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상사의 특징(오구라 키조) 

●혁명인가 브리콜라주인가

일본문화가 외부로부터 들어온 문화에 대하여 브리콜라주(Bricolage, 修繕) 적인 포섭방법을 취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하는 것은 마츠오카 세고(松岡正剛)의 주장이다. 일본사상사에 있어서도 역시 이와 같다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조선의 경우 이와는 달리, 외부에서 들어온 사상이 기존 시스템의 전면적 개변을 추진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고려시대에는 불교에 의하여 사회가 철저히 변혁된 바가 있고, 그 다음의 조선시대에는 주자학에 근거하여 사회를 혁명적으로 바꾸었다. 지금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역시 공산주의라는 사상을 가지고 사회에 대한 전면적 개변을 이루었다. 물론 사상의 다양성은 각 시대마다 유지되었다. 다시 말하면 고려시대라고 하여 불교 일변도(一邊倒)가 아니었고, 조선시대의 사상 역시 유교 뿐만은 아니었다. 조선의 사상은 그런 의미에서 서양의 기독교적 사상통제와는 현저하게 다르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중국이나 일본과 비하여 볼 때, 조선에 있어서 “혁명적인 정치기능으로서의 사상”의 존재감은 단연 돋보인다고 말해도 좋다.

대동강변의 주체사상탑

●순수성・혼합성・정보・생명・영성(靈性)

이 책의 서술에 있어서 되도록 저자의 독자적인 관점을 삼가려고 하였으나, 결국 나(오구라)의 저작인 이상 나의 관점이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 한 지역의 사상사를 쓴다고 하면서 독자적인 시점이 전혀 없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가 이 책을 집필하면서 시종 염두에 둔 것은 순수성, 혼합성, 정보, 생명, 영성이라고 하는 다섯개의 키워드였다(어디까지나 염두에 두었다는 것이지 이것들이 주선율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조선사상사를 훑어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사상의 순수성을 둘러싼 치열한 투쟁이, 이 지역에서는 자주 그리고 상당히 긴 시간동안 전개되어 왔다. 이 점은 일본사상사와는 뚜렷하게 다른 것으로서 중국사상사와도 명확하게 구별되는 지점이다. 순수성을 유지하려고 하는 진영은 기타 진영을 불순한 사상의 소유자라고 비판하고 규탄하고 탄압하기에까지 이르렀으니, 조선의 사상사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순수성을 둘러싼 투쟁사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이 “투쟁”이라는 낱말은 현실적인 의미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조선에 있어서 사상의 내용은 정치적 입장과 같은 것이어서, 사상투쟁은 곧바로 정치투쟁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유교, 해방후의 한국과 북조선의 이데올로기에서 이러한 양상의 전형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조선시대 유교 신전인 종묘

사상의 순수성은 권력 뿐만 아니라 권위와도 결합되어 있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의 유교는 중국의 주자학을 최고권위로 보고 논쟁이 전개되었기 때문에 조선의 오리지널 사상을 개발하려는 방향이 아니라 주자학에 얼마나 충실한가 하는 문제를 에워싸고 다투는 것이 주류였다. 이 사실을 두고 식민지시대의 타카하시 토오루(高橋亨) 등은 “조선사상의 독창성의 결여, 중국에의 종속성”을 부르짖었다. 그러나 조선사상의 성격을 단지 “독창성의 결여”로 환원하는 것으로는 이 지역에 있어서의 사상적 움직임의 본질을 이해할 수 없다.

오히려 조선의 지정학적 조건을 뇌리에 깊이 되새겨 볼 때, 조선의 사상이 순수성을 추구한 것은 안전보장의 성격과 의미를 강하게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무력으로 중국(혹은 기타 외국세력)에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사상의 순수성으로써 중국(혹은 기타 외국세력)보다 우위를 점하려는 전략인 것이다.

또한 일본에서 지지를 받고 있는 “일본특수론”의 맹점은, 조선의 순수성이라는 완충지대가 없으면, 다시 말하여 만약 일본이 중국과 잇닿아 있다면 과연 일본의 “특수성”이 성립될 수 있느냐는 점에 무관심하다는 데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가라타니 코진(柄谷行人)이 자각하고 적고 있다(<일본정신분석>).나도 <창조하는 동아시아 –-문명, 문화, 허무주의>라는 책에서 집중적으로 이 문제를 말한 적이 있다. 조선의 사상적 순수성은 중국 및 일본과의 관계성을 고려할 때에야 비로소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조선에 있어서 사상의 순수성 추구에 대항하는 축으로서, 그 맞은켠에는 “불순성”이 확고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불순성”은 주자학(지배측)에 대항하는 서학과 양명학이라는 “또다른 사상체계” 라든가, 혹은 삼교(유, 불, 도) 내지는 사교(삼교+샤머니즘)합일이라는 혼연일체의 “혼합사상”과 같은 것에서 드러난다. “혼합사상”은 신라의 풍류사상을 마지막으로 겉으로는 국가의 주류사상으로 되지 못했지만, 사실 음지와 양지로 조선 주류사상의 순수지향성을 위협하여 왔다.

고려불화 수월관음도

지배적인 쪽이 사상의 순수성을 추구할 때에는 수많은 방식으로 사상에 대한 통제가 이루어진다. 외부로부터 유입되는 사상을 차단하는 일도 조선에서는 빈번하게 진행되었다. 다시 말하여 정보의 컨트롤을 진행하는 것이다.

조선에서는 다른 지역에서 정보의 움직임이 활발하고 가속화되고 있는 시기에 되려 정보의 움직임에 제동을 거는 일이 자주 있었다. 예를 들어 16세기 후반에 서양으로부터 사상과 문물이 동아시아에 대량으로 유입되던 시기, 일본에서는 키리시탄(기독교) 다이묘(大名)가 나오거나, 남만문화(南蠻, 일본 중세에서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가리킴)가 유행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 시기 조선의 지배층은 정보를 통제함으로써 사상의 순수성을 지켰다. 조선 최초의 카톨릭 신자는 18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나타난다. 19세기 후반에 서양의 근대사상과 문물이 중국과 일본에 쏟아져 들어올 때에도 조선에서는 “위정척사”(衛正斥邪, 바른 유교를 지키고 사악한 서양문물을 배척하자) 운동을 진행함으로써 “양왜”(洋倭, 야만적인 서양과 일본)의 침입을 차단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것들은 사상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한 실천이었다. 현재 북조선이 자신의 체제와 주체사상을 지키기 위해 외부로부터의 정보를 통제하고 있는(차단은 아니다) 것도 같은 이유에서부터이다.

물론 오로지 정보의 차단과 통제만 이루어져 온것은 아니다. 18세기, 지배층이 서양사상과 종교의 유입을 통제, 차단하고 있었을 때, 그것에 대항하여 서학을 연구한 학파가 있었다. 주자학이 지배하고 있는 중에도 양명학을 지지하는 학파가 있었다. 학자들 가운데는 순종이 아닌 저항과 자주(自主)의 전통이 깊히 뿌리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결국 아류(亞流)에 지나지 않거나 비밀적인 학통일 뿐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상의 순수성을 지키”려는 지배층의 행위가 자국과 자민족의 안전과 생존을 보장하는 긍정적 궤도를 벗어나는 임계점이 찾아오게 된다. 이런 사실을 눈치채지 못할 경우, 정보의 통제와 차단을 통하여 사상의 순수성을 사수하려고 하는 움직임이 부정적인 궤도로 탈바꿈하게 된다. 이 때에 출현하는 것이 생명의 사상이다. 더이상은 공동체의 생명을 유지할 수 없게 된 순수사상을 치워버리고 정보의 유입을 완전개방에 가까울 정도로 열어놓은 채 생명의 유지와 진전을 새롭게 모색한다. 이 국면에 돌입할 때의 조선은 참으로 다이내믹하게 변한다. 

1907년 평양대부흥

역사상에서 고려의 불교로부터 조선의 유교에로 대전환할 시기, 조선시대 말기에 새로운 종교적 영성이 완전히 개봉된 시기, 대한제국시대로부터 식민지시대에 이르기까지 근대사상이 대거 유입되던 시기, 현대한국의 민주화운동 등 시기로부터 이러한 영성적인 약동성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시기들은 속도가 아닌 가속도의 시대들이었다. “영성 가속도의 시대”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이다. 다만 식민지시대의 대변혁은 일본이라는 “사악한” 지배자를 매개로 하여 이루어진 것이기에, 현재의 한국이나 북조선이나 그 사상적 영성적 의미를 전혀 직시하고 있지 않다. 조선민족으로서는 참으로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위의 내용을 종합하면, 조선사상사의 특징적인 변화법칙은 다음과 같다.

먼저, 조선에서는 자국의 안정보장 상의 이유와 통치권력의 안정성이라는 이유로부터, 사상의 순수성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뚜렷하게 강하다. 하지만 여기에는 “다른 사상체계”와 “혼합지향”이라는 대항마가 존재한다. 사상이 순수성의 획득을 위하여 운동하고 있는 시기에는 굉장히 약동적인 사회가 실현된다. 이 순수한 사상에 의하여 통치가 되고 국가와 공동체 성원의 생명이 유지되고 충실한 시기에는 계속하여 순수성이 추구된다. 또한 이 시기에는 정보가 통제된다. 

그러나 어떠한 시점을 경계로 순수한 사상의 현실적인 효력이 사라지기 시작하면, 통치권력의 의지에 의하여 정보차단과 같은 부정적 궤도에로 바뀌어 가동되기 시작하면서 사상의 순수성을 사수하려고 하는 운동이 국가와 공동체 성원의 생명을 열악하게 만든다. 생명의 악화가 극도에 달하면 어느 순간엔가 충격적이고 혁명적인 새로운 사상이 도입되거나 발명되어 정보의 유입과 혼합은 봇물 터지듯 진행되며 이와 동시에 사회의 영성적인 약동성(가속도)이 단번에 올라간다. 그리고 새로운 사상에 의한 새로운 생명이 사회를 과감하게 변혁시켜 간다.

조선사상사에는 약동성과 정체성(停滯) 두 가지 모두가 있다. 이 둘 중의 어느 하나만을 본질이라고 인식하여서는 안되는 것이다.

(다음에 이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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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일본어
출처: 오구라 키조(小倉紀蔵), 『朝鮮思想全史』, 筑摩書房, 2017.11
부분: 제1장 <조선사상사총론> 제2절 중

저자소개:

1959년생, 도쿄대학 문학부 독일문학과 졸업, 서울대학 철학학과 대학원 동양철학 전공 박사과정 단위취득 및 퇴학, 현재 교토대학 대학원 인간환경학연구과 교수. 전공분야는 동아시아 철학. 

독서메모

<조선사상전사>는 일본 내에서 출간된 상당히 객관적이고 전면적으로 조선사상사를 서술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가장 최근에 출판된 조선사상사 관련 저서이기도 하다. 내부자이며 제3자인 저자의 독특한 시각은 책의 제1장 총론에만 집중적으로 드러나있다. 다른 부분에서는 되도록 한발 물러나 객관적이고 사실로만 서술하는 그의 기름기 뺀 자세가, 오히려 여러가지 사관의 논쟁에 점철된 한국 내의 서술보다 더 차갑고 정확하게 다가가는 상상 밖의 효과를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여러모로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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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

떠돌면서 듣고 모으고 배우는, 이야기 "꾼"이 되고싶은. 북에서 남으로, 서에서 동으로 돌다가 고전과 씨름하게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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