으면서 '영성'이란 단어나 개념이 생소하게 다가왔다. 저자는 스즈키 다이세츠의 '일본적 영성'이란 맥락을 받아 '조선적 영성'이란 용어를 제기했으니, 상세하게 이해하려면 스즈키의 논술을 읽어 봐야겠지만, 원효와 퇴계와 최제우가 같은 사상적 광맥의 가끔 있는 표출로 본 것과 같은 서술 등을 참고해 볼 때, 신토불이 같은 단어에서 연상되는 한 지역의 뿌리깊은 풍토나 정신에 가깝지 않나 생각해 본다. 

조선의 풍토나 사상은 그 바탕이 많이 거론되는 샤머니즘, 그 '신바람'과 '한풀이'의 성격이 짙은 것으로 인해 저자가 얘기한 특징을 띠지 않나는 생각도 잠깐 해봤다. 문헌기록에만 의존해서는 역사의 표면에 등장하지 않는 수많은 인간과 연결과 언어와 구전과 사건들을 파악하는게 불가능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 부분들을 '영성'이라는 용어로써 그 범주를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번역문 첫 부분에 이어 오구라 키조가 이야기하는 시각으로 요즘 반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한번 대입시켜 본다면 재미있어 보이기도 한다. '헬조선' 같은 유행어와 '기생충' 같은 삶들이 생기고 있는 한국의 사회상, 촛불혁명이 일어나도록 썩었던 한국의 정치상, 사이비와 이단이 유난히 판을 치는(워낙에도 늘 있었지만) 종교상 등의 다이내믹함을 상기해 볼 때, 요즘이 혹시 이른바 '영성 가속도의 시대'는 아닐지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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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

떠돌면서 듣고 모으고 배우는, 이야기 "꾼"이 되고싶은. 연변, 북경을 거쳐 교토에서 고전과 씨름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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