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뒤 나는 업무 관련 학습으로 외지에 가게 된다. 그 때문에 요즘은 부지런히 돌아치고 있다. 내가 없을 동안 필요한 쌀과 소금과 간장과 같은 것들을 푼푼히 사둔다(이미 넉넉히 장만되여있다). 그동안 혹 모자랄 지도 모를 수도료금이나 전기료금과 같은 것들을 충분히 입금해놓는다. (이미 입금되여있는 액수로도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가족들에게 필요할 지 모르는 약품들도 사둔다. 또 일어날 지도 모르는 일들에 대비하여 이런저런 대책들을 마련해놓는다. 만약 열쇠를 집안에 두고 갔다면 엄마에게 맡겨두니 찾아가라든지 전기가 오지 않는다면 이미 충전해놓은 손전등을 사용하라든지 등등이다(정말로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그 때에 얼마든지 방법을 강구해도 되며 기어이 내가 아니여도 집식구들이 알아서 잘할 것이다). 그리고 집안 구석구석을 깨끗이 닦는다. 창문이며 싱크대며 세면대며 변기며 말끔히 닦는다. 그리고 랭장고며 옷장이며 책장이며 서랍까지 다 닦고 정리한다. 그리고 빨래를 한다. 옷가지들을 씻어서 분류별로 잘 정리해놓고 양말들도 깨끗이 씻어서 넣어두고 세수수건도 찾기 쉽도록 놓아둔다. 기어이 이렇게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내가 없는 동안은 겨우 삼일 간이다.  

         나는 집을 비우는 시간이 한주일이든 아니면 겨우 하루밤이든 언제나 이런 준비를 했다. 어쩌면 이제 집을 떠나서 더는 밥을 안해도 되고 청소도 안해도 되고 빨래도 안해도 되는 그런 게으른 시간을 온전히 누리기 위한 준비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어딘가로 떠나게 되면 나는 늘 이런 준비들로 무척 바쁘군 했다. 꼭 마치 오래동안 돌아오지 않을 사람처럼 말이다. 어쩌면 어딘가로 떠나서 거기에서 다시 훌쩍 예상치 못한 곳으로 떠날지도 모른다는 그런 무의식이 늘 웅크리고 있는 탓인 것 같기도 하다. 무작정 어딘가로 내가 나를 다스릴 수 없을 만큼 가버릴 것도 같고 또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딘가로 옮겨져가있을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어딘가로 떠나는 날이면 늘 이런 상상에 빠져들군 한다. 기실 커다란 현실의 손에 잡혀 한번도 그렇게 떠나본 적이 없지만 말이다. 

         그런데 나의 이 준비라는 게 떠남을 위한 준비 뿐이 아니다. 어느 날 책이라도 손에 들고 느긋이 즐기려면 내 눈에 먼지가 보여오고 빨래가 보여온다. 그래서 세탁기를  돌리고 또 청소를 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보면 시간이 많이 흘러 책을 볼 시간적 여유도 얼마 남지 않거니와 이미 일에 지치고 피곤해진 몸은 푹 자고 싶어진다. 

        오늘도 나는 점심을 먹고 나서 낮잠을 자고 싶었다. 그런데 애가 벗어놓은 빨래를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문뜩 났다. 자신의 그런 준비행각 때문에 생각지 말고 그냥 자자, 그런 다짐까지 하며 나는 침대에 몸을 눕혔다. 그러나 잠에 빠져들지 못했다. 자꾸만 빨래에 신경이 씌여졌다. 머리 속의 모든 세포 하나하나, 몸의 솜털 하나하나가 다 빨래에로 몰두해가는듯했다. 머리 속이나 온몸 속으로 벌레가 기여다니듯 근질거려서 참을 수가 없었다. 결국 그런 시간을 견딜 수 없어 몸을 일으켜 빨래를 했다. 빨래를 하고 화장실을 청소하고 이젠 온전히 자자 하는 생각으로 편한 기분이 되여 이불 속으로 기여들었다. 그런데 문득 남편의 셔츠단추가 거의 떨어질듯하던 기억이 불쑥 떠올랐다. 그래서 단추 하나만 제꺽 달고 누워야지 하고 생각하며 또다시 일어나 바느실을 찾아쥐였다. 그런데 정작 바느실을 찾아쥐고 나니 단추 하나가 아니라 그 셔츠에 조롱조롱 달린 여러개의 단추들을 일일이 든든히 달아놓느라 시간이 꽤 흘러갔다. 그러고 나니 이제 얼마 후면 저녁을 지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고 무슨 반찬을 만들가 하는 생각들을 하다 보니 결국 나는 오늘 낮잠을 잘 수 없었다. 

       빨래도 언제나 생겨나기 마련이다. 먼지도 언제나 떠돌기 마련이다. 밥도 날마다 지어야 한다. 그것들을 다 하다보면 결국 나의 몸은 지치고 시간은 줄어들고 그 사라진 시간 앞에 허망해진다. 그럼에도 그것들을 하지 않고는 하고 싶은 일을 또한 온전히 즐길 수가 없었다. 때로는 그런 자신에게 짜증을 내거나 왈칵 성을 내며 하려는 일에 몰두하려고 애쓰지만 나는 번번이 이런 자신을 어쩔 수 없었다.  

       언젠가는 준비 없이 당장 행하고 싶다. 그것이 려행이든 아니면 커피 마시기든 아니면 잠을 자는 것이든 글 한줄 쓰는 것이든 친구 한번 만나는 것이든…

        세상은 내가 준비한다고 준비한 대로 맞추어주는 것도 아니였다. 기껏 주변정리를 끝내고 온전히 하고 싶은 일에 몰입하려면 또 불시로 뜻하지 않던 방문객이 생기거나 갑작스레 일들이 새로운 생겨나기도 했다. 그래서 늘 준비로 분망했지만 온전히 하고 싶은 일에 미치지도 못한 채 헛된 준비가 아깝기도 했다. 게다가 세상 앞에 어느 누가 완벽한 준비를 마칠 수 있었던가? 준비를 할 여유조차 없이 맞닥뜨리게 되는 일 또한 많다. 준비를 하고 그리움에 빠지는가? 준비를 하고 외로워지는가? 준비를 하고 가슴에 상처를 입는가? 또 어느 순간 갑자기 들이닥칠지 모르는 사고나 병이나 죽음이나가 미처 준비를 할 수가 있었던가? 또 준비라는 걸 우리는 마칠 수는 있을가? 나는 한 엄마로서의 준비를 이미 마쳤는가? 오늘 밤 편안한 잠에 빠져들기 위해 나는  하루 낮을 그만큼 충실하게 준비했는가? 내가 준비를 해야만 하는 일이 과연 얼마나 될가?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될 일도 충분히 많을 것이다. 준비만 하느라 결국 중요한 일들인 하고 싶은 일들을 누리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리고 나서 현실이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다고 불평을 부리면 무엇하나? 차라리 가슴이 원하는 대로 그냥 저지르면 어떨가? 예기치 못한 삶의 신비와 환희를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빨래를 먼저 하지 않고 잠을 잔다고 안될 것이 있는가? 잠을 자고 빨래를 해도 얼마든지 된다. 바닥을 닦지 않고 밥을 먹는다고 안될 것이 있는가? 밥을 먹고 바닥을 닦아도 얼마든지 된다. 누가 준비를 다 마쳐야 웃을 수 있다고 했는가? 준비된 웃음은 결국 웃음의 크기나 그 정서의 밀도를 훨씬 줄여줄 뿐이다. 누가 준비를 다 마쳐야 사랑할 수 있다고 했는가? 사랑하며 성장하고 성장하며 사랑할 수도 충분히 있으며 그것이 어쩌면 더 의미 있고 더 아름다운 사랑의 원형일지도 모른다. 

         꽃을 보러 가고 별을 쳐다보고 바람을 맞고 시를 읊고 좋은 사람을 만나고 용서를 하고 리해를 하고 감동하고 행복하고 … 그 모두를 나는 준비를 완벽하게 하며 시간을 보내느라고 미처 실천하지 못했다. 내게 남보다 더 많은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음을 안다면 준비로 머뭇거리지 말아야 했었다. 시시한 준비로 소중한 시간을 그냥 허송해버린 자신이 너무 바보스러워보인다. 

        이제라도 덜 준비하고 뛰여들 것이다. 그렇게 시도해볼 것이다. 나는 이런 다짐을 하는 내가 마음에 든다. 준비를 해야 하는 일도 많지만 준비로 시간을 다 보내거나 준비로 정력을 다 소비하기에는 우리가 누려야 할 것이 너무 많고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다. 결과에 련련하지 않으며 무작정 내가 원하는 것 속으로 내 몸을 두려움없이 던지고 싶다. 

        지금 그런 맘으로 글을 쓴다. 잘 준비되지 않은 모두에서 아스라하니 멀어진 채. 가슴에서 단순한 기쁨이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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